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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사라지는 않는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by So Mar 27. 2025

2016년, 처음 해외에 갔다.

어린 시절, 항상 상상만 했던 일이었다.


“해외에 나가서 살고 싶어. “

“해외에서 일하고 싶어.”

“일단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외에 나가고 싶어.”


그때에는 그저 집을 떠나고 싶었고, 춘천 소양로를 떠나고 싶었다.


처음 내가 갔던 곳은 태국, 방콕이었다.

도심 한 군데로 커다란 강이 흐르는 도시였다.

골목골목 쿰쿰한 냄새와 끈적거리는 공기가 낯설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익숙했다.


위안부 여성들의 흔적을 찾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일본군을 따라 동남아로 강제로 이동하게 된 위안부 여성들의 흔적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이미 그때의 흔적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몇 개의 건물들뿐이었고,

그 시간을 기억하는 태국인들도 우린,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까.

그녀들이 언젠가 지났을지도 모를 그 길 위에서,

나는 무언가 잃어버린 사람처럼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밀었고, 기록했다.


그렇지만 내가 마주한 것은 모든 흔적이 사라진 자리에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이름 모를 여성들의 얼굴이었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사라진, 사라져 가는 위안부 여성들의 흔적이 아닌

길에서 만난, 삶에 지친 여성들의 얼굴이었다.


어디더라.

내가 어디에서 이 얼굴을 봤더라.


그러다 어느 기억과 마주쳤다.

춘천, 소양로였다.

기와집 골목에 자리한 작은 여인숙에 무기력하게 앉아있던 어느 여성들의 얼굴들.


난 이 얼굴들, 이름 모를 여성들의 눈 맞춤들을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태국의 길 위에서 찾았던 것은

이 거리를 지나쳤을 위안부 여성들의 얼굴과 목소리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공간이 아닌 대를 이은 기억과 시간들.

그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이야기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태국의 길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내 안에, 내 기억에 있었다.

내가 그렇게 애써 외면하려 한,

나의 죄책감과

나의 부끄러움 속에

무수히 많은 여성들의 얼굴이, 눈동자가 있었다.


비로소,

나는 무수히 사라진 공간 위에 지우려 애써도 사라지지 않고,

각인되어 나를 옥죄던 시간들과 마주 서게 되었다.


이제, 겨우 아주 깊고, 질긴 시간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기억의 문의 문고리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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