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온수반, 서울

친절한 고깃국물에 쌀밥, 그것은 온반

by 김고로

'서울 싫어', '서울 싫다고' 반복적으로 앵무새처럼 떠들지만 어느새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풍부한 식문화와 다양성에 취해, 그리고 공부를 하고 일을 하며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먹는 점심시간의 즐거움에 취해 나는 어느덧 1달로 계획된 서울 생활의 절반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디를 가도 맛있는 점심과 저녁, 거기에 훌륭한 풍미의 후식과 음료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이 내가 지금 거닐고 있는 충무로라는 곳이다.


물론 서울이라는 이 넓은 도시에서 굳이 충무로가 아니더라도 맛있는 것을 즐길 수 있는 곳이야 많겠다만 나는 거주지에서 멀리 떠나 수고로운 미식 탐방을 하는 인류는 아니다, 내가 걸어갈 수 있는 그 거리 내에서 지역 미식을 찾는 것을 즐기는 것이 나의 미식 생활. 내가 머물고 있는 주변에는 조금만 지체하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맛있는 식당들이 많기에, 내가 방문하려는 욕심을 내는 식당들이 많기에, 이런 것들은 미식가의 작은 행복에 포함이 된다.


직장에 있는 선배분들께서 곧잘 점심을 드시러 가신다는 온반과 온면을 함께 하는 식당이 있다 하여 직장 동료인 '재' 그리고 '희'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 식당이 멀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도보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이 식당이 꽤나 유명한 식당이라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이전에 이 온반, 온면을 함께 하는 식당에 방문하려고 하였으나 당시에 걸음이 조금 늦었는지 주문을 하고 40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종업원의 안내에 아쉬운 한숨을 남기고 돌아서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우리는 40분을 기다려서라도 꼭 먹겠다는 굳은 의지와 각오로 식당을 향해 당당한 걸음을 옮긴 것이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오늘의 식당 '온수반' 충무로점 앞에는 맛있는 점심을 먹겠다는 일념 하에 가게 밖으로 줄을 길게 늘어선 직장인과 관광객들의 행렬이 우리를 반겼다. 그래도 그 위세에 꺾일 우리가 아니다, 재빨리 가게 밖의 무인주문기계로 차돌양지온반과 온면 보통 각 1개와 차돌양지온반 특을 1개 주문한다, 그래 특 차돌양지온반이 내 것이다. '아...더 큰 거 시킬 걸...' 하는 후회를 내 입으로 직접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곧 가게의 친절한 종업원분이 나오셔서 20분 이상이 걸릴 거라고 안내를 하신다, 하하,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우리는 '네, 알겠습니다, 기다릴게요' 답하고는


"음식도 기다릴 겸, 남산 한옥마을 산책이나 할까요?"


"그래요~"


그렇게 우리는 남산 한옥마을로 산책을 유유자적 떠나는 것이다. 이것도 이미 온수반으로 여정을 떠나기 전에 말을 해놨던 것이다.


"우리 오늘은 기필코 온수반에서 식사를 합시다"


"좋죠, 얼마를 기다리던 상관없이 기다려서 먹고 오자고요"


"그럼 기다리는 동안에 저번에 이사님이 말씀하셨던 한옥마을이나 한 바퀴 돌면 되겠네요"


"좋습니다, 오늘은 포기하지 않겠어요"


그렇다, 초여름이 시작된 더운 여름의 남산 자락에서 우리는 꼭 온수반에서 식사를 하자는 결심을 하고 나온 신입사원들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빠르게 맛있는 식사를 하기 위한 직장인들의 점심 전쟁이 벌어지지만 그 와중에서도 발이 빠르고 인내심이 굳건한 자들만이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우리는 인내심을 발휘하여 맛있는 점심을 쟁취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침, 남산마을은 월요일에는 개장하지 않으니 아쉽게도 한옥마을을 둘러싼 공원과 광장을 둘러보며 돌아왔고 그 이후에도 우리는 10여분 가량을 더 기다린 후에야,


"114번 고객님!"


이라는 반가운 말을 들으며 온수반 충무로점에 입장할 수 있었다. 가게를 들어가니 겨우 10명이 조금 넘게 앉을 수 있는 작은 사각형의 바테이블 점포, 그리고 그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손님들을 대접하는 건장한 체구의 두 종업원분들. 1분은 가게의 점주셨고 1분은 직원이셨다. 직원의 수와 앉을 수 있는 자리의 수, 그리고 메뉴의 회전율과 인지도를 생각해봤을 때, 밖에서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오랫동안 기다려서 손님들이 들어온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시는 점주님은


"오래 기다리셔서 죄송합니다, 대신에 메뉴들을 더 좋은 걸로 바꿔드리고 싶으신데, 어떠세요? 차돌양지 대신에 힘줄이 들어간 모둠으로 바꿔드릴게요."


"무슨 차이가 있나요?"


"차돌, 양지에 쇠힘줄이 더 들어가요"


"쇠힘줄은 어떤 맛이죠?"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식감인데,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맛이기는 하지만 여기는 무조건 맛있을 거예요, 드세요.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재와 희의 메뉴 '업그레이드'를 지원했다.


점주님과 얘기를 마친 재와 희는 모둠 온반과 모둠 온면으로 메뉴를 추가 요금 없이 바꿀 수 있었고, 나는 특 차돌양지를 유지했다. 사실, 이렇게 소고기를 베이스로 한 온반을 주력으로 한 식당에서 쇠힘줄이라는 식재료는 안 먹어봐도 매우 맛있을 것이 당연했다. 일본에서는 어묵탕에 쇠힘줄을 오랫동안 끓이고 고아서 먹는 것이 일반적인 식사의 풍경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쇠힘줄이라는 식재료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흔하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어떤 맛인지 물어보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부들부들, 야들야들, 쫀득쫀득한 식감을 자랑하는 온수반의 쇠힘줄일거라고 예상이 되었지만 나는 그래도 부드러운 고기에 쌀밥을 먹으며 옛날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곰탕의 기분을 내고 싶어서 쇠힘줄은 사양하기로 했다. 주문이 최종적으로 끝나자 곧 식기 세팅과 밑반찬이 나왔는데, 작은 고추로 만든 장아찌가 매콤하며 달콤, 새콤한 것이 요물이었다.


배가 심히 고팠던 우리들에게 곧 따뜻한 토렴을 마친 온반이 고운 고기와 고슬고슬한 쌀밥의 자태를 뿜으며 나타났다.


한국 사람이니 뒤도 돌아볼 것 없이 무조건 숟가락을 들어 국물부터 맛을 본다.


"와..! 국물이 참 친절한 맛이네요."


국물은 매우 맑은 갈색을 띠는데, 깔끔하며 가볍다. 첫맛은 간장으로 간이 살짝 된 달콤하며 감칠맛이 폭발하는 고기 육수의 맛, 이것은 설탕이나 간장으로만 낼 수 있는 맛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종종 훌륭한 베트남 쌀국수 집에 가면 맛볼 수 있는, 고기를 아끼지 않고 육수를 우려내면 이 맛이 난다. 고기가 잔뜩 들어간 육수만이 낼 수 있는 달콤한 고깃국물의 맛. 이것은 설탕을 많이 넣는다고 하여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맛이 아닌 것이다, 오직 고기를 아끼지 않고 잔뜩 넣어야 고기와 물이 함께 가열되며 고기에서 우러나오는 육즙과 풍미가 물과 함께 어울려 나는 달콤한 맛, 그리고 고기의 단맛과 간장의 짭짤함이 더해진 감칠맛. 물론 나는 이 국물에 고기가 정말로 아끼지 않고 들어갔는지, 간을 맞추기 위해 간장이 정말로 들어갔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 국물에서 나는 진한 고기의 단맛과 감칠맛으로 짐작을 해볼 뿐이었다.


"하.... 이 국물의 달콤함과 감칠맛이 미쳤는데요?"


"진짜 국물 맛있다, 여기."


거기에 고명으로 올라간 사태와 양지는 어떠한가? 식당에서 제공되는 달콤 새콤하고 가벼운 식감의 '참소스'를 살짝 찍어먹으면 푹 익은 고기의 부드러움과 육질이 입안과 치아 사이에서 한결, 한결 감기는 맛. 고기 잘 삶았다, 그것도 육수를 내기 위해서 물에 잔뜩 넣고 삶아냈겠지. 지방과 고기가 잘 맞물려 섞인 사태, 거기에 본연의 식감을 잃지 않고 살결이 쫄깃하게 씹히는 양지, 이 두 가지의 부위가 얇게 썰려 밥에 잔뜩 얹어있으니 이 온반은 진정 고깃국이로구나. 그러면 쌀밥은? 당연히 고슬고슬하고 국물에 착착 감기는 정도로 익었다, 밥알이 한 톨 한 톨 심히 찰지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은 고슬고슬한 쌀알의 식감이 고기의 부드러움, 육수의 달큰함과 함께 구미를 더욱 당긴다.


"이거, 쫄깃쫄깃한 게 정말 맛있네요"


"나도요, 솔직히 기대 안 하고 시킨 건데, 장난 아니에요."


모둠으로 메뉴를 업그레이드하며 쇠힘줄을 고명으로 더 받은 희와 재가 쇠힘줄을 먹으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온수반의 쇠힘줄은 맛있을 거라는 내 예상은 역시나 적중, 이런 예상이 적중할 때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 주었다는 생각에 꽤나 흐뭇하다. 물론 나는 쇠힘줄이 취향이 아니라서 주문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함께 이런저런 말을 하던 우리들은 식사를 하면 할수록 점점 말이 없어져갔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식사와 그 맛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식사를 하는 자의 바람직한 자세다. 온면을 주문한 희는 고깃국물에 담겨 나온 넓은 쌀국수를 해선장과 매운 소스에 비벼먹으며 또 다른 맛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거의 다 먹어갈 때쯤이 되자 우리를 살펴보시는 점주님이 살며시 다가오시며,


"모자라지는 않으세요? 밥과 면은 무료로 더 드려요."


아하.... 그거 좋지요, 나는 잠시 면을 말아서 먹을지 밥을 더 먹을지 고민하다 결국


"저는 밥으로 주세요"


"저도 밥으로요"


재는 추가적으로 밥을 더 먹지 않았지만, 온면과 온반을 먹던 희와 나는 밥을 더 주문했다. 이렇게 국물이 맛있는 고깃국인데 더 안 먹으면 나만 손해다. 그런 것이다.


추가로 제공되는 밥이 나왔는데, 와, 온수반은 이렇게 친절한 육수에 추가 식사도 친절하구나. 사실, 그냥 쌀밥만 홀로 나올 줄 알았는데 밥이나 면에 의해서 맛의 농도가 옅어지는 것을 방지하듯 국물에 살짝 젖은 밥 위에 부스러기 고기 조각들과 파들이 송송 썰려서 거의 작은 온반처럼 추가 밥이 제공되었다.


"여기 진짜 센스 있다"


"그러게요, 이렇게 추가 밥에 육수에 고기가 함께 나올 줄은..."


희의 말에 나도 격하게 동감했다. 쌀밥만 한 공기에 담겨 나올 거라고 생각한 미련한 손님의 생각을 가차 없이 깨버리는 온수반의 서비스, 일어서서 손뼉 칠만한 것이다. 깔끔하고 가볍지만, 감칠맛과 달콤한 고기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보드랍고 육질이 살아있는 고기에 고슬 거리는 쌀밥. 친절하다, 친절한 고깃국이다.


우리는 달콤하고 진한 육수의 맛이 아직 입안을 가득 매우고 있어 더 앉아있고 싶었지만, 다음 손님들을 위해서라도 그릇을 다 비우고 나서 얼른 일어섰다. 바깥을 나서니 '쌀냉면'이라는 온수반의 여름 메뉴가 나의 눈길을 끈다. 다음번에 올 때에는 이 쌀냉면을 시켜서 한 그릇 비우고 면을 추가로 더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 강릉에 분점을 낼 생각은 없으신가. 자주 갈 자신 있는데 말이다.


p.s. 온수반의 옛 이름은 '고수레'였고 본점은 영등포구의 선유도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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