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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Jul 05. 2024

톨스토이 <무도회가 끝난 뒤>: 아름다움에 대한 환멸

남은 것은 죄책감이었다

김남숙의 <파주>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현철을 생각하면 파주가 생각난다. 파주를 생각하면 현철이 생각나고.”(153)


‘화자-나’에게 현철이 무엇이기에 파주와 현철이 이처럼 한 세트로 내 기억을 지배할까요.


“현철은 내 친구도, 가족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153)


‘그저 기억하는 사람’, 현철. 그를 기억하는 일이 나에게는 기쁜가? 즐거운가? 괴로운가?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현철을 생각할 때면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다. 번거롭고 사치스럽고, 말하자면 슬픔에 가까운 그런 기분에 휩싸인다.”(155)


왜 그런 기분이 되는지 그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소설이 2023년에 한국의 젊은 작가 김남숙이 발표한 <파주>입니다. 이보다 120년 전에 러시아에서 발표된 소설 <무도회가 끝난 뒤>를 가져와 볼게요. ‘클럽’도 아니고 ‘파티’도 아니고 ‘무도회’라니. 120년보다 더 된 이야기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소설 속 실제 이야기의 배경은 1840년대니까 발표 시기보다 60년 앞선 이야기라고 하는 게 맞겠네요. 작가가 글을 쓰는 시기와 소설 속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기가 다르다? 누가 이런 간극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는 톨스토이입니다. 장수한 작가로 유명한 러시아 작가 레프 톨스토이 말이죠.




톨스토이는 1828년에 태어나 1910년에 생을 마감했으니 100세 시대라고 하는 현대인의 수명과 비슷한 수준으로 살았습니다. (19세기 러시아의 평균 수명은 50년을 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작가가 오래 살았다는 사실이 그 작가를 빛나게 하는 이유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지요. 작가는 오직 작품을 통해서만 살아 있음을 증명하니까요. 쓰지 않고 그저 숨만 쉬는 작가의 시간은, 냉정하게 말해, 독자에게 무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톨스토이는 길게 산 만큼 많이 쓴, 독자에게 유의미한 작가입니다. 톨스토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러시아에서 만든 톨스토이 전집은 1928년부터 1958년에 걸쳐 무려 30년 동안 출간되었고, 권수는 90권에 달한다고 하죠. 1년에 한 권(물론 한 권 안에 한 작품만 있지는 않습니다)씩만 썼다고 쳐도 톨스토이는 엄마 젖을 물면서도 글을 써야 했겠군욧!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위대한’ 작가로 인정받기 충분하지 않나요.


형 세르게이의 연애 사건을 소재로 단 하루 만에 완성했다고 알려진 <무도회가 끝난 뒤>는 1903년에 발표된 아주 짧은 단편입니다. 청년 톨스토이, 중년 톨스토이, 만년의 톨스토이 중 마지막, 할아버지 톨스토이가 쓴 작품입니다.

이렇게 톨스토이가 언제 쓴 작품인지를 알고 나니 이 단편 안에 담긴 앳된 젊은이의 섬세한 감정들의 다양한 층위가 더욱 놀랍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을 때의 떨림, 땅을 밟는 것이 아니라 구름을 타고 다니는 것처럼 둥둥 떠 있는 느낌, 충족감과 알 수 없는 설렘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환각 상태, 그리고 그것들이 놀라운 장면 앞에서 하룻밤 만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충격…. 아, 주인공의 감정의 파고를 세밀하게 포착해서 독자의 마음에 실어 와 그 이상으로 술렁이게 하는 작가의 묘사력에 저도 모르게 숙연해집니다.


이쯤 되면 질문이 압정처럼 마룻바닥을 뚫고 나옵니다. 나이를 먹으면 감정이 무뎌진다는 말이 사실이 아닌 건지, 작가의 감정은 보편적 인간의 수명과 별개로 존재하는 건지를요. 작가의 나이는 무뎌지고 둔탁해지는 틈새를 허용하지 않은 채 성숙하고 발전하는 시간으로만 존재하는 걸까요. … 휴, 답이 없는 질문에 더 매달리지 않겠습니다. 작품 안으로 한 번이라도 더 재입장하는 게 이득일 테니까요.


우리의 파트너인 김남숙의 <파주>를 소환해 보겠습니다. 그곳에서 ‘화자-나’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아닌’ 현철을 끊임없이 기억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과 그 사람에 대한 ‘기억’. 이에 대한 강조는 기억 속 현철이 내 인생의 절대적 ‘무엇’이라는 역설로 다가옵니다.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에서 ‘화자-나’ 또한 ‘무언가’를 기억합니다. 다만 <파주>의 나와 달리 <무도회가 끝난 뒤>의 나는 그 무언가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고 직설적으로 밝힙니다. 그것이 단지 하룻밤 일이었음에도 말입니다. 직접 표현하기와 에둘러 표현하기. 150여 년의 시간은 표현법의 변화에 일조한 것일까요. 무튼, 그 하룻밤 속의 무언가, 그 무언가 속의 누군가를 끄집어내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나-이반 바실리예비치의 회상은 1840년대의 자신입니다. 활달하고 생기 넘치는 미남의 대학생이었죠. 현의 귀족 대표 집에서 열린 무도회에 간 바실리예비치는 바렌카라는 열여덟 살의 여인에게 완전히 빠집니다. 그녀는 “훤칠하고 늘씬한 몸매에 우아하고 당당한 기품이 흘렀”(188)습니다. 그녀는 “장밋빛 허리띠를 두른 하얀 드레스를 입고 새끼 염소 가족으로 만든 흰 장갑을 가냘픈 팔꿈치까지 거의 닿을 듯 끼고 있었”(190)습니다. 천상에서 내려온 듯한 그녀가 무도회장을 가로질러 곧장 바실리예비치에게 걸어왔고, 그는 벌떡 일어나 그녀의 손을 잡았죠. 그리고 그들은 무도회가 끝날 때까지 춤을 추고 또 추었습니다.


그가 그녀의 육체를 탐했냐고요?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라고 바실리예비치가 정색을 하며 화를 내는 모습을 상상해도 좋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또렷이 기억합니다. 그녀에 대해 차오른 사랑은 순수하기 그지없어서 자신은 “죄악 따위는 알지도 못하고 오직 선한 일만 행할 줄 아는, 이 세상엔 없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요. 그녀는 그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던 거지요.


그녀와 그녀의 아름다움을 절대적으로 숭앙하게 만든 결정적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녀 아버지의 등장이었습니다.

바렌카의 아버지는 “아주 잘생기고 건장하며 키가 훤칠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노인”(193) 대령이었습니다. “그의 빛나는 눈동자와 입가에 떠오른 행복하고 다정한 미소는 딸과 꼭 빼닮았고요. 훈장으로 고상하게 장식된 넓은 가슴은 군인답게 앞으로 도드라져 나오고, 어깨는 강인하며, 다리는 길고 곧게 쭉 뻗어 있었죠. 한마디로 니콜라이 1세 시대의 백전노장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194)습니다.


대령과 그녀의 딸이 춤을 추는 장면은 “가슴 뭉클한 감동”(194)으로 바실리예비치를 사로잡습니다. 대령이 검소한 부츠를 신고 늙어 굳어진 몸을 삐거덕거리며 딸에게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 모습이라니. 그 자체로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그를 전율시켰습니다. 너무도 인간적이어서 신적인 광경이었던 것이죠. 그 순간 아름다움은 그에게 절대 선(善)이었습니다.

새벽 4시에 집에 돌아온 바실리예비치는 잠이 필요 없는 충만한 마음이 되어 집을 나와 날이 밝아 오는 새벽의 거리를 걷습니다. 불행히도 그 새벽, 그는 자신이 염려했던 한 가지 “행여 뜻하지 않은 무엇이 내 행복을 깨뜨릴지도 모른다”(196)를 마주합니다.




군악대의 피리 소리와 북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실리예비치는 소리를 좇아갑니다. 그곳에는 검은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있었고, 무리 한가운데에는 질질 끌려가며 매질을 당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탈영하려다 붙잡힌 병사라고 했습니다. 탈영병은 꼼짝없이 붙잡힌 채 양쪽에서 쏟아지는 매질을 벌거벗겨진 등으로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자비를 베푸시오, 형제들”이라는 흐느낌이 새어 나왔습니다.


끔찍한 장면에 얼이 빠져 있던 바실리예비치의 눈에 익숙한 형체가 들어옵니다. 탈영병 옆에서 단호한 걸음걸이로 걷는 건장하고 훤칠한 대령이었습니다. 대령은 돌연 멈추어 서더니 한 병사에게 다가가 가죽 장갑을 낀 억센 손으로 힘없는 얼굴을 가격했습니다. 병사가 탈영병에게 제대로 매질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지요. 대령은 “곤봉 새걸로 가져왓!”(201)이라고 소리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바실리예비치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대령은 모르는 척했고 바실리예비치는 당혹스러워 어디를 바라봐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바실리예비치는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해 집으로 향했습니다. 마치 파렴치한 짓을 하다 들킨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내내 생각했습니다. 대령에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분명 자신이 모르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요. 이후에도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런 이유 따위는 찾지 못했습니다.


절망에 빠진 바실리예비치는 꿈꾸던 군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차마 군대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뿐더러 세상 어디에서도 자신의 자릴 찾지 못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그가 고백한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어떤가요? 여러분은 바실리예비치의 심정이 이해가 되나요? 어떤 독자는 바실리예비치의 마음에 십분 백분 동감하고, 내가 그였더라도 똑같이 선택했을 거라고 말할 것입니다. 어떤 독자는 대령에게 다가가 그만두라고 말했으면 더 좋았겠다고 아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독자는 뭐 그리 예민하냐고 또는 사람이 참 나약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군에서는 조직을 공고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걸 위해 적절한 방법을 취할 것이며, 그 방법이 때론 엄격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요. 그러지 않고서 어떻게 군조직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요.


청년 작가 톨스토이, 중년 작가 톨스토이, 할아버지 작가 톨스토이로 나이가 들어가도 톨스토이의 작품세계에서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전쟁과 폭력에 대한 저항입니다. <전쟁과 평화>에서 그는 전쟁의 희생자가 된 수많은 민중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루었습니다. 명분 있는 전쟁이란 말 자체가 얼마나 허구인지를 피폐해진 민중의 삶으로 그려내 보였습니다.

톨스토이가 살던 19세기에는 신분제도와 농노제도가 있었습니다. 농민과 하인의 삶은 가난하고 비루했습니다. 가지지 못한 그들은 가진 자의 횡포에 대항할 힘이 없었습니다. 전쟁에 끌려가서는 총알받이가 되었고, 군 내에서도 같은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했습니다. 학대받는 동물이자 놀다가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장난감 신세였지요. <무도회가 끝난 뒤>에서 대령이 본보기로 삼은 탈영병도, 탈영병에게 곤봉을 휘두르는 병사도 대령에겐 한갓 도구일 뿐이었습니다.  


천사 같은 딸과 기품 있는 춤을 추던 자애로운 아버지. 한 명의 탈영병에게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태형을 지시하는 폭군 대령. 아무런 접점이 없는 두 모습이 한 사람으로 모아진다는 사실에 바실리예비치는 분열됩니다. 과연 자신이 보고 믿었던 선(善)은 허상이었던 걸까요. 악(惡)은 저기 동떨어져 지하에나 지옥에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일까요.


절대 선이라 믿었던 존재에게서 구역질 나는 절대 악을 발견했을 때, 아무리 도망치고 벗어나려고 해도 그 사실이 변하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바실리예비치가 떠안은 것은 ‘죄책감’이었습니다. ‘무도회’에서 진과 선과 미를 보았다면, 그것이 ‘끝난 뒤’ 그에게 남은 것은 죄책감이었던 거지요. 자신이 파렴치한 것을 ‘보았다’가 아니라 ‘저질렀다’고 느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에 대한 답을 180년이 지난 한국의 2023년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파트너 김남숙의 <파주>에서요. <파주>에서 ‘나’는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현철에게서 “슬픔에 가까운 그런 기분에 휩싸”인다고 했었죠. 그게 무도회가 끝난 뒤 이반 바실리예비치가 느꼈던, 자신의 꿈도 인생도 빼앗아가 버린 그 기분일까요?


다음 회에서 시간의 간극이 불러온 차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러두기

괄호 속 숫자는 인용한 책의 쪽수를 의미합니다.

김남숙의 <파주>는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2024),

레프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는 <<무도회가 끝난 뒤>>(펭귄클래식코리아, 2010)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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