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세진 Apr 14. 2024

학습의 징검다리

사회적 구성주의, 근접발달영역이론

※ 2023년(작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2023년, 제자들은 나에게 발포 비타민과 같은 존재다. 올해 내가 맡은 아이들은 모두 아홉 명이다. 아이들의 특성을 나열하면, 정적인 학생보다는 동적인 학생들이 많다. 활발하고 활력이 넘친다. 대체로 남학생들은 운동을 좋아하고, 여학생들은 댄스를 좋아한다. 남녀를 구분할 것 없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업무에 쫓기며 정신없이 있을 때, 몇몇 여학생들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내곤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이런 거 해보면 어떨까요?”와 같은 말이다. 아이들이 계절 음식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그 덕분에 여름의 대표적인 계절 음식인 빙수를 아이들과 함께 맛있게 만들어 먹었다. 아이들의 적극적인 성향이 수업 진행을 가끔 방해할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바라보며 선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아홉 명의 학생들을 위하여 재미있는 수업을 준비할 때는 언제나 즐겁다.

    첫 문단을 끝까지 읽다 보면 내가 글의 맨 앞에 쓴 “2023년, 올해 만난 제자들은 나에게 발포 비타민과 같은 존재다.”라는 문장이 이해될 것이다. 발포 비타민의 장점과 내가 나열한 학생들의 특성을 연관 지어 사고하면 왜 저러한 표현을 썼는지 이해하기 쉽다. 비타민은 우리 몸의 여러 기능을 담당한다. 그렇다면 비타민과 칼슘, 인, 나트륨 같은 무기질과의 차이점은 뭘까. 결정적인 차이는 단일 원소로 이루어진 무기질과는 달리 비타민은 ‘화합물’이란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각각의 개성으로도 빛나지만, 아이들이 한데 모여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여러 활동과 반응, 그로 인한 분위기는 비타민처럼 내 교직 생활에 큰 힘을 준다. 게다가 비타민은 체내에서 스스로 합성할 수 없으므로 더욱 귀한 존재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이 필요하다. 학생이 없다면 교사란 존재도 없다. 그리고 ‘발포(發泡)’는 거품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어디로 튈지 모를 톡톡 튀는 아이들의 터질듯한 개성이 톡톡 터지는 거품처럼 다가와 힘을 주기 때문에 발포 비타민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발포 비타민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해석했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발포 비타민을 먹다가 사레가 들려 자신이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앞에서 실수한 적이 있는 사람, 발포 비타민이 맛없이 느껴져서 싫어하는 사람 등 이에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진 사람은 내 표현을 듣고 의아해할 것이다. 또 지나치게 진지하고 깐깐하고, 농담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반응할 수도 있겠다. “비타민은 3대 영양소에 들어가지도 않고, 우리 몸에서 소량만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아니란 겁니까? 그리고 조금만 있어도 된다는 뜻입니까?”라고 하며 따질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겠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세상은 요지경이라 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한술 더 떠서 평소에 나를 아주 싫어해서 내가 무슨 말만 하더라도 반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비타민은 먹는 거잖아요? 그러면 학생이 비타민이면 학생을 식인종처럼 잡아먹겠다는 건가요? 당신은 식인 문화를 옹호하는 사람이군요!”라고 묻는 사람도 세계 인구 80억 중에서 있을 수 있다. 조금 극단적인 사례를 들긴 했지만, ‘발포 비타민’이란 단어를 개인의 경험에 따라서 달리 해석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비유는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만, 교사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은 어떨까? 과연 지식도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다르게 구성될 수 있을까?

    전통적으로 사람들은 지식을 고정된 것,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이 사람들은 어떠한 절대불변의 진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서양철학사에서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명제라고 여긴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지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나타났다. 지식이나 법, 규범 등은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개개인에 따라 변한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을 구성주의(Constructivism)라고 부른다.

    지식을 보는 관점은 교육에 있어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식을 보는 관점에 따라, 교사가 수업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교사는 객관적인 지식과 절대불변의 진리를 전하는 것을 주된 수업 방식으로 삼았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을 지지한다면 수업은 주로 교사 중심의 강의식 수업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반면에 구성주의의 관점을 따른다면 지식은 발견되거나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구성주의 관점을 따른다면 지식을 ‘구성’하는 방식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수업은 학습자 중심의 프로젝트 수업이나 서로 협업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구성주의를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로 장 피아제( Jean Piaget, 1896~1980)와 레프 비고츠키( Lev Semenovich Vygotsky, 1896~1934)를 들 수 있다. 두 분 다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들어 보지 않을 수 없다. 두 학자는 모두 구성주의를 주장했지만, 서로 의견이 다르다. 피아제는 아동의 인지발달은 물리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여 이루어진다고 주장했고, 비고츠키는 물리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지식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은 사회적 존재이므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지식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비고츠키의 관점을 ‘사회적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vism)’라고 부른다. 피아제는 인지발달이 인류 보편적이라 보았고, 비고츠키는 인간의 인지는 사회문화적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사회마다 가치관이 달라서 지적 발달의 과정은 인류 보편적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1) 둘 중 누가 옳고 그르냐보다는 사람의 발달은, 기존에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해석하고 자신의 해석을 바탕으로 다른 무엇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다.     

    2023년에 있었던 일이다. 4학년 1학기 수학 6단원은 규칙 찾기란 단원이다. 수학 교과의 영역 중 규칙성을 다루는 중요한 단원이다. 이 단원을 가르칠 때, 교과서에 있는 문제만 풀지 않고 ‘문제적 남자’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다룬 문제들을 함께 풀어보았다. 그 프로그램을 들어보긴 했으나, 직접 보지는 못했다. 다행히 능력 있는 선생님께서 문제적 남자에 나온 문제를 잘 정리하여 교사 커뮤니티에 올려주셨고, 그 선생님의 자료를 감사한 마음으로 활용했다. 수업을 가르치기 전에 혼자서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갖고 풀어보았다. 문제들이 하나 같이 너무 재미있었고, 도전해볼 만했다. 즐거운 수학 시간을 머릿속에 상상하며 다음 수학 시간이 오길 기다렸다.

    기다리던 규칙 찾기 첫 수업 시간이 왔다. 미리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한 학생은 다 안다는 듯이 내 설명도 듣지 않고 능숙하게 한 문제씩 문제를 풀어나갔다. 나는 미술 교과와 마찬가지로 수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관찰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도형이나 규칙성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숫자의 배열을 자세히 관찰해야만 규칙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규칙성을 파악하는 요령을 자세히 설명해 주니, 우리 반 학생들은 교과서의 모든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아, 이건 껌이지.”라며 너스레를 떠는 귀여운 아이들도 있었다.

    “여러분 모두가 문제를 쉽게 잘 푸는 것 같아서 선생님이 교과서에 없는 새로운 문제를 가져왔어요. 혹시 TV 프로그램 문제적 남자를 아세요?”

    아이들 모두 새롭고 어려운 문제를 푼다는 생각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중에 퀴즈를 좋아하는 성향을 지닌 한 학생이 말했다.

    “엇! 저 그거 들어봤어요!”

    “들어 봤니? 좋아요. 그러면 문제를 공개합니다!”

    얼핏 보더라도 교과서의 문제와는 한 차원 다른 수준인 걸 느낀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조금 생각하고 모르겠다며 관심을 꺼버리는 모습, 퀴즈를 푸는 걸 즐기는 모습,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이리저리 종이에 연필을 굴리는 모습 등 각양각색으로 빛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나는 웬만해선 성과나 잘한 일에 대해 보상을 하지 않는 편이다. 학생이 잘한 일에 보상이 있게 되면, 주객(主客)이 전도되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사를 잘할 때마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떠들지 않을 때마다 사탕을 준다고 하자. 보상이 뒤따르지 않더라도, 인사를 잘하거나 떠들지 않는 행동은 학생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이다. 하지만 보상이 주어질 경우, 학생들은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을 사탕을 받으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착각할 수 있다. 따라서 보상이 없어지면 “나 안 해!”라는 마음먹을 수 있다.

    교직 생활 시작부터 지금까지 “선생님! 우리 이것 잘했으니까 맛있는 거 주세요.”라는 식의 요구와 “선생님! 작년 선생님이 우리 잘할 때마다 학급 점수판에 점수 올려주고, 파티도 했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칭찬 스티커 모으면 선물도 줬어요.” 등과 같은 항의에 많이 부딪혔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너희들이 그런 거 없이도 잘할 거라 믿는다.”라며 더 거론해봤자 소용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물론, 보상에 관해서 정답은 없다. 보상의 장점도 많기 때문이다. 어떠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즉각적으로 촉진할 수 있으며, 처음에는 보상 때문에 열심히 했지만 어떠한 행동을 하면서 행동 자체에 담긴 가치를 깨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가끔 보상을 활용할 때가 있다.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문제를 맞힐 때마다 비타민을 하나씩 주기로 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열심히 화면에 나와 있는 문제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과 상의하지 않고, 4분 동안 속으로 문제를 진지하게 해결하려고 노력해보세요. 문제를 잘 관찰하면 여러분들 수준에서 충분히 풀 수 있습니다. 4분이 되었는데도 푸는 사람이 없으면 모둠별 의논 시간을 줄게요. 여러분 모두가 한 팀입니다. 여러분들이 의논해서 구한 답이 맞으면 모두에게 비타민이 돌아갑니다.”

모두가 함께라는 말에 수학에 자신감이 없거나 생각하기 싫어하는 학생도 다른 학생들의 등쌀에 못 이겨 참여했다. 그렇게 서로 부대끼며 사회성은 길러진다. 힌트가 없을 때는 풀기 힘들지도 모른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수학적 사고가 오로지 교육과정 속의 풀이 방식으로 굳어져서 아이들보다 사고가 유연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정말 생각의 한계에 부딪혀 포기하기 직전의 순간을 유심히 관찰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포기하더라도 정답을 알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정 자체가 칭찬받기엔 충분했다.

    모둠별 의논 시간을 주더라도 혼자서 푸는 것과 다른 바 없이, 제 생각만 말할 때도 많았다. 포기 단계에서는 생각하지 않고 답을 막 던지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힌트를 주었을 때, 힌트의 뜻이 무얼 의미하는지 예를 들어가며 서로를 이해시켰고, 이해한 점을 바탕으로 내게 되묻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알파고처럼 점점 수학적 지식의 영역을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문제적 남자’에 나온 문제들의 장점은 아이와 어른 중에서 어른들에만 유리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른들이 아는 루트, 제곱근, 삼각비 등 어려운 수학 지식을 굳이 모르더라도 숫자의 배열, 글자의 특성을 유심히 살피는 관찰력만 있다면 아이들도 풀 수 있는 문제다. 더군다나 문제 풀이 패턴을 외우고, 유형별 문제 공략에 익숙한 어른들에게는 더욱 불리할 수도 있다. 힌트를 두세 개 정도 주면서 맞힐 시간을 충분히 주자 정답을 알아내는 경우가 많았다. 정답을 알아내지 못하여 풀이를 공개하려 하면, 아이들은 시간을 더 달라고 안달했다. 나는 시간을 더 준다면 쉬는 시간이 줄어들 텐데 괜찮겠냐고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문제를 맞힌 학생들뿐 아니라, 노력한 모든 학생에게 비타민이 주어졌다.

    상대방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상대방이 나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수학적 사고의 영역이 대각선끼리의 합, 글자의 형태, 그림의 대칭성, 달력, 자신이 만든 식을 특정 방식으로 정의하는 것 등 모든 사고를 수학적 문제해결의 열쇠로 사용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한 사고의 영역은 교과서에 있는 방식을 기초로 하되, 다양한 방법으로 넓혀질 수 있다는 걸 아이들 스스로 깨달았다. 나는 이 수업을 하면서 비고츠키가 떠올랐다. 가르치는 친구(tutor, 튜터)는 자기 생각을 친구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평소에 쓰지 못했던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게 되고, 자기가 알고 있는 개념에 오류가 있는지 명확하게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학습자에게는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수준(현재 발달 수준)의 영역과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수준의 영역(잠재적 발달 영역)이 있다고 한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이 두 영역 사이에 있는 또 하나의 영역을 제시한다. 이 영역을 근접발달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이라 부른다. 근접발달영역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지만, 선생님이나 친구 등 타인의 도움을 받았을 때는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을 말한다. 수학 수업에서 아이들이 난관에 부딪혀 두 손 두 발 들기 직전에 힌트를 하나씩 제시하면서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다. 나는 힌트를 주며 돕는 것을 하천 건너편까지 한 발짝씩 다가갈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주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고츠키는 이렇듯 현재 발달 수준과 잠재적 발달 영역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을 스캐폴딩(scaffolding, 비계설정)이란 개념으로 정립했다. 스캐폴딩은 학습자에게 적절한 인지적 도움과 안내를 제공하여 학습을 촉진시키는 전략을 의미한다.(2)

    비고츠키의 이론은 교사가 어떠한 역할을 하면 좋을지를 알려준다. 학습자의 잠재적 발달 영역을 현재 발달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교사가 수업 중 적절한 안내와 도움을 제공하여야 하며, 인지발달은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습하기 편안한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아동의 잠재성을 파악하고, 개인마다 다른 근접발달영역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사의 어깨가 점점 더 무거워진다.

    비록 비타민이라는 보상으로 학생들이 어려운 문제에 손을 댔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이끌어줄 수 있는 친구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의 인지적 발달이 일어났으며, 나중에는 비타민과는 별개로 활동 자체를 즐기게 되는 바람직한 현상이 벌어졌다. 중국 오경(五經) 중 『예기(禮記)』에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이 나온다. 보통 교사는 가르치는 입장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교사 역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배우는 바가 크다. 이번에도 나는 아이들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근접발달영역과 관련하여 어떤 식으로 수업의 방향을 잡고 지도해야 할지 생각하게 되었다.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함께 성장하는 수업, 배려와 존중, 웃음으로 넘치는 교실이야말로 교직 생활의 큰 원동력이 된다. 



(1) 『교육심리학』(심우엽, 교육과학사, 2011)의 353쪽의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2) 네이버 지식백과 HRD용어 사전, ‘스캐폴딩’을 참고하였습니다.

(3) 이 글에 담긴 교육 지식은 ‘조우태 외 2인, 『교육학 끝판왕』’, ‘이병승 외 2인 『쉽게 풀어 쓴 교육학』’, ‘심우엽, 『교육심리학』’을 읽고 참고하였습니다.

이전 07화 수업은 교실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