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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기복이 May 15. 2022

사내 왕따 (직장 내 괴롭힘)

당장 도망치세요

도망치세요. 당신 탓이 아닙니다.



직장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평생 직장 생활을 하며 이것만은 안 겪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직장 내 괴롭힘이다. 누군가가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은따 정도부터 뉴스에 나올 만한 심각한 괴롭힘까지, 그 경우의 수를 다 따질 수 없이 괴롭힘의 모습은 다양하다. 다 큰 어른들끼리 왜 이러는지 이해를 할 수 없지만 남의 일이 아닐 만큼 흔하다. 그리고 나도 피해자였다.







생각보다 미성숙한 어른들이 많다

학교 다닐 때 왕따를 주도하는 애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아직 어려서 저런 짓을 부끄러움 없이 하는 거겠지 내지는 철없는 나이에 과시욕 때문에 그러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왕따'라는 유치한 괴롭힘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어른들도 때에 따라 작정하고 유치해졌다. 아니 오히려 유치한 모습이 없는 사람들을 찾기가 힘들었다. 좋은 어른은 다들 어디 갔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정말 좋은 어른들은 이 사회에 질려 산속에 숨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른이 되어 본 사회는 결코 좋은 어른들이 주도하는 사회가 아니었다. 오히려 착하다 싶은 사람한테 호구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오죽 좋은 어른이 희귀하면 <나의 아저씨> 같은 드라마도 나왔겠나. 여러분 제가 살짝 장담하지만 <나의 아저씨> 속에 박동훈 같은 상사는 없답니다....ㅠㅠ


이 세상에서 착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 착함이 승리한다고 믿어왔다. 아직 인생을 끝까지 안 살았으니 이 세상이 정말 인과응보대로 돌아가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내가 본 현실은 착한 사람들을 더 만만하게 보고, 그들이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이유를 '착해서' 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른 이유가 있다. 그런데 그것을 빌미 삼아 괴롭힘으로 발산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볼 때 그 사람이 약자여서 그런 거다.



언제든 내 일이 될 수 있다

나도 사내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 모두에게는 아니고 부서의 한 90%의 사람들에게. 모두한테 당한 거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왜냐면 나머지 10%의 사람들은 어느 편도 아니었지만 나에게 그다지 도움을 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가 애초부터 그들과 친해지지 못한 게 잘못이라고 했다. 나는 주동자에게 폭언을 들었고 그걸 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방관했다. 그들이 말한 왕따의 이유는 편애였다. 결국 시비로 인해 다툼이 생겼고 나의 왕따는 공식화 되었다. 그 후 그들은 자신들이 사과하는 것처럼 일을 마무리 지었지만 방법은 더 교묘해졌다. 내가 보는 앞에서 나만 뺀 회식을 하고, 대놓고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상황을 일부러 만들었다. 나는 신고하고 싶었지만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조차도 하지 못했다. 결국 오랜 시간 고스란히 그것을 감당해 내야만 했다.


그렇게 견뎌낸 왕따의 결말은 어땠을까. 직장의 문제는 내 인생으로까지 침범했다. 한 공간에서 부정당하는 것이었지만 이 세상에서 부정당하는 느낌이었고 모든 게 내 잘못 같았다. 비난도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때 제일 화가 났던 말이 "그래도 버텨라" 였다. 사람들은 말했다. 밥벌이는 신성하다고 그래서 그런 일정도는 버텨야 한다고. 이 말이 나를 더 절망에 빠뜨리게 했다.


다행히도 그 후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나름 힐링도 되고 어느 정도는 다시 내 기분을 찾을 수 있었지만 그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었다. 나는 항상 두려워하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경계했고 몇 번을 만나도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 내 행동을 한없이 조심하게 되었고 작은 말이라도 실수할까 봐 소극적으로 변했다. 언제 또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있었다.








도망치세요. 당신 탓이 아닙니다.

나는 직장 내 괴롭힘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제발 도망치세요. 그 우울감이 자신의 인생 모두를 집어삼키기 전에 무조건 도망치세요.

직장 내 괴롭힘은 답이 없다. 도와줄 사람도 거의 없다. 자신의 안위를 걸고 도와줄 동료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는 담임 선생님이라도 있지, 직장은 상사한테 말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결국 피해자들이 '자기 탓'을 하게 된다. 내가 못나서, 내가 당할만해서 당한 거라고, 회사의 분위기가 그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절대 그들의 탓이 아니다. 무슨 이유에서라도 괴롭힘이라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충분히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인들이다. 그들이 그런 폭력적인 행위를 택한 것은 어떠한 이유라도 정당화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자기 부정과 자기학대가 무서운 것은 그 일 하나로 자신이 살아온 모든 날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 생각은 '나는 앞으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무기력함을 느끼게 한다. 절망감이 심해지면 무망감이 된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고 느낀다. 이미 고통으로도 지칠 대로 지쳤는데 퇴사를 한다고 해도 이미 나한테 실망한 나머지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뉴스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들의 마음이 어느정도까지 바닥으로 떨어젔는지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나의 인생을 부정하는 데까지 갔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는 후회한다. 그때 도망치지 않은 것을. 이것쯤은 별거 아니야 하고 넘기고 넘겼던 것을 후회한다. 그때의 나도 그랬고 아마 이런 상황에서 퇴사를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당장 생계 때문일거다.  그런데 세상 죽으란 법은 없다. 살 길은 얼마든지 있다. 살 길을 찾을 힘이라도 있을 때 차라리 나와서 찾는 게 낫다. 다른 일을 찾아서 나오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렇게 안되더라도 무조건 나와야 한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와야 한다. 나를 잃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나를 지킬 수 있을 때 지켜야 한다. 버티는 것은 오답이다. 절대 버티는 것을 선택지로 놓고 갈등하지 말아야 한다.








살다 보면 좋은 날도, 따뜻한 사람도 있다

세상은 살만하다고 느끼면 살만하지만 힘들다고 느끼면 한없이 살기 싫어지는 곳이다. 지금 당장 안 좋은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세상은 '살지 못할 곳'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한테 받은 상처는 사람한테서 치유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결국 내가 다시 힘을 내게 된 것도 좋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이면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좋은 어른은 없다고 해놓고 이게 무슨 말이냐 할 수도 있다. 물론 지금 말하는 좋은 어른도 박동훈 같은 어른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악한 마음을 가지지는 않은 보통의 어른을 말하는 거다.


세상에는 나름 좋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 지금 이 사람들과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지만 결국 지나간다는 것, 이것만 알아도 한결 살만해진다. 나도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가 또 안 좋은 상황을 만났다가를 반복한다. 하지만 그 흑백 필름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란 것을 이젠 알기에 전처럼 이성을 놓고 고통스러워하지는 않는다. 이 상황은 지나갈 거고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온다는 것만 믿어도 조금 숨통이 트인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는 도망치는 옵션이 항상 열려 있다. 난 언제든지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글로 내가 주고 싶은 메시지는 단 하나다. 버티지 말고 도망가자. 우리 모두 판단력 있는 어른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부당하다는 것쯤은 알아차릴 수 있다. 여기서도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면 안 된다. 그러다가 도망갈 타이밍을 놓친다. 절대 별거 아닌 일이 아니니 별거 아닌 일처럼 생각하려고 노력하지도 말자. 끝까지 버티는 게 이기는 거라는 무모한 말도 믿지 말자. 위험할 때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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