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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세진 Apr 28. 2024

우리의 뇌를 잠식하는 21세기 디지털 연가시, 스마트폰

발달의 원리

    독자분들 중에서 제목이 자극적이라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자극적인 제목은 화자에겐 (할 말을 다 했기 때문에)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공감하지 않는 청자에겐 저항심을 낳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스마트폰을 ‘디지털 연가시’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아동의 스마트폰 장시간 사용 여부가 우리 사회의 미래,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 및 성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1)

    요즘 식당이나 카페, 놀이터, 기타 그 어디에서나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부모들이 수다를 떠는 동안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영상을 보고 있는 장면이다. 심지어는 엉거주춤 자세로 조심스럽게 걷는 아기들에게도 영상을 틀어준다. 부모들이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아, 정말 편하다.’, ‘우리 아이가 저렇게 집중하고 있으니, 공부를 잘하겠구나.’ 혹은 ‘이야 스마트폰을 보면서 뭔가를 배우고 있는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주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합의라도 한 듯, 버스나 지하철, 공원 등 장소를 불문하고 스마트폰을 향하여 고개를 숙인다. 한 곳에 앉거나 서서 보면 안전하기라도 하지만, 길을 걸으며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도 많다. 마치 스마트폰에서 투명한 손이 튀어나와 자기 쪽으로 주인의 얼굴을 끌어당기고 있는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다. 그리고 나 역시 이런 풍경과 거리가 먼 사람이 아니었다.     

    이번 글은 2020년 9월, TV에 방영된 tvN의 강연 프로그램 <미래수업>에 대한 리뷰를 통해 내 주장과 논리를 전개하려 한다. 노규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강연자로서 스마트폰 사용에 대하여 경고하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강연 내용 중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스마트폰 사용과 뇌 변화의 상관관계를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하자면, ‘알파 세대’(어려서부터 기술적 진보를 경험하며 자라나는 세대로, 2010년 이후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한다.)(2)는 문자보다 영상과 음성에 익숙한 세대다. 그러다 보니 특정 콘텐츠에 길게 머무르지 못할 뿐 아니라, 콘텐츠의 선택에 있어서 중요도보다는 재미를 기준으로 선택한다. 시각적 학습과 영상적 자극을 쫓아다니는 이들을, 전문가들은 ‘유목학습자’라고 부른다. ‘내용의 중요도’를 따지지 않고, ‘재미’만 추구하는 세대를 기르는 데 있어서 양육자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강조했다. 현재 내가 학교에서 담임으로 맡고 있는 학생들이 바로 ‘알파 세대’에 해당한다.

    강연이 진행될수록 흥미롭고 충격적인 진실들과 마주하게 된다. 이 세대는 왜 스마트폰에 빠져 살기 쉬운지 뇌의 특성을 통해 설명한다. 우리의 뇌가 구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많이 발전했다곤 하지만, 변하지 않은 뇌의 시스템이 있다고 한다. 단기적인 이익만 추구하는 뇌의 보상시스템이다. 뇌는 즉각적인 보상을 요구한다. 따라서 스마트폰은 이런 측면에서 인간의 욕구를 자극하고 실현하는 합법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어렸을 적 디지털 기기를 접할 기회가 없던 어른들도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하물며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애플이 아이패드를 출시한 때, 스티브 잡스는 인터뷰를 가졌다. “(당신의) 아이들이 아이패드를 좋아하겠네요?”라는 질문에 “아이들이 그걸 사용해본 적이 없거든요.”고 답변했다고 한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보급에 지대한 기여를 한 스티브 잡스조차 자녀들이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시간을 엄격히 제한했다는 건 너무나 유명한 일화다. 당연히 그러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뇌파의 측정 사진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뇌파 사진의 색이 붉은색에 가까울수록 뇌파의 활성도가 높고, 보라색에 가까울수록 뇌파의 활성도가 낮다고 한다. 스마트폰에 중독되지 않은 정상적인 뇌파의 경우, 초록색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뇌 가운데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스마트폰에 중독된 뇌파 측정 사진은 정상적인 뇌파와는 확연히 달랐다. 뇌파의 색을 통해서 전두엽과 오른쪽 측두엽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졌고, 오로지 후두엽의 기능만 활발한 상태란 걸 알 수 있었다. 이 해석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전두엽의 담당 기능인 감정 조절 기능, 운동 기능, 지적 기능, 그리고 측두엽이 담당하는 언어기능이 떨어지고,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후두엽의 기능만 활성화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스마트 스크린은 좌우뇌가 고르게 성장하지 못하도록 불균형을 초래한 셈이다.

    알파 세대의 뇌는 신경망을 만들어 가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사용하지 않는 신경망을 불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잘라내기도 한다. 이를 ‘가지 치기(시냅스가 신경 활동에 의해 필요한 부분만 남고 제거되는 현상)’라고 부른다. 한번 잘려 나간 가지는 이론상으로는 되돌아올 수 있지만, 완벽하게 복구할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특정 연령이 지나면 돌이키기 힘들다. 이런 아이들이 스마트 스크린을 장시간 시청하면 뇌 백질(중앙 신경계에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 정보의 처리 속도와 관련이 있음)의 밀도가 떨어지게 되어 인지 기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언어 발달에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강사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영장류의 뇌가 인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여 “파충류 수준의 뇌와 비슷해진다.”라는 것이다.

    유아기 스마트폰 사용 여부에 따른 연구 결과, 스마트폰을 사용한 아이들의 정서 통제 능력이 사용하지 않은 아이들과 비교하여 떨어지고,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할수록 부정적인 정서 표현을 더욱 많이 한다. 따라서 세계보건기구에서는 12개월 이하의 유아에게는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도록 권고했고, 만 2세까지는 디지털 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게다가 갈수록 우리나라 학생의 읽기 수준이 떨어짐을 OECD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눈으로는 읽지만, 뇌의 이해력이 떨어져서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디지털 기기의 사용 시간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문해력은 성인이 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장기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문해력은 자랄 수 없다. 어린 시절 문해력을 키우지 못한 어른이 나중에 커서 어떤 문제에 직면할까. 성적 향상, 대인관계(사회성), 취업에 어려움을 느낄 거라 쉽게 예상할 수 있다.(3)

    TV와 컴퓨터, 그리고 스마트폰을 비교해보자. 어릴 적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첫째, TV는 ‘바보상자’이다. 둘째, 컴퓨터 게임 중독으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부터 살펴보자. TV가 바보상자라고 불리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어릴 적부터 TV의 국영방송을 보며 자란 세대는 공감할 것이다. TV를 보다가 볼 게 없어서 채널을 돌리는 경험을 반복해 본 적이 많았다는 것을. 우선 볼 게 없거나, 본인이 보려는 프로그램의 광고를 기다리기 지루해서 채널을 돌리게 된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지금처럼 TV 채널이 많지 않았다. 우리 집 TV로 볼 수 있는 채널은 KBS, MBC, SBS, EBS 정도였던 것 같다. 적은 채널을 순간적으로 ‘멍’한 상태로 다람쥐가 쳇바퀴 돌리듯한 모습을 보고 바보상자란 말이 나왔나 싶다. 또 다른 이유는 TV 프로그램에서 얻게 되는 정보는 다른 사람의 주관이 들어간 가공된 정보이다. 특히 뉴스를 보면 그렇다. 방송사의 관점에 따라 입맛대로 진실을 교묘하게 가려서 방송할 수도 있다. TV는 쌍방향 소통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게 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흘러나오는 정보를 보고 들으며, 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멍한 상태로 ‘아,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뉴스에서 다루는 화제들 대부분이 취재를 통해 진실을 확인한 뒤 방송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나오는 정보를 생각 없이 그대로 믿고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에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둘째는 어떤가, 대략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출시한 윈도우98 운영체제가 나왔을 때쯤, 대부분 가정에 PC가 널리 보급되었던 것 같다. 자세한 통계를 내어 본 건 아니지만, 윈도우98 사양으로 게임을 돌리던 때, 내 친구들의 일상은 컴퓨터 게임으로 가득 찼고, 모이면 게임 이야기밖에 안 했기 때문이다. MS-DOS를 사용하던 시절에도 게임 중독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 당시 컴퓨터는 가정에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컴퓨터는 주로 회사 사무실에서만 볼 수 있었고, 정말 경제적인 여유가 있던 사람들만 가정에서 보유하고 있는 귀중품 중 하나였다. 그때는 컴퓨터 게임보다는 오히려 ‘패미콤’이나 ‘슈퍼 패미콤’과 같은 가정용 오락기에 빠져들기 쉬웠다. 그리고 게임과 관련된 문제는 오락실에서 비행 청소년들이 상주하여 나쁜 짓을 일삼는 데에서 발생했다. 컴퓨터 게임 중독이 사회적 문제로 크게 떠오른 시점은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스타크래프트(starcraft)’라는 명작이 출시되고 나서부터라 생각한다. 스타크래프트 이전에도 훌륭한 작품이 있었지만, 전국의 PC방 열풍을 일으켜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남녀노소 사이버 공간에서 어울리게 한 게임은 블리자드(Blizzard Entertainment)에서 만든 스타크래프트가 최초이지 않을까. 임요환의 기상천외한 경기 전략과 홍진호의 폭풍과 같이 휘몰아치는 플레이를 본 세대는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 뒤 PC방이 대중화되고 다른 장르에서도 ‘디아블로’ 같은 명작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든 RPG 게임이든, 사람들이 많이 하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문제를 신문 기사와 뉴스를 통해 많이 들었다.

    TV와 컴퓨터 게임, 얼핏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사리 분별력과 통제력을 잃는다.’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TV가 사람을 멍한 상태로 만들어 계속 채널을 돌리게 되고, 사람이 TV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를 생각 없이 그대로 듣기만 하는 것은 분별력을 잃은 멍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컴퓨터 게임도 마찬가지다. 온종일 스타크래프트를 했음에도, 잠시 밥 먹는 사이에 또 스타크래프트 생각이 나서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경우도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는 건 매한가지다.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게임을 많이 한다면 폭력성에 둔감해져 공격적 성향을 더 키우게 되어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데, 그것 역시 사리 분별이 안 되는 상태를 말한다.

    내가 왜 TV와 컴퓨터 이야기를 꺼냈을까?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저 두 가지 사물은 양반이라는 걸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릴 적 들었던 두 가지 이야기에 크게 공감도 안 된다. 우선 TV와 컴퓨터는 둘 다 휴대할 수 없다. 노트북 컴퓨터를 가방 속에 휴대하여 들고 다니는 경우가 있으나, 부피가 커서 굉장히 불편하다. 즉, 옮기지 못하고 특정 장소에만 박혀 있다. 그렇단 말은 특정 장소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항상 마음은 TV, 컴퓨터로 향하고 있지만, 물리적인 한계 덕분에, 부모님의 관리를 받기 용이하고 강제로 떨어져 있는 시간도 꽤 많다. 그리고 바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 집에서 TV를 보며 휴식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큰 문제점은 아닌 것 같다. 우리의 뇌도 잠시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뉴스, 다큐멘터리, 명사의 강연을 시간에 맞춰 시청한다면 새로운 지식을 쌓을 수 있다. 예전에는 가정에서 TV를 한 대만 보유했고, 많아야 두 대 정도였다. 그래서 어릴 때 온 식구들이 채널을 돌리는 주도권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고, 시간 보내기에 적합한 심심풀이용 드라마를 보더라도 다함께 둘러앉아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TV는 오히려 가족 구성원 간 대화와 소통의 도구로서 많이 활용되었다고 본다.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는 건 분명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중독이란 ‘자기 통제를 벗어난 지나침’이다. 그렇다면 중독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었을까. 위에서 언급했듯 컴퓨터를 거실 등 공개된 장소에 놓음으로써 부모가 자녀를 관리하고, 정해진 약속에 따라 게임 시간을 허용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컴퓨터 게임을 즐긴다면 더욱 돈독한 관계를 쌓을 수도 있었다.

    폭력적인 게임이 소년의 범죄를 증가시킨다고 했지만, 그것이 꼭 맞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폭력적 게임과 범죄 간의 상관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도 어릴 적 오락실을 밥 먹듯이 드나들며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과 같은 대전식 격투 게임을 거의 매일 했다. 악당을 물리치며 앞으로 진격하는 방식의 게임에 용돈의 전부를 붓기도 했다. 그 게임들이 나의 공격적 성향을 증가시키고 현실 구분을 못 하도록 만들지는 않았다. 게임을 하면서 뇌가 작동하지 않고 멍해지는 부분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격투 게임에서 연속기를 익숙하게 구사할 정도가 되면 생각 없이 자동으로 손이 반응하게 된다. 그렇지만 해당 연속기가 상대방에게 통하지 않는 상황에 부딪히면,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연구한다. 마냥 생각 없이 머리를 텅 비운 채로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다르다. 휴대전화가 전화나 문자메시지 전송과 같은 통신 수단의 기능만 갖고 있던 시절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다른 기능이 더해지면서, 어디에서든 휴대할 수 있는 작은 컴퓨터로 변신했다. 정보 검색과 게임은 물론이고, 영화 시청, 내비게이션, 더 나아가 금융결제까지도 할 수 있으며, 심지어 가정에 있는 가전 제품을 애플리케이션 하나로 조종할 수 있다. 즉, 웬만한 걸 다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중요한 건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하지 않고 장시간 영상 시청과 게임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들을 본인도 모르게 잃어간다는 것이다.

    어른은 그나마 집중력을 발휘하여 스마트폰을 잘 활용할 수 있다. 중‧고등학생들도 마찬가지로 노력과 의지에 따라 스마트폰 사용 습관을 스스로 잘 들일 수 있다고 본다. 스스로 안 되면 부모님, 선생님 등 타인의 지도를 받아서 ‘스마트’하게 사용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글의 첫머리에 언급한 취학 전 연령의 아동들과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는 굉장히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주로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면, 대다수 학생이 SNS에 사진을 올리며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유튜브 영상 시청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교사들은 해마다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통시적으로 학생들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맡은 아이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집중력과 자신의 감정을 통제‧관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게 보이는 데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소가 있겠지만, 나는 스마트폰의 문제가 크다고 생각한다. 대략 10여 년 전부터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된 것 같다. 스마트폰의 범용성을 대중들에게 인정받아 상용화된 초기에는 스마트폰이 열어버린 기능적 신세계에 모두가 빠져있을 때였다. 그 당시는 그것의 폐해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연구 결과가 지금과 비교하여 많지 않았다. 그때부터일지 모른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으로 아동용 영상을 시청하는 현상 말이다. 아니라면 좋겠지만, 뇌가 폭발적으로 자라는 시기에, 스마트폰의 과다 접속으로 무서운 ‘가지치기’를 겪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이러한 지식을 미리 알고 있어서인지, 알고 있는 지식이 확증 편향적 사고를 낳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학생들이 예전에 교육했던 학생들과 비교하였을 때, 집중력과 감정 조절 능력 면에서 뒤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의 잘못된 판단이길 바란다.

    요즘은 영유아 건강검진을 하기 전에 미리 부모가 설문지를 작성한다. 설문지에 미디어와 관련된 내용을 확인하는 문항이 명시되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부모들이 설문을 통해서 ‘아, 이게 참으로 해를 끼치는 물건이구나’라고 깨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남들도 다 보면서 잘만 큰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취학 전 스마트폰에 장시간 노출된 학생들이 초등학교에 신입생으로 입학할 때, 이미 학생의 통제력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지 않을까. 서로 양보하며 친절하게 대하라는 교사의 말을 듣고 자기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지만, 이미 감정을 조절하는 기능을 많이 잃어버린 뇌 때문에 친구들에게 반복적으로 짜증 섞인 말과 욕설을 쉽게 내뱉는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의 탓을 교사의 무능 또는 교육 시스템으로 돌린다면, 교사의 처지에서는 꽤 억울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교육심리학 분야에서는 아동의 발달을 다룬다. 발달은 성장(growth)과 성숙(maturation)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성장은 양적으로 증대하는 것을 뜻하고, 성숙은 질적으로 향상되어 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코프카(Koffka)는 “유기체와 그 기관이 양에 있어서 증대하고, 구조에 있어서 정밀화되며, 기능에 있어서 유능화되는 것”이라고 발달을 정의했다. 발달의 원리도 함께 살펴보자.(4)   


    1) 발달에는 일정한 순서가 있다.

    2) 발달은 계속적인 과정이지만 발달의 속도는 일정하지 않다.

    3) 발달은 성숙과 학습에 의존한다.

    4) 발달에는 개인차가 있다.

    5) 발달의 각 측면은 상호관련성을 가진다.

    6) 발달의 초기 단계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다.     


    이번 글의 취지는 2)와 6)과 맞닿아 있다. 2)는 특정 시기에 어떤 기관이나 기능의 발달이 급격히 진행된다. 이러한 시기를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라고 한다. 이런 시기에 발달이 장애를 받으면 영구적인 결함을 지닌다고 한다. 6)도 2) 못지않게 무서운 말이다. 영유아기의 발달은 이후의 모든 단계의 성장 발달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스마트폰 자체가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서, 스마트폰을 ‘21세기 디지털 연가시’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기 역시 두뇌 발달에 중요한 시기다. 뇌가 연가시에 잠식되지 않도록 유튜브의 짧은 영상(Shorts 영상)을 보며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지 않도록 교사와 학부모가 협력하여 지도하는 게 중요하다.



(1) 실제로 연가시는 사람의 몸속에서 기생하여 사람을 조종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연가시가 사람에게 특별히 해를 입히는 것은 아닙니다. 연가시는 곤충과 같은 절지동물을 숙주로 삼아, 몸속에서 기생하여 나중에는 숙주를 물가로 가도록 조종합니다. 장소를 가릴 것 없이 어디서나 스마트폰을 향하여 고개 숙이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고, 곤충이 연가시에 조종당하는 모습처럼 사람도 스마트폰에 조종당하는 것이라 느꼈습니다. 당연히 스마트폰을 만든 사람들과 특정 제조회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을 곤충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밝힙니다. 스마트폰이 주는 이점도 많아서, 저 역시 수업 때 많이 활용하지만, 이 글에서는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하지 않고 지나치게 사용하면 해가 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서 말씀드리려다 보니 연가시란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2)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알파 세대’를 참고하였습니다.

(3) tvN 2020년 9월 22일 방송된 <미래수업> 강연의 핵심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4) 『쉽게 풀어쓴 교육학』(이병승, 우영효, 배제현 공저, 학지사, 2016)의 153쪽 ‘발달의 원리’에 나오는 소제목을 발췌하여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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