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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Jun 29. 2024

[미식일기] 차이딴, 서울

서울 홍제동 골목, 가정집을 가장한 중국집의 숨은 보석

강릉에서도 열대야가 맹위를 떨치는 초여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강릉의 불벼락 더위가 충분치 않았는지 수도권으로 김고로와 이쁜 그녀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1박의 식도락과 친교 여정을 떠났다.


이 여정의 발단은 우선, 현재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이쁜 그녀의 절친이 이쁜 그녀와 김고로를 초대하여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한 것과 김고로가 출석하고 있는 대학교의 콜로퀴엄의 일정이 마침 주말에 잡혀있는 것, 그리고 김고로의 절친인 바리스타 곰군이 현재는 서울 홍제역 근처의 모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는 3가지 요소가 합쳐진 여정이다.


이른 아침부터 관광객들이 KTX에서 쏟아져 내리는 강릉역에서, 관광객들이 온 방향과는 반대로 서울로 향한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오전에 콜로퀴엄과 도서관에서의 사색과 영감 창조 활동으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이전에도 김고로가 쓴 적이 있는 수제버거집인 '153스트리트'에서 푸짐한 식사를 하고 바리스타 곰군이 근무하고 있는 홍제동으로 향했다.


외대에서 청계천, 광화문을 거쳐 세검정으로 경복궁의 뒷세계(?) 경관을 감상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이슬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토요일 오후에 그들은 서대문구의 홍제천 근처에서 조용한 가정집처럼 생긴 아담하고 이쁜 카페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바리스타 곰군을 만나 곰군이 까다롭게 엄선한 원두들로 내린 드립커피를 마시면서 다시, 김고로는 미식일기 집필과 이쁜 그녀는 본인의 그림세계에서의 작업시간을 보내며 머물렀다. 곰군이 카페 근무를 마치는 시간은 대략 저녁 7시 반, 저녁에 모든 일정을 마친 곰군과 그를 기다린 김고로, 이쁜 그녀는 상당히 허기졌다.


"오늘 가려는 집은 중화요릿집인데, 여기서 걸어서 좀 가야 되니까 조금만 참아줘."


"네, 형. 맛있는 것 먹으러 가는데 괜찮아요."


"응, 우리 중에 안 괜찮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


"........ 아.."


커다란 건물이 없이 원룸 건물과 카페, 낮은 가정집들로 이루어진 간호대길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와 고가도로, 건물들이 빼곡한 큰길을 지나고 나니 새롭게 지어진 아파트 주거단지와 상권, 재건축을 도모하고 있는 옛 골목들에 토요일 저녁을 즐기러 나온 가족들과 인파들로 발디딤틈이 없을 정도의 서울. 그나마 비교적 한적하기로 소문난 서울의 외곽 동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 활기로 들끓었다.


"와, 사람들이 엄청 많네, 역시나 서울이다."


"하하, 저도 이쪽 골목은 처음 와봐요, 퇴근할 때 홍제역으로 갈 때는 다른 길로 가거든요."


"내가 서울을 참 좋아하지 않지만, 옛골목에 자리 잡은 풍경 구경노포들을 가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지."


주요 상권들이 밀집한 골목을 지나서 홍제역 쪽으로 다다르자 저 멀리 커다란 세로 간판에 붉은 배경에 흰 글씨로 '차이딴'이라고 쓰인 가정집이 보인다. 겉에서만 보기로는 식당이 아니라 가정집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골목에 있던 가정집을 개조하여 식당으로 탈바꿈을 한 곳이었다.


겉은 연회색과 돌들로 아랫담과 윗담, 그 위에는 옛날 골목집에 방범을 위해서 박아둔 울타리, 커다란 대문이 있었을만한 곳에는 소박한 메뉴소개와 대문을 개조해서 다시 만들어둔 입구. 안으로 들어가니 뒤쪽으로는 서울 가정집의 작은 정원으로 보이는 샛길이 보이지만 우리의 목적은 온전한 식사이므로 반층 위의 식당으로 들어가는 작은 2단 계단을 올라서 걸어 올라갔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이미 해가 다 져버린 20시가 넘어버린 시간이기 때문에 해물짬뽕과 소주로 식사의 마무리를 짓는 중인 단골손님으로 보이는 손님들과 홀을 보는 사장님께서 담소를 나누며 있었고 한쪽에서는 이제 막 식사를 마친듯한 식탁, 그리고 홀로 짬뽕을 먹는 중년의 신사분이 보였다. 내부는 흰 벽과 따뜻한 황색 조명으로 '여기 중화요릿집입니다'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카페라고 착각할만한 깔끔한 꾸밈,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왼편에 주방으로 들어가는 주광색의 조명이 보이고 그 앞에는 단무지, 짜사이 등의 반찬을 담는 셀프바와 그 옆에 든든하게 서있는 냉장고가 보인다.


우리는 식사를 마무리 짓고 있는 두 식탁 사이에 아직 정리는 덜 되었지만 3명이 앉기 딱 좋아 보이는 벽 옆에 붙은 식탁에 앉았다.


"주문하실 때 불러주셔요~"


빠르게 식탁을 정리하고 그릇과 식기, 반찬들을 가져다준 사장님은 메뉴판도 덤으로 주시면서 다시 단골손님들과의 대화에 참여하신다. 손님 혹은 친구로 보이는 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모습이 퍽 정답다.


"여기는 면도 면이지만 밥 종류와 튀김 종류를 엄청 잘하신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군만두는 무조건 먹어야 한다는 말이 많더라."


여러 가지 매체와 정보들을 통해서 차이딴에 대해 첩보를 수집한 김고로가 식도락의 포문을 어떻게 열지 이쁜 그녀, 곰군과 함께 회의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여기, 군만두를 8개 시키고 거기에 탕수육을 시키자. 그리고 모자라면 요리류나 식사류를 하나 더 시키기, 괜찮을까?"


"저는 형이 고르는 거면 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응, 뭐든 얼른 시키자. 우리 다 배고프잖아."


배가 고프면 고플수록 빠른 주문은 덕이 된다. 김고로는 군만두와 탕수육을 먼저 주문하고, 가져다주신 보리차를 서로 따라주면서 곰군으로부터 현 직장의 근황과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시시콜콜 친구사이의 대화를 시작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군만두가 금방 준비되어 노릇노릇한 진갈색의 표면을 자랑하며 식탁에 올랐다.



"군만두 드릴게요, 탕수육도 곧 나와요~"


"감사합니다."


"오, 군만두 엄청 맛있게 생겼어!"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으로 동네 중국집에서 보던 얇고 전체가 바삭한 기성품을 튀긴 군만두가 아니라 짧고 몸통이 통통하고 평평한 한쪽면만 진하게 구워진, 나머지는 윤기 나는 흰 만두피를 보이는, 김고로가 중국에서 살던 시절 동네 식당에 가서 군만두를 주문하면 보던 군만두의 모습이었다. 이미 눈에 보이는 모습부터 김고로의 기대감이 폭발한다. 그렇다면 맛을 어떨까.


바사삭


김고로가 알고 먹어왔던 만두피들보다 두 배 정도는 더 얇은 두께, 거기에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바삭한 식감을 자랑하는 만두피가 앞니를 통해 어금니 사이에서 씹히고 깔끔하고 고소한 육즙과 다진 고기소, 아삭아삭하니 살아있는 양배추와 다진 파, 눈에 보이는 재료는 세 가지 정도 밖에는 안되지만 단출한 재료들이 서로 어울려서 식감과 풍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낸다.


"만두피 진짜 얇다, 바삭하고 쫄깃해."


"이 만두, 엄청 맛있는데요?"



차이딴의 군만두가 맛있어서, 뜨거움에도 불구하고 씹던 김고로는 답을 못하고 고개만 연신 끄덕인다. 맛있다는 신체적 표현이다. 이쁜 그녀와 김고로가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것은, 고온에서 튀겨낸 만두임에도 불구하고 속에 있는 양배추의 식감이 죽지 않은 것과, 대파의 풍미와 양배추의 은은한 단맛, 거기에 기름진 고기의 맛이 섞여 깔끔하며 다양한 식감으로 입안이 즐거운 요리가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박하고 대중적인 재료로 이런 군만두의 맛이 나오다니, 이 군만두만으로도 동네의 숨은 보석이요 이웃주민들의 찬사를 받기 충분하다. 특히나 바삭하고 얇은 만두피의 식감은 환상적이라 다음에 나올 요리가 있음을 망각하고 추가 주문을 하고 싶은 맛이다.


"탕수육 나왔습니다~"



김고로 일행이 순식간에 군만두를 해치우고 텅 빈 그릇을 바라보려고 하던 그때에 시간을 잘 맞추어 마침 탕수육이 등장한다. 탕수소스를 넉넉하게 붓기보다는 웍에서 고기튀김에 전체적으로 잘 버무려놓은 볶음 방식의 탕수육이다. 얇고 길쭉하게 썰린 튀긴 고기 위로 연한 갈색의 투명한 소스가 겉을 감싸고 계핏가루가 묻어 눈에도 보이는 계피의 향기가 코를 매만져준다. 김고로의 호기심을 촉발하는 또 다른 음식이다.


"계피다, 계피 냄새 나."


"냄새부터 달콤해."


계피와 생강을 좋아하는 이쁜 그녀가 이전에 먹었던 탕수육에서는 볼 수없었던 향신료의 등장을 반긴다. 김고로는 이미 젓가락으로 탕수육을 집고 한번 냄새를 맡고는 입으로 가져간다. 김고로의 호기심은 곧 식욕이다.


바삭바삭



튀긴 음식의 연속이라 느끼할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군만두는 튀긴 만두임에도 불구하고 가볍고 깔끔한 맛이었고, 등심을 얇게 채 썰어 튀겨낸 탕수육의 소스는 은근하게 달달하고 계피는 혀에 향긋하게 등장했다, 기름과 살코기가 적당하게 섞인 등심은 그 부드러운 식감이 쫄깃하여 설탕처럼 부서지는 튀김옷과 입안에서 뒤엉켜 씹히며 상반되는 식감을 선사한다. 자극적으로 새콤달콤하지 않은 탕수소스다, 딱 필요한 만큼만, 딱 좋은 정도로만 뭉근하게 피어올라오는 단맛의 탕수육이다. 튀긴 음식임을 부정하는 끝맛, 절제와 긍정하는 식감이 이곳 차이딴의 음식 철학이 아닐까. 우리가 많이 배고팠기에 시장이 반찬임을 배제하더라도 사람들이 차이딴의 튀김을 좋아하는 이유를 쉽게 납득하는 김고로였다.


"이거 다 먹고 또 뭐 먹지...? 아직은 조금 아쉬워, 더 먹고 싶은데."


"너 좋아하는 걸로 시켜 고로야."


"네, 저는 아무래도 좋아요."


김고로는 잠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계속 요리류를 먹을까 혹은 식사류인 볶음밥으로 전환하여 차이딴에서의 식사를 마무리할까. 밥 종류도 워낙 훌륭하다기에 궁금했지만 김고로는 계속 튀김요리를 맛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차이딴...닭튀김은 어떨까? 유린기? 깐풍기? 아냐 새콤달콤한 맛은 탕수육으로 충분해, 매콤 달콤으로 가자. 너로 정했다, 깐풍기.


"선생님, 여기 깐풍기 하나 부탁드립니다."


"네~ 깐풍기요~"


김고로에게 맛있는 깐풍기를 먹었었던 기억은 손에 꼽히기 때문에, 튀김을 잘하는 차이딴의 깐풍기는 어떨지 더욱 궁금했다. 지금까지 먹었던 깐풍기들은 뻑뻑하고 퍽퍽한 닭가슴살 뭉치를 더 딱딱하게 튀겨내고 매콤 달콤해야 할 소스는 제대로 튀김옷에 묻어지지 않아 실망스러웠었다. 과거에 먹었던 깐풍기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곧 뜨거운 기운의 깐풍기가 식탁에 날아왔다, 그리고 김고로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닭가슴살이 아닌 닭다리 순살을 사용한 한입 크기의 튀김, 이 정도 크기라면 소스가 잘 배이고도 남는다.


기름에서 막 튀겨져 나온 반짝거리는 윤기와 울긋불긋한 양념으로 염색된 튀김옷, 그 위에 얇게 썰린 마늘 플레이크가 뿌려져 있고 깨, 고추씨, 땅콩과 튀긴 붉은 고추.



"여기 작은 고추들은 매운 고추니까 드시지 마시고요, 이 큼직한 고추는 안 매운 고추니까 드셔도 되어요. 맛있게 드세요~"


친절하신 홀의 사장님께서 먹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해 주시는 설명을 마친 후 우리는 신기하게도 다들 큼지막하게 튀겨진 건고추부터 집어서 먹는다.


바사사삭


건고추를 튀겨냈으니 이것도 건고추 튀각이라면 튀각이겠지, 고추에 숨어있는 달달한 맛과 아주 약간의 매콤함이 튀김의 식감과 어울려 여기에 칭따오 한잔만 곁들이면 완벽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김고로였다. 거기에 마늘 플레이크를 올려서 깐풍기 한 조각을 씹는다.


"와우..."


씹히는 마늘 플레이크의 알싸한 풍미가 코로 올라오는 동시에 쫄깃하고 탄력 있는 닭고기의 기름진 맛이 어금니 사이에서 튕기면서 매콤하고 새콤하며 달콤한 풍미의 깐풍기 소스가 입안에 홍수처럼 터진다. 복합적인 풍미로 사람의 미각과 후각을 즐겁게 하는 음식, 김고로가 사랑하는 풍미다. 첫인상에 대한 평으로 그저 감탄사 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여기 튀긴 고추에, 마늘에 땅콩, 그리고 깐풍기 한 조각까지. 애주가라면 맥주 못 참겠는데."


"칭따오나 하얼빈 한잔하고 싶네."


"참아, 참아. 너 술도 잘 못 마시잖아. 나는 너 부축 못해."


김고로는 입맛을 다시면서 다시 한번 깐풍기 한 조각을 씹는다. 얇은 튀김옷 아래에서 고소하고 부드러운 닭고기가 날아오르고 다시 새콤하며 알싸한 소스와 부재료들이 식감을 뒷받침한다. 자동으로 눈을 감고 식감과 향미를 즐기는 김고로, 볶음밥을 먹지 못함은 아쉬우나 오랜만에 맛있는 튀김에 대한 오랜 갈망을 채워주는 군만두, 탕수육, 깐풍기로 이어지는 코스는 충족 이상이었다.


"조금 더 먹고 싶지만, 위장의 나머지 공간은 일산에 가서 가볍게 한잔 하면서 채울까."


"네, 그래요. 집 근처에서 또 먹어요."


김고로, 이쁜 그녀와 곰군은 차이딴에서의 신나는 식사를 마치고 일산으로 가기 위해 홍제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고로는 아마도 차이딴에, 볶음밥과 군만두를 먹으러 또 오겠지, 아마도,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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