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쨍쨍한 날이었지만 우리는 아직 바람이 거세고 공기가 추워있던 겨울이었다. 1달에 1번 피자대장님과 함께 하는 미식 여행의 방문 예정 식당을 미리 정하고 나니 이 날씨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차가운 음식이든, 따뜻한 음식이든 언제 먹어도 맛있는 음식은 그대로 맛있기 마련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달려있지 않나 싶다. 맛있는 막국수는 겨울에 먹어도 맛있고 여름에 먹어도 맛있는 것처럼, 우리가 그날 먹으러 가기로 한 음식도 그랬다.
속초에서 한창 삶을 지내고 있을 무렵, 그 막바지에 신장개업을 하여 내가 여러 번 드나들었었던 가락국수(우동)집을 가기로 했다, 우리는. 일반적인 기계우동집이었다면 큰 흥미를 끌지 못했겠지만 한국에서는 쉽게 먹기 어려운 수타로 제면을 하는 우동집이었기에 나는 그 가게를 꽤 자주 갔었다. 하지만 수타로 밀가루 반죽(국수라던가, 빵이라던가)을 만들다 보면 정말로 몸이 튼튼한 사람이라도 몸에 후유증과 탈이 나기 마련이다. 이 속초에 있는 수타우동집의 사장님도 그러셨나 보다, 손목에 무리가 와서 몇 달을 내리 쉬실 수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신장개업과 '수타우동'이라는 메뉴의 유명세를 받아 손님은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블로그, 인스타 등등의 SNS 입소문 효과를 타서 일주일에 겨우 1번 쉬고 (쉬는 날도 쉬는 날이 아니셨을 것이다) 영업을 하는 사장님께는 불가피한 상황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년 12월부터 영업은 재개되었고 이제는 줄 서서 먹는 맛집에서 벗어나 연락처를 남겨놓고 방문예약을 받는 한 단계 더 차원 높은 식당이 되어버린 소식을 듣고 피자대장님의 하얀 애마를 타고 함께 속초로 향했다.
식당의 상호명은 '우동당', 그 이름처럼 참으로 우동에 진심인 사장님과 종업원들이 있는 식당이다. 이미 반죽을 제면 해서 식당으로 가져오시기에 사장님께서 직접 면을 만드는 장면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식당을 직접 방문해보면 일반적인 기계우동과는 면의 모양이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요리 다큐에서나 보던 일본 우동의 면발이다). 일본 우동의 유래와 우동당의 메뉴들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밀가루 수타 반죽에 대한 화제로 피자대장님과 나는 떠들고 있었다.
"대장님도 수타로 피자반죽 해보신 적이 있나요?"
대장님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개업 후 9개월까지는 해봤는데 이러다가 죽겠다 싶어 반죽기로 바꿨어요."
혼자서 피자가게를 운영해 오시다 작년에야 겨우 정직원과 파트타임 직업을 고용하여 가게를 꾸려오신 사장님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 수타 반죽을 한다면 정말-정말 힘들기 때문에 기계로 반죽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개인적으로 기계 반죽과 수타 반죽의 맛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각 식당에서 반죽에 사용하는 밀가루, 물, 소금, 첨가제, 발효방법 등에 의해서 차이가 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계 반죽보다 수타 반죽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기계가 없던 옛날 방식의 반죽 방법으로 만든 면을 먹고 싶다는 쓸데없는 낭만 혹은 욕심 때문일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곧 속초해수욕장 근처의 어느 공영주차장에 도착한 나와 대장님은 강릉의 바람보다도 더 거센 속초의 추운 바람을 맞이했다. 우동당 앞으로 뚜벅거리면서 걸어가니 이미 연락처를 남기고 나서 연락을 줄 때 가게로 오면 된다는 안내문이 담긴 종이가 문에 떡하니 붙어있다. 2인 이서 식사를 하려면 1시간 정도 걸린다는 말에 어찌 되었든 좋다고 답하고는 그 1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동당'의 수타우동을 먹으러 속초까지 왔는데 1시간이 대수겠는가. 이제는 점심 장사만을 하는 이 식당의 우동은 기회가 왔을 때 꼭 먹어야 한다.
그곳은 속초해수욕장이었다, 카페도 그만큼 많다. 근처 이디야에 들어가니 대장님은 이디야에 가본 적이 없으시다며 무엇을 드실지 고민하신다. 이디야에 몇 번 가보신 분은 거의 동의하실 것이다, 이디야에는 호불호가 거의 없는 극강의 시그니처 메뉴가 존재한다. 달콤하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 '토피넛 라떼'. 뜨끈한 토피넛 라떼를 받아 드신 대장님은 순식간에 1컵을 비우셨다. 곧잘 가시는 안목 커피 자판기의 12곡라떼 이후로 이렇게 맛있고 빨리 먹는 온음료는 처음이라는 감탄사를 연발하시며 오늘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발견에 칭찬을 남기신다.
다시 대장님의 피자사업 얘기와 음식 얘기들로 1시간을 보낸 우리는 드디어 우동당에 입성. 우동당에는 이런저런 메뉴가 있지만 제일 종류가 다양한 음식은 '붓가케 우동' 일본식 비빔우동으로 일식 타래간장(양념 간장)에 우동면과 고명을 비벼서 차갑게 먹는 일식 냉우동이다. 하지만 이곳의 온우동도 무시하고 지나갈 메뉴는 아니기에 나는 온우동과 토로로붓가케(곱게 간 마를 얹어먹는 붓가케 우동) 우동을 주문했고, 처음 방문하시는 대장님은 나를 따라서 똑같이 시키셨다. 이때 나는 살짝 걱정되는 마음에,
"대장님, 마 들어간 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물었고 대장님은
"네, 괜찮아요"라고 말씀하셨지만 결과적으로는 괜찮지는 않으셨다.
우리가 온우동과 토로로붓가케를 각 2그릇씩 시키자 가게의 홀 담당분께서는 같은 우동이 되는 것을 다른 메뉴로 시켜도 된다고 조심스레 말씀해주셨지만 우리는 그저 우동을 맛보고 싶다고 하여 그대로 메뉴를 결정지었다. 그렇다, 우동당에 온 이유는 우동을 배불리 먹기 위함이지 튀김이나 소바를 먹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우동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면을 삶고 계시는 사장님이 맞이 해주시고 온우동부터 서빙을 하겠다고 말씀해주셨다, 맛이 조금 더 심심하고 뜨끈한 우동을 먹음으로써 손님들의 속과 입맛을 고려한 세심한 배려였다.
사장님께서는 키가 크거나 어깨가 넓으시지는 않지만 그의 팔과 전완근, 손을 보면 무언가 수타 장인이라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위압적이다. 푸른 풍선과도 같은 굵은 핏줄이 힘차게 흐르는 울룩불룩한 근육들이 두툼한 손가락과 손등의 뼈들 사이에 자리를 잡은 모습. 손과 팔에 거무스름하고 울긋불긋한 용암이 흐르는 듯한 그 단단한 팔과 손을 보면 지금까지 수타 반죽을 고집하는 그 신념에 더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우리에게 처음으로 서빙이 된 음식은 사장님의 안내대로 온우동이었다. 잠시 사진을 촬영하고 나는 국물을 한 모금, 입을 적신다. 깔끔하고 감칠맛이 극대화된 짭짤한 육수, 너무 뜨겁지 않은 따뜻한 온도와 함께 어울려 혀와 양볼을 하나씩 덥힌다. 짭짤함과 맑은 깔끔함, 군침을 돌게 하여 국물을 더 마시게 하는 그 묘한 감칠맛. 아주 미미한 시큼함과 묘한 단맛까지 느껴진다. 그리고 그 위에 다소곳하고 새침하게 올려진 튀김 조각들, 옆 테이블에서도 이 튀김의 정체를 갖고 욱신 각신하는 소리를 들었다. 우엉 튀김이 그 주인공이다, 바삭하고 아삭한 식감의 우엉이 튀김옷을 만나니 우동의 국물과 함께 어울려 극강의 고소함을 뽐낸다.
"대장님, 이거 튀긴 우엉인데 얼른 먹어봐요."
한입 씹어 곰곰이 생각하시던 대장님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고개를 끄덕이다,
"와!"
그렇다, 한마디의 감탄사에 모든 것이 담겨있는 우엉튀김이다. 짠맛이 아니다, 고소함이다. 그 고소함이 극에 달하면 어떠한 맛이 나는지 알 수 있다. 참깨나 들깨의 투박하고 뭉글뭉글하고 찐한 그 고소함과는 다르다, 깔끔하고 예리한 고소함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면치기. 탱글탱글하고 부드럽고 쫄깃하며 탄력이 넘치는 면발. 두껍고 살짝 각이 져서 사각기둥의 모양이지만 각이 없는 식감이다. 입에서 치아에 달라붙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기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달라붙지 않는다) 쩍쩍 치아에 씹힌다. 미끌거리는 듯이 부드럽지만 쉽게 불거나 무르지 않다,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목구멍을 매끄럽게 치고 들어간다. 가느다란 소면이나 라면보다 더 쉽게 면치기가 가능하다, 사실 입으로 끊어먹고 싶지 않은 면발이지만 비염으로 인해 코로 숨쉬기가 어려운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한참을 온우동에 빠져있다가 (그 사이에 붓가케 우동이 빠르게 식탁에 도착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대장님께서는 국물 떠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우동그릇을 머리까지 들고 벌컥벌컥 들이켜셨는지 이미 빈그릇이다. 그리고 잠시 그와 나의 눈이 맞는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서로가 말하지 알아도 알아듣는 진실한 신호다.
토로로붓가케를 먹으려고 접시를 내 앞으로 옮겨왔을 때, 내가 놀랐던 점은 온우동을 먹는 시간이 짧지 않았던 것과 '냉우동'임에도 불구 붓가케우동의 면발이 하나도 굳거나 단단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온우동의 그 뜨끈한 면발과 식감이 동일했다. 면을 주 메뉴로 하시는 업계 사장님들만의 노하우라는 것이 있기는 하겠지만 나는 아직 차가운 면이 굳지 않고 그대로 쫄깃한 것을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놀라웠다. 육수에 오래 있거나, 차가운 공기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면과 피자 같은 음식은 당연히 그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우동당의 타래간장을 서로 각 우동그릇에 가득 붓고 갈린 마를 잘 섞어 맛을 보니 타래간장은 생각보다 짜지 않고 달큼하며 짭짤하고 군침을 계속 돌게 하는 맛이었다. 오히려 시원하고 달착지근한 맛마저 느껴진다. 나는 마의 아삭아삭하고 끈적끈적한 식감을 좋아하기에 마가 들어간 비빔우동을 주문했지만 나를 따라서 주문하신 대장님께는 마의 맛과 식감이 그다지 좋지 않으셨나 보다. 나의 토로로 붓가케는 그릇의 바닥을 드러냈는데 비해 대장님의 그릇에는 타래간장과 갈린 마가 많이 남아있었다.
"아, 역시나 입맛에 안 맞으실까 봐 걱정했는데."
"네, 이 끈적끈적한 식감이 저는 좀 별로예요."
앞으로 이곳을 또 방문하실지도 모르는 사장님께 나는,
"다음에 오셔서 붓가케 드시면 단새우로 드세요, 그게 더 입맛에 맞으실 거예요."라며 다른 메뉴를 추천드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집에서도 마를 갈아서 따뜻한 밥에 올려먹는 일본식 마밥도 해먹은 적이 있을 정도로 그 식감을 좋아하지만, 마의 독특한 식감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지는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각자 우동 2그릇을 해치우는 데는 반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면이라는 것이 빨리 먹게 되는 음식이기도 했고 우리가 배가 많이 고팠다는 것을 감안해도, 우동당의 온우동과 간장비빔우동(붓가케)의 맛이 심히 뛰어났다는 반증이었다.
그 이후에는 설악산 자락의 어느 한옥카페에서 느긋한 공기와 피자대장님의 이런저런 사업 얘기를 들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가는 길에 대포항에 들려 내가 추천해드린 새우 강정집에 들러서 샌마르의 직원들과 함께 나눠먹을 새우 강정을 사 가려고 하셨지만 아쉽게도 그 튀김집이 휴업이어서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 대신 피자대장님은 오전에 첫끼로 먹은 토피넛 라떼가 많이 그리우셨는지 가시는 길에 속초 대포항 이디야의 토피넛라떼를 테이크아웃하셔서 아주 느긋하게 강릉에 올 때까지 즐기셨다.
집에 와서 이쁜 여자의 얼굴을 보니 나 혼자서만 맛있는 우동을 먹었다는 사실이 조금 미안해져서, 다음에는 이쁜 여자와 같이 가기로 반강제로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