만화카페 데이트
5학년 아들과 주말을 보내는 한 가지 방법
특별한 일정이 없는 주말. 친구들과 오전 11시부터 만나 점심을 밖에서 먹고 6시에 헤어져 집에 돌아온다는 신나는 계획을 가진 준이와 달리, 봉이와 엄마는 휴일을 맞이하는 기분이 답답하기만 하다. 봉이로 말할 것 같으면 학교를 같이 가고, 학교에서도 같이 놀고, 학교 끝나고 의미 없는 수다를 나누는 친구는 있되 주말을 함께할 친구는 없는 불쌍한 처지였다. “나랑 놀아 주지도 않고, 친구들 나빠.” 아, 엄마 아빠가 놀아 주어도 성이 차지 않는 나이인 것을 어쩌랴. 그래도 놀아 줄 친구 없다는 핑계로 온종일 게임과 유튜브를 번갈아 가며 스마트폰에 매달려 있는 거북이 되는 꼴을 볼 마음은 없으니 엄마 마음은 답답한 것이다.
형의 슬리퍼를 빌려 신고 예약한 안과 진료를 보고 집에 오는 길에 봉이는 “나도 슬리퍼 갖고 싶다.” 한다. 나는 ‘아싸, 갈 데 생겼다!’ 속으로 다행의 만세를 외치고 “백화점 가자!” 바로 대답한다. “진짜?” 그저 해 본 말인데 평소와 달리 엄마가 바로 허락을 하는 것이 믿기지 않았나 보다.
손가락과 발가락, 손과 발이 모두 날씬하고 길쭉한 봉이는 250mm 사이즈에 푹신푹신하고 조임이 가능한 뉴발란스 검은색 슬리퍼를 고른다. 이제 어디로 가지? 교보문고에 가기로 했다. 백화점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가는 동안 진짜, 편하다, 하는 봉이의 감탄사가 가는 길을 지루하지 않게 했다.
“만화 카페?” 아직 3분밖에 안 걸었는데 봉이의 시선은 만화카페라는 네 글자에 꽂혔다. 오늘만은 시간 떼우기가 목표 아니던가. 6층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언제나 가 보자, 가 보자 말만 하고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던 만화카페를 오늘에서야 맞닥뜨렸다.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라, 또 이런 취향에서는 봉이와 내가 어쩜 이리 궁합이 잘 맞는지, 엘리베이터를 오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설렘의 함박웃음이 우리 둘의 얼굴에 그대로 피어 앉았다.
어디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쾌적한 환경에 나는 안도했다. 그냥 북카페처럼 보였다. 한두 명의 사람이 앉아서 노트북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묻는 주인어른께 한 시간으로 음료 패키지를 하겠다 말했다. 한 시간, 너무 길려나? 봉이에게도 레몬에이드를 인심 좋게 시켜 주었다.
처음인지라 좋은 자리를 찾는 일이 급선무였다. 1층 한 자리로 들어가니 아늑은 한데 머리를 들고 설 수 없는 환경이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2층은 충분히 일어설 수 있는 데다 유리창이 넓게 트여 있어서 2층으로 정했다. 계단을 올라 2층을 둘러보며 우리 자리를 하나 잡았다. 이번엔 책을 골라야 할 차례. 흠, 내가 언제 만화를 읽은 적이 있어야지. 20대 후반의 신의 물방울이 마지막인 듯. 이때 음료 준비 벨이 울렸고, 봉이가 용감하게 가지러 간다 한다. 아그, 애들이 크니 이럴 때 참 좋아. 음료를 얼른 자리에 갖다 놓은 뒤 봉이가 1층으로 내려온다.
우리는 책을 사냥하러 나선다. 오호, 설민석의 한국사, 놓지 마 정신줄, 살아남기 시리즈 등 아이들을 위한 책이 한쪽에 모아져 있다. 봉이는 보긴 보았는데 집에 다 구비되지 않은 쿠키런 5권을 발견한다. 오케이, 봉이의 책은 쉽게 정해졌다. 7권까지 세 권을 집어 먼저 자리에 가라고 하고, 나는 이것저것 훑어보는데 무슨 만화가 무슨 만화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슬램덩크. 대략 열어 보니 내가 읽었던 버전과 조금 다른 듯 보였다. 일단 1권을 뽑아 든다. 그것만 가져가기 그래서 다시 또 보니, 베르사유의 장미. 이 또한 어렸을 때 읽었던 거라 기억이 가물가물. 일단 이것도 1권을 집는다.
자리에 앉아 매뉴얼대로 쿠션을 받치고 기대앉는다. 두 다리를 펼 수 있다는 것이 집 밖에서 가능하기나 한가. 와, 그것만으로도 너무 편하고 신기했다. 봉이도 말할 것 없었다. 등받이 뒤는 자연스럽게 커피잔을 놓는 테이블. 책을 읽다 음료를 마시다 하니 허걱 30분이 지나 있었다. 이런이런이런. 이거 한 시간 갖고는 1권도 채 못 읽겠는걸? 지금이라도 두 시간으로 바꾼다고 할까?
혼자 고민에 잠겨 있는데, 봉이에게 몇 시에 나갈 거냐고 묻는다. 지금은 4시 30분임을 알리면서. 흠 5시 20분에 나가겠다고 한다. 아마 더 있고 싶지만 엄마 눈치를 보면서 말한 게 그 시각인 것 같았다. 나는 마구 짱구를 굴려서 한 시간 패키지에 추가요금이 붙어 두 시간 가격과 두 시간 패키지 가격 차를 구해 보았다. 일인당 700원, 두 명에 1400원이었다. 무려 1400원. 하, 이거, 경험이 없어서 그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 시간권을 끊은 내가 이렇게 어리석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갑자기 만화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계속 후회와 10분당 가격을 계산하는 내가 느껴졌다. 으악~~! 안 돼. 이렇게 귀중한 시간을 이런 걸 계산하는 걸로 흘려보내다니. 이성은 그러한데 찌질한 마음 그릇은 여전히 후회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리고 타협의 시간에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한 시간 30분이 지난 5시 30분에 나가기로. 분명 10분이 지나면 바로 700원 카운트가 될 것이니 5시 25분에 나가서 계산부터 한다. 화장실은 계산 후에 가기로 하고. 5시 20분에 나갈 것을 마음먹었던지라 봉이는 아무런 거부감도 저항도 없었다. 두 번째로 가져온 세 권을 모두 다 읽는 것이 목표였는데, 정확하게 잘 지켰다.
계산대. 사장님께 가격에 대한 궁금한 것을 다 물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패키지로 시간을 넉넉하게 잡는 것이 우리처럼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에게는 이롭다는 것을. 그리고 종일권 일인당 15000원을 언젠간 한번 써 보리라 봉이와도 결심했다. 일단 다음 주에는 무조건 두 시간 패키지로 하겠다는 것이 정해졌다. 에구, 철없는 엄마는 두 시간 동안 무료로 쓸 수 있는 공공도서관에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애랑 똑같이 장단을 맞추어 만화카페에 가잔다. 철이 좀 들어야 아이들에게도 철 들라 말할 수 있을 텐데. 쯧쯧쯧.
우리에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다리 펴고 뒹굴거리며 잼있는 만화를 즐긴다! 이 간단한 것이 성립되는 장소를 찾았다. 주말의 한가함이 두려운 우리에게 돈을 들고 시간과 공간을 즐기라 유혹하는 저곳. 분명 한 세 번 가면 그다음부터는 굳이 거길 가느니 집에서 더 편한 옷과 자세로 있겠다는 마음이 생길 것이지만, 항상 처음의 좋은 경험과 그에 대한 기억은 그다음을 약속하게 한다.
우리의 다음 주에는 누가 파트너가 되어 있을까. 운전기사로만 있겠다는 아빠가 함께 가실지, 가족보다 친구들과의 만남이 더 즐거운 준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봉이와 마미는 필수 요원이라는 것. 둘만으로도 외롭고 심심하지 않을 다수의 공간을 찾았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주말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