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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기복이 May 12. 2022

회사에서 점점 말이 없어지는 이유

침묵이라는 방어 기술

한석율이 침묵을 택한 이유



나는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참 좋아했다. 미생에는 신입사원 4인방이 나온다. 그중에 주인공은 장그래다. 나는 개인적으로 주인공인 장그래보다 한석율이라는 캐릭터를 더 좋아한다. 변요한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그 이유 중 하나였으며 미생에서 그려지는 캐릭터의 성격과 서사가 나머지 이유였다. 드라마 초반에 보면 한석율은 어딜 가나 튀는 친구다. 그 누구 앞에서도 절대 주눅 들지 않는다. 물론 회사에서 피티를 진행할 때 불안에 떠는 의외의 모습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자신감 넘친다. 요즘 말로 인싸인 거다. 이런 한석율이 사수를 잘못 만나면서부터 점점 변해간다. 기세등등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매일 축 처진 어깨로 회사를 오간다.


미생에서 신입사원 4인방이 있다면 직속 사수 4인방도 등장한다. 그중 최악의 사수가 한석율의 직속 사수인 성대리다. 성대리는 한석율에게 온갖 부당한 일은 다 시킨다. 한석율은 참다 참다 성대리를 익명 게시판에 고발한다. 하지만 결국 그로 인해 자신의 입지가 더 좁아진다. 오히려 나쁜 후배로 궁지에 몰려 버린다. 성대리의 모욕적인 폭언과 부당한 업무지시는 날로 심해져 간다. 마침내 성대리는 아무도 누르지 못할 것 같았던 석율의 자존감을 눌러버린다. 그렇게 수다스럽던 석율이 입을 닫는다. 더 이상 웃지도 않는다. 회사에서는 온종일 한숨과 침묵뿐이다.









침묵은 나를 지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왜 한석율은 침묵을 택했을까? 팩트는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힘없는 말단 사원이 혼자 싸워봤자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조직에서는 직함이 힘이다. 한석율도 그 무기력함을 느꼈고, 버티기 위해 침묵을 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한석율과 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나는 표정이 없다. 그래서 무슨 안 좋은 일 있냐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만큼 내 표정이 어두워 보인다는 것일 거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임을 아무도 모를 거다.


직장에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함부로 마음을 놓았다가 누군가 훅 치고 들어오면 그 상처와 실망감은 열배 스무 배가 된다. 그런 걸 알면서도 매번 처음에는 모든 사람에게 착한 사람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몇 사람에게 된통 당하고 나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예전보다 지금은 그 문을 닫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제 상처받는 것도 지치기 때문이다. 직장에는 괜찮은 동료도 많지만 그만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옳고 그들이 틀렸다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모두가 내 맘 같을 수는 없다고 차치할 뿐이다. 이런 곳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나를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그들과 최대한 멀어지는 것이다.









상처를 안 받기 위해 로봇이 되었다.

상처라는 것은 받으면 받을수록 무뎌지는 것이 아니다. 상처라는 것은 받을수록 덧나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한지도 꽤 됐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많이 만나 봤으니 이제는 누구를 만나도 잘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고 오만이었다. 매번 비슷하면서도 결이 다른 사람들이 결이 다른 상처를 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작은 상처에도 반응했다. 그리고 또 나를 방어해야만 했다. 나도 처음에는 한석율처럼 뭣 모르고 정면 승부를 보고자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 조직 안에서 나만 이방인으로 찍힐 뿐이었다. 그다음부터는 침묵을 택했다. 이야깃거리가 될 말을 하지 않았고 몸짓 하나하나까지 조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네' 봇이 되어 있었고 만만해 보이는 사람이 되어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나마 그게 나를 지켜내는 최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직장에서 최대한 힘을 빼지 않는게 좋다. 그 방법은 감정을 빼는 거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는 거다. 그렇다면 나의 감정을 흔드는 그 사람을 막아야 하는데 저 사람의 입을 막을 수는 없으니 내 입을 막는 수밖에 없다. 상대가 열을 올리며 나에게 성을 내도 나는 최대한 일관된 표정으로 차분하게 대응한다. 속은 화가 나고 억울하다. 하지만 그 순간 로봇이 되어야 한다. 감정 없는 로봇. 이게 무슨 효과가 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의외로 꽤 효과가 있다. 화를 겉으로 꺼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극에 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동료는 동료일 뿐 오해하지 말자

침묵과 동시에 웃음도 사라진다. 더 이상 이 조직에 적응하려는 노력도 신물이 난다. 가끔 보면 회사에서 친구를 만들려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러려고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동료가 친구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설사 친구가 된다 하더라도 공적인 감정을 완전히 배제시킬 수는 없다. 나도 한때는 친해지려고 노력했던 때가 있었다. 친구가 될 줄 알았다. 그 사람들 중 지금 친구로서 지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직장에서는 서로 기대가 없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도 그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덜 느낀다. 이 상태만으로도 일하는데 크게 지장이 없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사이가 직장에서는 딱 좋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인간관계는 멀지도 않고 가깝지고 않게 대하는 게 제일 좋다고 한다. 그러나 직장에서는 이조차 예외다. 무조건 멀수록 좋다. 물론 마음의 거리를 말하는 거다. 겉으로는 동료들과 불편함 없이 지내도 심리적으로는 무조건 멀어져야 한다. 내가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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