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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Jul 12. 2024

김남숙 <파주>: 복수가 끝난 뒤

아름다워라, 그 시시한 용기가

1) 제3의 시간

‘무도회가 끝난 뒤’라는 문구를 살펴볼까요. 이 어구에는 세 개의 시간이 들어가 있습니다.


제1시간, 무도회

제2시간, 끝나다

제3시간, (그) 이후


순서대로 세 개의 시간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 단순한 연속성이 주인공 이반 바실리예비치에게는 가치관이 흔들리는 인생의 전환점이자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삶의 태도 전체를 바꾸어 놓는 파격적 흐름이 됩니다. 어떻게요?


제1시간 - 주인공이 지극한 아름다움을 실제로 보고, 만지고, 어울림. 열여덟의 여신 바렌카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까지 춤을 추면서 영혼이 표백되는 환희를 맛봄. 육욕은커녕 지극한 아름다움에 합일되는 경지를 느낌.

제2시간 – 천상의 파티가 끝나 집으로 돌아오지만 현실로 복귀가 바로 되지 않는 상태. 꿈과 현실을 나누는 문턱에서 환희의 순간을 복기함.

제3시간 – 몽롱한 정신을 일깨우는 쇳소리. 태형이 이루어지는 추악한 세계에 들어옴. 태형을 지시하고 본보기를 보여주는 악의 신은, 어젯밤 자신에게 지극한 아름다움(바렌카)을 건넨 여신의 아버지. 아버지의 자애로움과, 자비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군인의 잔인함이 한 인간 안에 있음을 확인. 아름다움에 대한 환멸이 일고 군대에 대한 환상이 송두리째 사라짐. 


이반 바실리예비치는 오래전에 시작한 제3시간을 여전히 보내는 중입니다. 자신이 왜 현실에서 먼지처럼 부유하고 있는지를 회상의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지요. 제3의 시간은 선이란 무엇이고 악이란 무엇인가, 과연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아름다움은 실체가 있는가 그저 허상인가, 폭력을 용인할 뿐만 아니라 자행하는 군대는 과연 필요한가. 이 질문에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바실리예비치는 스스로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 칭했지요. 현실 세계에 발을 딛고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꿈인 군대와 군인의 존재 이유에 대한 명분을 찾아야 했거든요. 하지만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무도회가 끝난 뒤>는 화자 나-이반 바실리예비치의 시선에서, 악이 자행되는 거대한 시스템을 어찌할 수 없고 그것과 겨룰 수 없다는 관찰자의 회의감과 무력감으로 끝이 납니다. 거기에는 태형을 당했던 탈영병, 혹은 탈영병에게 제대로 매질을 못했다고 대령에게 가격을 당한 병사의 입장은 없습니다. 소설에서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궁금하지 않나요? 그들의 그다음은?


우리는 180년 뒤인 2023년, 한국의 파주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될 만한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김남숙이 그린 <파주>에서요.


1) 파주라는 장소, 파주라는 시간

톨스토이의 소설이 ‘무도회가 끝난 뒤’라고 시간의 흐름을 내세웠다면, 김남숙의 단편소설 <파주>는 ‘파주’라는 공간을 내세웁니다. 


‘파주’는 장소입니다. 시간은 가늠할 수 없습니다. 파주가 하나의 큰 도시이니만큼 ‘무도회’처럼 특정한 분위기를 떠올리기도 힘듭니다. 도시가 들어간 소설 제목 ‘무진기행’에조차 ‘기행’이라는 행위가 들어가 있어서 이렇게 저렇게 상상을 해보게 되는데요, 파주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참 난감한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전 2화에서 이야기했듯, 소설 <파주>의 시작은 이러합니다.


“현철을 생각하면 파주가 생각난다. 파주를 생각하면 현철이 생각나고.”(153)


이 문장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건 ‘파주’가 화자인 나-윤정에게 더는 물리적인 현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화자가 떠올리는 현철처럼요. 모두 과거의 일이지요. 이반 바실리예비치는 대학생 시절의 무도회를 떠올리고, 나는 3년 전의 파주를 떠올립니다. 그 시간이 현철과 연관되어 있나 봅니다.  


어느 추운 겨울, 정호와 윤정이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 가지고 오는 길입니다. 집 앞에 한 남자가 ‘시시하게’ 서 있습니다. “시시한 검은색 바지와 검은색 후두. 시시하게 동여 묶은 운동화를 신고.”(159) 정호는 그를 알아봅니다. 잉어킹을 잡고 있는 그는 정호의 취사병 후배 현철입니다. 그들은 그때로부터 3년 전에 전역을 했습니다.


“왜 전화 안 받으십니까?”(160)


정호는 현철의 질문에 당황합니다. 현철은 자신이 온 목적을 말합니다.


“나도 이제 괴롭히겠다고요, 이제야.”(161)


현철은 딱 일 년 치만 복수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보상금이라고 생각하고 십이 개월 동안 달마다, 많이도 아니고 딱 백만 원씩만 보내라고, 그러면 사라져주겠다고, 안 그러면 계속 나타나 괴롭히겠다고, 정호가 다니는 회사 파주 LG디스플레이에 사진 뿌리고 다 알리겠다고요.


윤정이 묻습니다. 그 사람에게 뭘 했냐고. 정호는 답합니다. 


“뭘 하긴 뭘 해. 다 똑같았지. 일 못하면 몇 번 때리고, 군기 잡고 그게 끝이지. … 저 새끼는 심지어 괴롭힌 것도 아니야. 더한 사람도 많이 봤다고. 그게 언제 적….”(164)

윤정은 정호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직감합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처음에 정호는 현철의 말을 반신반의합니다. 그 오타쿠 녀석이 설마 그러겠냐고. 3년이나 지난 일을 가지고 뭘 어쩌겠냐고. 그러고서 사과로 대충 때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현철은 단호합니다. 정호는 현철이 진지하다는 걸 알고 야근을 합니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까지 액정 화면의 하자를 검수하고 돌아옵니다. 10개월이 지나고 힘이 든 정호는 윤정에게 현철을 만나보라고 합니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는지 설득해 달라고 합니다. 윤정은 현철을 만나러 나갑니다. 

윤정은 왜 나갔을까요? 정호 부탁대로 이제 그만하게 해달라고 현철에게 부탁하러 갔을까요? 


“도대체 뭘 했어요? … 정호가요.”


윤정은 알고 싶었습니다. 정호가 현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자신이 느끼는 알 수 없는 감정의 실체가 무언지. 현철이 보상을 받고 싶은 것은 무언지.


“이렇게 넘어가면 나는 다음번에 또 이렇게 넘어가겠구나. 앞으로 이렇게 피하기만 한다고 상상하니까 내 다음이 무서워지고, 내가 무서워지고. … 그 방법이 비열해 보이고 역겨워 보여도 어쩌겠어요. 그렇게라도 보상받고 싶은 걸.”

2) 파주는 끝나지 않았다

윤정과 정호는 현철에게 매달 백만 원씩 12개월을 보낸 뒤 일산으로 이사를 합니다. 직장도 옮겼고요. 현철은 계속 파주에 산다고 했습니다. 정호는 파주를 입에 담지도 않습니다. 윤정만 파주를 가끔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을 잊은 듯 티비를 보면서 웃는 정호의 모습을 보면서요.


무도회가 끝난 뒤 이반 바실리예비치의 세계는 어그러졌습니다. 자신의 삶처럼요. 태형을 당한 탈영병과 매질을 담당한 병사의 삶도 좋게 변했을 것이라 예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괴롭힌 상대와 세계에 보상이나 감히 복수를 실행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파주’가 끝난 뒤, 누가 파주에서 도망쳤나요? 현철을 괴롭혔던 정호는 현철의 시시한 복수를 감당하고 파주에서 도망칩니다. 반대로 현철은 파주에 남습니다. 


파주는 현철에게 단순히 보상이 이루어진 공간이 아닙니다. 자신의 나약함을 자기 방식으로 싸워 이겨낸 진짜 전장이었습니다. 그 방법이, 그 무기가 남들 눈에 시시해 보일지라도 상관없습니다. 피하지 않고 맞서 싸워 작은 성취를 이뤄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호는 그것을 해냈습니다.


아무 말 않고 그저 지나간 일이라며 피하면 끝이었습니다. 백만 원을 열두 번 준비하는 사람의 열두 달은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의 열두 달보다 길 리가 없습니다. 그걸 달라고 정호 앞에 서기까지 현철에게는 3년이 걸렸습니다. 정말 마주치는 것조차 소름 끼치는 사람 옆에서 열두 달을 더 있는 것이 과연 쉬웠을까요? 더러워서라며 똥을 피하는 것이 차라리 쉬웠겠지요. 하지만 현철은 똥을 무서워하는 자신의 마음이 더 무서웠습니다. 미웠습니다. 


피하는 것으로 영원히 나약하지 않겠다는 용기. 현철이 파주에서 획득한 것은 그것입니다. 정호를 괴롭히는 일은 그저 수단일 뿐입니다. 목적은 자신의 나약함과의 싸움, 그리고 승리입니다. 


파주는 그래서 부활의 공간입니다. 승리의 시간입니다. 자존심을 건 싸움이 이긴 곳입니다. <무도회가 끝난 뒤>가 어찌할 수 없다는 개인의 무력감으로 폭력을 고발하고 있다면, <파주>는 폭력에 대항하는 용기의 한 자락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아무리 시시한 옷을 입고 있고 헐렁해 보여도 한 발 한 발 천천히 걷는 나아감이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가 아니고 3년이 지난 뒤라는 시차가 있지만 상관없습니다. 뒤늦게라도 피하지 않고 맞섰기에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정호의 파주는 끝났지만, 현철의 파주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현철은 파주에서 자신이 이룬 작은 성취를 가지고 무언가를 시작할 것입니다. “살아 있어서 다행”(181)이라는 생각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도록 살아 움직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도회는 끝났지만, 파주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러두기

괄호 속 숫자는 인용한 책의 쪽수를 의미합니다.

김남숙의 <파주>는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2024),

레프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는 <<무도회가 끝난 뒤>>(펭귄클래식코리아, 2010)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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