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는 키가 컸다. 2차 성징이 빨리 온 탓에 친구들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었다. 5학년에서 6학년을 넘어가는 사이에 키가 많이 자랐다. 초등학교를 졸업 할 즈음에는 키가 거의 170cm에 가까울 정도였다. 지금 키가 172cm인 것을 감안하면 중학교 때 대략 3~4센티미터가 자랐고 그 이후는 성장이 멈췄다. 더 이상 몸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했다.이때부터 자존감이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5년간 했던 운동을 그만두고일반 학생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여러가지 혼란스러운 변화를 동시에 겪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의 학업 위주, 입시 위주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몹시 힘들었고 특히 교복을 입고 하루종일 앉아 수업을 듣고 야간 자율 학습까지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운동으로 생겼던 근육들은 점차 빠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조금은 가려졌던 빈약한 골격이 점차 들어났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 때는 교복 바지의 통을 줄이고 상의도 딱 맞게 입는 것이 유행이었다.엄마는 아들이 키나 덩치가 더 커진다는 기대감에 조금 넉넉한 교복을 사주셨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실랑이 끝에 바지 통은 적절하게 줄여주셨지만 상의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 두 사이즈는작은 것을 입었어야 했다. 셔츠와 동복 자켓 사이 공간이 꽤 있었다. 그래서 움직임이 편하긴 했을까. 마음은 하루종일 그 넓은 공간 만큼 공허했다. 어깨 쪽은 특히 더 비어있었다. 아침마다 교복을 입을 때면 자존감이 조금씩 떨어졌다. 긴 목에 어깨는 아래로 축 쳐져 있었다. 학교 중앙 현관에 큰 전신거울이 있었는데 나는 여기를 피해서 다녔다. 교복 입은 모습을 거울로 보는게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