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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May 18. 2024

[미식일기] 깜댕이칼짬, 강릉

면발이 끊어지지 않아! 안되겠소, 먹읍시다!

강릉 단오제라고 하면 이북을 제외한 한반도 내의 단오제 중에 가장 큰 축제이며 유네스코에 등록되기도 한 강릉과 대한민국의 큰 축제이다. 하지만 먹는 것을 얘기하는 김고로가 오늘 얘기할 것은 강릉 단오제가 아니다, 그것을 기념하는 공원과 교육관이 있는 강릉 남대천 이남으로 넘어 노암동의 골목 상권에는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칼국수면을 사용하는 짬뽕을 주메뉴로 하는 '깜댕이칼짬'이 자리하고 있다.


김고로가 애정하는 카페 중 하나인 '카페정화'에서 멀지 않다, 한 구역의 언덕을 넘어서 단오기념공원 근처로 넘어오면 '해장약국'이라는 눈에 잘 띄는 노란색 바탕의 흡사 약국의 소간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국수가 잔뜩 말아져 있는 그릇을 가진 곳이다. 짬뽕처럼 칼칼하고 매콤 짭짤한 국물에 손수 반죽해서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면을 뽑아서 넣어주는 칼국수짬뽕, 즉 '칼짬'을 주력메뉴로 하는 국숫집인데, 그 강렬한 간과 매운맛이 간을 강하게 해서 먹기를 좋아하는 지역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서 식사시간에 가면 칼짬에 공깃밥으로 식사를 간편하게 해결하고 가는 남성들로 만석이 된 모습을 곧잘 볼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김고로의 입맛에 모든 음식이 취향인 것은 아니다, 깜댕이칼짬의 칼국수짬뽕이 그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 깜댕이칼짬 주인장의 면발을 뽑는 실력과 아내분으로 보이시는 여사장님의 친절한 손님응대는, 한번 실망한 곳에는 좀처럼 발걸음을 또 옮기지 않는 김고로의 생각 한편에 '깜댕이칼짬'이라는 곳을 새겨두기에 충분하였고 칼짬이라는 메뉴 외에 직접 간장 육수를 만들어 '튀김냉칼면'을 출시했다는 소식에 가서 먹어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지붕을 가진 대도호부관아를 지나서 농협중앙회 건물 앞을 쌩하고 달려 남대천을 건너는 고가도로를 넘어선 김고로는 비교적 폭이 적은 도로로 진입, '해장약국'이라는 간판을 보이는 깜댕이칼짬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주문을 한다.


'튀김냉칼면에다가... 곱빼기가 무료네? 그러면 곱빼기 추가, 거기에 튀긴 만두도 하나 먹어야겠다. 저녁까지 든든하겠군.'


주문을 넣고 나서 작은 2인용 식탁에 앉아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깜댕이칼짬은 깔끔한 원목 무늬 바닥에 아이보리 벽으로 도배하고 벽걸이 텔레비전에서 종편뉴스채널이 흘러나오고 있는 5평 남짓한 작은 크기의 홀에 4인용 식탁이 3개, 2인용 식탁이 2개에 벽구석에 키오스크가 버티고 있는 식당이다.


제면과 조리에 필요한 기구들이 커다랗고 한 덩치와 부피를 차지하는 탓에 홀보다는 주방이 훨씬 커다란 곳. 주방과 홀이 얇은 벽 하나를 두고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주문이 들어가자마자 요리를 담당한 남자 사장님이 면반죽을 꺼내어 제면기계에 넣고는 면을 뽑는 우렁찬 소리가 반갑게 들려온다.


'여기가 면발의 단단함과 탱탱함은 어마어마하게 훌륭한 집인데, 사실 칼짬 육수맛이 내 입맛과는 맞지 않았어... 오늘 주문하는 튀김냉칼면은 나와 궁합이 좋기를...'


김고로는 약간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방에서 본인의 냉칼면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앞서 밀려있던 주문들이 빠르게 해치워지고, 그의 앞으로 튀김냉칼면 곱빼기와 튀긴 만두들이 도열했다. 맑고 영롱한 갈색의 시원한 육수에는 튀김조각들이 눈처럼 뽀얗게 뿌려졌고 높이 쌓아져 올린 면발 위에는 고구마가 주로 들어간 채소튀김과 튀긴 만두, 새우튀김이 가지런히 올려졌다.


보이는 것보다 더 양이 많을 수 있습니다


"어디 먹어볼까..."


이전에 방문했을 때 칼짬이 입맛에 맞지 않았던 좋지 않은 기억은 잠시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둔 채, 김고로는 숟가락을 들어 육수와 튀김조각들을 입으로 가져간다.


후루룩


'.......! 괜찮네!'


입에 넣자마자 살짝 달콤한 맛이 올라오면서 길게 이어지는 짭짤함에 감칠맛, 그리고 마른 다랑어포의 훈연맛이 코를 훅 치면서 올라온다. 깜댕이칼짬의 사장님들이 직접 만든다고 하는 냉칼의 육수라서 그런지 실제로 많이 먹어본 기성 메밀육수와는 빛깔이나 맛, 향이 맛이 다르고 간을 강하게 해서 먹기를 좋아하는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춘 맛이다. 그래서 육수가 달달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 점을 생각하셨는지 다진 파와 고추냉이를 따로 옆에 주신다. 고추냉이를 넣으면 육수의 단맛을 조절할 수 있게 되니 손님 입맛에 맞춰서 고추냉이를 넣어 단맛을 잡으면 되는 것이다.



'고추냉이를 따로 주신 것은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손님을 위한 주인장의 배려겠지.'


김고로는 고추냉이를 젓가락으로 큰 조각을 쪼개어 튀김냉칼면 육수에 섞어 넣는다, 이로서 튀김냉칼면의 시원한 육수는 김고로에게 흡수될 준비를 마쳤다. 냉칼면 위에 올려져 있던 튀김들이 눅눅해지기 전에 바삭하고 뜨거운 상태로 만두와 새우튀김을 와삭와삭 씹어먹고, 달달한 육수를 살짝 묻힌 채소튀김도 즐겁게 먹는다. 채소튀김은 감자, 당근, 양파 등이 잘게 썰려 대충 뭉쳐져 튀겨진 분식집의 방식을 더 좋아하지만 깔끔하고 동그랗게 뭉쳐진 모양이 더 이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고로가 기다리고 있던 것은 위에 고명으로 올려진 튀김들의 맛이 아니라 육수를 촉촉하게 겉면에 머금은 깜댕이칼짬의 수제 반죽면이다. 곱빼기를 주문해서 그런지, 거의 1인분을 넘어 2인분이 돼버린 거대한 접시에 젓가락을 찔러 넣는다.


'역시나 면이 두텁고 묵직해'


넓고 반듯한 칼국수 면을 들어 올려 입안으로 후루룩 말아 넣는다.


후루루루룩


매끈한 면발이 치아에 닿으면서 쫄깃하게 씹힌다, 씹히는 면발 한가닥 한가닥에 힘이 넘친다, 논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생명력을 만발하는 미꾸라지의 그 힘처럼, 담수와 강물에서 강물을 휘감으며 용틀임과 같은 힘을 내뿜는 장어의 그 힘처럼. 김고로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수제' 반죽이라는 말을 빌어 상상한다면, 깜댕이칼짬 주인장의 허리와 등으로부터 어깨의 근육, 상완근과 전완근으로 이어지는 힘으로 단단함과 탄탄함, 쫄깃함의 끝까지 반죽이 된, 사장님의 혼이 담긴 면발의 식감은 김고로를 감탄하게 한다.


이전에도 수많은 수타반죽면의 식감을 즐기면서 느꼈던 것은, 인간의 혼이 스며든 수타반죽면에는 먹는 사람으로 하여금 만든 이의 열정과 힘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수타짜장면을 하는 중화요릿집의 면발, 수타우동을 하는 일식우동집의 면발, 면을 치고 내리는 막국수집의 메밀면발, 탄탄한 수제 파스타를 요리하는 이탈리아 파스타 전문점에 이어 온몸의 힘을 짜내어서 면을 내리는 칼국수집의 면발은 존경스러울 정도다.


후루루룩


김고로는 다시 한번 존경의 마음을 담아 연갈색 투명한 육수 속에서 칼국수면발을 젓가락으로 가능한 적게 집어 들어 흡입한다. 많은 양의 면발을 우걱우걱 씹기보다는 한가닥마다 잠들어있는 면발의 탄성과 질감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다.


쫄깃 단단



깜댕이칼짬 면발의 단단한 식감은 누구나 씹을 수 있는 단단함이지만 씹지 않아도 넘길 수 있는, 우습게 볼만한 식감이 아니다. 매끈해 보이는 그 겉면을 씹으면 쫄깃한 질감이 어금니와 잇몸을 타고서 턱까지 느껴진다, 씹기 어렵거나 단단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 쫄깃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면이다. 거기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면발의 탄탄함은 가게가 두쪽이 나도 꼿꼿한 정신으로 끝까지 면반죽은 수제로 하겠다는 정신을 대변한다.


'역시, 이 탱글거리지만 강하게 씹을 수 있는 면발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없지.'


면발로 씹는 즐거움을 가진 김고로는 뒤이어 튀김파편이 가득한 육수를 여러 번 퍼서 먹는다. 바삭바삭하게 입안에서 터지는 파편들이 짭짤함과 즐거운 식감을 선사한다, 튀김파편들을 아끼지 않고 그릇에 가득 찰 만큼 많이 주신 덕분에 김고로는 시원하고 달콤한 육수에 바삭한 조각들을 원하는 만큼 퍼먹을 수 있었다. 육수는 살얼음이 곳곳에 생길 만큼 시원한 육수냉장고에서 나왔는지 살얼음덩이들을 씹을 때마다 온몸이 겨울을 느낀다.


'더 더운 여름이 되면 곧잘 생각날 육수맛이군. 칼국수면이 부피와 두께가 있는 만큼 동치미를 기반으로 한 육수보다는 이런 맛이 강한 육수가 더 잘 어울려, 면에 알맞은 훌륭한 선택이다.'


김고로는 면사발 깊은 곳 중심에 잠들어있던 또 다른 한 묶음의 면발들을 발견하고는 큰 미소를 짓고 젓가락을 휘저어 면발을 건져 올린다.


'1인분을 먹었더니 1인분이 더 있잖아?'


튀긴 만두를 곁들여 먹으니 어느 정도 배가 부른 김고로였지만 이렇게 친절한 곱빼기를 남긴다면 그것은 덤을 얹어주신 사장님께 실례다, 국물은 다 못 먹어도 면발은 다 먹는 것이 예의. 젓가락으로 큰 묶음을 만들어 순식간에 여러 번 씹으며 국수를 즐긴다. 달콤하고 쌉쌀한 육수가 묻은 시원한 국수 끝에 훈연맛이 코를 스치는 튀김냉칼면은 국수를 좋아하는 김고로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인 음식이다. 튀김에 밀가루국수를 먹었더니 점점 배가 많이 불러온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었기에 기분이 좋은 김고로였다.


식사를 마친 김고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는 가게를 조용히 나선다.


"안녕히 가세요~!"


가게 밖으로 나서는 손님을 발견한 주방의 사장님이 인사를 건네시니,


"잘 먹었습니다!"


친절한 배웅에 응답하며 김고로는 남대천을 건너 강릉 시내로 페달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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