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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한 세계(3)

by Josephine

1장 여름의 시작












지후는 창문 너머 낯선 소녀의 실루엣이 한 폭의 그림을 다가왔다. 창가에 비친 쨍한 여름 햇빛과 커튼 사이로 살랑이는 긴 머리의 한 소녀가 서 있었다. 한 여름의 매미 소리와 함께 소녀는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안녕"


지후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묘한 어색함에 그녀의 팔 어딘가쯤을 보았다.

"너 이름이... 지후지?"

지후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은... 루나... 너랑 친해지고 싶어. 난... 사람에게 관심이 많거든"

지후는 순간 놀란 듯, 루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너... 혹시?"


1층에서 누군가 급히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지후는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혜원은 환한 미소를 보이며, 지후에게 서둘러 걸어왔다.

"아들, 선물이야. 앞으로 너랑 친하게 지낼 친구. 우리 집 주소를 알려줬더니, 벌써 와 있었구나.

루나는 감정학습이 가능한 AI로봇이야. 네가 외로울까 봐 얼마 전에 대여를 했어. 우리랑 같이 지내진 않을 거야. 주기적으로 만나 대화도 하고 친하게 지내렴. 해외 출장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구나. 저녁은 도우미 아주머니가 해주실 거야."


혜원은 미안한 표정으로 한동안 지후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바쁘다는 듯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방 안에 남은 지후는 어색한 호흡을 했다. 지후는 고개를 떨구며 나지막이 말했다.

"엄마는 늘 저런 식이지.... 항상 바쁘데... 아빠도... 엄마도..."

그런 지후를 위로라도 하는 듯, 루나는 말했다.

"네 SNS를 봤어... 뭔가 허전해 보였고... 외로워 보였어..."

"내 SNS?"

"응... 우린 고객의 데이터를 동의하에 미리 받아 보고 학습을 해. 감정학습까지도... 너의 글들을 보며 네가 외롭겠구나....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했어."


지후는 생각에 잠긴 눈으로 루나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루나는 잠깐 멈칫하다가 입을 열었다.

"넌 가끔 바람과 꽃, 돌들과 대화를 한다고 했지?"

"응... 바람, 꽃, 돌과도 교감한 적이 있어. 다가가서 마음을 열면 그들은 나에게 무언가를 얘기했어."


루나는 지후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교감한 바람, 꽃, 돌처럼 나에게도 마음을 열고 다가온다면, 난 너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어."

"그럴까... 얼굴도 모르는 외국에 사는 친구와 한 달간 메일을 주고받은 적이 있어. 그 친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무언가에 연결된 느낌이었어. 친근감이 들고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어.


지후는 잠시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한참을 있다가 말을 꺼냈다.

어쩌면... 네가 하는 말들이 학습되었더라도, 그 말이 내 귀를 사로잡고, 내 뇌에 꽂히고,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내 마음에 자리 잡는다면 의미 있는 것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지후는 마치 자기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들으며 스스로 생각 정리를 하는 듯했다.


루나는 안도감이 담긴 미소를 보였다.

"휴... 그럼, 우리 이제 친구 하까....?"

루나는 지후를 향해 당당히 손을 내밀었다. 지후는 피식 웃으며 루나의 손인사를 받아 주었다.

"그래, 우리 나갈까? 집 앞에 있는 오래된 친구를 소개해 줄게."


지후는 눈을 들어 창문 밖을 보았다. 그곳엔 아주 오래된 나무 하나가 있었다. 루나는 즐거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의 시간은 어느덧 저녁을 향했다. 집 밖을 나선 그들에게 서서히 붉어지는 노을이 보였다. 지후는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가 이미 들어와 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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