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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Nov 23.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서문)

나의  팬, 시아버지 중풍에 걸려 쓰러지다.

 나는 1986 년에 독일에 와서 안드레아스(앤디)와 결혼해 살면서 1994년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쾌활한 성격의 시아버지와 사이좋게 지내 여행도 함께 다녔다. 병든 시아버지를 약 7년간 간호하면서 병에 걸려 변한 시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슬프지만 때로는 너무 재밌어 잊고 싶지 않은 일 들을 지면에 옮기기 시작하면서 시작한 글이 한 권의 책이 될 만한 양이 되었다. 

아이와의 모든 경험을 놓치지 않으려 육아일기를 쓰는 엄마의 마음처럼 나는 시아버지와의 대화와 느낌을 쓰게 되었다. 시아버지가 건강했을 때에는 원래 외향적이었고 유머 감각이 풍부하긴 했지만 병이 들고 나서부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처럼  망설임이 없고 지나치게 활동적이어서 우리를 엄청 힘들게 했다. 인생 경험에서 얻은 어휘력과 즉흥적인 발언에 자주 놀랬고  반면에 다섯 살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는 거 같아 어딘가 걸맞지 않고, 컨트롤이 전혀 안 되는 행동과 말을 해서 우리를 의아하게 만든 적이 많다. 

그러니까 겉은 어른인데 속은 아이라고나 할까? 의사나 간호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세상에 둘도 없을 거라며 극성맞은 환자인 시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라고 우리를 설득시키려 했었고, 믿기 어렵겠지만 시아버지를 닮아 괄괄한 성격의 시숙은 전문가한테 맡기라고 큰소리를 쳐서 싸워가면서 시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와 보살폈다. 하지만 힘들지 않게 돌보려고 시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가지려고 애를 썼다. 누군가를 불쌍하게 여기면 그 사람을 더 불쌍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최선을 다 하고 싶은 법이니까, 본의 아니게 우리를 힘들게도 했고 우리를 웃게도 한 그런 시아버지가 한편 으로는 자랑스러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독일 사람도 시아버지 얘기를 들으면 재밌어하고 매스컴을 타야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건강했을 때의 시아버지가 아니고 뇌의 이상이 있고 나서의 이야기인 만큼 우리 시아버지가 언제나 그랬다고 착각하지 않길 바란다. 이 이야기는 병들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느새 우리 집 아이가 된 사람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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