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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Apr 13. 2024

[미식일기] 얼라이브홈, 강릉

꿀렁이는 대창과 설레는 멘치의 육즙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일본가정식을 주로 하는 세련된 식당이 있다는 이야기를 이쁜 그녀에게서 들은 것은 그녀와 결혼도 하기 전이었다. 동네의 맛있는 집들을 골목골목 찾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김고로의 취미를 지극히 잘 알아버린 이쁜 그녀는 나에게 그녀가 알고 식당들을 여러 (지금은 폐업하기도 한) 식당들을 소개를 해줬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얼라이브홈이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개업을 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본가정식 식당이었지만 약간 오래가는 휴업과 메뉴 개편, 영업시간 개편의 과정들을 지나서 다행히도 아직도 같은 자리에서 지금의 인기 많고 자랑스러운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는 집이다. 김고로가 아는 주변 사람들은 다들 한 번씩 방문해 봤다고 하는 얼라이브홈을 최근에서야 김고로가 방문하게 된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가 있기도 했다.


동네의 단골 카페인 펌킨오울에서 자주 보는 단골손님 사이로 만나서 친분을 다지는 관계가 된 S씨가 휴학을 한 후 그곳에서 다음 여행경비를 벌기 위해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이제는 서로의 시간이 바빠진지라 자주 볼 수 없는 얼굴이 되어버린 S씨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도 김고로에게 불쑥 솟아난 것이다. 김고로가 출근을 오후 느지막이 하는 어느 평일의 오후 그는 이쁜 그녀에게 외식을 하자는 제안을 하며 동네의 일본가정식당 얼라이브홈으로 향했다.


'살아있는 집'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가진 식당이라, 재료가 신선하게 살아있는 요리를 하는 집이려나 하는 사적인 기대를 갖고 8~90년대의 독립주택들이 즐비하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골목들을 지나고 강릉제일고의 언덕을 넘고 최근에는 외지인들에게 '교리단길'이라고 불리는 교동사거리의 언덕을 지나 펌킨오울에서 멀지 않은 골목으로 향했다.


겉에서 보기에는 내부의 불빛이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회색의 매끈한 돌들의 바닥을 깔고 주변에 낮은 식물들과 대나무들로 둘러진 작은 정원 속의 집처럼 생긴 식당은 입구 근처에 가서야 영업을 하고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곳이다, 짙은 회색의 지붕과 흰 벽의 조화로 흑백의 단순한 외관으로 서있는 이곳은 멀리서 보기에 '에? 영업을 안 하는 건가?' 하고서 실망하거나 그 반대의 반응을 보일 수 있을지라도 그 어느 것이 되었든 직접 입구까지 가보거나 전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별일이 없이 내부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하얀색 벽과 목조로 이루어진 골대와 가구들, 양쪽으로 기울어진 천장은 자연광으로 손님과 음식들을 비춰주기 위한 창들이 뚫려 마침 날 좋은 날의 햇빛이 우리가 앉으려고 하는 자리를 비춰주었다. 우리가 입구를 통해서 흑색으로 밝게 빛나는 주방이 왼쪽에서 음식 냄새와 열기로 지글거리는 것과 검은색의 유니폼을 입은 직원분들에게 잠시 눈을 돌리고 나서 앞을 보자 동그란 안경과 동그란 얼굴을 한 인상 좋은 친구 S가 우리를 보고 활짝 웃으며 반긴다.


"와아! 어서 오세요, 요즘은 카페에서도 보기 힘든데. 여기서 이렇게 보니까 신기하고 좋네요. 어서 앉으세요."


"우리도 S씨를 여기서 보니까 좋아요, 하하."


우리는 S씨의 안내를 받아 자연광이 환하게 내려오는 자리에 앉아서 스스로 주문할 수 있는 화면을 통해서 주문을 시작했다. 우리가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S씨가 사이다 한 캔을 들고 와서는 비밀스러운 목소리로,


"이건, 지인에게 주는 공짜 음료."라며 친분을 표시한다. 우리는 또 웃으며 탄산 같이 시원한 그녀의 호의에 감사한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얼라이브홈에서 먹고 싶었던 음식은 다르지 않다, 이번부터 대창을 활용한 일본 가정식을 하기로 유명했던 곳이기에 그들은 대창덮밥을 주문했고 그 외에 김고로의 눈에 들어온 '멘치가스'를 놓치지 않고 주문했다.


"멘치가스를 사이드로 주문하면 너무 많은 것 아니야?"


"내가 다 먹을 거야, 걱정하지 마."


"그래, 그건 그렇지."


이쁜 그녀의 염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김고로는 음식 주문을 단행한다. 이전에 먹었었던 멘치가스에 대한 두 번의 경험은 1:1이었다, 좋은 경험 하나와 나쁜 경험 하나. 맛있는 멘치가스는 살코기와 지방이 적절하게 섞여 촉촉하고 육즙이 넘치는 것이었고, 좋지 않았던 멘치가스는 살코기의 비율이 너무 많았고 과하게 튀겨진 덕분에 두꺼운 스티로폼을 씹는 기분이었기에 얼라이브홈은 어떠려나 하면서 주문해 보는 김고로였다. 물론 김고로는 얼라이브홈의 멘치가스가 그들이 유명한 대창덮밥만큼이나 훌륭하기를 바랐다.


"여기 원래 직원분들이 아니라 부부 사장님들이 있지 않았었나?"


"그렇지, 아마 지금은 4,5살 정도 되는 아이도 있을 거야."


나중에 S씨를 통해서 듣게 된 것은 직원들과 사장님들이 번갈아가면서 일하는 날이 있는데, 우리가 방문했던 날은 직원들만이 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우리가 앉은 식탁 너머로 예의가 바르고 얌전한 하얀 비숑 강아지를 반려견 가방에 잘 넣고서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들이 보였다, 멀리서 보아하니 대창덮밥과 대창라멘을 한 그릇씩 주문하고서 식사를 즐기시는 듯했다.


"여기는 잘 통제만 되면 반려동물도 데려올 수 있구나."


"응, 여기 반려동물 들어올 수 있어."


"그렇지, 저렇게 잘 있는 친구들이라면 괜찮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식탁에 멘치가스가 먼저 등장한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잘 볼 수 있는 술안주 혹은 식사 메뉴이지만 한국에서 유행을 하기 시작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멘치가스를 하는 곳도 찾기 쉽지 않고, 잘하는 집을 찾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얼라이브홈의 멘치까스, 일식 드레싱을 얹은 양배추 샐러드와 함께 나온다


뜨거운 열기를 타고서 고소한 튀김의 냄새와 진한 고기의 무거운 맛이 코털을 밀치면서 콧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냄새가 좋아서, 기대되는데... 자 어디..."


김고로는 멘치가스를 하나 집어서 옆에 함께 나온 매콤한 조미료가 가미된 마요네즈를 살짝 묻혀서 먹는다.


바삭



튀김옷이 갈라지는 산뜻한 소리와 함께 멘치가스 속의 뜨거움이 입안을 덮치니, 김고로는 많은 양을 베어 물지는 못했다. 하지만 베어 물은 멘치가스의 겉으로, 속살 안에 숨겨져 있던 다정한 육즙이 새어 나온다.


"어라, 육즙이 가득한데? 느낌이 좋아."


고깃 조각들 사이로 맑은 기름이 섞인 육즙이 맺혀있는 것을 보니 제대로 더 물어뜯고 싶은 욕심이 훅 올라온다. 김고로는 참지 않지, 멘치가스를 물어버렸다.


바사사삭


바삭한 얇은 빵가루 튀김옷은 금방 떨어져 나가고 촉촉한 카스텔라와 같은 식감의 다진 고기들이 입안으로 쏟아져 치아로 씹을 때마다 육즙을 눈물처럼 왈칵 쏟는다. 다진 고기 외에는 조미료들이 사용되었을 터인데 그저 다진 고기들로만 가득 채워진 맛이다, 그만큼이나 고소하고 진득한 고기맛이 입안에 가득하다. 저절로 눈이 감긴다, 꽃밭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처럼 나의 치아들이 고기의 밭을 뛰어다니며 이슬이 아닌 육즙을 마신다.


"와, 훌륭한 육즙이다. 부산의 함박마을에서 먹었었던 멘치가스만큼 맛있네."


"그래?"


김고로가 신중하게 멘치가스를 음미하고 밝은 얼굴로 마무리를 짓자, 이쁜 그녀도 멘치가스에 신뢰를 주고 젓가락으로 받아들인다. 두터운 부피와 밀도를 가진 멘치가스이지만 김고로와 이쁜 그녀의 식탐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음!"


"그렇지?"


"맛있지만, 튀김이고 고기가 뭉쳐있어서 나는 이거 반 밖에 못 먹겠어. 벌써 배부르려고 해."


맑은 육즙이 섞인 눈물을 흘리는 멘치까스


지난 몇 년간 자잘한 건강문제들을 겪은 그녀는 이제 음식을 많이 먹지는 못하는 것이 슬프고 아쉬운 사람이 되어버림에 탄식한다. 맛있는 음식은 가능하면 다 먹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음은 얼마나 서러운 일인가. 김고로에게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그렇게 멘치가스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 대창덮밥과 금세 뒤따라 식탁 위로 올라온다. 음식의 시각적인 예술을 중요시 여기는 일본 음식의 영향이 있는지는 몰라도, 다양한 색상의 식재료가 한 자리에 모여있는 모습은 아무리 예술을 잘 알지 못하는 김고로의 심미안마저 깨울 정도였다. 12시에 자리 잡은 맛있게 그을린 대창의 갈색, 4시에는 연두색의 다진 대파, 5시에는 밝은 적색의 생강채, 6시에는 짙은 연두색의 고추냉이다짐, 그리고 5시부터 10시로 넓게 누운 양파채들, 대창과 양파채들 사이에 귀엽게 꽂힌 구운 꽈리고추의 진녹색. 그 식재료들의 정중앙에 똑떨어진 달걀노른자가 화룡점정을 찍는다.


"달걀은 밑에 있는 소스 묻은 밥에 슥슥 섞으시고요 다른 식재료들을 밥 위에 얹어서 반찬처럼 드시면 더 맛있어요."


S씨는 얼라이브홈의 대창덮밥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 사이에 다른 손님들이 또 들어와서 앉으니 홀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사실 어떻게 조합해서 먹던지, 자기 입맛에 좋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김고로와 이쁜 그녀의 S씨의 설명을 올바르게 따라간다, 달걀노른자를 숟가락으로 톡톡 깨서 아래에 잠자고 있는 밥들을 소스와 같이 섞으면서 노른자밥을 만들고, 그렇게 준비된 밥을 숟가락으로 한술 떴다. 그리고 다른 반찬들을 젓가락으로 잡아 올린다, 잘 구워진 기름진 대창을 하나 들어 올리니 달콤한 불냄새가 확 올라온다. 거기에 대파다짐에 양파채, 생강채를 한두 개 올리고 고추냉이를 맨 위에 올려준다, 이제 입속으로 모험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


'김고로 대창덮밥숟갈, 1호 발진!'


김고로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서 숟가락을 통해서 입으로 들어온 식재료들의 맛이 각각 어떻게 입안에서 작용하는지 온전히 느껴본다.


푹신하게 말랑거리며 씹히는 대창은 씹을 때마다 기름진 계곡이 입안에 흘러서 계속 씹고 싶은 맛이다, 그 뒤로 아삭하고 상큼하며 새콤한 양파와 생강의 조화로 기름 질 수도 있는 대창의 맛을 조화롭게 중화시키는 순간이 오고 달착지근한 대창의 소스가 밥과 함께 고슬고슬하게 씹힌다, 마지막은 알싸한 고추냉이로 깔끔하게 마무리.


"조합을 굉장히 잘 짜두셨네, 한 그릇 안에 식사의 처음과 끝을 계획해 놓으셨어."


"맞아, 여기 맛있어."


김고로는 처음 방문이지만, 처음으로 온 방문이 아닌 이쁜 그녀는 김고로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만의 즐거운 식사를 즐긴다. 김고로는 생각했다, 은빛 숟가락 위에 올라탄 대창덮밥 1호가 탐욕스러운 블랙홀로 향기와 색감의 단말마를 남기며 사라진 것처럼 2호, 3호도 그 영광을 누리게 해 줘야겠다고. 오직 먹는 자만을 위한 영광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전에 김고로는 궁금했다, 대창만 씹으면 어떤 맛일까. 일본식으로 데리야키 소스가 묻은 대창을 처음 먹어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맛 자체도 즐기고 싶은 김고로다.


직화에 그을려진 대창의 모습이 먹음직스럽다


김고로는 젓가락으로 약간 커다란 대창을 입으로 가져가며 조심스럽게 씹기 시작했다. 대창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다른 식재료의 방해 없이 치아 위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달콤함과 감칠맛이 섞인 양념간장의 맛이 기름진 육즙에 섞여서 잇몸과 입안 전체를 숙련된 도배공처럼 덮는다. 씹으면 씹을수록 느끼한 지방의 맛이 아니라 데리야끼 소스와 잘 어울려서 맑고 깔끔한 육즙이 솟아나고 그 맛이 입안에서 오랫동안 남아있다. 하지만 대창의 외로운 여행은 여기까지다, 자신의 단점을 보충해 주는 다른 식재료들과 함께 있으면 대창덮밥은 훨씬 맛이 좋아지는 사실.


"다시 대창덮밥을 조합해 볼까."


김고로는 이후 대창을 홀로 입안으로 보내지 않는다, 대창의 든든한 친구들인 양파, 생강, 쌀, 대파를 올려 완벽한 맛을 구성하는 조직을 만들어 몸 안으로 들여보낸다. 기름지고 달콤한 대창에 신선한 알싸함과 사각거리는 식감에 새콤함과 매콤함, 그리고 그렇게 얼라이브홈의 대창덮밥은 몇 번이고 김고로를 색채와 식감과 미각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만화경 속으로 안내했다.


"잘 먹었다, 좋은 덮밥이었어."


"응, 나도 맛있는 점심 먹어서 좋아."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자신이 일하는 시간에 찾아와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는 S에게 또 보자는 인사를 하고서는 강릉의 따스한 봄날 거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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