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된 날이었다. 내가 교육을 받고 있는 회사의 본사가 한국영화의 대명사로 불리는 '충무로'라는 곳에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충무로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대한극장이라는 곳도 나는 처음 눈에 담았고, 충무로와 을지로가 매우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으며 을지로가 항상 라디오 광고로 듣던 '을지 5가 ㅈㄹ약국'의 그 을지로라는 것도 처음 알았으니까.
서울에 처음으로 오래 머무르게 되었던 나는 서울에서 처음 겪는 일들이 처음으로 많아지게 되어버린 것이다. 경기도와 그 외의 지방, 해외에서의 경험은 많은 나였으나 정작 한반도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에서의 경험은 외국인과 별반 차이가 없는 그런 재미있는 상황,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서 나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서울에서 경험했던 미식들에 대한 글을 보면 계속 나올 말이지만, 서울은, 특히나 옛 한양도성 내부에 속했던 중구는 정말, 맛있는 곳이 많다. 첫날부터 우리를 푸짐한 중식당으로 데려가서 점심을 베풀어주셨던 K이사님께서 나를 비롯한 동료들인 균, 재, 희 그리고 선배 강사님들에게 점심을 사주시겠다며 우리를 충무로와 을지로가 만나는 골목으로 데려가셨다.
"오늘 어디로 간다고 하시던가요?"
"그 유명한 칼국수 집 있어, '사랑방 칼국수'라고'
"사랑방이요?"
'사랑방'이라는 단어에 그 옛날 국어 교과서와 짧은 영상자료로 보았던 단편소설과 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옛 한국영화의 장면들이 영사기 바깥으로 환하게 뿜어져 나오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간다.
우리들 중에서 어느 정도 나이가 젊은 축에 속하는 '균'에게 내가 묻는다,
"균, '사랑방'?"
"'사랑방'... 요?"
균의 대답이 늦자 우리 앞에서 걸어가시던 J팀장님께서 먼저,
"어머니!"
"... 그렇네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그러자, 나는
"어... 나는 '선물'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 L사인가 어디서 나왔던 다섯 가지 맛의 알사탕이 들어있는 그 '사랑방 선물' 있지 않습니까."
내가 '사랑방 선물'을 얘기하니 정말 의외의 답이 나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균과 J팀장님,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나오잖아요, 그 뭐지, 옥희라는 애가 삶은 달걀 얘기하는 거"
"'옥희는 삶은 달걀이 좋은데', 이거?"
서른 중반의 남성인 필자가 내는 뒤틀린 황천의 옥희 성대모사가 섞인 농담에 균과 J팀장님의 표정이 뒤틀린 황천에 다녀온 것처럼 일그러지는 것을 필자는 보았다, 그들의 반응이 우스워 그저 웃는다. 그렇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옥희의 어머니와 옥희 아버지의 친구였던 남성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될 것 같지만 그렇게 될 수 없는 시대적 상황과 이해관계로 인해서 약간의 로맨스를 원하는 나와 같은 독자들 입장으로는 약간 아쉽지만 그대로 흐지부지 소설은 끝이 나고 만다.
하지만 나의 기대를 저버리는 소설과는 다르게 우리가 먹을 메뉴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사랑방 칼국수'라고 적혀있는 시간의 흐름을 정면으로 들이받은 간판이 내걸린 식당 안에는 우리와 같이 점심시간을 승리하기 위한 직장인들과 어르신들께서 자리를 가득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 한식집인데 어르신 손님들의 비중이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필자는 믿는다.
"여기 닭한마리 사람 수대로 주시고요, 사장님! 그리고... 더 먹고 싶은 사람은 더 시켜 먹으라고."
"좋습니다!"
균, 희, 재, 그리고 내가 앉은 식탁은 닭을 2마리 시켰다, 작은 닭으로 두 마리가 삶아서 나올 것이고 각자에게 공깃밥 1그릇과 채 썬 파가 둥실 거리는 맑은 닭육수 냄비가 준비되어 있었으니까.
닭육수와 특제소스, 사랑방칼국수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닭한마리는 굉장히 빠르게 주방에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닭이 통째로 삶은 것이 두 마리가 나오니 엉거주춤 손을 써야 할지 젓가락을 들어야 할지 허둥지둥하는 우리를 본 홀을 보시는 선생님께서는
"썰어서 찢어다 줄까요?"
"네, 넷! 감사합니다!"
시원하게 닭 두마리가 누워있던 그릇을 주방으로 그대로 들고 가시더니 곧 뼈와 살이 분리된 닭두마리를 금방 들고 오셨다.
닭한마리, 사랑방칼국수
서울 사람들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닭 한 마리'는 서울에서 유래된 서울 음식이다. 닭에 파와 마늘을 잔뜩 넣고 끓인 육수에 닭살을 찢어 식당마다 맛은 약간 다르지만 매콤새콤한 소스를 찍어 파와 함께 곁들여 먹는 서울 음식. 그래서 '닭한마리'라는 이름과 전문점은 서울에서 굉장히 자주 볼 수 있었다. 내가 있었던 충무로 골목에서는 특히, 더.
"저는 여기도 맛있지만, 공릉동이 본점인 공릉닭한마리를 굉장히 좋아해요. 마늘이 가득 들어간 육수가 진짜 맛있거든요."
어려서부터 현재까지 서울에서 나고 자란 희가 자신의 닭한마리 사랑을 표현하니, 참 서울 사람이구나 싶었다. 강릉 사람이 순두부나 막국수, 옹심이에 대한 얘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닭의 어느 부위가 되었든지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소위 '뻑뻑살'이라고 부르는 부위도 '뻑뻑'하지 않을 만큼 잘 삶아진 닭이다. 모든 부위가 맛이 좋다, 게다가 식당에서 제공하는 겉절이가 날이 더운 탓에 금방 익어버렸는지 경상도의 '짠지'처럼 짭짤 새콤하니 담백한 닭고기와 잘 어울렸다.
"아줌마, 오늘 김치가 왜 이리 시어요?"
"날이 더워서 금방 익어버리더라고"
물론 이러한 김치의 맛이 익숙하지 않은 '사랑방 칼국수'의 찐 단골분들은 불만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김치맛도, 매일 와서 먹으니까 차이를 아는 것이겠지, 나 같이 처음 오는 사람은 원래 그런가 보다, 하면서 먹는 맛이다. 그래도 맛있으니까.
맑고 진하지만 깔끔한 닭국물에 다진마늘과 파가 가득 들어가서 파와 마늘의 향미가 코와 입에 가득하다. 특히나 마늘과 닭의 궁합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은 상을 줘야 할 정도로 닭육수에 다진마늘은 진리이다. 자칫 심심하거나 닭냄새가 느껴진다고 생각할 수 있는 닭육수의 잡내를 잡고 담백함과 향긋함을 더하는 마늘의 풍미. 닭살을 한가득 젓가락으로 찍어 매콤새콤한 소스에 찍어 먹으니 이건 또, 하얀색의 닭은 삼계탕밖에 모르던 나에게는 신세계인 것이다.
그건 그렇고 배가 차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지나가던 종업원 선생님을 불러 잡고는
"선생님, 칼국수 하나만요" 외친다.
"몇 개요?"
"칼국수 다들 드실 거예요?" 물으니
닭고기와 밥으로 배가 부른 사람들은 고개를 젓는다, 우리 식탁에서는 나만 칼국수를 주문한다. 칼국수도 나오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닭한마리 집이니까 '당연히 닭육수에 말아서 나오겠지?'라고 생각한 나의 예상을 와장창 깨어버린, 감칠맛 넘치는 멸치육수의 기본 맛을 담은 칼국수가 나온다. 하지만 거기서 멈출 내가 아니다. 나는 칼국수 중에서는 닭칼국수를 제일 좋아한다, 멸치 육수에서 함께 헤엄치던 뜨거운 칼국수를 꺼내어 아직 남아있는 미지근한 닭육수에 담고 다진 마늘을 좀 더 넣는다. 한 젓가락을 먹는다, 그리고 나는 크게 미소 짓는다, 맛이 좋다. 나의 반응을 본 주변의 젓가락을 놓았던 사람들이 다시 젓가락을 잡는다.
"나도 한 젓가락만 해도 돼요?"
면 종류는 다 가릴 것 없이, 남의 것을 한 젓가락 얻어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 닭칼국수로 탈바꿈을 한 나의 칼국수를 한입 먹어보는 균, 재, 희는 나와 함께 미소 지으며 웃는다. 그들에게도 닭칼국수는 맛이 좋다.
그렇게 닭한마리와 칼국수를 즐긴 우리는 다시 K이사님의 인도를 따라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방차 골목으로 들어간다,
"여기는 남들에게도 잘 안 알려주는 곳인데..."라고 하시며 K이사님은 직원들을 데리고 으슥한 골목의 좁고 높은 2층 계단으로 올라가신다. '의전방'이라는 오래된 명패가 바에 걸려있다.
내가 그런 것들을 눈여겨보는 사이, K이사님은 단골손님의 분위기를 내뿜으시며,
"선생님, 여기 쌍화차 7잔이요"
그리고 우리는 아직 제 5공화국 시절의 인테리어가 그대로 남아있는 공간의 가죽과 원목으로 된 소파에 앉는다. 생강절편, 인진쑥환, 구운 땅콩으로 이루어진 다과가 먼저 나온다.
구운 땅콩, 인진쑥환, 생강절편. 을지로 의전방.
"나랑 친구들 '핫플'이야, 여기가. 다른 곳은 이런 다과를 안 주거든. 친구들이랑 오면 이 다과 순식간에 없어져." K이사님이 다과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곧 이어 대추와 잣 등 온갖 재료가 가득 들어간, 밤하늘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쌍화차가 등장했다. 컵의 크기로 보나, 양으로 보나 '쌍화차'보다는 '쌍화탕'으로 불리는 것이 맞는 모습이었다. 한입 머금으니 쌉쌀한 한약의 맛이 혀를 덮다가 끝에 은근한 단맛이 슬쩍 입안을 감싸는 맛이 고급진 맛이었다. 편의점이나 약국에서 사 먹던 '쌍화수' 혹은 '쌍화탕'의 진짜 본체가 이러한 맛이라니.
하지만 열이 많은 나와 같은 사람에게, 몸에 열을 더해주는 쌍화탕, 인진쑥, 생강 등은 그리 좋지 않은 음식이다. 하지만 맛있다. 그래서 머리가 점점 뜨거워져 오고 후두부가 점점 어지러운 것 같은 느낌에도 K이사님이 당신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담긴 컵과 그릇들을 깨끗이 비워내기로 했다. 그냥 남기기에는 정말, 아쉬운 정성이었기에. 몸이 많이 차가운 '나의 이쁜 여자가 와서 먹었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라는 그리움이, 쌍화탕이 비워진 매끄러운 도기 그릇에서 맴돌았다.
쌍화탕과 함께한 다과의 시간을 마치고 나오니, 우리들이 걷고 있는 것은 1970년대가 아닌, 다시 2022년도의 서울 충무로와 을지로였다. 옛 시간들이 어린 '사랑방 칼국수'와 '의전방'을 방문했던 시간에, 나도 잠시 서울의 옛날 골목을 다녀왔던 것이다. 수십 년 전의 이 골목에서도, 오늘날의 우리처럼 바쁘게 살던 사람들은 동료 혹은 가족들과 닭한마리를 먹고 식후에는 다방커피나 전통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겠지?
이국 음식점을 갈 때에는 음식이 여권과 공항이었고, 오늘 같은 날에는 음식이 과거로의 시간여행 장치였다. 우리는 그날, 충무로 흑백영화의 인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