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자질
“6번 문제, ‘빈칸에 들어갈 알맞은 수를 쓰시오.’, 너희들 그런데 이 문장에 얼마나 큰 발상이 담겨 있는지 모르지?”
수학 시간만 되면 눈에 힘이 풀리고 하품을 하는 건, 6학년의 (속칭) ‘국룰’인가. 아니면 나의 수업이 재미없다는 걸 말해주는 것일까. 아이들은 또 선생님이 혼자 신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나 멀뚱멀뚱 보고 있다.
“여기 이 ‘빈칸’이 핵심이야. 이 빈칸이 중학교 올라가면 이런 모양으로 변하거든? (x를 칠판에 쓴다.) 이걸 지금은 몰라도 되는데, 모르는 수라는 뜻의 ‘미지수’라고 불러.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 문제를 풀 때 빈칸을 뚫어놓는 발상이 굉장히 위대한 발상이란 거야. 선생님은 너희들에게 문제를 풀이할 때마다 감탄을 느낀다.”
눈꺼풀이 무거운 아이들은 ‘선생님, 변죽만 울리지 말고 그냥 본론으로 넘어가요.’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영수가 사탕을 3개 가졌고, 진수가 사탕을 몇 개 가졌는지 몰라. 그런데 사탕이 모두 7개라네. 진수는 몇 개를 가진 것일까? 라는 문제가 있다고 해보자. 7에서 3을 빼면 진수가 가진 사탕이 나오겠지. 그런데 사실, 문제를 있는 그대로 식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진수가 가진 사탕을 뭔가 모르는 수로 표시를 해야 하는 거야. 이게 빈칸이지. 이 빈칸이 있음으로써 문제를 덧셈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던 적이 있어. 더군다나 무슨 수인지는 모르지만 구해야 할 답을 이미 ‘구했다’라고 생각하고 빈칸을 뚫어놓은 것 아니겠어? 어떤 수학자가 제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대. ‘스승님, 수학 문제를 잘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스승은 뭐라 대답했을까, ‘문제를 이미 풀었다고 생각하고 풀어보아라.’ 그 수학자가 누군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 발상은 정말 기가 막히게 훌륭한 게 아닌가 싶다.”
“저기, 선생님!”
“응?”
“선생님 혼자 또 신나셨어요.”
“아, 그랬니? 허허허.”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칠 때가 즐겁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기도 하고, 답을 구하는 방법이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라서 즐겁다. 등산할 때도 여러 코스가 있다. 어떨 때는 A 코스로 가다가, 어떨 때는 B 코스로 가고, 갑자기 마음을 바꿔 A와 B를 적절히 혼합한 코스로 가기도 한다. 탐험하는 기분이 들어서 더욱 즐겁다. 어떤 이는 수학을 아주 싫어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문제를 풀어야 하는 압박감이 있어서 수학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문제를 맞히기 위해서 빨리 푸는 연습을 종일 하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어쩌면 나는 점수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공부를 해서인지, 수학을 학문적으로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쳇, 틀리면 틀리는 거지. 난 여기로 가볼래.’ 물론, 이건 개인의 성향이 좌우하는 문제다. 내 입장에서는 성적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지만, 현실적으로 한 문제를 더 맞혀서 점수를 얻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 하는데(=문제를 빨리 푸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시험 전 느긋하게 수학 감상에 젖어 있는 유형의 사람은 여러 사람이 보기에 답답함을 자아낸다.
“선생님! 저 학원에서 x로 바꿔서 문제 푸는 거 이미 배웠어요. 빈칸을 x로 바꾸었을 뿐인데 머리가 어질어질하던데요?”
주변에서는 ‘맞아!’하는 소리가 이어서 메아리처럼 반복되어 들려왔다. 당시 우리 반에는 선행학습을 받는 아이들이 많았다. 슬슬 중학생이 된다는 생각에 마음 잡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걸까. 아니면 강제로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학원에 다니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친구 따라 강남을 가는 건가. 뭐든 이해한다. 어디서든 최선을 다하는 태도로 진지하게 임하길 바랐다.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이 공교육에서 이루어지는 본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 게 우려되었지만, 우리 반 학생의 태도를 보니 그런 걱정은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그러면, x를 빈칸이라고 생각하고 풀면 되지. 초등학교 문제처럼 느껴질 거야.”
“아하~! 그렇군요.”
“너희들, 근데 선행학습을 하더라도 복습도 중요한 거 알지? 그리고 다 안다고 해서 수업을 안 들으면 안 된다. 그러면 지금 학원에서는 어디까지 배웠니? 제곱은 배웠어?”
“아, 그건 아직 몰라요.”
“방정식은?”
“그건 알고 있죠.”
“오, 방정식이란 말을 알고 있구나!”
“네, x를 근이라고 부르는 것도 알아요.”
정규 교육과정을 성실하게 밟은 어른이라면, 이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달달 외워 문제를 풀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차방정식은 근이 하나, 이차방정식은 근이 둘, 삼차방정식은 근이 셋. 즉, 미지수의 차수에 따라 근의 개수가 정해진다고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것 같다. 나는 근의 공식이라 하면 가장 먼저 수학자 아벨과 홀름보에 선생님이 떠오른다.
수학자 아벨(Niels Henrik Abel, 1802-1829)은 1802년 노르웨이의 네드스트란이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사교적이라서 자식의 양육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르웨이는 영국, 스웨덴과의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가난과 굶주림을 겪어야 했다. 아벨 역시 일곱 형제와 함께 가난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1815년 크리스티아니아 성당학교에 진학했다. 당시에는 체벌이 팽배하던 시대였나 보다. 수학 선생이 학생에게 폭력을 가해서 해임되었고, 수학 선생님이 새로 부임했다. 그때 부임한 선생님이 바로 홀름보에(Bernt Michael Holmboë)다. 아벨과 홀름보에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아벨은 위대한 수학자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을 정도로, 홀름보에 선생님은 아벨의 인생을 바꿔 놓을만한 귀인이었다. 홀름보에 선생님은 크리스티아니아 대학(現 오슬로 대학)에서 수학을 배워, 당시 수학계에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의 아벨은 또래 아이들과 비교하여 결코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홀름보에 선생님은 아벨의 수학적 재능을 알아보고 아벨을 열성적으로 지도했다. 선생님의 지도를 받은 뒤부터 아벨은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권유로 뉴턴, 라그랑주, 오일러, 가우스 등 위대한 수학자들의 원전을 읽었으며, 수학자들이 해결하지 못한 부분을 해결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아벨이 18세가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하고 가족의 생계를 걱정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그때도 홀름보에 선생님은 정부의 보조금을 얻어 크리스티아니아 대학에 진학하도록 해주었다. 대학을 진학하고도 홀름보에 선생님과 아벨의 관계는 끈끈하게 유지되었고, 선생님은 여전히 아벨이 계속해서 공부하도록 도와주었다. 아벨이 5차 이상의 고차 방정식의 일반적 해법은 없다는 걸 증명하는 해결책을 홀름보에 선생님에게 알렸고, 홀름보에 선생님은 자신이 아는 뛰어난 대학 교수에게 이에 대한 자문까지 구할 정도로 제자의 고민을 함께 고민하고 응원하였다. 결국 아벨은 1824년에 5차 방정식의 근을 구하는 일반적인 해법(근을 구하는 일반적인 공식)은 없다는 것을 증명해내었다. 라그랑주를 비롯한 많은 수학자들이 250년 동안 매달렸던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한 것이다. 그의 나이는 19세에 불과했다.(1)
아벨이 젊은 나이에 천재성을 발휘하여 수학의 난제를 해결한 점보다, 항상 아벨의 옆에서 더욱 잘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도움을 줬던 홀름보에 선생님이 더욱 인상 깊었다. 내가 만났던 선생님 중에서 한 분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이다. 선생님께서는 수학을 가르치셨다. 고등학교 때부터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나 역시 중학교 수학과는 차원이 달라진 고등학교 수학의 난이도에 혀를 내두르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몇 번 있었다. 개인적으로 고등학생이었던 내게 찾아온 첫 번째 난관은 ‘함수’였다. 함수 중에서도 합성함수와 역함수, 다항함수가 정말 어려웠다. 그 분야에서 조금만 문제를 어렵게 비틀어도 맞히질 못했다. 내가 배울 당시에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과정에서는 주로 식을 세워서 문제를 푸는 대수학 분야가 많았다. 나는 직관보다 논리에 의존하여 식을 세워 문제를 푸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기하학보다 대수학 쪽에 강했다. 따라서 1학기는 무난히 교과서와 수학의 정석, 추천받은 여러 문제집을 풀면서 개념을 확실히 잡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2학기에 들어오면서 그래프를 그리는 단원이 많이 나왔다. 문제를 풀려면 그래프를 그리고 분석할 줄도 알아야 한다. 처음으로 고등학교 수학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이해가 한 번에 가지 않는 부분을 몇 번이고 설명해 주시고, 난관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응원해주셨다. 겉으로 보기엔 결코 다정하기만 한 선생님이 아니셨다. 뭐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키가 헌칠하고 멋진 외모에다, 까칠한 말투와 카리스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어려운 문제를 즉석에서 풀어내는 두뇌까지 갖춘 교사였다. 수학의 고민을 나누면서 선생님께서는 정이 많고, 진심으로 내가 잘되길 바라는 분이라는 게 느껴졌다. 어느 날 무심코 지나가면서 풀어보면 좋을 것 같다며, 『특작(特作)』이라는 제목의 고난도 수학 문제집을 주셨던 게 생각난다. 홀름보에 선생님이 아벨에게 상급 수준의 과제에 도전해보라고 하였듯, (나는 아벨처럼 천재가 아니지만) 선생님께서도 나에게 이 정도는 풀 줄 알아야 수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하셨다.
두 번째 난관인 삼각함수와 고2 때 찾아온 세 번째 난관인 점화식도 선생님 덕분에 잘 극복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문제를 푸는 팁을 잘 알려주셨다. 그런 과정을 겪다 보니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편하게 교무실로 찾아갈 수 있었다. 선생님의 설명을 끝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돌아간 적도 있었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수학을 통한 마음의 교감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의 까칠한 말투와 툭툭 내뱉은 말씀은 멋과 위트로 느껴졌다. 군대를 전역하고, 교육대학을 다닐 때 고등학교 친구 두 명과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학창 시절 때 선생님들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갑자기 모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떠올라서 즉흥적으로 연락을 드리고 찾아뵌 적이 있다. 선생님 표정에 당황스러움이 역력히 묻어났지만, 교재연구로 바쁘실 텐데도 공강 시간 동안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던 친절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학창 시절에는 수학과 진로 문제로만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대학 생활, 이성 친구, 게임 등 소소한 일상적 이야기도 나누었다. 선생님을 찾아뵙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학 서적에는 교사의 자질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개로 제시하였다.(2)
1. 전공영역의 수월성: 교사는 전공영역에 대한 전문가적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2. 교수 방법에 대한 지식의 획득: 교과 내용을 쉽게 예를 들어서 전달해야 한다.
3. 소명 의식
4. 학생에 대한 사랑과 봉사 정신
5. 실천하는 교사: 교사는 자신이 가르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나의 고1 담임 선생님은 위에서 언급한 교사의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리고 홀름보에 선생님 역시, 기록된 내용을 미루어 짐작했을 때 적어도 1, 2, 3, 4번은 갖추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중요한 부분은 1번과 4번이다. 학생이 진심으로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없다면, 교사는 인터넷 강의나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으며, 전공에 대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교사는 학생에게 신뢰를 주지 못할 것이다.
홀름보에 선생님과 아벨이 수놓은 미담은, 스승을 존경하지 않고 학생을 존중하지 않는 시대에는 전설로 남을 이야기다. 현재는 어떤가. 학생들은 스승을 존경하는가. 그리고 스승은 학생을 존중하는가. 좀 더 나아가 내가 맡은 반 학생들은 나를 존경하는가. 나는 학생들을 존중하고 있는가.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교육 제도는 교사들의 정당한 교육 활동을 보장하고 뒷받침하고 있는가. 미담이 미담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세상이 서로를 존경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개인적인 노력과 제도적인 노력이 받쳐주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지금 내가 바뀌면 되는 일이다. 어떻게 바뀌면 되는가. 역시 답은 간단하다. 교사의 자질을 갖추고 사제동행(師弟同行)하는 것이다. 사제동행은 교육과 관련된 한자어 중에서 청출어람(靑出於藍)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하지만 답이 간단할수록 실천하여 이루기 어려운 것들이 세상에 많다. 교육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우리 대호가 근이란 단어도 알고 있네.”
“장난 아니죠? 그런데 선생님 중학교 수학도 할 줄 알아요?”
“당연하지. 다음에 중학교 올라가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선생님을 찾아도 돼.”
(1) 『교과서를 만든 수학자들』(김화영, 글담출판사, 2013)의 ‘5차 방정식의 비밀을 푼 아벨’ 부분과 네이버지식백과 과학인물백과(저자 송성수)의 ‘닐스 헨리크 아벨’의 내용을 읽고 참고하였습니다.
(2) 『쉽게 풀어쓴 교육학』(이병승, 우영효, 배제현 공저, 학지사, 2016)의 362~364쪽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