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조금씩 여름을 데려온다.
2023.11.13. 월요일
아주 긴 이야기가 지나갔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시작, 중간, 끝”으로 생각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다만, 나 스스로 거기서 정리하는 것일 뿐이고,
이제 내 안에서 놓아주는 것이다.
20대 내내 끌어안고 있던,
나의 아주 오래된 미움과 절망과 눈물이
깊게 내뱉은 한숨들과 함께 지나갔다.
그렇게 한 계절이 지나고,
새로운 계절을 알리듯이 내내 내 생활에는 비가 내렸다.
알 수 없는 무기력함과 헛헛함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어느새,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본래, 이야기라는 것은 내 안에서 '이야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음' 의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을...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나의 상태를 보며,
영영 이렇게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못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했다.
매일, 내 생활에 들이치는 비바람이 그치기를,
아무것도 말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아닌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스스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인가, 그냥 떠들고 싶은 사람인가
질문하고, 질문하고, 질문했다.
여전히 나는 그 어중간한 경계에서
때로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
때로는 내 속에 쌓인 시간들에 대해 떠들고 싶은 사람으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여름, 기록>은 그 어중간한 경계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아주 긴 계절이 한 장 넘어가고, 익숙하지만 또 낯선 다른 계절의 이야기.
별로,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세차게 내리던 봄비가 조금씩 멎는 것이 아쉬워서
'아, 저 지나가는 모든 시간을, 끝나가는 모든 시간을 기록하자.' 라는 마음으로
나의 주변을 돌아보고, 기록하며 시작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