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이 곧 인사고과다
직장 내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은 중요하다. 그냥 툭 던지는 말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나와 같이 일한 동료들이 무심코 나에 대해 가볍게 툭툭하고 다니는 말들이 결국 나의 평판이 된다. 보이지 않는 인사고과나 다름없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인사고과보다도 더 무서울 수 있다.
사내 평판의 중요성
직장은 돌고 돈다. 모두 건너 건너면 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모르는 사람인데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팀의 인사발령이 있으면 사람들이 유독 말이 많아진다. 발령도 전에 우리 팀에 어떤 사람이 오는지에 대한 소문이 순식간에 퍼진다. 직접 같이 일해보기도 전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생긴다. 나 역시도 새로운 곳에 갈 때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사람이다. 혹여 거기 누구랑 같이 일한 사람이 그렇게 힘들어했다더라라는 말이라도 들으면 걱정이 되었다. 가서도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고 괜찮아 보여도 경계하는 마음을 쉽게 풀 수가 없었다.
내가 다른 직원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쉽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나에 대한 얘기도 쉽게 퍼져나고 있다는 말이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이름을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는 다른 팀의 상사가 나를 알고 있었다. 상사들끼리의 회의에서 우리 팀의 상사가 내 이야기를 해서 그때부터 나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데 무섭다고 해야 하나. 기분이 참 묘했다. 좋은 소문으로 내가 유명해진 거면 다행이지만 안 좋은 소문인 거면 그 꼬리표가 계속 따라다닌다. 그 상사는 회의에서 나의 단점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게 소문이 나서 내 꼬리표가 되어 따라다녔다. 다른 상사를 만나도 그들은 이미 나의 단점에만 집중하고 있었고 나를 겪어보기도 전에 그것을 들추어 내곤 했다. 그 이미지를 벗어버리는데 정말 많은 노력과 많은 시간이 들었다.
평판에 치명적인 것 (1) 험담
절대 먼저 남의 흉을 보면 안 된다. 뒷담은 항상 하는 사람들끼리 한다. 내가 말을 했는데 상대가 반응이 있어야 티키타카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과연 다른 사람에게 내 말은 안 할까? 장담하건대 나와 함께 타인의 험담을 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가서도 내 험담을 할 확률이 99.9프로다. 여기까지는 다 아는 사실일 거다. 더 팩폭을 하자면 험담을 같이 했던 그 사람은 나에게 '뒷담 하는 사람 '이라는 프레임을 씌울 것이다. 자신도 같이 했으면서 말이다. 그럼 내 평판 중 하나가 '뒷담 잘 하는 애' 가 되는 거다.
평판에 치명적인 것 (2) 불평불만
회사를 다니다 보면 불만이 없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고충을 나눌 사람도 필요하다. 이런 불만들을 새어나갈 위험이 없는 가족에게 털어놓거나 개인적인 친구한테 털어놓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공감을 해줄 수가 없다. 현재 나와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만이 가장 대화가 잘 통한다. 아예 입을 닫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단 오래 보고 신뢰가 쌓이고 믿을 만한 사람한테 털어놓아야 한다. 고충을 나눌만한 동료를 찾는 것도 시간이 오래 필요하다.
요즘은 많이 달라진 것 같지만 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다.
"퇴사를 할 때 그 이유를 솔직하게 말하지 마라"
퇴사를 하게 되면 상급자와 퇴사 면담이란 것을 한다. 그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 "왜 퇴사를 하려고 하냐" 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질문자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때 솔직하게 다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어차피 자신은 나갈 거고, 이때다 싶어 누가 마음에 안 들고 이 회사의 무엇이 불만인지를 다 털어놓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하면 자신의 속은 편할지 몰라도 퇴사할 때 한쪽 귀가 간지러울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좁다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정말 좁냐고? 정말 좁다. 특히 같은 직종으로 이직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이렇게 나오면 더욱더 안된다. 한국 사회도 좁은데 직업사회는 더 좁다. 퇴사하면 끝이 아니다. 내가 전 직장에서 구축해 놓은 이미지가 곧 내 이력서다.
평판을 좋게 만드는 법 : 모난 돌 다듬기
평판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 가면을 쓰라는 건 아니다. 단 모난 사람은 아니여야 한다. 내 성격이 조금 튀는 성격이라면 그것을 다듬을 필요는 있다. 직장 생활을 하기에는 튀지 않는 성격이 살아남기 편하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말이다. 우리에게도 보호색이 필요하다. 튀지 않는 사람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지 않는 편이니 누군가에 입에 오르내릴 일도 적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나를 많이 알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를 모르는 사람이 많은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좋은 평판이 아니라면 아예 평판이 없는 게 나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소수가 평판을 만든다
그렇다고 평판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평판이란 말 글대로 다른 사람들의 평가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그냥 싫어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내가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도 될 수 있으면 적을 안 만드는 게 좋다. 절대 안 만들면 좋겠지만 그런 원칙을 세우다 보면 항상 내가 져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절대'라는 말은 쓰지 않겠다. 좋은 사람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모인다는 말이 있다. 회사에서도 똑같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된다. 다른 직원의 실수를 덮어주고 힘들 때 위로해 주면 나도 언젠가 똑같은 위로를 받을 순간이 온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내 주위에 남은 좋은 사람들이 내 평판을 만들어 준다. 물론 회사는 삭막한 곳이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이 다니는 곳이다. 아무리 별로인 회사도 다 나쁜 사람만 있지는 않다. 지내다 보면 좋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몇몇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은 진심이라도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그 노력하는 모습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이 결국 나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