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중앙시장 안에 새로 생긴 이탈리안 음식 점포가 있다고 하여 언제 한번 가볼까 벼르고 벼르다가 최근에서야 갈 수 있었다. 중앙시장의 떡갈비집과 떡집이 있는 그 골목으로 쭉 남대천을 향하여 올라가면 우측 골목으로 녹색의 벽과 이탈리아 국기로 겉을 치장한 'Lo Spuntino'라는 가게가 있다.
이탈리아어로 '간식'이라는 뜻을 가진 이 가게는 제목이 곧 메뉴를 뜻하는 집으로 시칠리아의 대표적인 간식 메뉴를 판매하는 곳이다. 그 생김새가 오렌지를 닮아서 '아란치니'라고 불리는 주황색의 시칠리아식 주먹밥, 기다랗게 튀긴 과자 안에 리코타 치즈를 채워 넣고 과일, 견과류 등을 올린 카놀리 그리고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면 후식으로 곧잘 볼 수 있는 우유푸딩인 페나 코타가 가게의 메뉴.
'일단시켜'에서 쿠폰이 나왔길래 활용해서 가게 오픈 시간이 되자마자 테이크아웃 주문을 넣고 빠르게 픽업을 하러 나갔다. 점심시간에 아내와 잠시 장미공원에서 막간의 소풍을 즐길 겸 새로운 음식도 맛볼 겸 기대를 품고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막 가게를 열었던 것이라 가게의 사장님들을 포함해서 가게 안에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 터라 가게 구석에 자리를 차지한 벤치에 몸을 올려놓으니 맞은편 벽에 태양과 같은 얼굴에 3개의 다리와 3개의 보리 이삭을 가진 열정적인 색의 시칠리아 주기가 나를 반기는 듯했다. 그렇게 몇 분 앉아있으니 주방에서 푸근한 인상을 풍기는 남편 사장님께서 메뉴를 설명해주시려는 찰나
'어... 일단 시켜로 주문하고 왔는데요'
...라고 시간과 설명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시켜드리니 아내 사장님을 찾으러 잠깐 들어가신다. 이윽고 아내 사장님이 오셔서 잠시 재고를 옮기느라 주문을 확인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는 하시고 부엌에 주문을 넣으신다. 조금 늦기는 했어도 주문과 동시에 조리가 되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조리가 되는 동안 아내 되시는 사장님께서 오셔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이탈리아와 가게의 메뉴들에 대한 이야기, 일단 시켜의 인지도와 불편함 등에 대한 이야기 등등 사근사근 웃으시는 친절한 손님 응대에 '그냥 음식이나 빨리 갖고 가야지'라는 생각을 하던 나도 덩달아 입이 풀려 음식 얘기를 생각보다는 많이 나눌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게와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사장님들의 열정과 애정들, 그리고 각 음식의 원래 맛을 최대한 구현하려고 하신 음식에 대한 철학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장님들이다.
잠시 메뉴들에 대해서 개인적인 의견을 내놓자면..
아란치니: 바삭하고 부드러운 얇은 겉과 쫀득하고 짭짤한 향과 크리미한 밥알. 나는 전통적인 라구소스가 들은 아란치니와 평범한 맛이 예상된 돈육+모차렐라 치즈 조합을 택했는데, 라구 소스에서는 신선하고 산뜻하고 가벼운 토마토소스 맛이 났다. 고기가 잔뜩 들어간 진한 라구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서는 벗어나지만 라구와 아란치니를 생산하는 데에 들어가는 노력과 재료값을 조금 생각해보면 합리적인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간 고기가 들어간 뽀모도로 같은 맛이었지만 만족스러운 맛. 돈육과 치즈 조합은 쫀득하게 늘어지는 치즈가 돈육 사이에 잘 숨어서 즐거운 식감을 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슴슴하게 간이 배인 밥알과 바삭한 겉의 식감, 그리고 부드러우며 조금 더 짭짤한 맛을 가진 소스들이 어우러져 맛의 균형이 잘 잡혔고 크기가 내 주먹만 한 것에 비해서 먹고 나면 생각보다 포만감이 느껴진다.
카놀리: 바삭하고 파삭하고 부스럭거리는 식감의 튀긴 과자가 우유맛이 가득하고 부들거리는 리코타 치즈와 식감을 보완해주는데, 거기에 얹은 설탕가루와 견과류, 과일이 부족한 맛을 더한다. 나는 피스타치오와 크랜베리를 주문했는데 내가 주문한 피스타치오는 상당히 즐거운 맛이었다. 입안에서 달달한 설탕, 부드러운 크림 그리고 잘근거리는 토핑들이 감칠맛을 더한다.
페나코타: 우리가 이탈리안 식당이나 파스타집에서 가끔 보던 푸딩 혹은 젤리와 비슷한 식감의 뭉개지고 부서지는 페나코타가 아니라 전통적인 스타일이라 크림치즈처럼 토핑과 섞인다. 나는 베리베리와 복숭아를 토핑으로 주문했는데 베리베리는 상큼하고 새콤한 맛, 복숭아는 부드럽고 크게 달달한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토핑들이 우유크림 부분과 상당히 잘 어우러졌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초콜릿이나 커피 종류가 들어간 토핑과 훨씬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주문한 베리베리와 복숭아가 맛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토핑과 본체가 만나서 서로를 보완해주는 균형 잡힌 달콤함을 준다.
어떤 메뉴나 토핑을 주문해도 본체와 토핑이 서로를 보완해주고 즐거운 식감을 주는, 전체적으로 균형이 매우 잘 잡힌 맛을 가진 간식과 디저트다.
내가 주문한 메뉴들이 나왔을 때, 여사장님께서는 메뉴들에 대한 이런저런 맛이나 스타일에 대해서 설명을 선제적으로 해주셨는데 나는 조용히 듣다가,
'손님들이 질문을 많이 했었나 봐요?'
'하하.. 네, 그래서 저도 지레 겁먹고...'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신기한 음식을 주메뉴로 삼으시는 사장님들의 숙명이랄까. 음식의 맛과 스타일에 대해서 순수한 궁금증으로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지만 본인이 다른 곳에서 먹었던 맛과 다르거나 아니면 자신이 평소에 먹던 맛과 많이 다르면 사람은 음식에 대한 이질감이나 심한 '불호'를 느끼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한 질문과 말을 많이 들으셔서 그런 것일까...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알게 모르게 상처도 많이 받으셨던 것일까, 나는 사장님들과 초면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지만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들이 판매하는 메뉴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여태껏 1,2명 정도만 봤다고 하시며 (나도 그리 잘 알지는 못하는데...;) 자주 오시면 좋겠다고 하시는 사장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가게를 나섰다. 워낙 친절하셔서 나도 모르게 손인사까지 흔들면서 나와버렸다.
그런데, 이곳 '로 스푼티노'에서 내가 음식 맛보다도 더 인상에 남은 것은 사장님들의 응대와 손님과의 대화였다. 가게에 입장하던 순간부터 퇴장의 시점까지 나는 사장님과 계속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음식에 대해서 열정 넘치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고 아직도 마스크 너머로 보았던 사장님들의 미소와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가게와 메뉴에 수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결국 손님들에 의해 발생되는 매출이다, (물론 그 점을 이용해서 진상 갑질을 하는 '손놈'들도 있지만) 가게나 메뉴에 대해서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는 피드백을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러한 피드백을 들으면서 '니들이 뭘 알어'라고 생각을 하실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손님과의 대화에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피드백이나 중요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날씨와 간단한 안부나 좋은 하루를 빌어주는 식의 '소소한 대화'로 가게와 그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좋은 이미지와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2~30대 남자 손님들처럼 말을 많이 걸거나 먼저 아는 척을 하면 도망가버리는 부류도 있으니 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