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을지로와 충무로의 닭한마리집과 한방찻집으로 데려다주시며 시간여행을 시켜주셨던 K이사님께서는 다시 본사로 되돌아가는 길에
"야근 식당 정해서 미리 끊어놓자고"
"야근 식당이요?"
"그럼, 야근할 일이 좀 있을 거니까"
라는 대화와 함께 회사 주변에 가성비 좋고 맛 좋은 식당들에 미리 대금을 지불해놓고 먹자고 하셨다. 그래, 지금 우리가 연수를 받고 있는 업무의 양을 생각해보자면 일주일에 1, 2번은 본사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업무를 배우고 복습하면서 학구열을 불태워야 할 날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나를 비롯한 신입 사원 동무들은 근처 골목에 있던 밥집들이 모여있던 곳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면 항상 사람들이 줄을 서서 점심식사 순서를 기다리던 곳이기도 했고 당시에 지나가면서 봤을 때 서울 충무로에 있는 식당들로서는 제법 괜찮은 가격의 집이기도 했다.
그중에서 우리를 음식으로 인도 여행을 시켜주었던 인도네팔 전통음식점 '나마스테' 골목으로 들어가면 백암순대국집과 시래기조림정식을 주력 메뉴로 한 식당이 둘 있었다. 가격대는 한 끼에 만원이 안 되는 가격이고 사람들이 식사시간에는 항상 가득한 걸로 봐서, 그 정도 근거면 괜찮은 집이 아닐까 생각하여 이 두 집을 우리의 야근 식당으로 선정하였다.
한 번도 안 먹어본 식당을 선결재 후 야근 식당으로 선정한다라.... 평소의 나로서는 하지 않을 일이지만 회사 입장에서 직원 복지 차원으로 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이미 감사했다. 야근에, 수당과 식사까지 주지 않는 회사도 많은데 이 정도면 매우 너그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며칠 후, 나와 입사 동기 희, 균, 재는 회사에서 베풀어주신 아량의 실체를 영접하러 갈 수 있었다. 그중에서 실제로는 2,3번의 방문을 통하여 나의 식재료와 음식에 대한 편견을 깨 준 식당이 있기에 독자분들과 함께 나누려고 한다.
'시래정각', 이름만 들으면 한식집이라고 생각이 드는 집인데 무슨 메뉴를 할지는 이미 이름에 쓰여있다. '시래'로 시작되는 한식 재료하면 '시래기'아니겠는가. 배추를 말리면 '우거지', 무청을 말리면 '시래기'로 구분하여 부르고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강원도에서도 굉장히 보편적인 식재료이다. 고산지대에서 훌륭한 품질의 배추와 무를 생산하는 지방이기 때문에 영서지방이나 태백산맥을 타고 내려가는 산간지방에서는 매우 흔한 식재료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시래기를 자주 먹어본 적은 없다, 맛있는 식재료라는 것은 알지만 다른 식재료들에 비하여 크게 나의 구미를 당기지는 않는 것이다.
"시래 정각이라... 맛이 좋을까요?"
"고등어, 갈치... 그런데 고등어시래기조림정식이 맨 위에 있는 것을 보니까 이게 여기 대표 메뉴인가 봐요."
"처음 가보는데, 아직 생선들이 비린내가 나는 음식일 수도 있으니까 안전하게 가볼까요?"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옛날 M 방송사의 맛집 탐방 프로에 나왔던 것이나 K 방송사의 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이력들이 있으니 나쁘지는 않겠다 싶었다.
우리는 첫 방문에서 갈치와 삼겹살 시래기조림정식을 주문했다, 점심시간 초반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우리가 앉아서 음식을 먹을 즈음에는 바깥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이 주변에서는 꽤나 인정받는 맛집이었다.
주변에 커다란 삼치나 고등어 구이가 나오는 것을 보며 우리는 혹시 구이를 시키는 것이 더 나은 결정이 아니었을까 서로 얘기하며 수군거렸다.
"식탁에 자리 좀 만들어주세요~"
갈치시래기조림정식
삼겹살시래기조림정식
이런저런 반찬을 주섬주섬 입으로 넣으며 담소를 나누던 우리에게 커다란 삼겹살과 갈치 토막이 담긴 시래기조림이 올라왔다. 우리는 젓가락을 조심스럽게 들어서 푸짐하게 시뻘건 옷자락을 입은 시래기와 삼겹살, 그리고 갈치살을 입으로 밀어 넣었다.
"어?"
"와"
드라마 혹은 만화에서 보는 미식에 대한 반응처럼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외마디 탄성만을 내뱉었다. 나도 그랬다, 기대하지 않았던 음식에서 이러한 맛을 느낄 때에는 그 반응이 더 커지는 법이다.
시래기가 보들보들, 부들부들, 비단결처럼 부드러운데 씹는 맛도 쫄깃하니 가히 예술이었다. 이것이 한번 말렸었던 채소의 줄기가 맞는지, 내가 여태껏 먹어왔던 시래기라고는 된장무침이나 된장국 등에 들어갔었던 것뿐인데.... 이 식감과 맛이 시래기라고? 거기에 더 놀라운 것은 조림에 사용되는 소스였다. 주홍빛의 소스는 보이는 것처럼 맵지 않았다. 아주 약간의 매콤함에 시작부터 끝까지 입안을 휘감는 고소함과 그 두 가지 맛의 조화로 이끌어져 나오는 극강의 감칠맛, 매우 곱게 빻아진 고춧가루와 들깻가루인지 참깨가루인지 모르겠지만, 그 소스에 함께 졸여지면서 우러나온 생선 혹은 고기의 육즙이 섞이니 시래기와 순살을 함께 먹고 나니 밥이 자동으로 당겼다. 소스는 전혀 텁텁하지 않고 입안에서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끝 맛.
이러한 조림 소스에 예술 같은 시래기가 잔뜩 적셔져서 입으로 다시 밀어 넣는다, 모두가 먹으면서 만족스러운 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한번 공깃밥에 얼굴을 묻는다. 미쳤다, 이 조림. 나는 생선/육류와 시래기가 들어간 조림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와, 진짜 맛있네요, 밥 두 공기 먹어야겠어"
우리 중에서도 제일 덩치와 키가 큰 균이 이미 밥 한 공기를 거의 다 비워가면서 얘기한다. 그는 이미 시래정각의 시래기조림에 중독되어버린 눈이었다.
"생선이 들어간 조림이어서 비린내가 조금이라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잡내 하나 없이 깔끔해요. 그리고 이 소스는 기름진 고등어였으면 더 맛있을 것 같아요, 기름진 맛을 깔끔하게 잡아주면서 감칠맛이 입안에 터지네."
어느 정도 미식과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부산에서 올라온 '서윗한 경상도 남자' 재도 그 말에 격하게 동의하며 쉴 새 없이 젓가락을 움직이고 갈치시래기조림을 주문한, 나만큼이나 미식 생활에 진심인 희는 눈과 입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시래기조림이 얼마나 맛있는지 표현하고 있었다.
갈치 토막도 두툼하고 큼직하니 살이 많았고 (수입인지 국내산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추측만 할 뿐), 삼겹살도 인분 수대로 줄이 나오면서 생각보다 기름지지 않았다. 그저 시래기조림 위에 올라간 생선과 고기의 육즙이 함께 소스에 배어 나와서 모든 재료들의 감칠맛이 소스와 시래기에 묻어 나왔다. 그래서인지 큼직한 고등어가 이 조림에 올라가면 소스는 또 어떠한 맛을 낼지 궁금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날의 식사 후에 나는 또 다른 날, 퇴근 후의 이른 저녁, 같은 강릉에서 올라온 균과 둘이서 시래정각으로 다시 향했다. 그는 이미 시래정각을 통하여 시래기조림 애호가가 되어있었고 나는 고등어가 들어간 시래기조림이 어떠한 맛을 줄지 매우 궁금했다. 저녁시간이 시작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한낮의 풍경과는 달리 시래정각은 매우 한산했고 사장님께서 홀에 앉아 영상을 시청하시는 중이었다.
"사장님, 저희 고등어 2인분이요~"
"네에! 홀에 고등어 둘!"
홀에 고등어 두 마리가 왔다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과 함께 우리는 홀에 착석했고 더운 여름날이라 균은 콜라 작은 페트를 하나 마시겠다며 음료도 주문했다. 평소에도 몸에 열이 많아 슬픈 균이었다.
더운 여름이 시작된 지 오래였기 때문에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그와 고등어를 기다리고 있던 나의 사이로 커다란 고등어 두 마리가 시래기조림 위에 올라간 접시가 등장했다.
고등어시래기조림정식
고등어시래기조림의 커다란 무조각
조림속의 무조각, 소스맛이 가득 배여서 달고 시원하다
"와..... 진짜 맛있겠다, 사장님 여기 공깃밥 하나만 더 주세요."
이미 시래기조림의 추종자가 된 균은 공깃밥 한 공기를 다 먹기도 전에 미리 한 공기를 시키며 입과 위장에 시동을 걸었고 나는 숟가락으로 소스를 가득 퍼서 입에 넣으며 삼겹살, 갈치로 했던 시래기조림과는 어떠한 맛이 나는지 비교했다.
약간의 매콤함, 고소함, 그리고 감칠맛은 변치 않았다. 하지만 내가 예상했던 대로 고등어라는 생선 특유의 기름 맛이 소스에 녹아들어 삼겹살을 넣은 시래기조림보다는 고등어조림이 훨씬 맛있다고 생각했다.
'이 기름 속에 몸에 좋은 오메가3와 DHA가 녹아있으려나?'
2인조 락밴드 '노라조'의 노래 '고등어'의 가사에 등장하는 단어들과 함께 떠오르며 그들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캐리비안의 해적 분장을 한 채 라이브 공연을 했던 유튜브를 잠시 감상하며 밥을 먹었다. 우스꽝스러운 분장과 재미있는 노래 가사이지만 나에게는 항상 활력소가 되는 그들의 노래다. 특히나 식재료를 좋아하는 나는 '고등어'라던가 '카레'라는 노래를 참 좋아한다.
그리고 나의 입 안에서는 보드랍고 쫄깃하고 살결이 하나하나 느껴지는 고등어살이 치아 사이에서 춤을 춘다. 고등어에 따로 소금 간은 되어 있지 않아서 짭짤한 고등어의 맛은 아니다, 하지만 육질 좋은 고등어의 살결과 시래기와 소스의 조화는 간고등어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맛을 뽐낸다. 시래기와 고등어살의 쫄깃함이 두배, 고등어의 고소함과 조림 소스의 감칠맛이 두배, 내가 생각했던 대로, 개인적으로는 이 조림 소스는 고등어와 같은 기름진 생선과 상당히 잘 어울렸다. 소스와 시래기가 고등어살과 맛 균형을 매우 잘 잡았다.
"여기 사장님께서 이 소스를 개발하시려고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요?"
나는 이미 배를 팡팡 두드리며 두 공기째를 시래기와 함께 흡입하고 있는 균을 바라보며 자문자답했다.
"굉장히 오랜 노력과 시간, 사장님께서 많은 고심과 시행착오를 겪으셨지 않을까요?"
균은 밥과 시래기와 고등어로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온 얼굴과 몸으로 맛있음을 격하게 표현하는 중이었다. 아주 바람직한 먹방러의 자세다, 그렇기에 나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갑자기?), 맛있는 음식에 솔직한 사람, 나도 그러하니까.
커다랗고 노릇노릇한 삼치나 고등어구이도 맛있어 보였지만 굳이 시키지는 않았다, 우리는. 시래기조림의 품질만으로도 맛은 이미 좋을 거라고 생각을 했고, 게다가 이미 시래기조림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집이기 때문이었다.
'시래기'와 '조림'에 대한 나의 선입견과 편견을 보기 좋게 무너뜨린 집, 시래정각. 생각해보니 강릉에는 시래기조림을 하는 곳을 시내에서 단 한 곳을 봤었는데 한번 찾아가서 먹어봐야겠다...라고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훌륭한 미식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