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지능이론
“선생님! 저 범수랑 모둠 활동하기 싫어요.”
몇 년 전의 일인지 가물가물하다. 조별 과제 활동 중 대호가 툴툴거리며 내게 말했다. 범수 역시 씩씩거리며 대호를 노려본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려 댓바람에 달려갔을 것이지만, 또다시 일어날 법한 일이 왔다는 듯, 의연하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범수가 모둠 활동에 참여를 안 해요.”
그러자 범수는 억울함을 드러내고 주먹을 쥐었다. 분노를 삭이는 표정이 역력했다.
“자, 범수가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볼까?”
“저는 해보려고 하는데, 옆에서 대호가 자꾸만 빨리하라고 하니까 하기 싫어져요. 그래서 가만있었어요. 평소에도 그렇고 대호가 저를 수업 시간에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내가 언제 무시했다고 그래? 네가 너무 느려 터져서 말했을 뿐이야. 그리고 네가 잘 모르고, 못하는 것도 사실이잖아!”
“그렇다면 영호도 똑같이 느리게 했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 똑같이 대해야 무시하는 게 아니지. 그게 나를 무시하는 거야!”
“네가 이것도 못 하니까 그런 거 아냐?”
대략적으로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고 쉬는 시간에 둘을 다시 불러 자세히 상담하기로 했다. 모둠별로 협동하여 학습지 빈칸에 답을 채우는 활동을 했다. 답에 대한 힌트는 교과서에 담겨 있다. 대호네 모둠은 정해진 시간 내에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아이들끼리 자기가 담당한 부분을 나누어, 교과서를 찾아보고 정답을 알려주는 식으로 과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범수는 글의 내용을 파악하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대호의 눈에는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대호는 다양한 지식을 갖춘 소위, 모범생이다. 매사에 똑 부러지고 철저한 성격에다 정보처리 속도까지 빠르다. 그런 대호가 봤을 때, 범수는 성실하게 참여하지 않는 학생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범수는 머릿속으로 자신이 맡은 부분이 교과서의 어느 쪽에 있는지 감이 오지 않아, 교과서를 이리저리 뒤적이며 갈팡질팡했다. 과제 해결 의지가 없는 게 아니었다. 조금만 늦어도 다그치는 대호의 목소리에 화가 났을 뿐이다. 그래서 홧김에 ‘너나 잘해, 난 하고 있어!’라고 응수해서 말다툼이 일어났다. 말다툼 과정에서도 언어적으로 재능이 있는 대호가 범수를 논리적으로 공박하니, 할 말을 조리 있게 정리하지 못하는 범수는 더욱 답답했다. 답답한 마음에 버럭 을러대자, 대호가 내게 얼른 다가와 이른 것이다.
어렸을 적에는 설명 위주의 수업이 다반사여서인지 혼자서 선생님 설명을 잘 듣고, 노트 필기만 열심히 하면 되었다. 즉, 수업 시간에 혼자서만이라도 노력하면 되는 시절이었다. 대학을 졸업해서 원하던 직업을 가졌지만, 사회생활을 해보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일 대부분이 협업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중대 사안뿐 아니라 사소한 결정까지도 여러 명이 함께 회의를 통해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론은 인간에겐 친분과 관계없이 서로 부대끼며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역량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는 누군가와 함께 가꾸어진다는 걸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따라서 협동 학습을 통해서 사회성과 문제해결능력, 갈등관리능력을 동시에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수업이 순탄히 흘러가면 좋으련만, 협동 과정에서 아이들끼리의 다툼은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개성이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당연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우위에 서 있는 다툼이 아니고선, 다툼을 통해서 감정을 조절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워나갈 수 있다. 이번 사례가 상호 존중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어 나는 다른 모둠까지 활동을 중단시키고 내 말에 집중하도록 집중 신호를 보냈다.
“얘들아, 협동이 왜 중요하다고 했지? 혹시 기억나는 사람 있니?”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어요. 살면서 누군가를 돕기도 해야 하고, 도움도 받아야 해요.”
아이들은 평소대로 내가 항상 강조하는 점을 잘 대답했다.
“맞아. 그런데 협동해서 과제를 하다 보면 친구끼리 다툼이 일어날 때가 있어. 참여할 수 있는데도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다면 동료들의 질책이 따르겠지. 기본적인 학습 태도의 문제를 제외하고 말할게. 선생님은 서로를 존중하지 않아서 다툼이 일어난다고 생각해.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생각은 어디에서 올까? 이를 좀 더 알아보기 위해 선생님이 공부했던 내용을 들려줄게.”
나는 아이들에게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을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미국의 심리학자 가드너는 지능이 높은 아이는 모든 지적 영역에서 우수하다는 획일적 지능관을 비판했다. 그는 인간의 지능이 독자적이고 상이한 여덟 개의 영역(언어, 논리수학, 음악, 공간, 신체운동, 대인, 자기 이해, 자연 친화)으로 나누어진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지능이 주지교과에 주로 사용되는 언어지능과 논리수학지능 외에도 다른 동등한 영역의 지능이 있으며, 전통적인 관점의 지능인 IQ 수치만으로 학생들을 서열화하면 안 된다는 시사점을 준다. 또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학생 간의 대인관계에서, 능력과 지능 또는 지식과 시험 점수에 따라 상대방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걸 말해주는 이론이라 생각한다.
요즘은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미술, 음악, 체육, 실과 등 기술상의 재능을 가르치는 기능 교과도 주지 교과와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여겨지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과 같은 교과만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을 할 수 있었다. 그때는 주지교과에 대한 교육열이 워낙 높았다. 대부분 학부모는 비주지교과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주지교과 공부량이 사회적인 성공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너무 과열되다 보니, 일부 사람들이 공부를 못하고 머리 나쁜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말라고 어린아이들에게 말을 하곤 했다. 머리가 나쁘다는 말은 IQ와 관련이 있다. 높은 IQ에 근성이 합쳐지면 지식이 쌓이고 시험 문제 풀이 능력이 높아진다. 물론 성적 향상도 뒤따른다. 그러나 똑똑하고 성적이 좋은 아이들하고만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은 공부와 지능에 따른 차별을 낳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통적으로 무(武)에 비하여 문(文)을 중시하는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열국이 함께 세력 다툼을 하던 시절을 지나, 남북국 시대를 거쳐 통일국가 고려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고려 시대에는 무신들을 뽑는 무과도 없었다. 무신들이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지위는 정3품 상장군까지였다.(1) 전쟁이 발생하면 최고의 지휘관은 문신이 차지했다. 문신을 우대하고 무신을 하대하자 불만이 쌓였고, 이것이 폭증하여 무신정변이 일어났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무신들을 무시하는 분위기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문이 무보다 사회‧문화적으로 우대받는 시대였다. 사‧농‧공‧상의 신분 중에서 글공부하는 사대부를 가장 높은 신분에 올려놓았던 문화의 잔영이 지금도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듯하다.
2022년 YTN에 제보된 유명한 사건이 있다. 커피를 가득 든 일회용 컵을 들고 버스에 탑승한 한 남성 승객이 버스 기사에게 제지를 당했다. 승객은 자신이 컵을 들고 타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냐고 따졌다. 그러고선 강렬하게 각인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제가 ○○대학교 ○○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거든요. 어떻게 소송 걸까요. 그럼요? 경찰서 가실래요?” 이후 버스 기사에게 다가가서 막말과 인격모독을 했다. 말이 오가는 과정에서 또 한 마디 뇌리에 꽂히는 말, “무식하면 무식한 대로, 아저씨 이거 (들고) 타지 말라는 법적인 근거를 대주세요.”라는 적반하장의 말이었다. 이를 듣다가 참다못한 다른 승객이 그 남성에게 버스 내 음식 반입 금지 조례를 찾아보면 나와 있다고 했다. 문제의 남성은 조례는 법이 아니라서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다시 승객은 조례는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되받아치면서, ○○대 ○○대학원에 다니면 기사님을 무식하다고 무시해도 되냐고 되물었다. 그에 따른 명문대생 승객의 답변은 “저는 그렇게 느끼는데요?”였다. 후안무치한 발언이라 생각한다.
“얘들아, 사람마다 각자의 재능이 있단다. 예를 들어 볼게. 우리 반의 지민이는 수학을 잘해. 정보처리 속도도 빠르고 계산도 잘하지. 그리고 수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고력까지 뛰어나. 그리고 성규는 모두가 알다시피 축구를 잘해. 축구뿐 아니라 체육 시간에 하는 거의 모든 운동을 다 잘하지.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지민이는 성규가 수학을 못 한다는 이유만으로 수학 시간에 성규를 무시해도 될까?”
“당연히 안 되죠.” 아이들이 일제히 같은 답을 말한다.
“그러면 성규가 체육 시간에 지민이와 한 팀이 되었는데, 지민이가 운동을 너무 못한다고 다그치면 될까요?”
“안 되죠.” 똑같은 반응이다.
“맞아. 누구나 잘하는 영역이 있고, 못하는 영역이 있어. 선생님이 대학 시절 수업을 듣다가 가드너란 학자를 알게 되었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할 때, 지능을 IQ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하지. 이 지능은 시험 문제를 잘 풀게 하는 그런 능력이야. 그런데 가드너란 학자는 인간의 지능이 여러 분야로 나누어진다고 주장했어. 쉽게 말해서 수학을 할 때 사용되는 지능, 과학을 할 때 사용되는 지능, 미술을 할 때 사용되는 지능들이 다르다는 거지. 이게 뭘 뜻할까? IQ만으로 상대방을 판단하지 말라는 거야. 사람의 단면만 보지 말고 종합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해. 그리고 설령 모든 지능이 우수한 사람이 있다손 치더라도 타인을 무시할 권리는 없어.”
“선생님! 그런데 모든 지능이 안 좋으면 어떡하나요? 제가 그런 것 같은데요?”
동찬이가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했다. 본인의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언제나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는 동찬이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며 말했다.
“가드너는 지능을 8가지로 분류했지만, 학자들에 따라 지능을 더 많이 나눠서 주장하기도 해. 네가 가진 숨어 있는 지능이 아직 빛을 보지 못한 걸지도 몰라. 각종 진로 검사를 하게 되면 숨은 지능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설령 모든 면이 뒤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런 이유로 무시당하는 건 잘못된 거야. 자, 그럼, 상대방이 조금 못한다고 무시하지 말고 모둠 활동 다시 시~작!”
나는 되도록 학생 상담은 쉬는 시간에 한다. 정말 크고 불가피한 사안이 아니고선, 특정 학생을 상담하느라 다른 학생들의 학습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대호와 범수가 내 자리로 왔다.
“선생님, 제가 좀 잘못한 것 같아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서서 대호가 입을 열었다. 범수도 옆에 쭈뼛쭈뼛 서 있었다.
“어떤 점을 잘못한 것 같니?”
“느리고 못 한다고 범수를 무시한 것 같아요. 저도 생각해 보니 못하는 게 많아요. 범수가 저보다 더 잘하는 것도 있고요.”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거나, 지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무시하면 안 된다.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어. 잘못했다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게 나쁜 거야. 인정하고 반성할 줄 아는 용기를 내줘서 고맙고. 선생님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시켜줘서 고맙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학, 과학, 국어 등 주지교과 학습은 언어지능과 논리수학지능이 높을수록 유리할 수 있다. 어떤 이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다른 것도 다 잘한다고 한다. 국어, 수학,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 음악, 미술 성적도 좋다고 주장한다. 즉, 전통적 관점에서 지능을 의미하는 IQ가 좋을수록 학업성취가 높다는 주장이다. 정말 그럴까? 초등학교에서는 그리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대체로 모범생들이 전 교과 영역에서 두루 우수한 성적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IQ 외에도 학업성취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이 여러 가지란 점을 들어 반박할 수 있다. 학업성취에는 흥미나 학습동기, 개인의 사정, 기질 등이 주요변인으로 작용한다. 국‧영‧수를 잘하는 학생이 음악과 미술을 잘하는 데에는, 예체능 지능이 조금 떨어져도 그 학생의 끈기와 인내력과 같은 근성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지능과 학업성취 간의 상관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마지막으로 내 발언이 적절했는지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스파르타에서는 타고난 신체적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타이게투스 산의 아포세타 동굴에 던져 죽게 했다고 한다. 스파르타는 사람의 능력으로 사람의 쓸모가 결정되는 사회의 표본이다. 타고난 능력이 실제로 부족하더라도 사람 자체가 소중한 존재이자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중지능이론을 들어, ‘저 사람도 잘하는 면이 있으니 존중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들렸다면,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는 명확히 전달했지만, 나 역시도 ‘능력에 따라 사람을 판단한다.’라는 밑바탕이 깔려 있었던 건 아닐까.
(1) 『이다지 한국사』(이다지, 브레인스토어, 2015)의 170쪽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2) 『쉽게 풀어 쓴 교육학』(이병승 외 2인)과 『교육학 끝판왕』(조우태 외 2인)의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