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이슈 / 박민석_강원새넷 운양초 교사
“여서 저까지 다 빈집이라.”
아버지께서 차를 타고 고향 도시 외곽을 지날 때면 항상 하시던 말씀이다. 명절이면 찾아가는 고향은 갈 때마다 쇠락해 있었다. 한두 집 건너 빈집들. 녹물이 흐르다 굳은 간판들. 고요한 도심과 어울리지 않게 시끄러운 원색 지자체 조형물 옆을 지날 때면 아버지는 한숨 섞어 꼭 저 말씀을 하셨다.
일본 홋카이도 제2의 도시 아사히카와시에서 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도로를 타고 약 한 시간. 탁 트인 평야 한가운데 사진의 마을 히가시카와정(町)이 있다. 마을의 입구에는 경관을 해치는 특별한 표지석도, 탁 튀는 상징물이나 조형물도 없었다. 대신 도로를 따라 나란히 있는 삼각형 나무 지붕들과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전원주택 조경들이 히가시카와정에 들어왔음을 알려주었다.
히가시카와정은 우리나라의 면이나 읍에 해당하는 기초 지자체다. 인구 감소국인 일본에서 지난 30년 동안 꾸준히 인구가 늘어난 곳이기도 하다. 1993년 7,000여 명 수준이었던 히가시카와의 인구는 현재 8,500여 명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늘어났다고 한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피어나는 호기심을 갈무리하고 강원 새넷에서 주최하는 일본 히가시카와 탐방을 다녀왔다. 지역 교육을 고민하는 학교 선생님, 교수님, 장학사, 시의원들 지역 활동가분들 약 20명과 함께했다.
히가시카와정에서 외곽으로 조금 달리다 보면 나무들 사이에 폭 파묻혀있는 건물이 하나 보인다. 히가시카와 인생학교, 콤파스(Compath)이다. 운영자인 야스이 사키씨의 환대를 받으며 들어간 시설 내부는 편백 향으로 가득했다. 넓은 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과 목재 가구들이 조명과 더해져 따뜻하고 관용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분위기에 걸맞게 사키씨는 방문객 모두를 큰 원으로 앉혀 라운드 테이블을 만들었다. 콤파스에서는 이렇게 둥글게 둘러앉아 소통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자 중요한 일과라고 한다. 사키씨는 공동체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민주주의의 시작점”이라고 표현했다.
콤파스는 덴마크의 폴케호이스콜레를 본떠 만든 시설이다. 폴케호이스콜레는 성인들이 서로 교류하며 공동체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인생 학교이다. 덴마크 전역에 약 70곳이 있다. 학교마다 교육과정은 다르지만, 모두 기숙형 학교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곳 학생들은 일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서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수업에 참여하며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해나간다. 운영자인 사키씨도 바로 이 폴케호이스콜레 출신이다.
일본에 폴케호이스콜레를 만들겠다는 과감한 교육적 시도를 하필 히가시카와에서 시작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탐방단의 질문에 사키씨는 웃으며 히가시카와에 살고 있는 지인의 추천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적극적인 행정 지원이 있다는 것이다. 빠른 성과나 금전적 결과가 보장된 사업이 아님에도 지역 활성화 인재로 지정받아 3년간 인건비와 활동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기간에 사키씨는 마을과 함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신뢰 관계를 쌓을 수 있었다. 학교 건물 또한 80% 국가 재정을 지원받아 마을에 있던 기존 시설물을 리모델링해 만들었다고 한다. 놀라운 점은 여기에 히가시카와정의 재정은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사업자가 10년 동안 사업을 유지하지 못하면 국가가 지원해 준 80%의 예산을 히가시카와정에서 갚아야 하는 식으로 정책이 설계되어 있다. 정 입장에서는 사업자가 어떻게든 사업을 유지하도록 긴밀히 협조해야만 하는 것이다.
콤파스는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3개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한다. 모든 프로그램은 참여하는 사람들이 함께 대화하며 방향을 결정해나간다. 복잡한 도시와 직장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휴양하려는 직장인들, 학교 졸업 후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학생, 인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잠시 멈춰 서서 자연스러운 배움을 가지려는 사람들. 이 모두가 콤파스에서 서로 연결된다. 콤파스의 프로그램은 마을과도 연결돼있다. 마을 주민을 선생님으로 초청해 수업한다거나, 마을 속 숲을 느끼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진행하고 있다. 마을의 주요 산업인 목공과 관련된 수업을 하기도 한다. 각지에서 온 학생들을 마을과 이어주는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이 사키씨의 목표라고 한다. 히가시카와정이라는 배경에서 생활을 공유하며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유대감. 콤파스 교육과정의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사키씨는 “공무원들이 적극적이라 도움이 됐다.”, “사업 계획서를 보여줬더니 정장님이 일단 해 보라고 적극적으로 나서줘서 놀랐다.”라고 했다. 어떻게 이런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분명 콤파스의 운영 방향이 히가시카와가 발전해 온 방향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 탐방지역으로 가는 내내 사키씨가 말한 유대관계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점심을 먹고 다음 방문지인 히가시카와 초등학교로 향했다. 이곳에서 히가시카와 교육위원회와의 만남도 예정되어 있었다. 8,000명의 인구 규모와 어울리는 작고 아기자기한 학교를 상상하며 도로를 달렸다. 시내를 조금 벗어나자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세련된 건물이 보였다. 언뜻 지역의 유명한 공공 미술관처럼 보였다. 히가시카와 초등학교였다.
차를 세우고 잠시 학교를 바라보았다. 히가시카와 초등학교는 한눈에 얼른 담기지 않을 정도로 크고 넓었다. 방금 차를 세운 학교 주차장 부지만 해도 대형 마트의 그것과 비슷한 규모였다. 왜 난 덮어놓고 작은 학교부터 떠올렸을까? 인구가 적은 지역 학교는 당연히 크기도 작아야 한다는 편견 때문이 아니었을까? 살짝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학교 안으로 들어서니 스키야마 교육장님과 오오카쿠 교육과장님이 회의실에서 탐방단을 맞이해 주었다. “사진의 수도에 잘 오셨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 교육장님의 인사 말씀은 마을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지역 명물인 다이세츠잔(大雪山)에서 나오는 깨끗한 지역 생수를 준비해 주시고, 탐방단을 위한 선물로 히가시카와 산 쌀과 쌀과자를 준비해 주시기도 했다.
히가시카와의 교육 방침 중 하나는 “고향을 배우다”이다. 그래서 교육과정 곳곳에 히가시카와가 녹아있다. 아이들은 단순히 고향의 특산물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체험하며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배워나간다. 그 예로 농업 수업이 있다. 히가시카와 초등학교에서는 학교에 속한 과수원과 논에서 직접 농산물을 키우는 수업을 한다. 학생들은 마을 농부들의 도움으로 직접 키우고 수확한 농산물을 급식으로 먹으며 히가시카와의 주요 산업인 농업에 대해 배워나간다. 히가시카와의 또 다른 주요 산업인 목공도 마찬가지이다. 히가시카와 초등학교를 비롯한 대부분 공공기관은 지역 공방에서 생산한 가구를 사용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역에서 만든 책걸상을 사용하던 학생들은 중학교에 올라가 자기의 책걸상의 관리하는 방법을 지역 목수에게 배운다. 이를 통해 지역의 산업을 이해하고 애착심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히가시카와의 또 다른 교육방침으로“세계를 배우다”가 있다. 이 역시 마을의 발전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히가시카와는 국제교류센터를 두고 20여 개국의 교류원을 임시 공무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이들은 히가시카와와 자국을 연결해 주는 문화적 매개 역할을 해내고 있다. 바로 이들을 활용한 특색 교육과정이 글로브(globe)이다. 히가시카와 국제 교류센터에 근무하는 20여 개국 교류원들은 globe 글로브 교육과정의 핵심을 담당한다. 이들은 각국의 문화와 언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넓은 세상과 국제적 감각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다. 초, 중등 모두 글로브 교육과정을 연계해 배우기 때문에 글로브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이 연결되기도 한다. 가령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중학교 1학년 학생의 도움을 받아 영어로 편지를 작성하는 식이다. 이렇게 사회, 세계와 연결된 학생들은 미래에도 히가시카와정이 생존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교육위원회의 학교 설명 후 학교 내부를 견학했다. 학교는 실내 체육관, 조리실, 회의실, 지역교류센터, 교실, 도서관 등의 공간이 단층 건물에 일자로 연결된 단순한 구조였다. 그중 체육관과 조리실, 회의실, 지역교류센터와 도서관은 모두 시민들에게 개방되는 시설이다. 우리가 방문한 날 체육관에서는 시민들의 체육 행사가 열리고 있었고, 지역교류센터에서는 방과 후 수업이 끝난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남아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학교가 지역민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티니 공간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한국은 학생들이 있는 공간에 외부인이 들어오면 생길 여러 문제를 걱정해 꺼리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히가시카와 초등학교는 셔터만 내리면 학생들의 교실 공간과 분리할 수 있도록 단순한 구조로 설계해 이러한 문제들을 지혜롭게 피해 갔다. 연결과 소통이라는 핵심 가치에 행정 역량을 집중한 결과라 생각했다.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면 학생 수가 5~60명 정도인 작은 학교에서도 같은 층, 같은 학년끼리만 친해지는 일을 많이 겪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관계를 통해 배운다. 아이들을 좁은 교실에만 두어서는 학교의 교육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히가시카와 초등학교는 층이 없다. 게다가 교실은 벽으로 막혀있지 않았다. 270m로 뻗어있는 복도에 교실, 특별실들이 모두 연결되어 학생들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히가시카와 초등학교 설계 단계부터 학생들 사이의 유대관계와 연결이 교육력의 핵심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학교의 교육력을 지키는 것은 곧 지역을 지키는 일이다. 바로 이곳이 히가시카와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핵심 시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견학을 마친 후 히가시카와 교육위원회와 함께 모몬가(鼯鼠. 하늘다람쥐)의 집으로 이동했다. 모몬가의 집은 마을에 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일원화한 유보통합시설이다. 히가시카와 초등학교와 아주 가까이 붙어있어, 종종 교육과정을 함께 한다고 한다. 시설 입구로 들어서니 통유리로 된 선생님의 방이 보였다. 그 안쪽으로 아이들의 놀이방이 선생님의 방과 붙어있어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선생님의 방 반대쪽에는 넓은 로비 같은 공간이 있다. 아이들을 데리러 온 부모님들이 이곳에서 기다리며 책을 읽기도 하고 함께 온 학부모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모몬가의 집은 원장이나 센터장이 책임자로 운영하는 체제가 아니라고 한다. 대신 히가시카와정의 행정과 과장이 책임자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특이하게도 히가시카와 행정과 주무관님이 시설 안내를 맡아 주었다.
이 시설에는 총 242명의 아동이 다닌다고 한다. 교사를 포함한 직원이 65명이고 그중 교사가 45명이다. 우리나라의 비슷한 인구 규모의 다른 지역을 생각해 보면 엄청난 규모이다. 건물 자체는 꽤 오래돼 보였지만 잘 관리된 시설 내부는 넓고 쾌적했다. 놀이방에서는 아이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놀고 있었는데, 꽤 많은 인원이 있었음에도 부딪힘 없이 자유롭게 놀고 있었다. 선생님들도 아이들 한 명 한 명 세심히 봐주는 듯했다.
모몬가의 집은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운영하고 사전에 요청이 있으면 새벽까지 연장 보육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부모의 근무 시간에 따라 보육 시간을 선택할 수 있고, 주말이나 휴일에도 맡길 수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보호자에게 맞춤형 시설이다.
시설 내에는 육아 지원 센터 공간이 함께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은 모몬가의 집에 입원하지 않은 아이들과 부모님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히가시카와 외의 지역에서 잠시 방문한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었다. 임산부, 보호자들이 모여 정보공유를 하거나 유아 관련 정보 강좌가 열리는 등 육아 관련 커뮤티니 역할을 함께 하기도 한다.
자녀가 있는 젊은 부부들이 이주를 결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여건은 육아와 교육일 것이다. 모몬가의 집에서는 처음 이주해 온 사람들도 원래 있던 학부모들과 자연스러운 교류를 통해 새로운 인맥이 생겨난다. 덕분에 이주해 온 지역이지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육아 고민이 있을 때 언제든지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시스템.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러 갈 수 있는 시스템. “히가시카와에 오면 혼자 자녀를 키우지 않는다. 지역이 함께 키워주고, 공동체가 함께 길러낸다”라는 메시지가 건물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탐방단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소라이로(空色)다. 설명해주신 무네하라 주무관은 “히가시카와 공생 플라자”라는 멋진 이름으로 소개했다. 이곳은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쿠마 켄고가 기부의 형식으로 설계해 준 건물이라고 한다. 참 멋진 건물이라고 생각했다. 히가시카와를 상징하는 물(파랑)과 자연(녹색), 벼와 별의 색(노란색)으로 칠해진 내부 공간 때문도, 천장에 수없이 달린 전구 때문도 아니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과 고령자가 이용하는 공간이 한 건물에 있었기 때문이다. 무네하라 주무관은 “전 세대 교류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내부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와 어른들이 사용하는 공유 주방이 함께 있었고, 2층에는 헬스 기구로 가득한 체육시설과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체육 프로그램을 위한 넓은 공간이 있었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만든 건물이 아니었다. 1층의 공유 주방은 히가시카와 학부모의 이용률이 상당히 높고,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은 놀이 공간에서 게임을 하며 논다. 고령자들을 위한 체육 프로그램은 항상 꽉 차 있고, 시설을 즐기는 고령자들과 아이들이 함께 섞여 게임을 하기도 한다.
한 공간에 여러 세대가 섞일 수 있다는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새롭고 재미있는 발상을 실제로 구현해 낸 히가시카와 행정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무네하라 주무관은 중앙 정부의 지침을 무조건 따르자는 수동적인 발상은 금기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예산이 없다고, 전례가 없다고, 다른 곳에서는 하지 않는다고 포기하는 것은 히가시카와 행정 방식이 아니라고 한다. 마을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는다면 일이 되게 하는 방향으로 시도해 보자는 분위기가 히가시카와 공무원의 기본 태도라고 했다.
지역에 이런 공간들이 많이 생겨난다면 숨통이 탁 트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편화된 삶에서 벗어나 타인과 어딘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나도 모르게 이 마을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히가시카와정 기관 방문을 마무리했다.
키즈나(絆). 이번 탐방에서 가장 많이 들은 일본 단어다. 우리말로는 끊어내기 힘든 정, 혹은 유대관계를 뜻한다. 직접 방문해서 본 히가시카와정의 모든 정책과 행정 역량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 초첨이 맞추어져 있었다. 쇠락해 가는 내 고향에서 벌어지는 각종 전시 행정을 보며, 저렇게 해서는 안 될 텐데 하는 막연한 반발심만 가졌었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절박한 말 앞에 무기력했다. 하지만 히가시카와정을 방문하며 적어도 어디에 투자하면 어떤 식으로 마을이 바뀌어 갈 수 있는지 목격한 것 같다. 히가시카와는 키즈나에 투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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