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나의 야구

내가 직관을 고집하는 이유

by 제이

야구 글러브와 나무 배트를 매고 운동장으로 전력질주 하던 때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이모가 선물로 준 합성피혁으로 된 어린이용 글러브와 배트는 당장 운동장을 향해 질주하게 했다.

그때부터인가 보다, 야구를 정말 좋아했다.

고교야구를 보러 야구장을 다녔고, TV로 실업야구를 봤다.

프로야구가 생기고 나서는 불사조 박철순의 멋진 피칭과 학다리 신경식의 전매특허인 다리 찢기 포구장면을 흉내 내면서 OB베어스 어린이 회원으로서 그들에게 열광했다.

그러나 99%가 롯데 자이언츠 팬이었던 지역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롯데로 갈아탔고, 고향을 연고지로 한 NC 창단 전까지 줄 곧 롯데폐인으로 살아왔다.


롯데팬들은 롯데가 지는 경기를 보는 것이 일상 다반사였다.

야구를 즐기기보다는 승리를 염원하는 쪽으로 팬심은 자연스레 흘렀다.

꼴찌를 거듭하는 롯데와 함께하면서 야구는 애증으로 자리 잡았다.

수많은 패배 끝에 한 번 찾아오는 희열을 맛보기 위해서 수많은 경기의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다.

이때부터 생긴 1구 1구에 과몰입하는 습관이 생겼다.

야구를 사랑하지만 즐기지 못하는 폐인이 된 것이다.

NC가 창단되고 거기에 쏠리는 애정은 무조건적이었다.

그 팀은 기대에 부흥하여 곧 잘하는 팀이 되어갔다.

그러나, 나의 야구 습관은 고쳐지지 못했다.

1위를 달리는 시기조차 즐기지 못한다.


왜 야구를 즐기지 못하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롯데나 NC나 순위차이는 많은데, 받는 스트레스는 같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분석에 들어갔다.

프로야구 순위를 보면 평균적으로 승률이 5할 정도 되면 10개 팀 중 5위 정도로 가을야구 진출이 가능하다.

6할 승률 정도면 우승권이며, 4할 승률 정도면 최하위권이다.

즉, 꼴찌 롯데나 선두 NC의 승률 차이는 20%, 10경기하면 선두는 고작 2번 더 이긴다는 거다.

즐기지 못하는 나는 네 번을 지나 여섯 번을 지나 분노게이지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경기를 들여다보면 더 심해진다.

9회까지 진행되는 경기에서 수비할 때 실점하지 않으면 본전이고, 점수를 내주면 스트레스다.

공격할 때도 별반 다를 바 없다.

3할을 넘는 선수가 9명 중 3~4명 정도가 일반적이고, 나머지는 2할대 중후반이다.

안타를 칠 확률보다 아웃될 확률이 2배~3배 높다. 안타를 친다 한들 점수를 낼 확률은 더 떨어진다.

즉, 경기의 반은 수비라 잘하면 본전이고, 공격에서 안타를 치더라도 점수로 이어질 확률도 높지 않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점수를 얻는 이닝보다는 그렇지 못한 이닝이 더 많다.

안타를 친 이닝에서는 잔루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야구 관람의 나쁜 습관을 가진 내가 과연 이런 야구를 보는 것이 맞나?

야구를 보는 목적이 스포츠에서 느낄 수 있는 짜릿함과 힐링이다.

3시간 이상 공 하나하나에 신경 쓰면서 수비에 마음 졸이고, 공격에 탄식하고 욕하는 그런 관람.

야구를 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지점이다.

해결책은 있다.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스트레스를 좀 덜어주는 방법은 있다.

직관이다.

직관은 TV로 중계를 보는 것과 많이 다르다.

공하나하나에 신경을 쓰지만, 자세히 볼 수 없어서 그만큼 불만이 줄어든다.

그라운드에서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플레이에 대한 욕이 줄어든다.

마음껏 응원하면서 또 탄식하면서 스트레스를 쌓아두지 않고 발산한다.

야구를 사랑하는 나에게 가장 최선의 해결책이다.

여기서 문제가 있다.

나는 서울연고로 생활하고, 응원팀은 지방이다.

원정경기만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럼 위 해결책의 효과는 미미해진다.

144경기 중 72경기가 원정경기이며, 서울 경기는 8경기 그중 주말경기는 더 적다.

이래서는 나의 사랑을 충족할 수 없다.

그래서 베어스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팀보다는 야구에 충성한다.

야구를 많이 보지 못할 바에야 많이 보고 응원할 수 있는 팀을 찾는 것이다.

마침 돌아갈 팀도 내게는 있었다.

지금은 거의 매주 티켓팅에 불을 켜고 집중한다.

나의 야구는 티켓팅부터 시작된다.

야구장을 가고, 입장을 기다리고, 경기시작을 기다리는 설렘은 패배의 아픔을 능가할 만큼 크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야구는 끝날 때까지 승부를 단언할 수 없다.

야구만이 가진 그 승부의 미묘함과 예측불허의 결과, 그 짜릿함은 어떤 스포츠와도 비교할 수 없다.

40년 넘는 야덕으로서의 삶이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다.

이모에게 글러브와 배트를 선물 받았을 때,

OB베어스 이홍범 선수의 사인볼을 받았을 때,

야구영화 보러 가서 박철순 선수의 브로마이드를 받았을 때,

나의 팀을 목 터져라 응원할 때,

그 모든 시간들이 나에겐 소중한 추억이다.

내가 사랑하는 시간이다.

롯데 폐인들이여, 다이노스 팬들이여, 나의 변심을 마음껏 욕하라.

하지만 나의 야구에 대한 사랑에는 감히 도전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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