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고로 Nov 10. 2024

[미식일기] 겐쨩카레, 부산

카레의 겐. 정성이 응고된 진지한 달콤함

김고로는 진주 북경장에서 탕바우와 함께하는 맛있는 시간을 보내고, 원했던 자료 조사를 마치고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가능하면 진주에서 더 맛있는 음식들을 먹기 위해서 더 있을 수도 있었지만, 김고로가 부산과 진주에서 지내려고 했던 예정은 이틀에 불과했기 때문에 김고로는 그 와중에 전 직장에서 있었던 친구인 'H'군과 만나서 저녁을 먹기 위해 진주의 먹거리를 더 즐기지는 않았다.


"H군과는 퇴근 후에 보기로 했으니 어디, 천천히 가볼까."


H군은 부산역과 중앙역 근처에 있는 어느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기에, 그의 회사 근처에는 부산역 및 중앙역 주변의 '겐쨩카레'라고 하는 일식 카레집에 가자고 이미 약속을 잡았었다.


이미 9월로 넘어간 시점이었지만 날이 덥다, 다만 비가 추적추적 아주 조금씩 내리고 있는 덕분에 김고로는 시원한 날씨를 즐기며 부산역에서 내려 중앙역 방향으로 걸었다.


근처를 돌아보니 인천의 차이나타운만큼의 명성이 있지는 않지만 부산에도 화교분들이 많이 살기에 만들어진 차이나타운이 금색과 붉은빛의 조화로 이루어진 거리의 입구를 뽐내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라 차도 많고 사람도 많이 지나다니는 중앙동 어느 빌딩의 카페에 앉아 시계바늘들이 퇴근시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보고있자니, 금방 H군이 직장을 마치고 나를 보러온다.


"오늘 우리 카레 먹으러 간다고 했었나?"


"그렇지. 일본 사장님이랑 부인분이 하시는데, 지금 가는 곳이 본점이고 나머지는 체인이야."


"일본 카레, 기대되네."


"그리고 그 근처에도 맛있는 집들이 더 있기는 한데 오늘 휴무라서 아쉽지."


H군과 김고로는 그들이 걸어가는 거리에 있는 이런저런 맛집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H군은 김고로처럼 글을 쓰지는 않지만 미식을 좋아하고 식당을 찾아다니는 취미가 같아서 금방 친해진 친구였다.


"저쪽으로 가면 태국 음식점도 있고, 카페도 꽤 괜찮아 이 근처가."


"여기는 완전 중앙역 뒷골목 같은 곳이구나."


정확하게는 동광동에서 중앙동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40계단거리, 그곳에는 크고 작은 골목 식당, 술집, 디저트들이 아기자기한 제각각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근처도 노동자들의 일터가 많은지라, 퇴근길에 잠깐 한잔 하거나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기에 제법 괜찮은 밤골목의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작은 이자카야와 술집에서 한잔 하면서 평일의 저녁을 조용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굽이굽이 들이치는 골목과 숨어있는 밥집들을 찾기 좋아하는 김고로에게 부산의 계획되지 않은, 제멋대로인 골목길은 신난 아이의 장난감과 같기에 김고로는 주변을 둘러보기를 멈추지 않는다.


"여기야, 겐쨩카레. 내 단골집 중 하나."


"호오, 크지 않구나."


실제로 일본의 노상에서 튀어나온 듯한 일본어와 마스코트가 박힌 보라색의 간판과 어닝. 그리고 통유리로 된 문 옆은 노란색의 카레를 생각나게 하는 큰 메뉴판과 대나무 옆 호랑이의 몸을 한 사장님 '겐쨩'이 손님을 반기고 있다.


"안녕하세요, 두명이요."


"네, 여기 앉으셔요."


일본인 '겐쨩' 사장님은 없으시고 일본인 직원이 한국인 직원에게 일을 배우면서 근무를 하는 듯 했다. 약간의 일본어를 사용하면서 한국인 직원이 음식 조리나 다른 일들을 알려주는 대화를 하는 중이었으니까. 들어가면 작은 원통의자들에 외다리 탁자로 이루어진 좌석, 가게 안은 겨우 6명이나 8명 정도가 앉을 수 있을까?


가게 벽과 천장은 메뉴판과 방송에 출연했던 장면들로 이루어진 가게 홍보물들이 장식을 하고 있고, 각 테이블마다 얇게 코팅된 메뉴판이 가게의 형광등에 반사되어 번쩍거리며 누워있었다. 우리가 퇴근을 하자마자 방문했으니, 당연히 저녁시간의 첫 방문손님은 우리였다. 하지만 그 옆에서 계속 울리는 배달 어플의 알림 소리는 이 가게가 꽤나 잘 되는 가게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담한 크기보다 더 아담한 크기의 홀 옆에 양옆으로 계산대와 냉장고가 마을 어귀의 장승처럼 버티고 서있는데, 거길 지나면 아주 좁은 L자 모양의 복도처럼 생긴 주방에 커다란 대형 솥에서 모락모락 김을 내며 카레 냄새가 풍겨져 나오고 있다. 맛의 원천인 그 겐쨩의 근본 카레가 퍼담아져서 밥에 이불을 덮고 데워져 손님에게 나올 모양이다. 카레의 달착지근하게 매캐한듯 가게를 덮은 향미가 내 코를 휘어잡는다.


"나는 이거 먹을거야, 항상 이거 먹거든."


H군은 메뉴판의 '야끼카레'를 가리키면서 말한다, 기본적인 카레를 밥과 달걀후라이로 덮고서 모짜렐라 치즈를 덮어 구어내었기에 '구이'라는 의미를 가진 '야끼'를 붙여 만든 이름인듯 했다.


"고로야, 그리고 여기 고로케가 그렇게 맛있다. 맘껏 먹어, 내가 살거야."


"그래? 그러면 고로케 추가해서 먹어야지 헤헤."


"그래, 먹어먹어."


맛있는 음식에 대한 먹을 복이 따라다니는 김고로의 운기덕분인지 H군은 김고로와 상당히 손발이 잘 맞는 식도락 조합이다. 두 사람이 다니면서 '맛있음'을 추구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맛있는 음식을 권하며 도움이 많이 된다. 물론, 서로의 취향이 비슷한 곳을 가리키며 교집합이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리고 메뉴판을 바라보는 김고로는 살짝 고민이다. 고로케를 조금 더 얹은 고로케카레를 먹을 심산인데 이곳의 맛있는 카레를 우동면에 말아놓은 카레우동도 먹고 싶은 김고로.


"흐음...한꺼번에 카레랑 우동을 시켜서 2인분을 먹을까?"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되지, 뭐가 고민이야?"


"나는 너랑 오늘 식사하고 음료 마시고, 술집도 가고 3차까지 가고 싶으니까."


"어휴, 나는 내일 일찍부터 집중해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술은 안돼 임마."


"아쉽구만...좋아, 일단 고로케카레부터 먹어보면서 더 생각할께."


김고로는 잠깐 고민을 마치고 주문을 H군에게 넘긴다. 김고로의 머릿속에는:


'아...일본 사이다인 라무네도 좀 마실까...아...카레우동은 다음에 와서 먹어야겠지...아쉬워라...'가 맴돌았다.


H군의 주문이 주방에 들어가고 나서 메뉴가 나오는 시간까지는 크게 오래걸리지는 않았다, 고로케를 튀기고 밥에 카레와 고로케를 올려서 준비. H군의 메뉴는 오븐에 카레밥을 굽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5분 정도 더 걸리는 정도였다. 준비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손님에게 나오는 시간은 금방이라, 음식을 내오는 일은 어렵지 않다.


겐쨩카레의 고로케카레
겐쨩카레의 야끼카레

"잘 먹을께."


"어, 모자라면 더 먹어."


"당연하지."


가게의 벽과 공기와 바닥과 천장에 지박령처럼 달라붙어 떠나지 않는 카레의 매콤함과 '달다구리'한 냄새가 내 앞에서 목과 턱을 타고 가슴으로 기어올라온다. 숟가락을 들어 부푼 기대감으로 한 숟가락을 푸욱.


다진고기와 양파가 눈에 보인다. 양파는 채썰린 후에 흐물거릴 정도로 거의 캐러멜이 되었다

'카레 집에 왔는데 카레 맛이 가장 중요하지.'


김고로는 기본이 맛있으면 그 이후 모든 음식은 다 맛이 좋을거라 짐작하며 카레만 숟가락에 올려 먹어본다.


꿀꺽


"....!"


묵직한 카레의 풍미가 매콤함과 큐민의 훈연향으로 섞여 코와 입안을 가득 채우면서 들어온다. 김고로는 그 향을 즐기려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카레에 들어있는 작게 다진 재료들을 하나하나 씹으며 생각한다.


'양파가 부드럽기도 하거니와 거의 극한까지 익혀져서 설탕이 아닌데 진한 단맛이 나는군.'


그리고 조약돌처럼 입안에서 굴러다니다가 치아에 걸려서 으스러지는 쇠고기 조각, 향긋한 카레향과 함께 고소하고 진한 맛이다. 그리고 모든 재료들의 힘이 농축되어 녹아들어간 카레 그 자체가 절대 존엄 수준이다.


"와, 카레가 어마어마하네."


"맛있지? 다행이다."


서로 맛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다른 식도락가를 데려갔을 때, 맛있다고 외쳐주면 초대한 사람이 느끼는 해방감 혹은 안도감이란. 한 사람이 이를 위하여 투자한 시간과 돈이 귀하게 사용된다는 사실에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겐쨩 카레에서는 카레와 밥이 함께하는 메뉴는 다 달걀 후라이가 함께 나온다. 단백질과 탄수화물로 함께 든든히 배를 채우라는 주인장의 의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의도에 따라줘야겠지. 김고로는 반숙 노른자를 스윽 가른다. 탱글거리면서 진동에 흔들거리던 노른자가 젤리처럼 베이며 생명이 고여있던 액체를 흘린다.


그리고 카레와 밥에 얹어서 다시 한 입, 밥도 좋은 쌀을 쓰시는지 달고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가고 식감도 살아있다. 으스러지는 찰밥이 아니라 한알한알 느껴지는 고슬거림이 있으나 적당한 찰기와 수분감이 다른 재료들과 잘 어울린다.



달걀과 밥, 카레가 섞인다. 담백하고 부들거리는 달걀의 식감과 맛이 달콤하고 진득한 카레맛이 묻어 고슬고슬한 쌀알과 함께 씹힌다. 카레의 농도가 달걀과 만나 적당한 풍미로 조정이 되며 튕기는 달걀의 식감의 손을 잡고 춤을 추듯 둥실둥실 넘어간다.


"훌륭하네, 카레맛. 특히나 이 양파의 단맛을 극강으로 끌어올린 부담스럽지 않은 달콤함."


김고로는 동그란 새알과도 같이 생긴 고로케로 시선을 옮기며 카레를 칭찬한다. 튀김옷이 얇고 가루의 입자도 곱다. 튀김옷 안이 꽉 차있을거라고 김고로는 기대하며 젓가락으로 잡아서 앞니로 물며 고로케를 쪼개본다.

겐쨩 카레의 고로케

겐쨩 카레의 고로케는 감자를 크림처림 갈아서 채워넣었다, 새하얀 감자속살 사이로 삶은 달걀과 후추의 입자가 점처럼 콕콕 박혀있는데 이 맛들이 과연 따뜻한 아이스크림을 먹는 느낌을 준다. '사각사각'도 아니고 바삭한 튀김옷을 지나치면 '스르륵'하고 고로케가 깔끔하게 베인 단면만을 뽐내며 잘려나간다.


달지 않은데 단맛이 나는 감자속살, 은은한 단맛과 고소함 그리고 크림과 같은 풍미가 입안을 감돈다.


'우유와 달걀, 감자 거기에 설탕, 소금, 후추 등 들어가기는 했어도 감자가 무스처럼 질척거리지도 않고 깔끔하게 입에서 녹아.'


한입을 씹어먹고 나니 참을 수가 없어서 한입을 더 먹고 다시 우물거리지만 고로케의 감자가 혀와 입안에서 미끄러져내리며 달콤함과 고소함을 남기고 사라진다.


"야, 고로케 진짜 맛있다. 뜨거운 아이스크림 먹는 기분이네."


"여기 고로케도 맛있지? 더 시켜 먹어도 돼."


우리가 앉은 이후로도 그 옆자리에 사람들이 들어오고 배달 전화나 배달 어플로 주문이 들어오는 연락은 끊이지 않는다. 가게에 울려퍼지는 노랫소리 중간 중간 '띵동'하는 소리가 오히려 이 H군을 따라 이 겐쨩 카레에 오기를 더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우리는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40계단 거리의 중심부를 향해서 비가 내린 부산의 골목을 걸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