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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기복이 May 30. 2022

직장 생활은 도를 닦는 과정

사리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참자.... 참자..... 오늘만 참자.....





이번 주제로 글을 쓰려고 생각하다가 문득 신기하게도 몇 년 전에 봤던 드라마 속 장면이 하나 생각났다. 


너 여기서 득도 못해. 나 같은 지랄 맞은 여편네랑 살아봐야 득도하지. 이런 산골에 처박혀서 득도 못해.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 속 대사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잠깐 이 대사가 나온 장면을 설명하자면, 극 중 한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스님이 되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아직도 그 남자를 잊지 못한다. 그래서 여자가 그 남자가 있는 절에 찾아가서 했던 말이다.  








직장은 인내심을 시험하는 곳이다


산속에 들어가서 도를 닦으시는 분들을 보면 작은 방 하나에 식사도 안 하고 나오지도 않는다고 들은 적이 있다. 어느 스님은 일주일을 물로만 버티셨다고 들었다. 그분들에게는 속세를 떠나 조용한 곳에서 번뇌를 없애고 스스로를 가두고 자신과 싸우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으시는 것 같았다. 감히 이 분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나도 중생으로서 나름 도를 닦으며 살고 있다.


직장인의 주문은 아브라카다브라 가 아니다. '참자... 이번만 참자...후....' 이게 직장인의 주문이다. 직장인은 참고 또 참는 과정으로 도를 닦는다. 직장이란 매일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곳이다. 직장인으로 산다는 것은 매일 나와 싸우는 과정이다. 하기 싫은 출근을 해야 하고 , 아무리 아파도 직장 가서 쓰러져야 하며, 누군가 나한테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쳐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중생에게는 이게 마음 수련이다. 이 짓을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해야 하나 막막하면서 우리는 십몇년째 득도하는 중이다. 꼭 세속적인 인연을 끊어야지만 득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돈이 우리를 득도하게 만들 수 도 있다.





득도는 직장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위의 대사 속 지랄 맞은 여편네가 바로 직장이다. 비속어는 쓰기 싫지만 맞는 말이라 부정은 못하겠다. 나는 내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곱게 산 것인지 알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세상의 거침이 묻었다. 그리고 나도 다친 곳에 땜질을 해가며 살다 보니 순식간에 어른이 되었다. 만약 내가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이런저런 산전수전도 겪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얌전하고 세상에 무서운 것이 많은 아이였을 것이다.


농담으로 집에서 가끔 이런 말을 한다. " 내가 직장생활 십 년 하고 득도했어ㅋㅋ"  실제로 정말 득도를 했겠냐만은 그만큼 사람이 많이 변했다는 애기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직장 생활 10년이 제일 다이내믹했다. 울고 웃고,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했던 것 같다. 감성기복이라는 저 필명이 그냥 나온게 아니다. 직장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날은 온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다가 또 괜찮은 날은 기분이 좋았다가 한다. 그속에서 평정심을 지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자신과 싸운다. 이 과정이 득도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득도 중인 직장인의 소감


회사에 다니고 심장이 자주 두근거린다. 화가 나는 일이 많아질수록 그 화를 혼자 삭여야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더 그렇다. 카페인 때문인가? 라고도 생각했는데 이젠 커피도 안 마시고 아무 일도 없는 쉬는 날에도 두근거리는 걸 보면 스트레스성인 듯하다. 사실 회사를 안 가는 날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직장인이 제일 행복한 날은 금요일 오후다. 토요일은 정신없이 누워있느라 그냥 훅 가고 일요일은 내일 회사 갈 생각에 기분이 나쁘다. 그러니까 제일 설렐 때는 주말을 앞둔 금요일 퇴근 1시간 전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행복한 날이 있지 라며 정신승리를 하고 있다.


직장을 다니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시련과 깨달음의 과정이 남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세상에 놀랄 일도 많이 없어졌다. 너무 슬프다고 느끼는 것도 없고, 크게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다. 이렇게 점점 무뎌져 가는 과정이 득도인 것인가. 그런데 득도의 부작용도 있다. 웃음도 함께 사라진 다는 것. 예전에는 말똥만 굴러가도 웃었는데 지금은 배꼽 빠지게 웃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대신 내가 포항에 가지 않고도 내 멘탈은 단단해지고 있으며 일이 바빠 잡생각이 없어지고, 긴 머리를 유지하면서도 득도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직장인으로서 득도하는 것의 장점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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