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까지 함께 먹은 여러 밥집들 외에도 우리는 여러 식당들을 방문했었다, 하지만 여러 음식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길게 글을 쓰면서 소개하기는 어려운 집, 밥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만 알기에는 어려운 빵집을 하나씩 소개하려고 한다. 서울에서 한 달 동안 경험했던 미식들을 나만 알기에는 아쉬운 맛들이라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과 함께 보려고 한다.
충무로의 점심 격전지 한복판에서도 여유롭게, 많은 손님들의 기나긴 줄을 생성하는 일본 가정식과 덮밥 전문점이다, 방문했을 때에는 일식 돈가스를 먹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사실 이 집은 함께 신입사원 연수를 받은 희, 재, 균 그리고 우리의 연수를 맡아주셨던 Y팀장님과 우리의 첫 점심식사로 방문했었다가 (우리는 점심시간이 땡 하자마자 나갔었다, 전혀 늦장을 부린 적이 없다) 맑은 날 가게 앞에 길게 늘어선 손님들의 줄을 보면서 '하.... 망했네요, 다른 곳으로 가죠'라는 말과 함께 아쉽게 다른 일식 돈가스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만든 집이었다. 대창 덮밥과 간장 양념으로 구운 항정살이 올라간 돈토로 덮밥이 유명하다고 하는 집이어서 나중에 꼭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던 중, 우리는 연수의 거의 마지막 주가 다 되어서야 비가 대차게 쏟아지던 그 어느 평일의 점심시간에 손님들의 수많은 웨이팅이 없던 그 틈을 타서 여유롭게 착석하여 '진작' 왔어야 할 이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이곳의 대창 덮밥을 먹고 싶어 하던 누군가는 대창덮밥을 주문했고, 이미 강릉에서 맛있는 대창덮밥을 먹은 경험이 있는 나는 굳이 여기서 또 대창덮밥을 먹고 싶지는 않아서 강릉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항정살덮밥인 돈토로덮밥을 주문했다. 강릉도 한국에 있는 도시인지라 서울의 유행을 곧잘 타는 도시이지만 아직 돈토로덮밥을 하는 곳은 강릉에서는 본 적이 없으니까.
곧 황동빛이 반질거리는 방짜유기(진짜 방짜유기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른다)와 같은 외형을 가진 번쩍거리는 금색 그릇 안에 불향과 간장향이 달콤하게 섞인 향을 내뿜는 항정살 조각들 사이로 영롱한 달걀노른자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수줍게 차곡차곡 쌓여있던 고추냉이가 앉아있는 돈토로덮밥이 등장했다. 항정살 부분 부분에 간장양념의 당분이 카라멜라이징 되어 먹음직스럽게 그을린 부분과 그릇 사이사이에서 올라오는 그을려진 간장의 냄새가 나의 침샘을 더욱 자극했다.
"약간 느끼하다고 느껴지시면 고추냉이를 고기에 살짝 올려 밥과 함께 드시면 더욱 맛있습니다"
친절하게 덮밥을 먹는 요령까지 알려주고 떠나는 친절한 종업원의 인사를 받으며 우리는 재빨리 무기(?)들을 손에 들고 덮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여느 일식이나 중식 덮밥집에서 그러듯이, 고슬 거리는 밥알들은 덮밥의 소스와 함께 군데군데 버무려져 빛나고 있었다. 그 밥알들을 살포시 숟가락에 올리고 큼직한 항정살 덩어리와 고추냉이를 살짝 올려 입안으로 한입 크게 밀어 넣었다.
살며시 느껴지는 훈연향 사이로 달콤하고 짭짤함이 돼지고기의 육즙, 육질과 만나 풍부한 감칠맛을 뿜어냈다. 항정살을 씹으면 씹을수록 육질이 치아 사이로 느껴져서 으적거리는 소리를 내어 거친 것 같지만, 고기의 한결 한결이 씹히면서 고슬 거리는 밥알과 함께 식감이 정말 훌륭했다. 거기에 추천받은 달큼하며 알싸하고 매콤하게까지 느껴지는 갈린 고추냉이가 혀 한 곳에서 이 달달한 간장양념의 맛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니 나는 맛있고 만족스러운 음식을 먹는 반응이 새어 나왔다.
눈을 감고 '음~'하는 묵직한 숨소리와 함께 고개를 수차례 끄덕인다. 그리고 계속 '음~'소리를 내면서 음식을 다 씹고 식도로 넘어갈 때까지 계속 고개를 끄덕인다. 눈을 감고 입안의 감촉과 맛에만 집중하고 싶은 나의 미식 습관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 모습이 참 웃기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맛있으면 자연스럽게 눈이 감긴다, 나는.
"진짜, 맛있다. '진작' 와볼걸 그랬네"
옆에서 나와 같은 돈토로덮밥을 먹고 있던 균이 나의 맛있다는 반응에 함께 동조하며 엄청난 속도로 밥을 먹는다. 덮밥과 함께 나온 국물, 시큼하고 매콤하며 짭짤한 김치찌개로 칼칼하게 입안과 목을 적신다. 마침 비가 많이 오던 그러한, 습기가 공기 중에 가득한 날씨인지라 덮밥의 달큼한 냄새와 김치찌개의 칼칼한 냄새가 한 공기에 섞이며 식탁 위의 풍미가 배가 된다.
아, 맛있는 냄새다. 맛있는 풍미다. 그리고 밥 사이에 숨겨져 있던 작은 버터 조각이 스스로를 뜨겁게 희생하며 흘러나오는 유지방으로 더욱더 밥을 고소하고 감칠맛 넘치게 만든다. 지금은 사라진, 내가 사랑하던 어느 라멘집에서 먹던 차슈덮밥 이후로 이리 맛있는 덮밥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다음에 와보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에는 저 선홍빛으로 이글거리는 뜨거운 돈가스를 먹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우리는 식사 후 다시 회사 건물로 향했다.
진작에서 먹은 돈토로덮밥이 정말 맛있었지만, 단점 한 가지는 그 양이 우리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는 꽤나 적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배를 무엇으로 더 채워야 점심시간을 알차고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나는 충무로의 '점심지대'를 오가던 도중 눈에 밟히던 빵집을 가자고 희와 균을 이끌었다. 간판 사이에 빛나는 하얀 별이 인상적인 작은 베이커리 카페, 원더브레드(Wonder Bread). 'Wonder'라는 그 영어단어처럼 정말 그러한 맛을 나에게 선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나는 홀린 듯이 그곳으로 향했다. 미식 경험을 추구하는 자에게 호기심과 식탐은 최고의 선물이니까.
"제가 여기 오던 중에 작은 사거리에 베이커리 카페가 하나 있던데요, 거기로 가보실래요?"
미식을 추구하는 자가 인도하는 발걸음을 따라서 그들도 홀린 듯이 원더 브레드로 향했다. 이런 도심 한가운데에, 어느 평온한 근교지에 자리 잡을만한 분위기의 베이커리 카페가 있다니, 기뻤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눈앞에 보이는 것은 무수하게 작은 돌멩이들의 탑처럼 쌓인 깜빠뉴, 치아바타와 패스츄리, 크로와상 등등의 오늘 아침에 갓 구워진 것으로 보이는 빵들. 그리고 구수한 밀가루 냄새.
그 사이로 내 눈에 보이는 다양한 종류의 깜빠뉴들, 치아바타들, 특히 올리브와 햇빛에 말린 토마토가 박힌 치아바타들이 내 눈에 들어왔고 그 외에 다른 종류의 빵들도 나를 현혹시키기 시작했다. 초록색 지도창에서 검색해보면 앙버터샌드를 대표 메뉴로 소개하는 빵집이지만, 내 눈에는 거의 식사빵 전문점으로 부르는 것이 다 알맞은 집이었다.
무화과가 푸짐하게 박힌 깜빠뉴, 올리브와 햇빛에 말린 토마토가 잔뜩 박힌 뽀얗고 폭신해 보이는 치아바타들을 보고 있으니, 머릿속으로 누군가 나에게 속삭였다.
'여기는 무조건 맛있어, 집게 안 잡고 뭐해?'
그리고 나는 계속 '홀린' 상태를 유지하며 자연스럽게 빵 집게와 쟁반을 집어 들고 밤 패스츄리, 바질-썬드라이 토마토 치아바타, 올리브 치아바타, 무화과 깜빠뉴를 마구잡이로 담기 시작했다.
우리는 3명이었고, 이미 덮밥을 한 그릇씩 먹은 상태였지만, 나는 자신했다, 나 외에 균과 희가 먹지 않더라도 내가 이 남은 빵들을 다 먹어치울 것이라는 것.
계산을 하면서 직원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안경을 착용하시고 펌을 하신 머리의 남자분께서 빵을 구우시는 사장님으로 내게는 보였고, 나머지 분들은 파트타임 노동자로 보이기에 '빵 굽기 장인과 조수'의 조합으로 보여서, 아직 빵맛을 보지도 않았지만 그들이 구워내는 빵맛에 이유 없는 신뢰감이 생겼다.
다시 본사로 돌아와서 1층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빵이 향긋하게 담긴 종이봉투를 크게 찢어 치아바타와 패스츄리, 깜빠뉴를 입에 밀어 넣었다.
폭신하고 부드러운, 그리고 지루하지 않은 상큼하고 짭짤한 맛의 바질-토마토 치아바타. 바삭하고 마찬가지로 푹신하고 달콤하고 구수한 맛이 어우러진 무화과 깜빠뉴.... 거기에 달콤하고 패스츄리의 결이 겹겹이 입안에 쌓이는 밤 패스츄리... 종류에 상관없이 입안에서 푹신푹신,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을 주는 이들의 밀가루 오케스트라에 나는 이미 멍하니 반해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반드시 또 가야 한다, 기본적이고 담백한 식사빵이 이 정도의 맛이라면 더 다른 맛으로 변형된 빵들은 어떠한 맛일까?'
그리고 며칠 후, 균, 희, 재를 포함한 우리는 다시 충무로의 점심 격전지에서 식사를 마치고 원더브레드로 향했다. 재방문 시 나의 목표는 갈릭 치아바타와 소시지빵, 그리고 바질-토마토 치아바타를 다시 먹는 것. 원더브레드의 빵맛에 함께 매료된 균은 나에게 바질-토마토 치아바타가 굉장한 맛이었다고 하며 재구입하자고 나를 반갑게 부추겼다.
라고 내가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얘기할 만큼 일반적인 마늘연유빵이나 바게트와는 다른 식감과 맛을 가진 훌륭한 치아바타의 변형이었다. 쫄깃하고 폭신한 그 치아바타의 식감에 달콤하고 촉촉한 마늘버터가 그 속까지 녹여져 있으니 그 푹신한 빵을 씹을 때마다 마늘 버터의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에 가득 차서 씹으면서 계속 즐거운 맛이었다.
이 두 집들을 마무리로 이번 연도의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서울 미식 경험은 끝이 났다.
서울의 식문화는 과거와 현재, 국내와 국외를 오가며 다채로운 매력을 자랑한다. 강릉에는 아직 그 정도의 식문화는 없기 때문에, 나는 서울의 그러한 점이 부럽다, 사실로.
서울을 떠나와서 강릉에서 지내고 있는 지금도, 서울에서 경험했던 그 식당들과 음식들이 그리워, 한동안은 서울의 맛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먹고 싶습니다, 다시 봅시다,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