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러 담은 진심
여름 방학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쯤
나 또한 다시 체육관으로 달려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지도하는 여자 농구반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개학하자마자 토요일, 그러니까 개학은 수요일인데 시합이 토요일이라
방학에 연습을 하지 않으면 경기에서 헤맬 것 같았기 때문이다.
15년.
나의 교직 연차다.
파견 기간 2년을 제외하고는 단 한해도 학교스포츠클럽대회에 출전하지 않은 해가 없으니
벌써 13회를 맞은 나의 대회 출전기다.
종목은 변함없이 '농구'다.
"농구 좋아하세요?"
내가 농구를 좋아하는 지, 아닌 지는 이제 나도 알 수 없다.
농구는 '좋다' 혹은 '싫다'로 딱 잘라 대답할 수 없을 만큼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나는 슬램덩크를 보고 자란 세대. 딱 그만큼이지만.
그만큼의 크기가 클 수도 혹은 작을 수도 있다.
농구를 직접 하는 것과 학교스포츠클럽 농구를 지도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기도 하다.
농구를 전공했거나 취미로 하는 선생님들에게는 같은 영역일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역시 다른 영역일 수 있을 것이다.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더 신경이 쓰이며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더 열심히 연습 시켜야 하고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정규 수업과 업무에 영향을 준다.
그 영향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보통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교사의 에너지와 시간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수업과 업무의 일부
무엇보다 딸과 함께 보드게임을 해야하는 시간을 갉아먹었다.
그 갉아먹음의 주체가 누군지는 모호하다.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는 지도 모른다.
누가 출전하라고 한 것도 아니다.
누가 계속 이기라고 한 것도 아니므로.
오늘까지 생활기록부 점검을 해야하는데
그 조차도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오전 2시간은 출전 기안문, 출장과 초과근무를 올리고
간식비, 식비 품의를 올렸다.
이런 행정업무는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업무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왜 이리도 계산이 안 맞고, 빠트리는 지...
오전 수업을 2시간 한 이후 급하게 급식을 먹고
농구 연습.
오후에는 음료수를 사러 잠시 갔다와서
꽤 멀리 학생들을 태워서 가야하기 때문에
배차 계획과 안내문을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이 모든 것을 톡으로 한번 안내를 하고
방과후에 아이들을 다시 모아
시합에 대비한 정신 무장과 더불어
이동에 관한 사항, 경기 준비 사항 등을 안내했다.
교장 선생님께 인사도 빠트리면 안된다.
"보람은 있습니다! 보람은!"
푸념이 살짝 섞인 나의 투정에 교장 선생님은 웃어주셨지만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었다.
음료수, 농구공, 구급 약품을 챙길 때
아이들 몇 명이 농구화를 두고 간 것을 발견했다.
농구화까지 챙겨야 하는 이 지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긴 고리를 끊어내야하는 건지
보람, 열정 등을 나열하며 교육적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인생에서 물음표를 던지지 말고, 느낌표만 던지라는 드라마 대사가 있지만
학교스포츠클럽은 마음 속에 늘 물음표를 품고 해야하는 활동이다.
그렇게 물음표를 품은 지 15년이 지났지만 의문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다.
이 물음표를 느낌표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가끔 느낌표적인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제는 조금 더 강력한 녀석이 필요하다.
허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바다에 나왔지만 84일 동안 아무 것도 잡지 못한다.
그러다 85일째 되는 날, 치열한 사흘간의 사투 끝에 거대한 청새치를 잡는다.
청새치를 배에 묶어 돌아오는 길, 상어들이 청새치를 그냥 둘 리 없었다.
여러 무리의 상어가 청새치를 뜯어 먹자 노인은 필사적으로 싸운다.
하지만 결국에는 머리와 척추, 꼬리만 남은 청새치와 함께 항구로 돌아온다.
학교스포츠클럽대회도 그런 거 아닐까?
학생들의 계속되는 탈퇴, 투정.
틈나는 대로 연습하기에 쉴 틈 없는 연습.
방과후와 주말 경기.
각종 행정업무.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 소모.
그 사투 끝에 결국 돌아오는 건 패배이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는다.'
이는 물리적 한계가 있더라도 정신적으로는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나
인생의 본질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나는 이틀 후에 패배를 앞두고 있다.
분명 경기 기록지에 '패'로 기록되는 것이다.
노인이 온전히 청새치를 가지고 오지 못한 것처럼
나 또한 빈손으로 차를 끌고 와야한다.
상어가 청새치를 갉아먹듯
학교스포츠클럽은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갉아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코트로 나가야할까?
노인은 다시 바다로 나갔을까?
나의 분투는 끝끝내 '패'로 기록되겠지만
농구를 지도해 온 과정 만큼은 절대로 '패'로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게 꾹꾹 눌러담은 내 진심이다.
"농구 좋아하세요?"
"네, 좋아합니다. 이번에는 거짓이 아니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