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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학교네트워크 May 09. 2024

서로 돌보는 사이, ‘진짜 가족’ 연대기

이 책 한 권! / 이충일_경기새넷 월간문학공감 분과장, 아동문학평론가

이금이, 『밤티마을 마리네집』 (밤티, 2024)

  이금이 작가의 ‘밤티마을 이야기’(『밤티마을 큰돌이네 집』(1994),  『밤티마을 영미네 집』(2000), 『밤티마을 봄이네 집』(2005))가 전면 개정판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웠다. 개정판은 기성세대가 애정하던 작품을 지금 어린이 세대에게 전달하기 위한 유의미한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데 네 번째 이야기이자 신작인 『밤티마을 마리네 집』(2024 밤티)는 반가움과 함께 우려가 교차했던 게 사실이다. 당대 최고의 동화 작가라 하더라도 수 십년의 공백은 쉽지 않은 도전이기 때문이다. 기존 시리즈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출구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확장된 질문으로 들어서는 새로운 입구를 찾아야 하는 도전이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출입구를 여는 절묘한 열쇠는 가족이었다. ‘마리네 이야기’와 더불어 밤티마을이 품고 있던 가족의 의미망은 한층 더 넓어지고 깊어졌다. 따지고 보면 가족은 가까이 갈수록 흐릿해지는 ‘원시의 피사체’ 같은 존재다. 멀리서 보면 단순 명확해 보이지만 자세히 다가가면 이만큼 헷갈리는 대상도 없다. 영미는 그러한 모순을 명확하게 증명하는 존재일 것이다. 여섯 살에 양자로 보내졌다 돌아오는 등 가장 측은한 대상이지만, 돌이켜 보면 누구보다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은 인물이 영미가 아닌가.


  『밤티마을 마리네 집』은 성인이 된 영미와 한국에서 자란 네팔 소녀 마리가 ‘서로 돌보는 사이’가 되어 가는 이야기이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삐걱거림의 연속이었다. 주인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이사를 가고 마리는 옥상 텃밭을 함께 가꿀 친구가 이사 오길 고대한다. 한데 친구는커녕 집주인에게 옥상의 권리를 승인받았다고 주장하는 까칠한 아줌마를 만났으니 속이 턱 막히고 말 밖에. 게다가 마리에게 이 텃밭은 네팔에서 돌아올 아빠와 외벌이로 지친 엄마를 위한 정성과 소망이 담겨 있는 곳이다.


  이 작품에서 옥상은 영미와 마리의 욕망이 충돌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서로를 이해해 나가는 장소다.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물에 떨어진 기름 방울’ 취급을 받는 마리와 어린 시절 엄마의 부재와 가난으로 ‘여기 저기 떠밀리는 귀찮은 짐’ 취급을 받은 영미는 이곳에서 서로의 결여를 확인한다. 마리는 영미가 지닌 상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영미는 애어른 같은 마리의 모습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각자의 결여가 충돌의 원인이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결여 때문에 서로에게 점차 불가결한 존재가 되어 가는 것이다. 마리가 선망하던 옥상 식탁에 초대를 받고 영미의 조카인 진우와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장면은 두 사람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여름방학을 맞아 밤티마을로 떠난 여행은 결여를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그저 노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존재’가 되는 무해한 공동체, 그곳에서 마리는 한 뼘 더 성장한다. 물론 마냥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다. 아무리 말썽을 부려도 사랑을 독차지하는 진우에게 샘이 나고 크게 다툰 후에는 산에 남아 펑펑 울기도 한다. 마리에게 이 여름방학은 애어른의 갑옷을 벗고 아이다움을 회복해 가는 성장통의 시간인 셈이다.


  이제 서서히 아름다운 결말로 향할 것 같던 이야기는 오히려 나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영미는 위 경련으로 쓰러지고 마리는 단짝 친구와 멀어져 외톨이가 되었으며, 그들의 안식처가 될 것 같았던 집마저 재건축 대상이 되면서 퇴거 명령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고난을 돌파하는 방법은 서로가 더욱더 불가결한 존재가 되는 것 뿐이다. 마리는 아픈 영미를 위해 밤티마을 가족들의 사랑이 가득 담긴 ‘영미의 방’을 그려서 선물하고, 영미는 거짓말쟁이로 오해받는 마리를 위해 ‘친이모’를 자청하고 나선다. ‘여기 저기 떠밀리는 귀찮은 짐’(영미)과 ‘물에 떨어진 기름방울’(마리)이 서로의 결여를 채워주며 진짜 가족이 되는 순간이다. 

개인과 개인의 연결은 마침내 마을 공동체와의 연대를 이룬다. 결말이 가까워 올수록 왜 이 작품이 밤티마을 ‘마리네집’인지가 한층 더 명확해진다. 밤티마을은 기꺼이 마리네에게 삶의 터전을 내어주고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 아무 조건을 따지지 않는 절대적 환대, 여기에도 한 가지 원칙은 존재하였으니 그것은 다음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진우 엄마, 아니, 숙모는 엄마에게 밤티 마을에 온 소감을 물었어요. 진우와 장난을 치던 마리는 숨을 죽인 채 엄마를 지켜보았습니다.

“모든 게 너무너무 좋아요. 이렇게 도움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중략)

할머니가 엄마 손을 잡고 손등을 다독였습니다.

“그런 소리 말어. 마리 엄마고, 마리고 우리가 필요해서 와 달라고 부탁하는 거야.”(185면)


  환대와 돌봄은 시혜(施惠)가 아니라 호혜(互惠)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 마리가 영미에게, 영미가 마리에게 필요한 사람이었듯, 밤티마을도 마리네가 절실히 필요했다. 폐교 위기 와 일손 부족이 심각한 지역 상황에서 마리네는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국적은 어떠한 걸림돌도 되지 않는다.


  『밤티마을 마리네 집』은 ‘서로’ 돌보는 사이가 어떻게 가족이 될 수 있으며, 삶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지를 다정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기존의 밤티마을 이야기가 제도적 차원의 가족이야기였다면 ‘마리네 이야기’는 가까운 미래에 도착 가능한 질문까지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다음 이야기는 영미 엄마, 아니 정옥순 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때는 팥쥐 엄마라 불리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이름(정옥순)으로 살게 된 그녀의 이야기가 못내 궁금하다. 팥쥐 엄마도 영미 엄마도 아닌 정옥순 씨는 지금,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지 말이다.


** 본 원고는 《창비어린이》 2024년 여름호에 게재될 원고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2024 봄호 목차

1. 시론
2. 특집
3. 티처뷰
4. 이 책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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