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만족오향족발, 서울

달콤하고 향긋한, 환상적인 위로

by 김고로

나는 강릉에 온 지 이제 거진 4년이 다 되어간다, 강릉에 친한 친구를 따라서 내려온 곳에서도 이러저러한 일들과 직장, 대외 활동들을 거치며 만난 인연들 그중에, 고향인 일산으로 돌아간 지금에도 연락을 하면서 사는 바리스타 '곰'군.


강릉에서 대학교를 다니며 먹고살기 위해 요식업장과 카페에서 알바를 하다가 커피의 매력에 빠져 이제는 정말로 바리스타가 되어버린 곰군은 나의 미식 생활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커피' 부분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과 맛을 담당해주는 고마운 친구.


곰군이 카페에서 일하게 되기 전, 바리스타에 대한 진로를 잡기 전에 친구의 건너건너 소개로 알게 되었고 마침 그때에도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이야기하던 나에게 커피에 대한 길을 소개해주었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에스프레소 샷으로 내려먹는 커피와 에스프레소 샷으로 만들어내는 커피 음료들만을 알던 나에게 드립, 필터를 활용한 핸드드립 커피와 네덜란드식 냉침커피(네, 더치커피 맞습니다)를 알게 해 준 고마운 친구.


곰군도 그때 막, 커피라는 세계에 입문을 한 터라 다양한 세계의 원두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시험 삼아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들을 가져다주고 맛을 보게 해 주었고 나는 그에 따라서 각 잔에 대한 나의 솔직한 감상들을 그에게 남겨주었다, 커피는 원두의 조건과 물의 조건의 다양한 것들에 따라 매우 큰 혹은 미세한 차이들이 생기는데 그 차이들을 잡아내는 것은 나에게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이 커피가 맛있다 혹은 맛없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커피의 질감과 오감과 풍미와 목넘김과 입에 남는 잔여감.... 등등등.... 각 잔에 대해 얘기를 할 수 있어서 나는 그와 커피를 마시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그는 그러다 10년의 강릉 생활을 마무리하고 일산의 가족품으로 돌아갔고 지금은 영등포의 어느 호텔에 자리 잡은 브런치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바쁘지만 행복하게.


그래서 그는 내가 1달 동안 서울에 머물러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한두 번은 보면서 밥 먹고 커피 마실 수 있어도 되지 않냐며 반가워했다, 나의 일정이 바쁘다면 회사나 숙소 근처에서 밤까지 죽치면서 기다려도 되니 꼭 보자고 하면서. 나는 그의 반가움과 호의를 꼭 받아주고 싶었다, 강릉에서부터 오랜 시간 동안 지금까지 이어온 인연은 중요한 것이기에.


마침, 강릉의 나의 단골 카페인 '구커피'의 사장님은 서울 시청 근처에 있는 '만족오향족발'이라는 어마어마한 족발집이 있으니 서울에 가면 꼭 가달라고, 제발 먹어보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하셨었고 나는 바리스타 곰군과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귀한 친구와는 귀한 음식을 먹으러 가야 하니까.


6월의 어느 무더운 수요일, 시청역 8번 출구에서 나는 강릉에 살던 때보다 훨씬 건강하고 밝아 보이는 바리스타 곰군을 만났다. 그도 나도, 반가움에 서로를 얼싸안았고 초록색 지도 어플을 보면서 시청역 8번 출구 근처에 있다는 골목의 이 족발집을 찾아 나섰다. 서로 여기가 처음이라는 말을 하며 골목으로 들어간 우리는 '만족오향족발'이라는 간판 아래,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거나 앉아서 기다리는 광경을 보고 '여기구나'라고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길게 기다리는 식당에서는 인원이 적을수록 테이블을 빨리 받을 수 있다. 나는 재빨리 카운터로 이동해서 외쳤다.


"선생님, 저희 2명이요"


무전기로 홀직원 분들과 소통하시던 선생님은 나를 휙 보시더니


"2명요? (무전기로) 별관 2명 테이블 있어요?"


-별관 2명 자리 있어요 (무전기)


"별관 2층으로 가세요~"


"좋았어!"


긴 사람들의 행렬에, 성큼성큼 다가오는 배고픔에 걱정을 했었던 우리의 생각을 날리듯 바로 들어간다는 기쁨은 잠시,


"그런데... 별관이 어디지?"


"그러게요, 형... 여긴가?"


만족오향족발 '별관'으로 가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별관이 어디인지 모르는 우리들, 아하, 하지만 우리와 같은 초심자들이 많았는지 바로 옆에 별관이라고 적힌 큰 건물이 있었다. 본관도 2층까지 있는 것 같았는데, 별관도 2층까지 있는 건물이었다. 별관 입구에 도착하니 마찬가지로 무전기를 손에 든 홀직원분이 계시니,


"선생님, 우리 2명 올라가도 되는 거예요?"


"그냥은 못 가요~"


"저쪽 본관에 계신 선생님이 2명 별관 2층 가라던데요?"


"아, 방금 2명. 올라가세요~"


올라가도 된다는 문지기님의 허락에 나도 모르게 폴더인사를 꾸벅, 그리고는 바리스타 곰군을 데리고 2층으로 후다닥 올라갔다, 에어컨에서 멀지 않은 안쪽 자리에 2명을 위한 상차림이 준비되어있었다.

사골국물에 끓여낸 물만두국과 장아찌, 쌈무 그리고 만족오향족발만의 시큼새콤한 마늘드레싱에 적셔먹는 양배추채. 마늘의 알싸한 향과 달콤새콤한 맛은 '족발을 먹으면서 절대로 느끼하지 못하게 하겠다'라는 굳은 의지가 담긴 맛이었다. 마늘 맛이 가볍고 상큼했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했다, 크기를 '중'자로 시켜야 할지 '대'자로 시켜야 할지 덩치가 큰 2명의 남자는 고민했다. 아... 어쩌지, 그래! 남으면 싸가자!


"선생님, 여기 족발보쌈에 쟁반국수 세트 '대'자요!"


"형, 저 소주 한잔 해도 돼요?"


"술 마시게? 난 소주 못하는데"


"아, 맞다, 형 술이 약하지."


"야, 그럼 맥주 한잔 할래?"


"좋아요!"


"선생님, 여기 칭따오 하나요!"


나는 개인적으로 맥주 중에서는 카스테라보다는 칭따오를 좋아하기 때문에 칭따오를 한잔 시키고 그와의 근황 토크에 곧 돌입했다.


"야, 여기가 보니까 미슐랭 마크가 6년 전부터 있더라?"


".... 음, 형... 미슐랭이 뭐예요?"


맞다, 바리스타 곰군은 커피 분야를 제외하고는 문외한이다. 미슐랭 가이드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다면 바리스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로 바꿔 얘기해줘야 한다.


"그러니까, CoE(Cup of Excellence)를 6년 연속받은 족발이라고."


"아하! 와 엄청난 곳이네요?"


역시 바리스타 곰군에게는 커피 용어와 카페 상황으로 대입해서 말해주면 이야기가 빠르다. 우리는 서로의 직장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때에도...


"그러니까, 바리스타로 치면, 입사한 지 시간이 이만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에스프레소 하나 못 뽑는 거야! 아메리카노 한잔은 뽑을 줄 알아야 하는데 분쇄도 조정할 줄도 모르는 거야! 야, 이거 답답하거든."


"와, 형 그런 곳에서 일하느라고 힘들었겠어요. 우리는 그 시간만 되면 진상들이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그 시간에 가뜩이나 장사 안 되는데 열받더라고요..."


우리는 서로에게 칭따오를 시원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직장과 서로의 얘기를 안주 삼아 말을 나눴다. 그래도 강릉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바리스타 곰군을 보니 그가 강릉에서 겪어야 했던 힘든 시간들이 생각나 기쁨의 감동이 차올랐다. 나의 코끝이 점점 찡해지더니 안구에 습기가 바깥 여름 날씨보다 더 올랐다.


"훌쩍"


"아이, 형.... 울어요? 에이, 왜 그래요, 좋은 날에"


"훌쩍, 훌쩍, 아 아냐 인마, 니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까 너무 좋아서 그래."


그는 내가 즐겁게 얘기하던 중에 갑자기 울자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급하게 휴지를 뽑아서 나에게 건네준다. 나는 우는 얼굴이 민망스러워 얼른 눈물을 닦아내었다. 그렇다, 오늘은 그동안 나름 고생하면서 살아온 우리의 수고를 맛있게 축하하는 날이다, 그리고 곧


"자리 좀 치워주세요~ 족발 나왔어요~"


와, 역시 '대'자는 크구나. 큼직큼직한 고깃덩이가 두툼하게 썰려 나오니 먹지도 않았는데 벌써 군침이 싹 입에 돈다. 눈에서 나오려던 눈물 방울이 쏙 들어가더니 침으로 변해서 입에 흘릴 모양이다.


"자, 짠 하고 한입 해보자"


"조옿습니다, 형님!"


칭따오의 구수하고 깔끔한 목넘김으로 입안을 헹구고, 두툼하고 진한 갈색빛이 영롱하게 도는 껍질에 우윳빛 지방과 옅은 코코아색과도 같은 속살의 겹이 차곡차곡 쌓인 한 겹을 입으로 넣는다.


껍질의 첫맛이 달콤하다, 그리고 오향의 한약스러운 은은한 향이 코로 모락모락 올라오면서 치아 사이로 쫀득한 식감이 쩍 하고 혀에 달라붙는다, 고소하고 매끈한 기름의 맛이, 포근하고 쫄깃한 다릿살의 맛이 뒤따라 들어오고 고소하며 촉촉한 끝 맛으로 마무리되는 족발의 맛.


"와........."


"야........."


서로 맛있는 것을 맛있다고 말을 못 하고 감탄만 하고 있다.


"진짜 맛있네요"


"와, 내가 여태껏 먹어봤던 족발들 중에서 제일 맛있다. 숙소 근처에서 먹었던, 그 골목에서 먹었던 것보다 맛있다. 진짜."


나는 나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진짜 comma, '대'자 엄청 잘 시켰어! 매우 잘했어! 이건 남길 수가 없는 맛이야! '중'자 시켰으면 '아, '대'자 시킬걸'하고 엄청 후회했을 텐데, 잘했어!"


나와 바리스타 곰군은 너무나 즐거워하며 다음 즐거움으로 향했다, 족발이 이렇게 맛있는 이상 보쌈의 맛이 비교될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보쌈도 보쌈 나름대로 맛이 확실했다.


두툼한 비계와 1:1을 이루는 매끈하고 부드러운 속살, 입에 밀어 넣으니 비계가 입에서 녹아 사라진다. 그리고 남은 살코기도 몇 번 씹으니 치아 사이에서 미끌거리다가 소리도 없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나는 분명 보쌈을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이럴 수가 있나.


"곰군아, 보쌈 먹어봐, 입에서 그냥 없어져"


끄덕끄덕


곰군은 이미 보쌈을 먹으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인다. 그리고 우리는 마늘드레싱에 축축하도록 미리 적셔놓은 아삭한 양배추를 동시에 입으로 가져간다. 만족 오향족발의 테이블에도 쓰여 있는 것처럼 고기를 마늘드레싱 양배추와 함께 먹으면 더욱 맛있을 테니.


예상했던 것처럼 상큼하고 알싸한 마늘의 매운맛이 혀와 양볼을 매만지며 혹시나 기름지고 느끼하게 느껴질 수 있는 돼지고기의 맛을 처음의 입으로 되돌려 놓는다. 위에도 좋은 양배추와 입맛을 돋우는 새콤한 맛이 '느끼한 고기가 뭐야?'라고 묻는 듯 나의 손은 이미 젓가락을 강하게 잡고 두툼한 족발로 향한다.


두툼한 족발을 다시 잡고 마늘드레싱이 묻은 양배추를 살짝 함께 집어 큰 입을 열어 족발천국으로 향할 준비를 다시 한다.


달다, 달다, 달고 또 달다, 설탕의 단맛이 아니다, 한 방향과 어울린 이 달콤한 풍미는 입안의 소화액과 뒤섞이며 입안 전체를 넘치게 물들인다. 쫀득하고 촉촉한 껍질이 씹히며 고기 사이에 숨어있던 돼지의 맛이 터져 나오며 상큼시큼한 드레싱, 그리고 아삭거리는 양배추의 식감과 어울려 기름짐과 담백한 그 맛의 중간을 뽐내며 나의 눈은 스르륵 감기고 고개를 끄덕인다.

"와.... 이거 배가 부를지언정, 하루 종일 먹어도 안 질리겠다"

"오늘 형 덕분에 참 좋은 곳 왔네요, 한 잔 더 하시죠"


"뭘 나 덕분이야, 구 사장님이 알려주셔서 온 거지."


"그러면 구 사장님께도, 헤헤"


"그려, 구 사장님께, 짠"


우리는 다시 칭따오잔을 부딪히며 좋은 족발집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는 것에 건배를 했다.


쟁반국수도 메밀면이 쫄깃탱글하고 매콤달콤하며 시원한 맛이 훌륭했으며, 사골물만두도 수제만두의 속이 알차고 씹는 맛이 좋았으나, 족발과 보쌈의 원투펀치가 워낙 강력했기에 많은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역시나 '주 요리'는 '주 요리'의 값을 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만족오향족발에서는.


족발은 달고 향긋하며, 보쌈은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이 날 우리가 먹은 고기가 더 달고 부드러웠던 것은, 그날까지 살아온 세월이 쉽지 않았기에.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월이 아무리 쉽지 않고 힘들더라도 결국에는 달콤하고 풍족하며 기쁨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그것이 담겨있기에.


"오늘은 내가 살게."


"앗, 형, 그러면 서울 떠나시기 전에 저 일하는 브런치 카페 오세요, 브런치 살게요 제가."


"좋아, 좋아."


만족오향족발을 나서면서 나는 부엌에서 전쟁처럼 일하시는 직원분들이 다 들릴 수 있도록 크게 외쳤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나의 외침을 들은 카운터의 나이 지긋한 직원분께서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맛있게 먹어주니 우리도 기분이 좋네요"


그렇다, 우리의 삶은 쉽지 않다. 일희와 일비가 교차하고, 육즙 섞인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그렇기에 서로 달콤하고 부드러운 고기와도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고 싶기에 나는 외쳤다. 우리는 그렇게 그날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달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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