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에서도 직접 여러 가지의 면과 소스로 파스타를 요리 해먹을 만큼 파스타를 좋아한다, 중국에서 살던 동네의 이탈리아 본토분께서 운영하시는 피자 및 파스타 집에서 찐한 라구의 맛을 경험하면서 진정한 파스타의 맛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으며 호주에 살며 이탈리아 노방 식당과 카페를 오가며 알리오올리오를 맛 본 이후로 한국 사람들이 대체로 김치와 밥을 선호하듯이 나는 집에서 마늘과 올리브오일, 파스타를 선호하며 섭취하기 시작한 것이 꽤 오래전으로 기억된다.
마늘, 고추, 파슬리, 올리브오일의 적은 재료로 단순하고 담백(?)한 맛을 내는 알리오올리오의 매력에 빠져 집에서 실패를 거듭하며 요리를 하던 것을 여러 번이었어도 나는 집에서 주로 파스타를 해 먹는 것을 선호했다. 속초에서 거주할 적에는 (지금은 없어진) 애정하는 파스타집이 있어서 그 가게를 1주일에 2,3번 정도 갈 정도로 단골이었다, 그 이유는 그 집이 알리오올리오와 그 외 다양한 파스타들을 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릉으로 오고 나서는 내 돈 주고 파스타를 사 먹은 적이 거의 없다, 집에서 파스타를 해 먹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제일 맛있는 요리는 남이 해주는 요리가 아니던가? 맛 좋고 가성비도 좋은 괜찮은 파스타 집을 찾으려고 강릉의 시내와 택지를 검색하며 돌아다녀 봤지만 내 마음에 드는 집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파스타가 맛이 없었다기보다는, 내 개인적인 기준에서 맛과 가성비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 시간과 자금을 투자해가며 직접 찾아가서 먹고 싶지는 않은 파스타들이었다, 매우 죄송하지만.
한동안, 집에서만 파스타를 직접 해 먹으며 강릉에는 괜찮은 파스타집이 없을까 생각하던 중, 이전에 단골 카페 사장님의 입을 통하여 내 귀를 스쳐 지나갔었던 식당의 이름이 떠올랐다. 몇 번 가보려고 했으나 서로 때가 맞지 않아 못 갔었던 그곳, 이름도 독특하여 한번에 기억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식당 '산치식당'.
최근에야 서부시장의 중심가의 구석, 공영주차장 앞에 자리 잡은 비스트로를 방문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세련되며 편안한 목조와 식물 인테리어와 두터운 바테이블이 방문객을 반긴다. 주방장이자 사장님이기도 한 '산치맨'의 요리하는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열린 주방이 내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덤이다. 손님은 바테이블에 앉아서 산치맨이 요리하는 모습을 즐기면서 자신의 요리를 기대해볼 수도 있고, 분위기 좋은 창가의 홀에 앉아서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어둠을 즐기며 주방에서 퍼져나오는 향기를 맡고 군침을 삼킬 수도 있다.
전체적인 메뉴에서 음식의 시각, 후각은 물론 식감의 조화와 균형까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장님의 철학이 담긴 음식이 인상적이었으며 하나의 요리에서 한 입을 먹음에도 그 한 입에 시작 맛, 중간 맛, 끝 맛이 있다고 나의 혀는 지금도 증거 한다. 오이와 무로 담가진 피클 등을 함께 파스타를 먹는 한국의 식문화에서, 피클 없이 먹는 파스타를 지향하신다는 사장님의 목표가 담겨 있는 파스타의 맛과 재료구성. 나는 산치식당의 각 음식들의 가격이 어느 정도 높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돈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방문과 음식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드디어 찾았다, 나의 돈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파스타집.
비프마팔디네파스타
내가 처음 방문으로 주문했던 파스타는 계절 메뉴였던 비프마팔디네파스타. '마팔디네'라는 양끝 모서리가 구불구불하고 살짝 두꺼운, 얇은 양곱창과 같은 모양의 독특한 파스타면을 사용하여 쫄깃하고 말랑거리는 느낌마저 들어 씹는 맛이 훌륭했다. 개인적인 표현으로는 '라자냐를 얇게 썰어놓은' 느낌이랄까. 거기에 오랜 시간 우려낸 채수와 육수의 맛이 느껴지는 강렬한 파프리카 베이스의 매콤한 소스. 포슬포슬하고 푸근하게 잘 익혀져 소스를 잔뜩 머금은 감자와 당근, 입안에서 살며시 찢어지는 푹신하고 부드러운 갈빗살 사이로 소스가 퍼지고, 뭉근한 파프리카와 큐민, 고추 씨앗등의 매콤함과 이국적인 훈연의 맛이 코와 입을 구름처럼 뒤덮는 끝 맛. 쫄깃한 파스타로 시작해서 뭉근하고 진한 소스의 맛이 올라오는 듯하더니 매콤함과 코털을 곤두세우는 향으로 끝을 내는 맛. 거기에 입안에서 함께 씹히는 향신료와 씨앗들의 식감에 어금니가 쉴 틈이 없이 즐겁다. 나는 사실 파스타에 감자가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퍽퍽하고 무거운 느낌이라서 그랬던 것인데, 이 산치식당의 비프마팔디네의 감자는 참 맛있게 먹었다. 매콤하고 쫄깃하며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맛, 대중들이 좋아할 맛이다.
이후 방문에서는 여러 메뉴를 주문해서 먹었었는데, 그 중 지금도 맛볼 수 있는 파스타들 중 하나는 해산물과 채소과 적절히 들어간 산뜻한 해물오일파스타인 관자새우파스타이다. 산치식당의 대표메뉴 중 하나다.
관자새우파스타
관자새우파스타에는 파스타를 볶을 팬과 관자를 바싹하게 구울 팬, 총 2개가 필요하다. 작은 팬에서 두툼하고 큼직한 관자가 노릇노릇, 바삭해질 때까지 굽는 동안 파스타를 볶을 팬에서는 이미 새우가 올리브오일 속에서 부글거리며 익혀지고 있다. 마늘, 새우, 관자와 이탈리안 향신료들이 함께 볶아진 이 파스타에는 은근히 달달하고 상큼하게 조미된 방울토마토와 그라나 파다노가 뿌려진 루꼴라(혹은 로켓)가 함께 곁들여진다. 일단 관자를 하나 집어 반으로 잘라 (혹은 통째로) 입안에 넣어 바짝 익은 바다의 맛과 조개의 맛을 감상하자. 이 사이로 찢어지는 관자의 육질과 겉면의 거친 식감으로 눈을 떠보자, 맛있지 않은가? 그러면 새우를 집어 면과 함께 흡입이다, 새우의 쫄깃함과 찢어지는 식감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더 익혀진 새우와 탱글거리는 스파게티면이 짭짤한 맛과 약간의 매콤한 후추의 맛과 함께 씹히고 중간중간 끼얹어진 올리브오일의 향내가 코로 올라온다, 기쁘다. 아직 끝이 아니다, 방울토마토를 콕 집어 씹으면 상큼하고 달달한 토마토의 맛이 혀를 다시 일으키고 이어서 먹는 루꼴라의 쌉쌀함이 자칫 느끼하고 평범할 수 있는 오일파스타의 맛을 다시 처음의 산뜻함으로 돌려준다, 그리고 끝난 줄 알고 방심하는 사이 목구멍을 훅 치고 들어오는 짧은 신맛의 라임이 스파게티에 묻어서 나온다. 산치맨이 얘기하는 '피클이 필요 없는 파스타'는 이런 것임을 보여주듯 식재료들이 살아서 떠든다. 식감을 돋우는 관자, 새우와 스파게티, 그리고 자칫 지루해질지 모르는 올리브기름의 맛을 되돌려 주는 방울토마토와 루꼴라, 마지막을 상쾌하게 만드는 라임 한 방울의 맛. 산치맨이 이전에 일하던 곳에서는 손님들이 이 라임의 맛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으며 지루하지 않은 맛.
아귀간오일파스타(좌) & 아귀간크림파스타(우)
그 이후에 함께 맛본 파스타는 바다의 푸아그라라고 불리는 부드러운 식감과 농후한 바다의 맛을 자랑하는 아귀간을 올리브오일 혹은 크림에 녹여내어 소스를 버무린 파스타. 개인적으로 진한 해산물의 맛은 취향이 아니지만 아귀간을 버무린 파스타의 맛이 매우 궁금하여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아귀간 자체만으로 아주 진한 해산물과 바다의 짭짤한 맛이 파스타 전체에서 흘렀고 채 썬 양파, 쪽파, 파프리카(혹은 피망?)의 식감과 맛이 자칫 한쪽으로 편중될 수 있는 파스타의 균형을 잘 잡아주어서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었다. 거기에 한치와 열빙어알이 곁들여 나오는데 이 쫄깃하고 달달하며 톡톡 터지는 상큼한 해산물이 파스타의 느끼함을 방지한다. 농후한 바다맛을 야채들의 아삭함과 단맛으로 뒷받침하고, 모자랄 수 있는 식감을 한치와 열빙어알 조합으로 보충한다. 먹는 내내 진한 아귀간의 맛과 야채와 열빙어알의 식감으로 입안이 쉴 틈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해산물과 바다맛을 좋아하지 않는 개인의 취향 때문에, 위에 언급한 두 파스타에 비하면 덜 주문해 먹을 것이다. 오일파스타가 강렬한 아귀간의 바다맛을 코와 혀로 뽐내는 반면, 크림파스타는 크림에 농후하고 진득한 아귀간의 바다맛이 스며들어 있었지만 오일파스타만큼 그 맛이 강렬하지 않아 더 대중적이고 먹기 편한 맛이라고 생각했다. 크림파스타를 손님들이 오일보다 더 많이 주문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얘기한 나의 취향에도 불구하고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파스타는 매력적이다, 내 취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름이던 크림이던 설거지를 해놓은 것처럼 긁어먹었다.
지금까지 파스타만 소개했다고 해서 산치식당이 파스타만 하는 식당이라고 오해하지는 마시라, 파스타뿐만 아니라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쨍강쨍강 칼질을 하며 먹을 수 있는 스테이크 메뉴도 갖추고 있다. 파스타와 스테이크에 어울리는 잔와인이나 병와인도 판매하고 있으며 달걀샐러드도 함께 곁들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스테이크 메뉴 중 하나는 프랜치렉스테이크이다.
프랜치랙스테이크
생후 6개월 미만 어린양의 갈빗살을 수비드하여 익혀낸 것을 팬에서 구워낸 스테이크. 와인소금, 민트잼, 홀그레인 머스터드와 으깬 감자당근이 곁들여져 나온다. 어느 소스를 곁들여 먹더라도 눈을 감고 '음~'하는 소리가 나왔다, 어린양은 정말 부드럽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니 부드럽다. 상큼하며 짭짤하고 와인의 풍미가 은근히 느껴지는 소금에 살짝 찍어먹으면 짭짤하고 새콤한 맛이 즐겁다. 호주에서 양고기를 먹으면 민트소스가 함께 나와 먹었었는데 산치식당에서도 민트와 먹을 수 있으니 반가웠다. 달콤하면서 약간의 매운맛이 섞인 즐거운 박하맛이 코로 올라오니 고기가 더 당긴다 (민트잼은 일반적인 한국사람들에게 익숙한 맛이 아니다, 잘못 고르면 단맛과 박하향이 극에 달해서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치맨은 여러 가지 제품 중에서 알맞은 제품을 찾느라 공을 들였다고 했다). 그리고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알싸한 겨자소스, 씨앗이 터지면서 겨자의 풍미가 살아나고 진한 고기 맛으로만 물들여질 수 있는 혀를 3가지의 소스가 방지해준다. 그리고 곁들여 먹는 으깬 감자와 당근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소하다, 우유와도 같은 유지방의 풍미와 원재료의 포근함, 은근한 달달함. 개인적으로 여태 먹었던 으깬감자 중에서 기억에 남을만한 맛이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고기, 소금, 민트, 겨자, 으깬 탄수화물, 색색의 회전목마가 돌아가고 나니 그릇은 금세 아무것도 없는 그릇이 되었다.
총평을 해보자면 (달걀 샐러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식재료이기에 먹지 않았지만) 음식 하나를 먹으면서도 코스요리를 압축해 먹는 것과 같은 시각, 향, 맛, 식감의 조화로 인하여 지루할 틈이 없이 즐거운 식사였다. 음식 하나하나에 '절대로 맛있게 먹게 해 주마!'라는 강한 의지가 담긴 것이 인상적인 맛들. 왜 이 식당을 더 일찍 오지 못했을까 하는 약간의 후회, 그리고 앞으로 더 자주 오면 된다는 희망. 즐거운 시간과 입맛을 허락해준 산치맨님(사장님)에게 고개를 숙인 깊고 공손한 인사와 '오래오래 장사하세요'라는 말을 건네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