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학적 변환론
“선생님, 저 큰일 났어요. 오늘 수학 시간에 보는 평가가 조금 걱정돼요.”
지혜가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을 푹푹 내쉰다.
“공부하면 되지, 3교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어서 교과서 펴서 공부해봐.”
“늦었어요. 이제 와서 어떻게 해요. 집에서 엄마가 수학 문제 틀리면 많이 혼낸다고요.”
지혜는 평소 수업 태도가 산만한 학생이다. 수업 때 전체적으로 핵심 개념을 설명하는 시간에 집중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속칭 ‘멍 때리고’ 있거나 수업 시간과 관련 없는 물건을 만지작거린다. ‘멍 때리다’는 표현은 ‘넋을 놓는다’는 의미인데, 이를 활용한 표현으로 불멍(불을 보고 넋 놓고 있음), 물멍(물을 보고 넋 놓고 있음) 등의 신조어를 만들 수 있다. 아마 지혜에게는 수멍(수數를 보고 넋을 놓고 있음)이란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수(數)만 보면 머리가 비워지나 보다.
지혜에겐 중간중간 수업에 집중하도록 촉진하거나, 쉬는 시간에 개별 지도를 했다. 이해력이 조금 부족한 학생이었지만, 개별적으로 지도할 때는 ‘아하!’ 하며 나름대로 잘 따라오는 학생이었다. 지혜의 ‘아하!’ 소리에 가르칠 맛이 절로 났다. 하지만 선생님으로서 아쉬운 점 두 가지도 함께 말했다. 첫째, 수업 때 지혜가 좀 더 집중하면 쉬는 시간에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지혜는 그럴 때마다 웃으며, 수업 중에는 이상하게 집중이 잘 안 되고 졸린다고 한다. 둘째, 오늘 배운 수학 내용을 집에서 한 번 더 복습하면 큰 효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교육대학을 다니던 시절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을 수업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난다. 독일의 심리학자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이 얼마나 기억할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가로축을 ‘시간이 흐른 정도’, 세로축을 ‘기억’으로 설정하여 연구 결과를 그래프로 나타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망각 곡선’이다. 정작 에빙하우스는 이 곡선을 ‘보유 곡선(retention curve)’이라고 불렀다. 망각 곡선을 살펴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학습하고 1시간 뒤에는 암기 내용의 44.2%만 남게 되고 나머지는 망각하게 된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면 암기 내용은 33.7%만 남아 있게 된다.(1)
학자들은 망각을 극복하려는 방법을 연구했다. 해답은 우리가 평소 너무나도 많이 들었던 ‘복습’이다. 망각 곡선을 살펴보면 학습 후 9시간까지는 급속도로 망각이 일어나기 때문에 9시간 안에 복습하는 것이 망각을 극복하는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오전에 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웠다면 오후에는 선행학습하는 것보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것이 장기기억으로 더 많은 내용을 저장하는 길이다.
평소에 복습을 강조했지만, 하지 않은 데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지혜 본인의 몫이다. 그러나 몰랐다면 지나칠 수 있었겠지만, 학습 결손을 확인하고도 방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시무룩한 지혜의 얼굴을 펴주고 싶기도 했다.
“지혜야, 선생님이 만점 받게 도와줄까?”
“에이, 어떻게요. 이제 늦었어요.”
“아냐. 아직 방법이 있지.”
“정말요? 정말 그게 가능해요?”
“그럼! 어서 해보자. 10분이면 충분해.”
분수를 가르치면서 가장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단계가 있다. 바로 진분수, 가분수, 대분수를 모두 배운 뒤, 가분수를 대분수로 바꾸고, 다시 거꾸로 대분수를 가분수로 바꾸는 단계이다. 많은 아이가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이걸 능숙하게 할 수 있다면 계산 영역을 제외하고 분수 자체는 일단 터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수업 시간에는 그림을 그려가며 원리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처음 배우는 과정에는 이렇게 알려주는 게 당연하다. 그러고 나서 빨리 변환하는 법을 함께 생각해 보고 알려준다. 물론 선행학습이 어느 정도 된 아이는 학원에서 미리 방법을 알아 와서, 흔히 말하는 ‘스포일러’가 되기도 한다.
오래전 일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수업 시간에 대분수를 가분수로 바꾸는 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던 것 같다. 가분수 '4분의 22'를 예로 들어 보자. 우선 네모를 여섯 개 그린 뒤, 네모 하나당 크기를 같게 4분할을 한다. 그러면 분할된 칸은 총 24칸이다. 한 칸이 4분의 1이므로, 4분의 22는 4분의 1이 22칸 있는 셈이다. 따라서 22칸을 칠한다. 앞에서부터 차곡차곡 순서대로 칠하면 여섯 번째 네모에서는 4분의 1이 두 칸 칠해진다. 네모 하나의 크기가 1이므로, 1이 5개 있으니 5가 되고, 4분의 1은 두 개가 있으니 4분의 2가 된다. 이 둘을 합하면 5와 4분의 2가 된다. 거꾸로 대분수 '5와 4분의 2'를 가분수로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렸다. 네모 여섯 개를 그리고 네모 하나당 1이므로, 우선 다섯 개를 먼저 색칠한다. 그 뒤 여섯 번째 네모를 4등분하고 4분의 1을 두 칸 칠한다. 마지막으로 앞에 있는 칠해진 5개의 네모를 4등분한다. 그렇게 하여 전체적인 4분의 1의 개수를 세어보면 22개가 된다. 따라서 4분의 22로 바꿀 수 있다. 그림 설명이 끝나면 다른 방식으로 원리를 알려준다.
이 모든 과정이 이해된 뒤에는 편한 방법을 알려준다. 가령 '4분의 22'는 분모를 그대로 먼저 쓴 뒤, 22를 4로 나누면 몫이 5이고, 나머지는 2가 된다. 그러면 몫은 분수의 허리 부분에, 나머지 2는 분자에 써주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5와 4분의 2'의 경우, 마찬가지로 분모는 먼저 쓰고, 5와 분모인 4를 곱한 뒤 분자 2를 더한 수가 22가 된다는 걸 말하며, 22를 분자 자리에 쓴다. 이렇게 하면 쉬운 방법으로 바꿀 수 있다고 알려준다.
나는 지혜에게 편한 방식을 빨리 상기시켰다. 수업 때 잘 듣지 않았기 때문에 지혜는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방법이 워낙 쉬워서 빨리 터득했다. 그리고 터득한 내용에 대한 응용문제 몇 개를 풀게 했다. 가분수를 대분수로 변환하고 대분수를 가분수로 바꿀 줄 알기만 하면 절반 정도는 맞힐 수 있도록 문제를 냈다. 그리고 나머지는 변환 뒤 분모가 같은 분수의 합과 차를 구하는 문제로 출제했다. 동분모 분수의 연산은 아이들이 어려워하지 않았다. 즉, 변환이 문제 풀이의 관건이었다. 편한 방식으로 변환하는 것을 짧은 시간 내에 터득한 지혜는 평가를 풀자마자 내게 달려왔다.
“우와! 선생님은 마법사예요! 제가 만점을 받았다고요!”
지혜는 아직 채점도 하지 않은 상태인데, 만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 모습을 보자 정말 지혜의 성적이 궁금해졌다. ‘어디 한번 볼까?’라는 생각으로 지혜의 평가지를 먼저 찾아 채점했다. 정말 모든 문제를 다 맞혔다. 평가를 너무 쉽게 내었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지혜가 봤던 평가는 단원이 끝나고 자체적으로 치르는 총괄평가였다. 공식적으로 나이스(NEIS)에 점수가 입력되지는 않지만, 학생의 성취도를 파악하기 위해 의례적으로 봤던 평가였다. 문득 두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첫째는 수행평가의 채점 기준이고, 둘째는 내가 아이에게 한 행동이 가져다주는 영향력이다. 아무래도 잘못 아이를 지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행평가를 채점할 때는 채점기준안을 보고 채점한다. 대부분 학교는 4단 평가를 시행한다. 4단 평가의 최상위 등급은 ‘매우 잘함’이다. 매우 잘함의 채점 기준 예시를 들어 보자. “분모가 같은 분수의 뺄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제시된 여러 가지 뺄셈 상황의 문제를 모두 정확하게 구할 수 있다.” 분수 연산의 근본원리를 설명하지 못한 채 동분모 분수의 연산을 편한 방식으로만 풀어 문제를 다 맞힌다면, 분수의 뺄셈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일까. 계산 원리를 이해하지 않고, 기계적 문제 풀이법에 의존하여 맞힌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문제를 ‘맞혔다’와 ‘이해한다’는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없을 것 같다. 따라서 평가 문항을 출제할 때는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문항을 출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교사로서 잘못한 점은 무엇일까. 슈발라르(Y. Shevallard)의 ‘교수학적 변환론(didactic transposition theory)’과 연관 지어 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교수학적 변환론’이란 슈발라르(Y. Shevallard)가 주장한 이론으로서, 학문으로서의 수학이 학교에서 가르치기 위한 형태로 변환되는 일련의 과정에 주목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학문적 수학을 학교에서 가르치기 위하여 교수학적 변환을 시도하다가 지식의 표현 형태나 의미가 왜곡되는 극단적인 교수 현상이 발생한다. 메타 인지 이동, 형식적 고착, 토파즈 효과, 조르단 효과가 그것이라 할 수 있다.
메타 인지 이동이란, 지식을 가르치는 데 쓰이는 보조 수단이 지도의 목적이 되는 것을 말한다. 초등학교 수업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나도 메타 인지 이동을 경험한 적이 있다.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수학 교구로 태블릿 PC를 활용하였다. 그런데 학생들의 관심은 수학적 지식이 아니라 태블릿 PC에 깔린 애플리케이션이나 계산기로 옮겨 갔다. 그리고 운동장에 큰 원을 그릴 수 있는 컴퍼스를 나무 막대로 만들어 모둠별로 나누어 주었는데, 몇몇 장난기 심한 남학생들이 막대로 위험한 장난을 치려고 시도했다.
형식적 고착이란, 공식화된 지식의 논리적인 표현에만 의존하는 것이다. 즉, 교사가 원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 사다리꼴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 등 논리적으로 정련된 표현을 유도 과정 없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곧바로 문제에 적용하도록 연습시키는 행동을 들 수 있다. 내가 지혜에게 한 실수는 형식적 고착이다. 지혜 스스로 수학 공식이 어떻게 나왔는지 스스로 파악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를 수학교육학 용어로 ‘개인화 또는 배경화’라고 한다.) 없이 일종의 분수 간 변형 공식만 알려준 셈이다. 지혜야 다급한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수업 중에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6학년을 가르칠 때였다. 원리를 설명하고 학생들에게 숙고할 시간을 주었지만, 시간이 빠른 속도로 흘러가자 정해진 차시 동안 정해진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에 조급함을 느꼈다. 이해를 못 하는 학생들에게 ‘잘 모르겠으면, 그냥 반지름 두 번 곱하고 3.14를 곱해라. 그러면 답이 나온다.’와 같은 식으로 가르친 기억이 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일이 아닌가요?’(답만 맞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공식에 담긴 원리를 알고 문제를 맞히는 것과 모르고 공식만 훈련해서 문제를 맞히는 것은 분명 큰 차이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수학의 본질을 무시하고 수학을 단순 암기 과목으로 전락시키는 처사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가 쌓이다 보면, 수학을 보는 안목의 어마어마한 개인적 격차가 발생한다. 넓은 안목을 키운 학생은 수학을 통찰하여 푸는 힘이 생긴다.
토파즈 효과(Topaze Effect)는 학생이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교사가 방해하거나 제거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고 학생은 배워야 한다는 ‘교수학적 계약(didactical contract)’에 따른 압박에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학생이 지식을 표현하는 과정(교육학 용어로 ‘탈개인화 또는 탈배경화’라고 한다.)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교사는 명백한 힌트를 주거나 유도 질문을 통해 정답을 알려준다. 나 역시 답답한 마음에 유도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6학년 수학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내용이 많다. 특히 어려워하는 부분이 비와 비율, 비례식, 백분율 부분이라 생각한다. 어떤 수가 기준량이고, 어떤 수가 비교하는 양인지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헷갈리게 된다. 이 단원을 가르치면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아이들이 수업 때 입을 모아 대답을 너무 열심히 해서인지, 나는 아이들이 개념을 잘 이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수행평가 결과는 개념 이해가 부족한 아이들이 많다는 걸 말해주었다. 평가 문항을 하나씩 풀이하는데,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할인율 문제가 있었다. 하나당 20,000원인 물건을 15,000원에 팔았고, 하나당 30,000원인 물건을 24,000원에 팔았다. 어느 쪽의 할인율이 높은지를 묻는 문제였다. 24,000원을 분모에 적으려는 학생들이 있어서, 순간적으로 분모 자리를 가리키며, ‘원래 가격이 얼마라고 했지?’와 같은 명백한 답을 알려주는 질문을 했다. 학생들은 분모 자리에 오는 수의 성격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의 손가락을 보고 할인 전 물건의 가격만 파악하여 대답하게 된다. 결국 할인율 문제를 이해시키기 위해 점심시간까지 할애하여 보충학습을 했다.
조르단 효과(Jourdain Effect)는 학생의 사소한 행동이나 반응을 보고 학생이 학습 내용을 이해했다고 오판하는 경우를 말한다. 쉽게 말해서 학생이 우연히 특정 지식과 관련된 말이나 행동을 한 것을 교사가 과대평가한 것이다. 실수를 저지르고도 기억을 못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조르단 효과와 같은 실수를 저질러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상담할 때, 학부모님으로부터 조르단 효과를 떠올릴 법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자녀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란 노래를 다 외워 부르는 것을 듣고 역사의 신동이라고 말씀하시는 학부모님도 계셨고, 단순한 연산 문제를 잘 푸는 걸 보시고 수학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셨다. 지엽적인 부분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2)
메타 인지 이동은 교사가 쉽게 인지할 수 있는 현상이므로, 수업 중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활동의 핵심이 무엇인지 짚어주거나 수학 교구를 소거해버리고 다른 방식으로 이해를 돕는다면,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형식적 고착 역시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선생님께서 표준화된 공식 이전에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신다. 지혜의 상황처럼 다급한 상황, 또는 즉각적인 성과를 내어야 할 상황이 아니고선, 선생님들께서 차근차근 계단을 오르듯이 수업 지도 단계를 밟아가시리라 믿는다.
문제는 토파즈 효과와 조르단 효과라고 생각한다. 토파즈 효과는 한정된 시간에 스무 몇 명의 학생들이 이해하도록 해야 하는 상황에서 쉽게 발생할 수 있다. 시간에 쫓겨, 혹은 답답한 마음에 유도 질문을 하거나 힌트를 주게 된다. 힌트가 너무 명백하면 학생이 생각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교사 본인이 경계심을 가졌더라도 돌이켜보면 ‘내가 이런 질문을 해서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구나.’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이 벌어진다. 조르단 효과 역시 마찬가지다. 조르단 효과의 발생은 교사의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기인할 수 있다. 교사가 특정 학생을 평소 칭찬하여 용기를 심어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느 날 그 학생이 문제에서 주어진 두 수를 곱한 결과가 정답이었다. 사실 학생이 원리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그냥 주어진 두 수를 곱해본 것인데 말이다. 교사는 학생의 풀이를 보며 학생의 이해 정도를 파악해야 하는데, 학생을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결국 칭찬과 용기 부여에 매몰된 마음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 학생의 정답을 인정해버리는 때도 있다.
선종 불교의 선문답 이야기를 들으면 조르단 효과가 연상된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달마는 불법을 전파하고, 서기 536년 다른 곳으로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제자들을 불렀다. 제자들에게 각자 깨달은 바를 이야기해보라고 하였다. 제자들은 돌아가며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마지막으로 달마의 제자 혜가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예를 행하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때 달마는 ‘넌 이미 나의 골수(骨髓)를 얻었구나’라며 껄껄 웃었다.(3) 그리고 떠나기 전 자신의 의발(衣鉢)을 전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교사의 전문성과 관련이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무리 읽어봐도 이야기에 담긴 참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달마가 강조한 가르침인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뜻을 써보라고 시험 친 것도 아니다. 달마의 가르침을 글로 설명하는 시험을 쳤다면, 채점을 마친 후 ‘만점!’이라 외치며 ‘너는 깨달았구나!’라고 쉽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혜가의 무반응만 보더라도 일반인이 볼 수 없는 영역이 보이나 보다. 달마는 중국 선종을 창시한 최고 고승이다.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지만, 달마 대사는 자신만의 혜안으로 혜가의 성불을 꿰뚫어 보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달마가 깨닫지 못한 사람이었다면, 가만히 서 있기만 한 혜가의 행동을 보고 ‘야, 너 왜 내 말 무시하냐?’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나였다면 똑같은 상황에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나는 이 이야기가 교사의 전문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가 학생의 사소한 반응을 속칭 ‘오버’해서 확대해석하지 않으려면 달마가 선승들을 보듯이 학생의 행동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교수학적 변환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극단적인 교수 현상을 살펴보았다. 지혜의 눈에는 내가 마법사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평가는 글렀고, 꾸지람을 듣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제를 단기간에 풀게 해주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수업 중, 짜~안! 하며 마법을 부리는 데는 교사로서 신중함을 기해야 할 것이다. 교사는 마법사가 아니라 학생의 성장을 돕는 교육자이니 말이다.
(1) 네이버 지식백과 『상담학 사전』(김춘경 외 4인, 학지사)의 ‘에빙하우스 곡선’을 참고했습니다.
(2) 교수학적 변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극단적 교수 현상에 관하여 『초등학교 수학과 교재연구와 지도법』(김성준 외 7명, 2013, 동명사)의 내용과 위키백과 ‘조르단 효과’, ‘토파즈 효과’의 내용을 참고하여 정리하였습니다.
(3) 『육조단경』(채지충, 도서출판 두성, 1994)의 16쪽을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