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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세진 Aug 13. 2024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야 하는 학생들

인공지능 교육

    6학년 제자들의 담임을 맡았을 때, 창의적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인공지능’ 분야에 관한 수업을 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 이후 사회 각계에서 인공지능에 관심을 보였고, 교육계에도 인공지능과 관련된 변화가 일어났다. 지금도 소프트웨어(Software)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t)을 합성한 말인 ‘스와이(SW-AI)’ 교육에 관한 직무연수가 공문을 통해 자주 안내되고 있다. 나 역시 그 이후로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지고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야 할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인공지능 원리 자체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인공지능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함께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 교사로서 인공지능을 교육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세 가지 분야로 인공지능 관련 수업을 설계해보았다. 첫째, 알고리즘 사고 방법과 인공지능 컴퓨터의 학습 원리를 이해하는 수업. 둘째, 인공지능을 활용한 교과 수업. 셋째,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우리가 준비할 점들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수업이다.     

    가장 먼저 학생들에게 인공지능 바둑 대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에 따른 선생님의 생각을 말했다. 호기심 어린 제자들의 눈빛에 저절로 신이 나서 목소리 톤을 높여 말했다. 제법 긴 이야기를 집중하여 들어준 제자들이 고마웠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이 바둑 대결을 펼쳤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다. 대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인공지능에 대하여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단순히 인간이 컴퓨터와 게임 대결을 하듯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386 컴퓨터가 집에 있었다. 지금의 컴퓨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능이 떨어지는 컴퓨터였다. 그때는 윈도우보다는 MS-DOS라는 운영체제를 주로 사용했다. 컴퓨터의 그래픽은 당연히 지금보다 좋지 않았다. 각이 진 네모꼴 조각이 모여 만들어진 그림이라는 게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 시절이었다. 그래도 컴퓨터는 굉장히 귀한 물건이었다. 

    저용량의 게임을 플로피 디스크에 넣고 친구 집에 있는 장기 게임을 압축한 뒤 집에 깔았을 때 기뻤던 기억이 난다. 컴퓨터의 수준을 정하여 플레이를 할 수 있었는데, 초보자 단계로 컴퓨터를 설정한 뒤 몇 번 게임을 이겼다. 당시 기억으로 가장 높은 단계로 플레이해도 컴퓨터가 우리 아버지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 알파고가 이세돌을 4대 1로 이긴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수읽기 능력은 이세돌이 알파고에 밀리지 않지만, 기계는 인간과 달리 지치지 않기 때문에, 장시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바둑에서는 당연히 이세돌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인간의 육체적 한계 때문에 진 것이지, 바둑 실력에서 밀린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핸디캡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하면 이세돌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하루에 20수씩만 서로 주고받고, 다음 날에 경기를 이어서 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겠다. 그런데 대국이 끝나고 쏟아진 신문 기사들을 보니, 이 대결은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임을 알게 되었다. 이번 대국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인공지능의 원리와 알파고의 준비 과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인간은 ‘호모 쿵푸스’다. 인간의 본질적 속성에 배움과 수련이 담겨 있다. 배움과 수련은 자발성을 기초로 한다. 이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기계를 들 수 있다. 스스로 사고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인공지능 이전의 로봇은 사람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사람을 위해 사용되는 존재라고 여겨졌다. 즉, 사람이 입력한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는, 자신의 의지가 배제된 기계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렇지만 인공지능은 사람의 뇌에 있는 신경세포와 비슷하게 만든 알고리즘(인공 신경)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기계적인 로봇과 차이를 보인다. 인공 신경이 모여서 층을 이루고,  층들이 모여 겹겹이 쌓이면 하나의 복잡한 그물망을 이룬다. 이를 인공신경망이라 하며, 이를 통해 인공지능은 스스로 학습이 가능하다. 알파고의 준비 과정을 살펴보자. 인공신경망인 정책망(policy network)과 가치망(value network)을 결합해 바둑돌을 놓을 위치를 결정한다. 정책망을 통해 바둑 기보 16만 건을 학습하여 기본적인 규칙을 익히고, 3,000만 건의 기보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알파고 끼리 하루 3만 회 이상을 대국하여 이길 수 있는 수를 학습하였다. 인간이 바둑을 두는 데 한 시간이 걸리고, 하루 8시간 근로시간 내내 바둑을 둔다고 가정하면 3,750일이 되어서야 3만 회의 대국을 둘 수 있다.(1) 

    인공지능 수업 첫 시간에는 인공지능의 원리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인공지능의 대표적인 학습 원리에는 지도 학습과 비지도 학습이 있다. 지도 학습(Supervised Learning)은 인공지능 컴퓨터에게 미리 정답을 알려주며 공부시키는 것을 말한다. 비지도 학습(Unsupervised Learning)은 컴퓨터가 스스로 아주 많은 데이터를 공부하고 혼자서 답을 찾는 과정을 말한다.(2) 한 학생이 마음속으로 기준을 세워 동물 카드 중 몇 장을 뽑아 기준에 따라 분류하면, 상대방은 분류된 카드를 보고 어떤 기준으로 카드를 분류했는지 맞히는 활동을 통해 지도 학습의 원리를 이해했다. 분류 기준을 모를 때는 남은 카드를 추가로 분류하여 학습자에게 힌트를 준다. 비지도 학습 역시 카드 전체를 분류 기준에 따라 분류한 뒤 기준을 맞혀 보게 하는 활동을 통해 배웠다. 얼핏 같아 보이는 활동이지만, 지도 학습의 경우 일부 동물 카드를 A그룹 또는 B그룹에 속한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기준을 맞히게 한 것이고, 비지도 학습의 경우 모든 카드를 분류해두고 상대방이 기준을 맞히게 한 것이다. 여기서 카드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라고 할 수 있으며, 데이터의 패턴을 통해서 스스로 학습한다. 분류하고 맞히는 점이 같아서 활동의 차이를 못 느낄 수 있지만, 상대방을 인공지능 컴퓨터라 생각했을 때 미묘한 방식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3)

    활동이 끝나고 나서 수업에 대한 질문과 소감을 나누었다. 인공지능 수업이 그런대로 재미있었나 보다. 꽤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이런 식으로 하루에 얼마나 많은 양의 정보를 최대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인공지능과 관련된 공부를 하려면 어느 대학을 가야 하는지, 그 대학을 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공부해야 하는지, 인공지능이 사람을 능가하지 못하는 분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는 직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결같이 대답하기 어렵고 곤란한 좋은 질문들이었다. 우리 반에서 가장 장난을 잘 치는 개구쟁이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도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어요?”

    “그건 왜?”

    “선생님이 학교에서 잘릴까 봐요.”

    “너, 선생님 실직자 될까 걱정하는 거야?”

    “아뇨, 걱정은 안 돼요. 선생님은 능력자시니까 다른 데 쉽게 취직할 거 같아요.”

    “그럼 왜 물어봐?”

    “인공지능 로봇이 선생님이 되면 말 안 들어도 되잖아요. 로봇인데.”

    “하하하, 인공지능 로봇이 우리 대호 혼내도록 설계해놔야겠다.”

    옆에 있던 대호의 라이벌 흥범이가 로봇이 대호에게만 헤드록 기술(4)을 사용하도록 설계해달라고 주문했다. 우리 모두 껄껄대며 웃었다. 수업 시간의 가벼운 농담은 청량음료처럼 상쾌하다.     

    둘째, 인공지능을 활용한 교과 수업을 진행했다. 인공지능의 원리 자체를 수업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특정 수업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나는 인공지능을 음악과 미술, 영어에 적용해 보았다. 구글(google)은 인공지능으로 음악을 배울 수 있는 ‘크롬 뮤직랩(CHROME MUSIC LAB)’이란 서비스를 제공한다. ‘크롬 뮤직랩’ 서비스 중에서 ‘칸딘스키’를 선택하여 학생들과 함께 미술·음악 작품을 만들었다. ‘칸딘스키’ 서비스를 선택한 이유는 아이들에게 예술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고, 작곡과 미술에 대하여 흥미를 이끌기 위해서이다. 또한 교과가 분절적으로 나누어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융합될 수 있다는 것도 일깨워주기 위해서다.

    크롬 뮤직랩을 이용하면,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그린 그림의 형태를 인공지능이 인식하여 반듯하게 다듬어준다. 그리고 그 그림을 음으로 인식한다. 점, 선, 면 모두 하나의 음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그림이 음악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느꼈다. 처음에는 낙서를 시키고, 이어서 간단한 그림을 그리게 했다. 간단한 그림이 통통 튀며 음악으로 바뀐다. 회화가 음악으로 전환되는 발상을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제작을 마친 뒤 서로의 작품을 감상했고, 이어서 간단한 음악도 작곡했다. 그림 또는 선을 낮은 위치에 그리면 낮은음이, 높은 위치에 그리면 높은음이 스피커로 흘러나온다. 오선지 악보처럼 그림의 높이에 따라 음의 높낮이를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고, 그렸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수정할 수 있다. 실수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작업을 돌이키는 게 가능해서 미술에 대한 재능이 없더라도 아이들은 부담 없이 손가락으로 붓질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색깔을 바꿈과 동시에 음색을 달리하는 게 가능했다. 같은 높이의 음이라도 색깔별로 악기마다 내는 고유의 소리가 다르다. 어떤 색깔이 어떤 소리를 내는 것처럼 들리는지 발표하게 했다. 아이들은 색깔에 따라 무거운 소리와 가벼운 소리를 구분하며, 음색의 개념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을 통하여 내가 계획한 수업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사실이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칸딘스키는 제정 러시아(로마노프 왕조) 모스크바 출신의 화가이다. 그리고 몬드리안과 함께 추상 회화로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선구적 인물이다. 교육대학 시절, 추상화 그리기 수업 과제로 칸딘스키의 작품을 참고하여 추상화를 그렸던 기억이 난다. ‘뮤직’랩 서비스의 하나로 미술가의 이름을 넣었다는 것은 음악보다 미술을 강조한다는 말이 아니라, 미술과 음악의 융합을 강조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실제로 칸딘스키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기악과 회화에서 예술적 소양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을 받았다. 그는 1886년 러시아 최고의 대학이라 불리는 모스크바 대학에 진학하여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그는 1893년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학을 강의하는 교수가 된다. 미술 외의 분야에서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던 그는 어느 날 볼쇼이 극장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 그린(Lohengrin)’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리고 음악을 듣고 감정을 벅차오르게 하는 감흥의 ‘색’을 느꼈다.

    “나는 내 영혼에서 갖가지 색을 보았다. 내 눈앞에 색이 있었다. 그리고 거친 선들이, 거의 미친 듯한 선들이 내 앞에 펼쳐졌다.”(5)

    수업에서는 전개 활동도 중요하지만, 정리하는 단계도 매우 중요하다. 정리 단계를 잘 마무리하지 못하는 것은, 쇼핑에서 관심 있는 물건에 정신이 팔려 정작 사야 할 물건을 사지 않은 일에 비유할 수 있다. 백화점을 신나게 쇼핑하다가 시계를 보니 집에 갈 시간이 다가왔다. 자신의 손에는 옷과 신발이 담긴 쇼핑백이 들려 있다. ‘아차!’ 드라이기를 사러 왔는데…. 수업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을 수 있다. 교사가 설계한 활동에 신나게 학생들이 참여하면서 본질을 잊어버리고 신나는 ‘행위’에만 집중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뭘 배웠지? 라고 물어보면 ‘물로켓을 쏘았다’라고만 대답할 뿐이다. 정작 중요한 건 물로켓 발사를 통해서 물체가 위로 추진되는 원리를 배우고, 그 원리를 적용한 놀이를 통해 우정을 돈독하게 다지고, 물로켓으로 과녁을 맞힘으로써 협응성을 키워나가는 것과 같이 여러 교육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10여 분 동안 우리 모두 소감을 나누었다. “선생님! 그런데 지금이 미술 시간이에요, 아니면 음악 시간이에요?” 현대인은 일상에서 각종 ‘시간표’에 쫓기며 산다. 따라서 시간을 특정하는 말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게 되는데, 아이들도 다를 바 없다. ‘미술 시간’, ‘음악 시간’처럼 명시간을 나타내는 명징한 표현을 사용하며 특정 시간의 정체성에 함몰된다. 이 지점을 포착하여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갔다.

    “좋은 질문이네, 우리 현아의 생각을 들으니 선생님도 너희들에게 질문 하나만 할게. 음악이 아닌 다른 영역을 음악으로 표현한다거나, 미술이 아닌 다른 영역을 미술로 표현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니? 이번 시간처럼 미술을 음악으로 표현하거나, 또는 음악을 미술로 표현하는 걸 말하는 거야.”

    이 질문을 통해 한때 예술가들이 고민거리와 맞닿아 있다. 역시 질문이 어려웠는지 이내 교실 분위기가 잠잠해졌다.

    “음, 그러면 다시 질문할게. 혹시 음악 시간에는 음악만 해야지 ‘미술스러운’ 음악 시간은 혼란스러워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친구 있어?”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음악 시간이면 음악만 하고, 미술 시간이면 미술만 해서 확실히 수업 시간이 구분되면 혼란스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번 시간은 시간표로는 미술 시간이지만 음악 시간 같은 느낌이 더 많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우르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야~ 왜 그게 안 돼? 그냥 해도 되잖아. 꼭 그럴 필요가 있어?”

    “뭐가! 음악 시간에 음악을 하겠다는데 뭐가 잘못된 거야?”

    수업 중 다루길 바랐던 논쟁거리가 아이들의 입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는 교육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화제이기도 하다. 교과를 보는 관점에 따라 교육과정 정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교과를 분절적인 영역으로 보는 사람들은 교과 중심 교육과정을 선호할 것이고, 과목 간 통합을 중시하는 학생들은 경험 중심 교육과정을 선호할 것이다. 비슷한 논쟁이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졌다. 이는 ‘절대 음악’과 ‘표제 음악’ 논쟁으로 나타난다. 나는 이 부분을 아이들에게 쉽게 설명해 주었다.

    “자, 이제 그만. 수업과 관련된 화제로 이렇게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다니! 훌륭한 자세야! 예전에 19세기 독일 음악가들 사이에서 이런 문제로 열띤 논쟁을 벌였지. 음악이 음악 외에 다른 것들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나타났어. 이런 주장을 한 아주 유명한 음악가가 바그너란 사람이야. 그래서 바그너는 이야기와 음악을 결합한 장르인 오페라의 음악을 많이 작곡했어. 그랬더니 다른 한쪽에서는 그건 안 된다! 음악은 다른 특정 이미지, 이야기, 상징을 나타내지 않고 음과 음 사이의 조합으로만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한다고 받아쳤지. 브람스란 음악가 혹시 들어봤니?”

    엇, 저 알아요! 큰 소리로 말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바그너는 잘 몰라도 브람스란 이름은 익숙한가 보다.

    “대단한데? 19세기 독일 음악가들의 논쟁을 21세기에 직접 보게 될 줄 몰랐네. 이 문제는 사실 정답이 없는 문제란 걸 알겠지? 음악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사람들은 브람스의 생각과 맥을 함께 하는 것이고, 음악이 음악 안에서만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은 바그너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고 보면 돼. 참고로 요즘은 오페라를 거의 안 보지만, 예전에 오페라가 인기 있던 시절에는 바그너도 굉장히 유명했겠지? 어쨌든 중요한 건 인공지능이야.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오늘의 학습 목표를 달성했다는 게 중요해.”     

    셋째,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된 영어 수업을 진행했다. 나는 영어를 가르칠 때 ‘의사소통’에 방점을 찍는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면 각종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문장의 구조를 차근차근 배워 어법을 익히겠지만, 초등학교에서는 영어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적인 영어 교육이 필요하다. 말을 최대한 많이 하도록 역할극을 시켰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표현으로만 대본을 작성하지 말고 현실적인 상황에 적합하게 융통성을 발휘하여 대본을 짜라고 했다. 예상대로 “그걸 어떻게 해요!”라는 말이 뒤따라왔다. 곧바로 ‘파파고’라는 인공지능 언어 번역기를 알려주었다. 수업 중 휴대전화나 태블릿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환호하며 신나게 대본을 작성했다. 한글 대본 검사를 받고 자신이 꼭 하고 싶은 표현을 파파고 번역기로 찾았다. 아이들은 인공지능 번역기를 활용하여 역할극도 잘 수행했다.

    일부러 인공지능과 우리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남겼다. ‘파파고’에 초점을 맞춰 질문을 했다.

    “얘들아, 그런데 이번 시간을 통해서 혹시 영어를 굳이 왜 배워야 하는지 의문을 가진 사람 있어?”

    “저요!”

    재빨리 영어에 관심이 없던 대호가 손을 들고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지?”

    “말만 하면 알아서 파파고가 번역을 해주잖아요. 단어를 어렵게 외울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 남은 영어 시간엔 놀면 안 돼요?”

    옆에 있던 단짝 친구도 ‘오 그러네!’ 하며 무릎을 ‘탁’ 쳤다. 대호의 말에 솔깃해진 아이들은 너나없이 ‘와~’하며 손뼉을 쳤다.

    “하하하, 그건 안 돼.”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런데, 대호가 말한 것처럼 번역기가 잘 번역해준다면 굳이 번역가나 통역사가 필요할까? 기계가 해도 될 일을 사람이 양쪽의 언어를 들어가며 통·번역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정말 대호 말대로 영어 공부를 할 필요가 있을까?”

    기독교의 경전으로 사용하는 ‘구약성서’에는 세계 각자의 사람들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기원을 ‘바벨탑 사건’에 두고 있다.                     


1. 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 물론 낱말도 같았다.

2. 사람들은 동쪽에서 옮아 오다가 시날 지방 한 들판에 이르러 거기 자리를 잡고는

3. 의논하였다. "어서 벽돌을 빚어 불에 단단히 구워내자." 이리하여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쓰게 되었다.

4. 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5. 야훼께서 땅에 내려오시어 사람들이 이렇게 세운 도시와 탑을 보시고

6. 생각하셨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7.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8. 야훼께서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던 일을 그만두었다.

9.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창세기> 11장 1~9절, 공동번역 성서


    바벨탑 사건 이후 사람들은 언어의 장벽 없이 서로 소통하는 시도를 했다. 하나는 전 세계인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만들자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를 번역할 수 있는 기계 번역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언어가 다른 집단끼리 공용어를 통해 소통하려는 시도는 역사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각 지역을 정복하면서 넓어진 헬레니즘 제국을 다스리기 위한 공용어 ‘코이네’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가 이룬 제국은 오래가지 못했다. 폴란드의 안과 의사인 라자루스 자멘호프(Lazarus Ludwig Zamenhof) 박사는 1887년 ‘에스페란토’어란 세계 공용어를 고안했다. ‘파파고 Papago’라는 단어도 에스페란토어로 앵무새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언어는 불규칙과 예외가 없는 단순한 문법으로 만들어졌으며, 핵심 단어에 접두어와 접미어를 붙여 확장하는 방식이라 배우기 쉽다. 하지만 국제연맹에서 배척당하고, 나치 독일과 소련 등으로부터는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6)

    또 하나의 시도인 기계 번역은 성공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기계가 상대방과 대화 당사자들의 대화 맥락과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의미만 번역한다면, 화자의 의도가 무시된 채로 정보가 전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웃으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어려운 이야기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그만 이야기하자. 오늘 우리 반 사진 찍으러 나가자고 했지?”

    “선생님, 오늘 비 오잖아요. 어떻게 찍어요?”

    “맞아… 날씨 한번 좋네.”

    아이들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여기서 질문! ‘날씨 한번 좋네’를 번역기로 돌리면 어떻게 될까? 파파고로 알아보자.”

    “‘The weather is nice’로 나오네. 멀리 사는 미국인 친구가 채팅으로 안부를 물었어. 이 번역을 채팅창에     그대로 쓴다면 상대방은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까? 날씨가 맑고 선선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옛날에는 아기들이 태어나서 너무 예쁘면 ‘아이고, 고놈 참 밉상이다.’라고 했거든. 진짜 아기의 얼굴이 밉게 생겨서가 아니라, 아기보고 예쁘다고 하면 귀신이 데려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부러 예쁜 아기에게 밉상이라고 한 거야. 밉상을 번역하면 어떻게 나올지 한 번 쳐볼까? ‘an ugly face’로 나오네. 실제로는 ‘a lovely face’ 정도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파파고로 맥락과 분위기까지 반영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해. 어글리 페이스를 외국인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소통이 매끄럽게 될까?”

    “아니요.”

    “대호야, 그런 의미에서 아직은 영어 수업 없애면 안 되겠지?”

    “아아!!”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서 충분히 컴퓨터가 학습한다면 이런 문화적 상황마저 언젠가는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테이터는 시간이 갈수록 계속 쌓이기 때문이다. 너도 컴퓨터에 관심이 많으니까 나중에 커서 인공지능 쪽으로 진로를 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1)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알파고’를 참고하였습니다.

(2) 『세상에서 가장 쉬운 AI수업』(공민수, 신창훈, Little)의 27~28쪽을 참고하였습니다.

(3) 초등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의 닉네임 ‘인공지능미니쌤’의 자료를 바탕으로 수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좋은 자료를 올려주신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4) 프로레슬링의 기술로, 상대방의 머리를 팔로 조이는 기술이다.

(5) 경기신문, [정윤희의 미술이야기]칸딘스키의 추상회화와 현대음악, 2019. 5. 13. 인용.

(6) 『로봇 시대, 인간의 일』(구본권, 어크로스)의 65쪽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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