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이슈 / 김기수_강원새학교넷 연수국장·강릉 운산초 교사
0. 연수가 사라졌다.
전역하고 복직한 2018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학교 현장이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바뀐 걸 하나부터 열까지 밤을 지새우며 나열할 수 있지만, 가장 아쉬운 변화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연수입니다. 연수가 사라졌습니다. 집합 연수도, 숙박 연수도, 전국 단위 연수도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연수 주제의 다양성도 크게 줄었습니다. 연수가 사라지니 교사 전문성을 가꾸어 키울 기회가 줄었습니다. 전역을 하자마자 교사 전문성을 키우려고 수많은 연수를 찾아다녔습니다. 지금 전역하고 복직하는 선생님들은 다른 상황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뿐만 아니라 배움을 일구어 더 나은 교사가 되고 싶은 교사들은 길을 잃었습니다.
연수는 단순히 배움의 장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연수를 받으며 함께 연결됩니다. 선후배 교사, 동료 교사가 모여 공부하고 학교살이와 삶을 나누는 과정은 교사 공동체를 느슨하게, 때로는 단단하게 연결하는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연수가 사라지고 교사 공동체는 급속히 무너졌습니다. 교사 공동체의 붕괴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상처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연수가 사라진 이유가 많으나 코로나19 영향이 컸습니다. 코로나19는 온라인 원격 연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제 멀리 이동하지 않고서도 다양한 연수를 들을 수 있겠구나’ 새 시대를 맞아 설레고 들떴으나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원격 연수의 효용성이 낮은 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가 끝나도 연수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시기에 발령받은 신규 교사들은 집합 연수, 숙박 연수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라진 연수가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연수입니다.
사라진 연수를 찾아야 합니다. 변화한 시대에 맞추어 새로이 연수를 가꾸어야 합니다. 연수를 다시 교사들 곁에 두어야 합니다. 새로운 연수, 강원새로운학교네트워크 연수국에서 고민했습니다.
1. 온라인 연수의 새로운 모델, 플레이리스트
온라인 연수의 장점은 확실합니다. 우리는 온라인에서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더 다양한 주제로 만날 수 있습니다. 강원 새학교넷은 온라인 연수를 새롭게 기획했습니다. 먼저 기존 온라인 연수의 문제점을 분석했습니다. 온라인 연수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녹화된 원격 연수 영상을 시청하는 형태입니다. 다른 하나는 ZOOM에 모여 강사의 강의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입니다. 두 형태의 원격 연수는 아래와 같은 장단점이 있습니다.
두 유형의 장점을 모아 온라인 연수를 기획했습니다. 더하여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활용하는 온라인 콘텐츠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바로 플레이리스트입니다. 많은 사람이 업무 효율을 높일 때 플레이리스트로 음악을 듣습니다. 음악은 영상과 달리 본연의 활동을 멈추지 않아도 됩니다. 하루하루가 바쁜 교사들이 시간을 내어 온라인 연수를 듣는 건 커다란 부담입니다. 관심 있는 연수가 있어도 오랫동안 시간을 내기 어렵습니다. 적극적인 참여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이처럼 플레이리스트 형태의 연수는 학교 현장의 이해로부터 출발했습니다. ZOOM을 플레이리스트로 활용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조금 여유가 있는 늦은 오후 시간, 교실에서 청소하거나 선생님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참여할 수 있는 연수입니다. 복무를 내고 운전하거나 이동 중에도 참여할 수 있는 연수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만 있으면 참여할 수 있습니다.
ZOOM을 활용한 연수는 실시간 소통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실제로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소통하려면 마주 보아야 하는데 너도, 나도 카메라를 끄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통하는 이가 눈앞에서 사라졌기에 강사는 일방적인 형태로 연수를 진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연수를 라디오 인터뷰 형태로 진행하며 보완했습니다.
사회자와 강사가 라디오 인터뷰처럼 대화를 나누는 구성은 연수에 참여하는 선생님들의 느슨함을 보장합니다. 참여자들은 카메라를 꺼도 좋습니다. 그런데도 강사는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함께 대화를 나누는 사회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참여자들은 두 사람을 보며 대화를 듣습니다. 물론 언제든 채팅창으로 질문과 소감을 전할 수 있습니다.
5월부터 지금까지 약 1,200명의 선생님이 플레이리스트를 신청했습니다. 매주 30명에서 40명의 선생님이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많게는 50명에 가까운 선생님들이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강원도뿐만 아니라 전국의 선생님들이 참여합니다. 플레이리스트 시작과 끝을 영화 <탑건 매버릭>의 OST <I ain’t worried>로 채웠습니다. 노래를 더하니 분위기가 더 좋습니다. 진짜 라디오 인터뷰 같달까요. 플레이리스트로 함께 하는 전국의 선생님들께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마음을 전하는 선곡입니다. 플레이리스트를 마치고 노래를 들으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2.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연수의 목적은 교사의 ‘성장’에 있습니다. 교사는 언제, 어떻게 성장할까요? 7월 플레이리스트 ‘어쩌다 교장’으로 모신 황영동 교장 선생님은 교사에게 ‘고난과 다정함’이 있을 때 교사가 성장한다고 말했습니다. 고난과 다정함, 고난에 맞서 도전해야 합니다. 도전에 부딪혀 힘들 때 다정한 위로와 지지가 필요합니다. ‘고난’ 하면 ‘역경’을 자연스레 떠올리는 지금, 다정함은 교사 공동체가 무너진 오늘날 가장 필요한 가치입니다. 플레이리스트는 선생님들에게 ‘다정한’ 연수를 전합니다.
“… 전투기는 비행 임무를 할 때 홀로 출동하지 않습니다. 두 대 이상이 함께 비행합니다. 윙맨은 선두 비행기와 함께 비행하는 비행기로, 동료 조종사를 지원합니다. 강원새로운학교네트워크는 우리 선생님들의 윙맨이 되겠습니다. 쉽지 않은 학교 현장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학교에서의 삶이 조금 더 재미있고 의미 있도록 함께 하겠습니다.”
플레이리스트 시작 멘트입니다. 플레이리스트는 선생님들에게 다정함을 전합니다. 플레이리스트에 강사로 모신 패널을 윙맨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연수를 마무리할 때 윙맨에게 공식 질문을 전합니다. 학교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에게 한마디 말을 전해달라고. 윙맨들은 늘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늘 고생 많으시다고, 선생님들 덕분에 우리 교육이 버티고 있다고. 쫄지 말라며 용기를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참여한 선생님들도 채팅창으로, 마이크 음 소거를 풀고 감사함을 전합니다. 우리는 플레이리스트로 다정함 속에 더불어 성장하고 있습니다.
플레이리스트에서는 선생님들의 학교살이와 같은 구체적인 사례부터 대학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전공 주제, 교사를 위한 삶과 문학 등 다양한 주제로 내용을 구성하고 패널을 섭외합니다. 교사는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사는 아이들과 삶을 함께 가꾸며 삶의 순간과 맥락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배움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교사는 연구하고 행동하는 실천가입니다. 수업과 교실 넘어 이루어지는 더 넓은 교육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학교 너머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정책과 동향도 함께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진행한 플레이리스트 주제와 내용, 패널은 아래와 같습니다.
‘플레이리스트는 직접적인 배움과 도움까지는 아니더라도 함께 하는 교사들에게 작은 영감을 전하는 데 집중합니다.’ 플레이리스트 연수에 참가한 선생님들에게 말합니다. 작은 영감의 힘은 절대 적지 않습니다. 직접적인 배움과 도움을 전하는 것보다 선생님들의 학교살이를 더 재미있고 의미 있게 만드는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믿습니다.
3. 연수는 계속되어야 한다.
플레이리스트를 처음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연수 주제 선정도, 패널 섭외도 아니었습니다. 매주 연수를 열어 전국의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매주 함께 모여 시끄럽게 대화해 사라졌던 연수가 돌아왔다고, 연수가 조금 더 새로워져 돌아왔다고 전국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많이 그리고 널리 알려 더 많은 선생님과 함께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강원특별자치도 교육청 소속 학교에는 매주 공문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연수가 사라졌을 때 학교 현장이 어떻게 바뀌는지 또렷이 목격했습니다. 교사의 전문성을 가꾸기 어렵고 교사 공동체는 무너졌습니다. 이제 더는 안 됩니다.
연수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플레이리스트는 하나의 영감일 뿐 학교에서, 지역에서, 전국을 넘나들며 다양한 연수가 계속해서 나와야 합니다. 교사에게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다양한 주제는 물론 교사의 삶과 전문성을 가꾸기 위한 주제의 연수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더 많은 교사가 연수를 기획하고 운영해야 합니다. 선배 교사들은 연수가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후배 교사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선배 교사들이 쌓아온 경험과 문화자본을 후배 교사에게 이어줘야 합니다. 그렇게 교사는 연구하고 성찰하고 성장하는 집단이 될 수 있습니다. 학습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풀뿌리 학습 공동체의 존재와 성장은 어느 날 갑자기 연수가 사라지더라도 교사와 학교를 지켜내리라 믿습니다.
“… 지금까지 기획 차혜경, 디자인 허미희, 기술 정효진, 연출 서배성, 제작 강원 새로운학교네트워크. 지금까지 사회 윙맨 김기수였습니다. 모두들 평안한 주말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플레이리스트 연수를 종료할 때 마지막으로 선생님들께 전하는 말입니다. 플레이리스트를 1년 동안 기획하고 사회자로 참여하며 참 많이 배웠습니다. 함께 한 동료 교사들 덕분입니다. 전국의 선생님들과 함께 한 값진 만남과 배움은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플레이리스트 사례가 교사 전문성을 가꾸며 교사 공동체를 회복하는데 작은 영감을 전하면 좋겠습니다.
2024 가을호 목차
1. 시론
2. 포럼&이슈
3. 특집
4. 수업 나누기 정보 더하기
5. 티처뷰
6. 전국NET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