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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국수나루, 강릉

수타 반죽 샤브칼국수와 만두, 마성의 육수

by 김고로

따뜻하지도 쌀쌀하지도 않은, 겨울의 옷을 막 던지고 봄으로 넘어가려던 어느 날 피자대장님과 나는 1달에 1번 있는 정기적인 미식투어를 어김없이 실시하였다. 지난달에는 비교적 먼 거리에 있는 식당을 방문했으니 또다시 멀리 있는 식당에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강릉에도 제법 맛있는 곳들이 많으니 강릉 내에서 미식 여행을 하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거리적으로나 낫지 않겠는가.


이번 피자대장님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한 곳은 이전에 동네 단골 커피집인 구커피의 사장님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방문한 뒤 1달에 1번 정도는 꼭 들리고 있는 샤브샤브 칼국수 집이었다. 강릉 시내에서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는 사람은 다 알만한 시내 뒤편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수타 반죽 국숫집, '국수 나루(나무 아닙니다)'에서 우리는 보았다.


샤브샤브라는 음식의 특성상, 육수가 끓여져야 하는 시간이 제법 필요하기 때문에 일부러 약속시간보다 비교적 일찍 식당에 들어와서 주문을 미리 해두었다. 정오, 이제 막 시작된 점심시간이지만 여성분께서 홀로 와서 칼국수를 이미 즐기고 계셨고 하나둘씩 식사를 하려는 분들이 들어오고 있었기에 나는 속으로 미리 와서 자리를 잡아두기를 잘했다며 자화자찬을 하고 있었다.


미지근하게 덥혀진 보리차와 양념과 김가루가 묻힌 작은 주먹밥을 전채 음식처럼 제공하는 이 집은 험한 세월을 어느 정도 이겨내신 부부 사장님들께서 운영을 하고 계시다. 개업을 한 지 3년을 지내오셨지만 그 흔한 홍보 없이도 지금까지 가게를 지켜오신 것을 알고, 사장님의 손등과 팔에 훈장처럼 새겨진 온갖 요리의 흔적과 화상들을 보면서 보통 내공을 가진 분들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신선한 배추, 청경채, 숙주나물, 버섯들이 가득 담긴 샤브칼국수의 전골 그릇이 끓어오르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나의 입으로 들어오게 될 뜨끈한 육수의 맛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으니 마침 피자대장님께서 들어오신다. 그와 동시에 여러 사람들이 또 들어오면서 가게는 거의 만석, 그것은 정오가 지나고 30분 후의 일이었다. 나는 대장님께,


"이제 막 채수를 내기 위한 재료들이 끓고 있어요, 한입 하시기 전까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음식이 완성되면 그때 음식에 대해서 말씀 나누시죠"라고


얘기를 드리고는 대장님과 내가 갖고 있는 여러 공통주제에 대해서만 얘기를 나눴다. 내가 주로 얘기한 것은 이 가게에 홀로 점심을 먹으러 오는 2~30대의 여성분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식사 메뉴를 고르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고, 이런저런 것들을 신경 쓰는, 입맛을 맞추기에 쉽지 않은 고객층 중 하나가 2~30대의 젊은 여성고객들이다. 그런데 그러한 분들이 홀로 점심시간에 이 가게에 곧잘 온다는 것은 직장이 이곳과 매우 가깝거나 혹은 이 가게의 맛이 그들이 혼자 식사를 하러 오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먹을 정도로 매우 좋다는 것을 함축한다고 나는 대장님께 주장했다.


국수나루의 샤브칼국수의 처음 육수에서는 다시마 정도가 들어갔다고만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진한 국물 재료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 정도로 깔끔하고 가벼운 육수로 시작하지만 샤브샤브의 완성을 위한 재료들이 추가되면서 육수가 점점 맛의 옷을 입는다.


추운 겨울에 국수 나루로 들어와 냄비가 끓는 것을 기다리노라면 점점 입맛을 다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청경채, 배추를 비롯한 잎채소와 버섯들로 깔끔함과 산뜻함, 재료들의 고유의 감칠맛과 가벼움을 입히고 그 후에는 묵직함과 고소함을 더해줄 얇게 썰린 쇠고기가 추가된다.


기본 육수에 채수, 그리고 더해지는 진한 쇠고기 육수로 완성이 된 국수나루의 샤브칼국수 국물은 (먹어본 사람만 알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완성이 된 육수는 처음 나온 육수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변신을 하기에, 나는 대장님께 처음 육수를 맛 본 후에 꼭 완성된 육수를 맛보시라고 권했다.


냄비 위로 보이는 채소와 버섯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와...!"


"그렇지요?"


칼국수의 육수 맛을 보시며 외마디 탄성을 내뱉으신 대장님은 그리고 다시 여러 번 숟가락으로 샤브칼국수 냄비를 오가며 육수를 마셨다. 채수의 깔끔함, 쇠고기 육수의 고소함과 진함, 그로 인하여 기본 육수의 감칠맛이 극대화된 그 끊을 수 없는 맛.


"진하죠?"


"진하네요."


그리고 샤브샤브의 재료들을 찍어먹기 위해서 특별히 제공되는 국수나루만의 양념장은 또 어떠한가, 깔끔한 기초 육수로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는 이 새콤, 상큼, 매콤한 양념장은 찍어먹지 않으면 매우 아쉬운 한 종지이다. 야채, 고기, 만두 등 샤브샤브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와 잘 어울린다.


샤브샤브의 육수가 완성되고 나면 그 이후로는 수제 김치교자만두와 물만두, 그리고 칼국수가 또 뛰어들어온다. 쫄깃하고 얇은 피, 탄탄하고 간이 삼삼하며 매콤한 김칫소가 매력적인 이곳의 수제 김치만두는 혼자서 독차지하고 싶은 그런 맛이다. 특히나 얇은 만두피 안에 꽉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우며 고기, 김치, 두부 등의 재료들의 식감이 살아있다.


개인적으로 칼국수 사리가 샤브샤브에 추가되기 전 맑은 육수를 많이 맛보시라고 추천한다. 밀가루의 끈적함이 어쩔 수 없이 육수에 녹아들기 때문에, 맑고 깨끗한 육수가 가진 그 깔끔한 맛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장님과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다 보니 곧 샤브샤브 냄비의 바닥이 드러난다, 맛이 죽지 않는 야채와 고기, 만두, 칼국수 면을 다 먹을 뿐 아니라 섭취를 강요당하는 육수의 맛이 우리로 하여금 냄비의 바닥을 보게 했다. 멱살을 잡아당기는 마성의 육수다, 쫄깃하고 탱글한 수타 반죽 칼국수 면의 맛이 잊힐 정도로.


채소와 고기가 한겹씩 입혀져 끓어올라 맛을 채운다, 서늘한 저녁의 이 뜨거운 육수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맛이다


"육수가 정말 '찐'이네요"


"그렇죠, 제가 아내와 괜히 곧잘 오는 게 아니죠."


산이 좋고 물이 맑은 나라, 물로 끓이는 국, 탕, 전골이 발달하고, 그것들을 사랑하는 우리 민족이기에 육수가 끝내주게 맛있는 이러한 칼국수집에 혼자라도 와서 먹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야채, 고기, 만두, 국수를 매우 배부르고 푸짐하게 먹음에도 불구, 1인분에 만원.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는 계절에 자주 갈 것이지만, 뜨거운 여름에도 잊지 않고 꼭 자주 가리라.


(그리고 다음 날, 피자대장님께서는 함께 일하는 직원을 데리고 샤브칼국수를 또 먹으러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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