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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기복이 May 27. 2022

평범한 직장인을 추앙하는 이유

우리끼리 합시다  추앙

내가 당신을 추앙하는 이유



새벽 6시쯤 서울로 나가는 빨간 좌석버스를 타면 사람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었다. 겨울이면 아직 해도 안 뜬 그 컴컴한 시간에 다들 머리도 못 말린 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버스 기점에서 몇 정거장 뒤에 탄다. 그런데 머지않아 좌석이 꽉 차고 그다음에 탄 사람들은 선 채로 간다. 버스 손잡이가 모자랄 정도로 콩나물시루가 된다. 내가 나름 일찍 출근하는 거라 부지런히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미생의 장그래 말처럼 '세상은 나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원치 않은 워커홀릭


모든 직장인들은 열심히 일한다. 아무리 대학 때 놀고 아무리 빈둥빈둥한 사람도 사회 나와서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공부를 하고 안 하고는 나의 선택이었지만 일은 내 선택이 아니다. 내가 뽑혀서 이곳에 와 있으면 시키는 건 무조건 해야 한다. 거기다 '잘' 해야 한다. 내가 대충 일하도록 위에서 내버려 두지를 않는다. 꾸역꾸역 닥치는 대로 일 할 뿐이다. 어릴 때는 아침에 커피 한잔과 빵 하나를 사들고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보면 그 모습이 그렇게 멋있고 부러워 보였다. 그런데 이젠 안다. 그것은 멋이 아닌 밥을 먹을 시간이 없어서 라는  슬픈 사실을.


웃긴 얘기지만 직장을 다닌 이후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여기서 일하는 만큼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를 가지 않았을까' 모든 직장인들이 한 번씩은 하는 이야기다. 남직원들은 사이에서는 군대와 회사를 두고 어디가 더 버티기 힘든가 하는 얘기들도 종종 나오곤 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회사보다 군대가 낫다는 사람이 많았다는 거다. 그래서 그런가. 예비군 가는 날들을 그렇게 좋아라 했다.




직장인의 시간은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


하루는 24시간이다. 이걸 삼등분으로 쪼개 본다. 그럼 8시간씩이다. 여기서 8시간은 수면 시간이라고 치고 나머지 9시간은 식사시간 포함해 회사에 있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직장을 다녀도 하루에 7시간이라는 시간이 남는다. 그런데 왜 시간이 없는 걸까? 그 남는 8시간 중 기본 2시간은 출퇴근 시간으로 잡자. 그러면 나머지 5시간이 남는다. 문제는 이 5시간이 온통 밤 시간이라는 거다.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 그것도 밤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퇴근하고 운동이라도 1시간 하면 금방 8시가 넘는 건 기본이다. 저녁 먹고 씻고 뭐하고 하면 잘 시간이다. 그리고 자고 깨면 다시 출근시간이다.  


직장인으로 살면서 인생의 허무함을 많이 느낀다. 나는 일하기 위해 태어난 것인가. 이런 생활을 정년까지 해야 한다면 사는 의미가 뭔가 라는 생각까지 갔었다.  8시간 동안 일하는데도 매일 할 일이 어찌나 많고 어디서 그렇게 자꾸 새로운 일들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직장을 들어오고 나서 시간이 제일 빨리 간다. 지금도 2022년이 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상반기가 거의 지나가고 있다. 작년에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피를 뽑은 그 따끔함이 아직 생생한데 또 건강검진을 하라 그러고, 연말정산 종이에 잉크도 안 마른 것 같은데 얼마 뒤면 다시 연말정산을 할 시기다.




우리들의 영웅


지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은 임영웅 일거다. 그런데 세상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숨어있다. 오늘 지각한 박대리도, 나를 갈구는 김과장님도 지옥철을 함께 탄 이 모든 사람들이 다 영웅들이다. 먹고 살기 위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따분한 하루를 수천번 지속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다. 모두들 태어난 이후로 가장 열심히 살고 있다. 아이를 낳아 본 엄마들은 무서울 게 없다고 한다. 그만큼 출산의 고통이 크다는 것을 말하는 거다. 회사를 다니며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이만큼 버티고 열심히 하면 세상에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속 히어로들을 보면 혼자 모든 것을 다한다. 사람도 구하고, 지구도 구하고, 악당도 물리친다. 초능력이 있다. 가끔 나는 직장인들도 영화 속 히어러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출근 카드를 찍는 순간부터 할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눈치도 봐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인간관계도 잘해야 한다. 나를 돌 볼 겨를도 없다. 배고픈 것도 잊으면서 일하는 게 다반사다. 스파이더맨과 어벤저스만 영화제에 가는 게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칸에 갈지도 모른다.










평범한 직장인을 추앙하는 이유


요즘 어떤 드라마 때문에 '추앙'이라는 말이 뜨고 있다. 추앙 이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용어는 아니다. 듣기만 해도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웅장 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드라마 속에서는 '사랑'의 동의어로 '추앙'이라는 말을 쓴 것 같다.  '추앙'이라는 말의 본래 뜻은 높이 받들어 우러러봄이다. 나는 정말로 추앙받아야 할 사람들이 우리 옆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어두운 시간 새벽 버스에서 내가 유독 눈이 갔던 사람들이 있다. 50대가 넘어 보이는 아저씨들이었다. 보기만 해도 풍채에서 몇십 년간 짊어져온 가장의 무게가 느껴진다. 저분들은 도대체 얼마나 저 불편한 양복을 입고 출퇴근을 반복했던 걸까? 그렇게 위대해 보이고 존경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한 직장을 20년 30년 다닌다는 게 말이 쉽지 나라면 절대 못할 것 같았다.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그 오랜 세월을 버텨내기에는 너무 가혹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내가 직장을 다녀 보니까 든다.


직장 생활이란 게 시간이 간다고 쉬워지는 게 아니다.  항상 내 위에는 누군가가 있고 새로운 위치에 맞게 새로운 일들이 주어진다. 오히려 연차가 쌓일수록 더 어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을 매일매일 도장깨기 하듯 버텨내기가 결코 평탄하지 않다. 사람의 멘탈은 본래 쿠쿠다스인 게 당연한데 자꾸 포스코 철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포켓몬도 아닌데 회사 안에서 우리는 계속 진화해야 한다. 어쩌면 평범하다고 불리는 직장인들이 제일 대단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를 추앙할 수밖에.








모든 직장인들은 위대하다. 회사를 다니는 몇십만 명의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어린 시절 자신이 이만큼의 일들을 다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일들을 해내고 있고 거기다 인정까지 받으며 일하고 있다. 이만큼의 멀티 플레이어가 또 있을까? 직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사람이라면 앞으로 세상 모진 풍파에 견디는 힘을 얻는다.  그러니 이쯤되면 자부심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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