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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Apr 18. 2024

왜 아무도 아이의 얼굴을 꿰매지 않을까?

필수과와 바이탈과 몰락의 이유

“여기서 꿰매시겠어요?”


 아이는 줄곧 넘어진다. 주로 손바닥이나 무릎을 긁혀 피가 난다. 나이가 어릴수록 머리가 상대적으로 커서 무겁고, 운동신경이 떨어져 손을 땅에 짚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져 머리를 그대로 땅에 부딪히기 쉽다. 멍만 들면 다행인데, 턱이나 눈썹이 찢어져서 오는 경우가 흔하다.

 4살 된 아이가 넘어져서 눈썹이 2cm 찢어져서 응급실로 왔다. 상처는 깊지 않았고 나는 안절부절못하는 30대 중반의 어머니에게


 “제가 여기서 최선을 다해 꿰매겠지만, 흉터가 남을 수 있습니다.”

 “24시간 안에 꿰매면 큰 문제없기에 성형외과에서 봉합을 해도 됩니다.”


 라고 두 가지 선택을 제시했다.      


 나는 산청군 의료원에서 응급실 1년, 인턴 때 응급실만 4개월, 가정의학과 1,2년 차에 응급실 커버를 하면서 어지간한 단순 봉합은 할 수 있었다. 술 취한 아저씨 얼굴, 넘어져서 찢어진 머리, 칼에 배인 손가락 등. 봉합할 일이 없으면, 가끔은 누가 좀 찢어져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만은 꿰매고 싶지 않았다. 당시 응급실에 환자가 많았거나, 상처가 깊어서는 아니었다. 얼굴인 데다, 아이였기 때문이다. 4살짜리 아이를 꿰매려면, 일단 봉합하는 의사인 나 외에도 최소 2~3명이 있어야 한다. 협조가 안 되는 아이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포크랄이라는 먹는 수면 유도제가 있지만, 머리를 다쳐 CT나 찍을 때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내시경처럼 진정 마취제를 쓰는 건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그냥 이불로 아이를 둘둘 감싼 다음 재빨리 봉합해야 했다. 어떻게 꿰맨다고 하더라도, 상처가 났으니, 흉터는 피할 수 없으니 부모가 ‘그 꿰맨 의사가 실력이 없다’, ‘성형외과 의사한테 갈 걸’ 등 나를 비난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 나는 괜히 힘쓰고, 욕먹기 싫었기에 부모가 성형외과에서 꿰매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아이의 흉터를 최소화하고 싶었던 부모는 다행히 다음날 성형외과에서 꿰매겠다고 했다. ‘아싸.’ 나는 상처가 벌어지지 않도록 스테리 스트립이라는 특수 반창고를 붙인 후 진료를 끝냈다.


 다만 설명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비용이었다.

<국가가 정한 금액은 대략 1cm 2만원이 안 된다>



 여기서 꿰매면, 총비용은 접수비와 봉합비를 포함하여 5~6만 원 정도이고, 환자는 2만 원 정도를 부담한다. 성형외과에서는 각종 비급여 항목을 포함시켜 1cm당 최소 10만 원 이상을 받고 있기에 20만 원이 훌쩍 넘을 것이다. 국가가 정한 가격보다 몇 배는 비싸지만,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족하는 정상 시장 가격이기 때문이다.      

 이제 응급실에서 아무도 아이 얼굴을 봉합하지 않는다. 비용도 싼 데다 워낙 민원(흉터가 남았다, 의사가 잘못 꿰맨 것 같다)이 많아져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우리나라 의료를 바이탈과 비바이탈과, 필수의료와 비필수의료로 이분하여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 그럼 성형외과는 필수인가? 비필수인가라고?  그럼 선천성 소아 구개열을 담당하는 성형외과는?  

    

 나는 우리나라 의료를 ‘국가가 정한 의료’와 ‘국가가 정하지 않은 의료’로 나눈다. 대동맥 박리 수술은 국가가 가격을 철저히 정했다. 쌍꺼풀 수술과 같은 부분은 시장이 정한다. 필수과와 바이탈과는 국가가 가격은 물론이고, 침대 간격까지 정한 분야다. 그리고 철저히 망했다. 의사가 아니라, 국가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정한 가격인 ‘급여’로 아이 얼굴을 봉합할 의사는 없지만, 병원이 정한 ‘비급여’로 봉합할 의사도 환자도 있다. 명백한 정부 실패이자, 시장 성공이다. 진정한 개혁의 대상은 의사가 아니라 정부다.  



 참고: 어지간한 상처가 아니면, 인근 병원에서 간단한 소독과 드레싱을 한 후 성형외과에서 24시간 안에 꿰매면 된다. 


사진: chat GTP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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