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은 자존감의 영역
나는 직장 생활이 힘들 때마다 유튜브를 많이 찾아본다. 조연을 얻으려고 보는 것도 있고, 괜히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찾아보면 위로가 되는 것 같아서 그런 것도 있다. 수많은 영상들 중에서도 나는 김미경 강사님의 영상을 꼭 챙겨 보곤 한다. <헬직장 생존법> 이라고 직장 생활 문제에 관한 주제로만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영상이 있다. 영상을 보다가 나를 멈추게 했던 부분은 '나를 무너지게 하는 직장' 이라는 말이다. 과연 직장에서 안 무너져본 사람이 있을까? 난 수도 없이 무너져 봤고 지금도 무너지는 중이다.
자존감과 직장의 영역
언제부턴가 자존감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사람들은 좀 더 개인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하고 존중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이게 밖으로의 욕구라면 자존감은 좀 더 안으로의 욕구다. 내 안에서 내가 나를 인정하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마음이다. 그런데 이 자존감은 아이러니하게 바깥에서 받는 자극들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내가 속한 집단 안에서 내가 쓸모 있는 인간이라고 느낄 때 자존감은 올라간다. 반대로 그 집단 안에서 나의 역할이 없다고 느낄 때 자존감은 곤두박질을 친다.
자존감은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그래서 학생의 경우에는 성적과 친구가 곧 나의 자존감이며, 성인의 경우 자신의 커리어가 자존감이다. 전업주부의 경우 그분들의 사회는 가정이기 때문에 가족에게 자신이 인정받는다고 느낄 때 자존감이 올라간다. 물론 번외로 돈이 자존감인 사람도 있다. 직장인이건 프리 랜서건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필연적으로 job이라는 걸 갖게 된다. 자존감이란 벤다이어그램 안에 일이 존재한다. 이것은 곧 일이 자존감에 영향을 주는 문제는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도망치라는 신호
나의 페르소나는 여러 가지다. 일하는 나. 혼자일 때의 나.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의 나. 이 중 우리가 하루의 1/3 이상을 보내는 곳이 직장이다. 그곳에서의 페르소나가 지켜지지 못하면 전체적인 '나' 라는 페르소나 위태로워진다. 나도 직장에서 맨날 혼나고 구박만 먹을 때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느껴지지만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을 때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순전히 일적으로 잘못한 것에 대한 피드백이라면 그건 나의 자존감을 무너지게 한다고 할 수 없다. 지금 당장은 무너지더라도 결국 내가 발전하는 길일 테니까 말이다.
문제는 '일' 이 아닌 ' 기분 '을 건드릴 때다. 사람들은 모두 감각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이 사람이 지금 나를 일로써 지적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을 트집 잡아 '나'를 잡는 것인지 정도는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분명 일에 대해 말하는데 이상하게 싸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경우다. 집에 두고 온 나의 성격까지 욱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화를 꾹꾹 참는다. 결국 화병이 되고 시간이 오래되면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도 오는 경우도 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우리는 일 때문에 죽을 것 같다. 얼마 전 회사원들의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 출근하는데 차가 제 쪽으로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차라리 교통사고라도 나서 출근을 못했으면 좋겠어요.."
이 글을 보는데 무서우면서도 공감이 갔다. 이런 경우라면 당장 오늘이라도 퇴사하는 게 맞지만 사실 나도 매일 이런 마음으로 그만두지 못하고 다니는 처지이니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다. 나도 똑같다. 다음날 출근만 생각하면 잠이 안 오고 그 사람이랑 일할 생각만 하면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나도 알고는 있다. 이건 빨리 도망치라는 신호임을.
퇴사 준비는 지능순
퇴사는 지능순 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퇴사에 대한 결심을 한층 더 확고히 해주는 말인 거 같다. 그런데 나는 이걸 좀 더 풀어서 설명하고 싶다. 퇴사는 지능순 이라는 이 말을 현명한 사람은 자신을 회사에 기대지 않고 좀 더 일찍 퇴사를 준비한다는 뜻 으로 말하고 싶다. 회사라는 울타리가 사회적으로는 안전할지 몰라도 내 정신적으로는 굉장히 불안전한 곳이다. 마치 깊은 산속에서 밤을 보낼 때 언제 어디서 맹수가 나타날지 몰라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하루의 8시간을 그러고 있는 거니까 하루 종일 앉아만 있었는데도 저녁이 되면 온몸의 기력이 다 빠지는 게 당연하다. 맹수를 안 만날 수는 없다. 운이 나쁘면 만나는 거다. 그러니 똑똑한 우리들은 이 위험한 섬에서 도망칠 준비를 하루라도 빨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