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버리다

[ 3. 보풀 난 티셔츠 ]

by 시우경희

간밤에 타닥타닥 처마에 부딪치는 빗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드는 꼬맹이를 쓰다듬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나 보다. 보채는 소리에 눈을 뜨니 벌써 아이들 밥 줄 시간이 지나버렸다.


침대 아래에는 꼬맹이가 앞발을 가지런히 내려놓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아이코."

서둘러 움직였다.



오전에 쨍하게 비추던 햇볕이 사라지고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지금은 옅은 눈발이 날린다. 어제오늘 변덕스러운 날씨에 신이 난다.

겨울이 아직 살아 있는 기분이 들어서다.


목덜미에 차가운 바람이 새어 들지만 내 속은 청귤하나 띄운 탄산수를 마신 듯 청량하다.

겨울의 차가움은 매력적이다.






비가 그친 뒤 마당에는 흙빛 초록이 고개를 들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봄의 불청객 '잡초'다.

이 녀석들은 한 번 올라오기 시작하면 초 겨울까지는 시도 때도 없이 봐야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순간 게으름을 부리면 어른의 허리만큼 자라 숲인척 하기도 한다. 예쁜 숲은 절대 아니다.



이곳에 자리 잡고 두 번째 해에는 흙빛 초록의 존재를 얕잡아 봤다가 된통 혼났다. 그 생명력 앞에서 두 손 두 발 다 들고 멍하니 보고만 있다가 집 주변이 수풀에 휘감겨버렸다. 끔찍한 기억이다.



잡초 숲이 되기 전에, 벌레들의 길목이 넓어지기 전에 채비를 해두어야 한다.

손끝을 스치는 여린 바람과 봄꽃 향기는 좋지만,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먼저 겁을 준다.

잠깐 방심하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훌쩍 넘어버린다.

이번에는 그렇게 두지 않을 생각이다.



전기포트의 손잡이 스위치가 '탁' 하고 소리를 낸다.

꽤 오래된 노란색 머그잔에 둥글레 티백을 한 개 넣고 주전자의 물을 부었다.

그리고 창밖의 흙빛을 내는 초록의 점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긴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며 자연의 풍요로움과 고단함 사이, 그 적당한 거리를 찾아본다.


둥글레차를 한 모금 마시며 잡초를 바라보다가 마당의 나무들로 시선이 옮겨갔다.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깨닫는다.

대지를 덮는 생명력은 자연의 순리겠지만, 내 곁의 사물들은 온전히 나의 의지에 달렸다는 것을.


잡초가 빈 땅의 주인을 자처하듯, 일상 곳곳에 남겨둔 비워내지 못한 낡은 기운들이 어느새 불청객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성한 풀을 걷어내야 꽃이 피어날 자리가 생기듯, 내 주변의 사물들도 제때 덜어내지 않으면 잡초숲처럼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뒤엉켜버릴 것이다.


집 안의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 보기로 했다.






어떤 걸 비워낼까 둘러본다.


너무 많다.

주방에도, 거실에도, 현관에도, 옷방에도 그 밖의 공간에도 비워낼 물건들이 쌓여있다. 그래도 한꺼번에 다 비워내는 방법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고개를 돌리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으로 선택했다. 바로 보풀이 일어난 티셔츠다.



매일 세탁하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즐겨 입던 반팔 티셔츠다. 흰색 바탕에 분홍색 줄무늬가 커다랗게 들어가 있고, 둥근 목선에는 투명하고 동그란 단추 두 개가 포인트처럼 달려있다.


고양이 털이 잔뜩 붙어도 세탁 후 건조기로 돌리면 개운하게 입기 좋아서 작년 여름부터 봄이 찾아오는 지금까지 잘 입었다.

엄마가 오랫동안 입어서 버리려던 티셔츠였는데 내가 입겠다고 가져와서는 세 계절이나 함께했다.


하지만 지금은 보풀이 잔뜩 생겨서 살갗을 까슬하게 스쳐 불편해졌다. 우리 고양이들도 발톱으로 뜯는 바람에 옷이 허물어지는 데에 한몫을 더했다.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티셔츠를 입으려고 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엄마 생각이 났다.

쓰레기 봉투에 넣으려다 잠시 손이 멈췄다.


"그래."

세 계절을 함께한 이 티셔츠와 이별하기로 한다.


오늘도 한 계절을 내려놓는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