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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느릅나무, 강릉

타코야끼 전문 주점으로 변신한 타코야끼 트럭

by 김고로

나는 음식을 먹는 폭이 넓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람이기에 한식에만 국한되어있지 않으며, 식사시간에 김치나 쌀밥은 없어도 된다. 한, 중, 일, 양 및 동남아시아나 인도, 남미 음식도 환영이다... 물론 맛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지만. 그렇기에 강릉 거리에서 드문드문 볼 수 있는 길거리 간식인 '타코야끼'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중국에서 중고등학교 유학시절을 보낼 때에 중국의 큰 도시라면 하나씩 있는 미국식 창고형 마트인 '월마트'가 기반이 된 백화점 건물의 1층 입구에는 유행인 것처럼 타코야끼 점포가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중국에서 중국인 주인이 만들었으니 맛이 없을 거라는 편견은 멀리 치워두시길 바란다, 의외로 중국은 신선하고 저렴하며 품질 좋은 식재료의 천국이다(우리나라로 수입되어 오는 물품들이 좋지 않은 것뿐).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조리법과 좋은 재료로 만들어낸 '메이드 인 차이나' 타코야끼는 꽤나 맛있었다.


10대였던 내 눈에 참하니 아름다워 보였던 타코야끼 점포의 중국 누나가 한알씩 나무꼬치로 굴려가며 구워주던 그 타코야끼를 나와 누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들은 참 좋아해서 1주일에 12~14알은 기본적으로 사 먹을 정도였다, 당시 중국 1위엔화는 우리나라 돈으로 120원이었는데 타코야끼 1 상자는 8~10위엔 정도였으니 우리나라에서 먹던 가격에는 비할 수가 없을 만큼 저렴했다. 어느 날은 내가 중국어를 잘못 말해서 주문을 착오한 그 타코야끼 누나에게 중국어로 '제가 말을 잘 못해, 귀찮게 해서 미안해요 (워 슈오 부 뛔이, 워 마판 니러 뛔이부치)'라고 사과를 하니 배시시 웃으면서 괜찮다고 '메이꽌시'라며 나에게 답하던 그 모습이 나는 아직 눈에 선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어린 외국인이 '눈하 귀잖게 해솔 미안해욜'라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랄까, 웃기기도 하고 귀여웠나 보다, 당시 나는 덩치 큰 씨름선수 같은 외모였으니 말이다.


청소년기부터 좋아하던 타코야끼의 맛을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즐길 수 있었고 부산에 머무를 때에는 부산대 지하철역 앞 대학로 거리에 자리 잡은 '미도리(지금은 '코코네'로 이름이 바뀌었다)'라는 타코야끼 집을 자주 들렸다. 부산대는 본인의 조부모님의 댁 근처여서 자주 가던 장소였는데, 어느 날은 일본 남녀가 커다란 문어 간판이 있는 작은 가게에서 타코야끼와 라무네를 팔고 있기에 호기심으로 오리지널 맛을 하나 사서 먹었는데 겉은 구수하니 바삭하고 속은 덜 익은 듯한 촉감에 쫄깃한 문어의 맛이 환상적이었다. 그 후로 부산에 들릴 때마다 미도리의 타코야끼를 1 상자씩 꼭 먹었는데, 이 집은 현재 오사카와 오키나와식의 일식을 파는 식당 점포를 하나 추가로 열어서 운영 중이다.


여하튼, 오늘의 서론이 길었다. 이렇게 타코야끼에 대한 썰을 길게 풀어놓은 이유는, 얼마 전부터 1달에 1,2번 정도 가는 강릉 유천지구의 퓨전 일식 주점인 '느릅나무'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과거 느릅나무가 많은 산과 들이었던 유천지구의 유래를 따서 가게명을 지으신 사장님은 원래 '슈칸타코(사장문어빵)'이라는 작고 붉은 타코야끼 트럭을 몰고 택지에서 타코야끼를 파시던 분이었다. 당시에도 '친절한 타코야끼와 맛있는 사장님'으로 트럭으로 장사를 하셨음에도 불구 유천, 택지 등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사 먹을 정도로 이름이 있는 집이었는데, 이제는 트럭 대신 넓은 점포와 제대로 된 주방으로 타코야끼와 오코노미야끼 등 본인의 철학이 담긴 술안주들과 주류를 팔고 계시다.


전체적으로는 각 메뉴들의 개성이 확실하고 해당 메뉴들에 공을 많이 들이셨다고 생각을 했다. 식사가 아닌 술안주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맛이 탄탄한 메뉴들, 가장 빠르게 식탁으로 올라오는 타코야끼를 하나 들어서 세심히 관찰해본다. 뜨끈뜨끈한 타코야끼 위로 올려진 얇은 가쓰오부시가 하늘하늘 긴 소매를 살살 흔드는 살풀이춤을 추듯 꿈틀거린다.

푸드트럭 시절부터 판매를 해오신 느릅나무(구 슈칸 타코)의 주력 메뉴인 것을 스스로 증명하듯이, 부산에서 먹던 일본인 사장님께서 구워주시던 타코야끼를 잊게 할 정도로 겉은 바삭바삭하고 그 속은 익지 않은 것처럼 촉촉하게 고소하고 부드러운 반죽이 입에 감기면서 문어의 육질이 쫄깃한 삼박자가 어울리는 즐거운 맛이다.


이쁜 여자와 바에 앉아 먹으며 주방에서 일하시는 점원분께 타코야끼가 쫄깃하니 식감이 좋다고 말씀드리니, 원래 타코야끼는 밀가루 반죽을 사용하지만 느릅나무에서는 찹쌀가루를 배합한 반죽을 사용한다고 귀띔 해주셨다. 그래서 타코야끼를 후후 불어 잠시 식힌 후 입에서 씹으면 바삭한 겉표면 밑으로 덜 익은 반죽이 씹히는데 묘하게 쫀득한 느낌을 받는다. 원래의 타코야끼는 살짝 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촉촉한데 비해서 다른 식감을 살린 것이 마음에 들었다. 가쓰오부시와 마요네즈, 스위트칠리소스로 토핑을 해주시는데, 개인적으로는 스위트칠리소스를 반 정도만 뿌려서 드시는 것이 좋다고 느꼈다, 내 입맛에는 소스가 너무 달았기 때문에. 맵고 달달한 맛을 원하시면 그대로 드시라. 어디에 내놓아도 뒤쳐질 것 없는 훌륭한 문어빵이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느릅나무의 오코노미야끼. 나는 오리지널 오코노미야끼를 먹어 본 적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먹은 것을 그대로 얘기해 보자면, 얇게 채썰린 양배추가 반죽에 묻혀 오코노미야끼의 '도우'를 이루는데 촉촉한 반죽과 아삭하고 달달한 양배추가 아주 잘 어울려서 이에 씹히는 식감이 즐겁고 그 사이에 달달한 양파와 쫄깃한 삼겹살, 그리고 토핑으로 올려진 새우가 다양한 맛과 식감을 선사한다. 반숙으로 구워진 써니사이드업 달걀을 토핑으로 얹어주시면 반숙 노른자를 반으로 갈라 으깨서 촉촉한 식감을 고소하고 아삭한 식감의 오코노미야끼와 함께 씹는 것이 맛이 좋다.

그렇게 먹다 보면 오코노미야끼는 어느새 금방 사라지고 한 그릇을 더 주문하려고 고민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사실 나는 위에 올려진 토핑이 없이 양배추와 밀가루가 구워진 빵만 먹으라고 해도 먹겠다, 그만큼 이 양배추 빵을 구운 오코노미야끼는 식감이 즐겁고 위에 올려진 토핑들과 맛의 균형을 잘 잡아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오는 커다랗고 기다란 음식, 고추튀김이다. 고추튀김이라는 친숙한 이름의 메뉴가 있기에, '분식집이나 명절 때 보던 그런 방식의 고추튀김인가?' 했는데, 명절에 먹을 것 같은 그런, 잘게 다져진 두부, 돼지고기, 당근 등이 들어간 한국식 고추튀김이다. 커다랗고 아주 약간 매콤한 풋고추(오이 고추?)의 속을 파서 딱 봐도 손이 많이 갔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만두소와도 같은 것이 고추의 처음부터 끝까지 잔뜩 들어있다.

얇은 튀김옷을 입혀 튀겼기 때문에 느끼하지 않고 '파스스' 씹히는 튀김옷이 고소하며 고추가 주는 약간의 알싸한 매운맛과 고소하고 든든한 돼지고기와 당근, 두부의 식감이 (적어도 나에게는) 중독적이다. 고추와 튀김옷이 사각, 바삭, 아삭거리면서 씹히는 동안 고추 안에 모여있던 재료들의 육즙과 채수들이 촉촉함을 폭포수처럼 입안에 뿜어댄다. 저절로 눈이 감기는 황홀한 맛이다. 잠시 눈 앞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아른거린다. 그리고 환상속의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난 이런거 해준적 없다이가, 이 문디야'


할머니도 이렇게 말씀하신 적 없잖아요. 환상 속의 할매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던지 말던지 고추튀김의 끝을 향해서 아그작아그작, 치아를 내달린다.

고추튀김의 끝에 다다르면, 고추의 머리 끝부분에 다 파내어지지 않은 고추 씨앗들을 튀김 속과 함께 씹으면 고추씨의 매운맛과 튀김의 속이 함께 어울려, 이것도 고추튀김만의 별미다. 타코야끼와 오코노미야끼를 함께 먹으면서도 고추튀김이 정말 맛있어서 이것만 한 그릇 더 시켜먹고 싶을 정도였다. 꼭 시켜 먹어라, 두 번 먹어라.



"지금 몇시지?"


"밤 10시가 거의 다 되어가는데, 왜?"


"마감시간 몇시간 전부터 시킬 수 있는 라면이 있다고 들었는데, 좋아, 주문이다!"


그리하여 고추튀김을 거의 다 박살내고 있던 나의 앞에 등장한 마감면. 매콤하고 고소한, ㅈ라면의 익숙한 향기가 올라오는데, 그릇 안에 함께 담겨있는 토핑들의 모양새가 익숙한 듯 친숙하다.

가게 마감 1시간 전부터만 주문해서 먹을 수 있기에 '마감면(지금은 '사장님 특제라면'이라는 '사특면'으로 변경되었다)'이라는 이름이 붙은 라면은 처음 만났지만 금방 친해진 친구와 같은 메뉴다. 우리가 쉽게 먹을 수 있는 매운 라면에 치즈를 얹고 달걀, 소시지, 떡 등 마감전에 남은 재료로 넣어서 끓여낸 듯한 이미지의 라면이지만 꼬들꼬들하게 삶아낸 면과 느릅나무만의 라면 양념을 조금 더 넣어서 매콤, 얼큰하며 술자리의 마지막을 개운하게 끝내는 메뉴였다. 단점이라면 가게 폐점 1시간 전까지 시간을 기다렸다가 먹을 수 밖에는 없다는 것, 참고로 나는 가게에서 19시 30분에 먹기 시작해서 22시까지 일부러 버텨서 먹었다. 마감면이 맛있을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서 일부러 기다려 먹은 것이었는데 속을 뜨끈한 한국인의 맛으로 덮여주니 술집에서 마지막 메뉴로 잘 어울린다.


그 외에 느릅나무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점은 소주, 청주, 정종, 와인, 맥주, 하이볼 등등 일식 술집답게 다양한 주류를 취급하고 있으며 각 안주들이 어떤 주류와 어울리는지도 추천해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게 점원들이 친절하다, 정말로. 그 점이 좋아서 일부러 주방 옆에 있는 바에 앉아 느긋하게 먹었다(주문도 많이 했다, 미안하지만). 처음 갔을 때 나와 타코야끼, 오코노미야끼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던 주방의 직원이 재방문한 나를 알아보며 인사를 먼저 건네주고 가게에서 나올 때도 일부러 주방에서 나와 문 앞까지 배웅 인사를 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혼잡하게 바쁜 시간이 아니었어서 그랬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때에도 내가 좋아할 만한 (타코야끼와 오코노미야끼의 맛에 대해 물어보며 어떤 것이 더 맛이 좋은지 비교를 구하는, 하지만 두 가지의 음식은 엄밀하게 따지면 다른 음식이므로 비교를 할 수 없다고 나는 답을 했다. 생각해보니 직원이 무안했을 것 같아 미안하다.) 주제를 던져줘서 대화도 즐겁게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 방문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인 '오래오래 장사하세요'라는 말을 못 해 드렸는데 앞으로도 꾸준히 방문할 예정이니 틈이 있다면 해드려야겠다. 타코야끼, 오코노미야끼, 고추튀김에 하이볼... 또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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