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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Dec 13.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24)

핑계 대장

5월 1일

날씨가 변덕스러운 사월이 지나갔다.

독일에는 '사월은 제 맘대로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사월은 날씨가 제멋대로라는 얘기다. 사월에는 사계절의 날씨가 다 있을 수 있어서 생긴 말인 것 같다. 비 오고 춥고 눈이 오는 날씨부터 따뜻한 여름 같은 날씨까지 한 달 안에 다 있을 수 있으니까!  

시아버지가 하루 종일 말이 없고 우리 이름을 안 부르자 조용해 좋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우리 이름을 하루에도 수천번 듣다가 갑자기 안 들으니 뭔가 알 수 없는 일이 생기고 있는 것 같아 안정제를 반으로 줄였다. 극성맞은 아이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면 부모들이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의 마음은 묘하다. 조용하면 조용하다고 극성맞으면 극성맞다고 신경 쓴다.

하지만 저녁에 베개를 바닥으로 떨어 뜨리는 일은 여전하다. 내가 왜 베개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느냐고 하면 물을 때마다 다른 대답을 한다.

"내가 다른 할 일이 뭐가 있어?"

"그게 그렇게 나쁜 짓이야? 나도 착했던 적이 있었어"

"아주 재밌어!"

"나는 내가 할 줄 아는 것을 하고 있을 뿐이야"

저녁에 앤디가 아버지가 기저귀를 또 찢은 것을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앤디: "아빠 또 기저귀를 찢었어요?"
시아버지: "{정색을 하며, 진짜 심각한 표정으로} 아니 이번에는 내가 찢지 않았어, 네가 내 기저귀를 찢은 게 분명해"
앤디: "내 가요? 아이고 기가 막혀! 내가 왜 아버지 기저귀를 찢어요?"
나: "기저귀를 찢으면 당신이 젖잖아요?"
시아버지: "이번에는 내가 정말 안 찢었다니까, 나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우다니!"


어이가 없고 억울해 못 살겠다는 시아버지의 표정을 봐서, 진정으로 하는 말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찢어 기억에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아들이 할 일이 없어 아버지 기저귀를 찢어놓고 아버지를 나무라다니 우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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