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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Nov 24.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1)

나의 팬, 병들다

2000년 6월 22일

  

올해 들어 제일 덥고 후덥지근한 날이었다.

나는 나의 남편 안드레아스와 시아버지가 좋아하는 튀긴 닭고기에 노랑 빨강 파랑, 세 가지 색의 피망과 당근을 꽃 모양처럼 만들고 파인애플을 넣은 탕수육을 만들어놓고 여느 때처럼 시아버지가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식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1시에 시아버지가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시간을 잘 지키는 시아버지가 1시 15분이 되어도 오지 않아 내가 전화를 했다. 시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차로 3분 정도 걸리는 곳에 살았다. 조그만 동네를 지나면 들판이 있고 근대보다 약간 커 보이는 잎이 있는 사탕무를 심은 밭을 지나 신호등을 하나만 지나면 되는 거리에 우리 집이 있다.


나: "아버지! 식사하러 안 오세요? 아직도 집에 계세요?"
시아버지: "언제?  지금?  지금이 몇 신데?"
나: "한 시 십오 분이에요."
시아버지: "그래! 그럼 지금 갈게"


시아버지는 우리 집에 식사하러 오기로 한 것을 잊은 듯싶었고 목소리가 안정감이 없고 들떠 있었고  뭐 훔치다 들킨 사람처럼 당황해했다. 그런데 한 시 반이 되도록 오지  않았다.


  나: "앤디{남편을 줄여서 부르는 말} 뭔가 이상하니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오도록 해야겠어"


안드레아스가 아버지 집으로 갔더니 아버지가 그때까지 조그만 차고 안에 들어있는 작은 차속에  있더란다. 트윙고란  작은  자주색의  프랑스 차 왼쪽 운전석 바로 앞에 있는 값싼 계산기처럼 생긴 번호판에 비밀번호 3767을 눌러야 시동이 걸리는데 아버지가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안드레아스가 우리 차로 아버지를 모시고 우리 집으로 왔는데 이십 분 동안 몇십 번 몇백 번 번호를 눌러도 안 될 때의 황당함, 그 스트레스가 얼굴에 그려져 있는 듯했다.  시아버지는 줄곧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눈에 초점을 잃고 멍하니 벽만 쳐다보고 입맛도 없는 듯 그렇게 좋아하는 탕수육도 먹는 듯 마는 듯하며 먹어서 우린  걱정이 되었다.


  나: "아버지 힘이 없어 보이는데 내일 의사한테 가보도록 하세요."
  시아버지: "응 아무래도 그래야 될 것 같아"


그다음 날 월요일에  시아버지는 의사한테 갔고 뇌를 렌트겐으로 찍었는데 신경학 박사가 시아버지에게 중풍기가 있어서 뇌가 약간 상하기는 했어도 큰  문제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시아버지는 글도 이상하게 썼다.

스펠이  뒤죽박죽이  되어  읽을 수  없게  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오 개월 동안  세 번이나 교통사고를 냈다. 자신의 롤즈로이즈라고 부르는  프랑스 차 트윙고를 길에 있는 말뚝에다  두 번이나 박았고 한 번은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그냥 들이박았단다.

매번 교통사고를 낸 이후로 자기 자신한테 화가 나서 운전을 다시는 안 하겠다고 하면서 차 열쇠 빼고 대여섯 개의 다른 열쇠가  달린 열쇠 꾸러미를 진한  파란색과  빨간색의  자동차 안  시트 위에 집어던지거나 응접실에 연한 밤색과 진한 밤색이 세로무늬로 된 소파 위에 던졌다. 평생 운전하며 사신 양반이  차 없이 지낸다는 게 몹시 불편한지 세 번째 교통사고 이후에도 차 없이는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며 다시 운전을 하고 싶어 했다.


텔레비전에서 92살 먹은 할아버지가 나무를 받는 작은 사고를 낸 후 시력과 반응을 검사하는 테스트를 받고 운전면허증을 반납해야 한다고 하자 몸 하나가 잘려 나가는 것과 같다며 몹시 서운해했고 육십 년 동안 사고 한번 안 내고 운전을 잘 해왔는데 너무하다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남편 안드레아스는 팔구십된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숫자가 높은 빤짝빤짝하는 벤즈나 BMW나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열을 낸다. 

평생 사고 한번 안내면 뭐해! 노인네들은 차를 천천히 몰아 다른 사람을 방해하고 차라리 걷는 게 빠를 거라며 흥분하고 저런 차가 아깝네! 하면서, 차라리 나를 주면 저들보다 운전을 잘할 텐데... 한다. 

그러면 나는, 당신도 저 나이가 돼 봐야 알아, 지금 생각으로는 당신이 80이 돼도 지금처럼 운전할 것 같지? 저 사람들도 젊었을 땐 그렇게 생각했을걸! 세월에 장사 없어! 그리고 저들은 평생 일하고 번 돈으로 좋은 차 사서 운전하는데 왜 당신이 그렇게 못 마땅해서 야단이야, 부러워서 그러지? 참 이해 안 간다.라고 핀잔을 준다. 평생 운전하던 사람은 운전을 하루아침에 못 하게 되면 다리라도 잘라져 나가는 것으로 여기나 보다. 우리도 운전하지 않으면 사람이 반쪽이 돼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 한다고 하는 아버지를 설득시켜야 했다.  

안드레아스와 나는 아버지가 다시 운전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것은 당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한테도 위험한 일이고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어디든지 모셔다 드릴 테니 우리 한테 말만 하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다.  

그렇지만 시아버지가 운전하게 두는 것은 자살하겠다는 것을 두고 보는 것과 같아서 그다음부터는 열쇠를 아예 주지 않기로 했다. 열쇠를 던지며 다시는 운전하지 않겠다고 한 이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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