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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Nov 24.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_ 결정의 기로에서

소제목: 결정의 기로에서

2001년 2월 22일


양로원 아님 집? 어디로 모셔야 할까? 나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집에서 가족과 즉 우리와 함께 사시길 바란다. 많은 노인네들은 양로원에 가느니 차라리 죽어버리지 하며 죽음보다도 못한 곳이 곧 양로원이라고 믿는 이들이 많다. 하긴 양로원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는 곳이니까. 

곧 죽으러 가는 곳이니까.

우리는 아버지 요도염 치료가 끝나는 대로 집으로 모시고 가야 한다는 생각과 익숙해지려고 남편과 대화를 나누면서 앞으로 있을 과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시아버지를 모신다는 것이 이제 곧 현실이 되려고 하고 있는데 극성맞아진 시아버지를 보면 볼수록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글쎄 무슨 핑계를 만들고 어디로 도망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자신 없어 내가 언젠가 맘 속으로 한 약속을 저버리고 도망갈 만큼 비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맞닥뜨려 보는 수밖에 죽기 아니면 살 기지 뭐, 라는 심정으로 하긴 병든 부모 맡아 간호하다가 죽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으니 죽기까지야 하겠어?  

10년 전쯤에 시아버지가 시어머니를 병간호하면서 우리 집에서 와서 식사를 하고 나서 한 번은 시아버지가 내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만약에 내가 병간호를 받아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그러면서 네가 내 기저귀를 갈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할 거냐면서 농담 반 진담 반 내 맘을 떠보았다. 그래서 그때 내가 선뜻 대답을 하지 않자 시아버지는 내가 그럴 맘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럼 그때 가서 내가 총으로 꽝 쏴서 죽어 버리지 뭐, 하며 집게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대며 총 쏘는 흉내를 냈었다. 그때 나는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면 되지 왜 지금부터 그런 생각을 하며 지레 겁을 주느냐고 시아버지에게 말하고 싶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진지하게 시아버지를 모시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없는 처지에 있다. 하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져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 남편이 내게 자기 아버지를 모시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며 내가 결정해야 하고 내가 할 수 없으면 자기도 내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누구의 말보다도 내 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독일 속담에 좋은 양심은 잠을 잘 자게 해주는 부드러운 베개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누군가 양심에 걸리는 일을 하지 않았을 때, 잠을 잘 잘 수 있단 얘기이다. 내가 시아버지를 모시지 않는다 해도 세상 사람들이 다 이해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동안 시아버지와 사이좋게 지냈고 도덕적으로 볼 때 나는 No 소리를 할 수가 없다. 시아버지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나를 자기 딸처럼 위해 줬고 내가 무엇을 하든 전격적으로 지지해 줬고 동시에 나의 팬 이기도 했고 내가 자기를 돌볼 거라는 믿음 같은 것, 확실한 기대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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