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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식 Sep 23. 2024

#10. Epilogue

감정들의 멸종은 생각보다 문제를 만들었다. 대장 '기쁨'들은 넘어오는 음식을 통해 기쁨을 전달한다. 하지만 대장 '기쁨'이 멸종한 이후, 이상 아이는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 없었다. 먹는 즐거움을 잃어버린 아이는 매 끼니때마다 억지로 음식을 삼키기는 했지만, 분노가 사라진 위장에서는 위액을 제대로 보존할 수없었다. 끓어오르는 화를 제때 분출하지 못하자 위액은 항상 소장으로 흘러넘쳤고, 그 때문에 위에는 항상 위액이 부족해지고, 소장은 흘러넘친 위액으로 인한 상처가 아물지 않아 융털들이 제대로 자랄 수 없었다. 아이는 음식을 제대로 소화를 시킬 수 없게 되자, 결국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렸고 그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는 일까지 생겼다.

위기의식을 느낀 고대의 신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음식을 최대한 많이 먹도록 유도했다. 혀 끝의 말초신경을 이용해 자극적인 맛에서 쾌락을 느끼도록 한 것이다. 그 방법은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아이는 식욕을 회복했고, 확실히 이전보다 많은 양의 음식은 영양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곧이어 엄청난 부작용이 이어졌다. 대장에서 '기쁨'을 느낄 수 없는 아이는 배부름이 주는 즐거움도 잃어버렸다. 그 상태에서 혀의 쾌락만 남아있던 아이는 멈출 줄 모르는 식욕을 느꼈고, 이번에는 폭식으로 인해 아이의 건강이 다시 위험한 상태가 되었다.  


고대의 신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대의 신은 더 이상 면역군들이 감정을 죽이는 일을 하지 않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무렵 난 가슴속 거대한 구덩이 속에서 쓰러졌다. 내 작은 몸은 잘게 부스러져 구덩이 속으로 스며들었다. 물론 '나'라는 인식은 그 순간까지만 존재한다.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서져버린 내 몸과 타버린 슬픔의 나무, 퇴역한 면역군의 조각들은 다시 하나의 개체가 되고, 그 개체들은 성장해서 가슴속 거대한 구덩이를 메웠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구덩이가 있던 자리는 예전처럼 평평해졌다. 그리고 그 위로 아주 작은 떡잎 하나가 올라왔다.


슬픔의 나무이다.

아니, 사랑의 나무이다.


난 이제 더 이상 기쁨이 아니다. 슬픔도 아니다. 

하지만 슬픔의 한 조각이 되었다. 사랑의 한 조각이 되었다. 

그렇게 아직도 이 지긋지긋한 인연의 아이와 같이 살아있다.

   

떡잎은 성장해서 슬픔의 나무, 아니 사랑의 나무가 될 것이다. 그럼 다시 이곳을 찾아올 감정들과 만나게 되겠지. 그리고 슬픔이 찾아온다면 슬픔과 한 몸이 되어 다시 바다로 떠나게 되겠지. 이제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그곳이 바로 진정한 고향이었다는 것을. 그곳은 우리 모두의 삶과 죽음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리고 왜 마지막 순간 퇴역한 면역군이 나를 슬픔이라고 착각했는지도 알 것 같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이다.  '기쁨'과 '슬픔'으로 나눠져,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항상 우리는 사랑의 나무를 통해 맞닿아 있었다. '기쁨'이 감정의 신에게 바친 에너지는 사랑의 나무를 키워내고, '슬픔'은 그 사랑을 덜어낸다. '슬픔'은 '기쁨'의 대척점 속에 존재하지만, 둘의 오묘한 조화는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를 만들어 아이를 지켜낸다. 그리고 가끔 거대한 사랑은 거대한 슬픔이 되어 아이를 위험에 빠트리겠지만, 아직 아이의 몸속의 남아있는 기쁨들은 그 구멍을 메울 자양분이 되어 다시 아이를 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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