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살부터 지금까지 대학교와 대학원을 거치며언어치료사로 활동하고 있다. 요새는 맘카페와 엄마들 사이에서 언어치료라는 단어가 익숙할 법 하지만, 과거에는 생소한 전공이었다(지금도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건 여전하지만). 항상 남들에게 내 전공을 소개할 때에 "말이 느리거나 발음이 좋지 않거나 친구들이랑 관계형성에 어려움을 보이는 친구들에게,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직업이다."라는 부연설명을 끊임없이 읊고는 했다.
언어치료는 부모님이나 주변에서 하라고 권유한 것이 아닌, 나 스스로 정한 길이었다. 과거 교대에 가고 싶었던 나는 수능이라는 문턱에 가로막혀 새로운 길을 선택해야 했다. 이미 고등학교 과정을 거치며 공부에 있어 혼신을 다했다는 생각으로 재수는 꿈도 꾸지 않았으며, 여러 입시자료와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차라리 특수교사나 보건계열의 전공을 살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건계열도 간호, 물리치료, 작업치료, 치위생, 직업재활 등... 수학은 정말로 낯설었던 문과생인 나에게 교대 외의 전공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동창에게 얼핏 들은 '언어치료'라는 전공은 나에게 마치 블루오션(?)과도 같은 단어였다. 사실 나는 피를 보지 못하고 무서운 것이라면 벌벌 떠는 소심한 성격이다. 대중적인 전공인 간호학과, 물리치료학과 등은 전신 해부를 한다는 커리큘럼을 봤던 터라, 해부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언어치료를 선택한 것도 이유 중 하나. 또한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도전정신이 가득했던 나에게(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언어치료 전공은 그야말로 매력적인 전공이 아닐 수 없었다. 언어치료사로서 풀어낼 이야기는 워낙 많기에, 우선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하겠다.
둘째, 네이버 푸드 인플루언서.
내 20대는 언어치료로 시작해서, 언어치료로 끝났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파릇파릇한 대학교 신입생 때의 기억부터 석사학위 논문을 쓰는 퀭한 대학원생의 기억까지, 나에게 20대의 주 초점은 언어치료에 맞춰져 있었다. 석사학위 논문은 예상은 했지만 정말 힘든 시련의 과정이었으며 그만큼 나 스스로 성장하는 데 있어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해 주었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천신만고 끝에 완성된 석사학위 논문. 논문을 쓰면서 처음으로 '글에서도 사람의 성격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 쓰는 것에 대한 즐거움도 이때 알게 되었다. 다만 전공과 관련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공유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었다. 마침 나에게는 블로그를 열심히 운영하며 패션 인플루언서까지 된 친한 친구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인플루언서라는 단어 자체를 처음 들었는데, 친구가 블로그 포스팅하는 것을 보며 나도 여러 가지 생각을 블로그에 써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친구에게 치킨을 사주며 집에서 블로그의 기본, 인플루언서가 되는 팁, 카테고리 작성 등 다양한 내용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물론 한 번에 다 이해하지는 못 했다).
블로그의 이름은 쉬어가도 괜찮아.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내가 직접 지은 이름이었다. 거기에 닉네임은 커틀렛러브. 예전부터 돈가스를 좋아해서 '돈가스러버', '돈가스선배'로 소문이 날 정도로 소울푸드에 해당하는 돈가스를 사용하여 직관적인 이름으로 지었다. 물론 기념적인 첫 포스팅 또한 돈가스로 시작. 블로그 포스팅을 하며 처음으로 "글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처음 글을 쓴 게 아닌 것 같다.", "블로그 내에서의 말투가 동화작가 같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인지, 이러한 피드백을 받으니 나 또한 자신감이 붙으며 한 달 동안 1일 1 포스팅을 작성할 정도였다.
(현재도 운영하고 있는 네이버 인플루언서 홈 화면)
블로그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가 될 무렵 방문자수가 300명 이상, 포스팅에 댓글이 총 100개 이상 달릴 정도로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쯤 인플루언서에 대해 도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수익도 창 줄 하고 뭔가 있어 보이는 인플루언서라니! 내 블로그는 99% 음식 위주였기 때문에, 푸드 인플루언서로 당장 지원을 했다. 첫 번째 도전은 실패로 끝났으나, 곧바로 신청한 두 번째 도전에서 푸드 인플루언서로 선정되었다는 합격 메일을 받게 되었다.
당시 인플루언서 선정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았으나, 일 방문자수 1000명 이상, 3개월 이상의 블로그 운영 등 나름 까다로운 조건들이 인터넷 사이에서 공식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런데 일 방문자수 약 300명, 블로그를 개설한 지 1달이 조금 지난 내가 인플루언서에 선정되다니. 내 글이 네이버 측에서도 통하는 건가(?)라는 생각과 내가 작성한 글에 대한 뿌듯함, 뭐든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였을 때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등은 이때부터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고 셋째, 그림책작가.
내가 그림책작가가 되기까지는 이렇게 다양한 경험과 과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기는 하나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 이 경험들을 빠트릴 수 없었다. 이색적인 경력이 있는 내가 어떻게 그림책작가가 되었을까? 나 스스로도 한 번씩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비전공자로서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다음 글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