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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세진 Aug 25. 2024

교사의 참 스승

페스탈로치

    나는 수업의 자료로 영화를 많이 활용한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다 보니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최신 영화는 볼 새가 없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조금 세월이 지난 영화를 활용하게 된다. 하지만 학습 목표 달성에 이바지했다면 그 영화가 예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영화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엄격하게 질문한다.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과 메시지가 교육적으로 가치가 있어 공유할만한 것인가.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는 영화가 때마침 교과서의 자료로 실려 있었다. 

    2022년의 어느 도덕 시간. 6학년 담임으로서 봉사의 의미와 가치를 마음속에 새겨보는 2단원을 수업할 차례였다. 살면서 내가 진지하게 봉사활동을 했던 적이 얼마나 되는지 곱씹었다. 몇몇 장면이 떠오르긴 했지만 부끄럽게도 인생에 많은 시간을 봉사활동에 할애하진 못했다. 그나마 떠오른 장면에서도, 봉사활동으로 빚어진 뿌듯함보다는 당시 얼마나 힘들었는지만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진정 바라는 것 없이 자신을 바쳐 남을 위해 헌신한 순간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얼굴이 후끈거렸다. 그때 내 얼굴을 더욱 후끈거리게 해준 영화를 도덕 교과서에서 만났다. 이태석 신부님께서 살아계실 때의 모습이 담긴 영화 ‘울지마 톤즈’였다.

    비교적 현대인 중에서 내가 존경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종교인은 세 분이다.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하여 소유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경종을 울린 불교의 법정 스님(1932-2010),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다 일본 제국주의의 잔혹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소신을 지키며 저항한 개신교의 주기철 목사님(1897-1944), 그리고 남수단에서 의료 봉사를 하시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셨던 가톨릭의 이태석 신부님을 존경한다. 모두 타인을 위해 헌신하며 사셨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중 이태석 신부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교육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분이 떠오른다. 교성(敎聖)이라 일컬어지는 인류의 스승, 하인리히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 1746-1827)다.

    이태석 신부님은 1962년 부산에서 10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릴 적 다미안 신부의 삶을 담은 영화를 보고 그를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미안 신부는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다 그들과 같은 병으로 돌아가신 가톨릭의 성인이다. 이태석 신부님은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 시절에 가톨릭의 사제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1992년 광주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1997년 이탈리아 로마의 살레시오 대학교로 유학한다. 그곳에 머물 때 선교사가 될 것을 권유받는다. 1999년 처음으로 오랜 내전으로 폐허가 된 남수단 톤즈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의료 봉사를 할 비전을 품는다. 그 뒷이야기는 영화 ‘울지마 톤즈’에 나와 있듯이 환자들을 돌보았으며, 손수 기숙사와 학교를 지어 교육 활동도 하셨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공연까지 하신 분이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귀국하여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1)

페스탈로치는 1746년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섯 살 때 서른세 살에 불과한 젊은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곤궁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처음에는 목사가 되려고 신학을 공부하다가 루소의 명저 『에밀』과 『사회계약론』을 읽고 법학으로 전과하였다. 1774년 빈민학교를 세워 빈민아동에 기술교육을 했으나 1780년 운영상 어려움으로 문을 닫았다. 빈민학교 이후 18년 동안 저술 활동에만 매진하였다. 출판된 저서로는 『은자의 황혼』, 『린하르트와 게르투르트』 등을 남겼다. 1798년 슈탄츠에서 고아원을 운영하였지만, 프랑스군의 야전병원으로 쓰이면서 1799년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1799년 베른 근교의 부르크도르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1800년 초등학교를 세워 4년간 운영하였다. 이후 뮌헨부흐제, 이페르텐 순으로 자리를 옮긴다. 1805년 이페르텐의 학교는 10여 년간 번창하였다. 이 학교는 독일 교육학자인 프뢰벨이 2년간 체류하여 교육 방법을 배워갈 정도로 당시 유럽 교육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교사들 간의 주도권 싸움이 벌어졌다. 교사들이라지만 실상 페스탈로치의 제자들이었다.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 사이에서 페스탈로치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결국 실망하고 1818년 클란디 빈민노동학교를 세워 소외된 계층을 대상으로 교육적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학원 분규가 끊이지 않았다. 1825년 학교를 해산하고 79세 나이에 노이호프로 돌아가 『백조의 노래』를 저술하고 2년 뒤 사망하였다.

이태석 신부님과 페스탈로치의 생애를 함께 살펴봄으로써 신기한 점을 몇 가지 발견했다. 이태석 신부님의 애칭인 존(John)과 페스탈로치의 이름인 Johann은 꽤 비슷하게 생겼다. 사전으로 Johann을 찾아보니 Johann은 John의 게르만 어형이라고 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두 분 다 그리스도교에서 유래한 남자 이름 ‘요한’을 사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두 분 모두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점도 같다. 그리고 이태석 신부님은 의학이라는 다른 분야를 공부하신 후에 신학의 길로 들어섰다면, 페스탈로치는 목사가 되고자 신학을 공부하다가 다른 학문인 법학을 공부하였다. 두 분 다 신학 외 다른 전공을 공부하셨다.

그렇다면 교사로서 두 분의 생애를 통해 본받을 점은 무엇인가. 두 분 다 인간의 됨됨이를 강조하였다. 페스탈로치는 저서 『인류의 발전에 있어서 자연의 길에 관한 나의 탐구』에서 교육의 궁극적 목표를 도덕적 인간의 형성으로 제시하였고, 이태석 신부님 역시 마찬가지로 영화에서 악기를 빨리 배우고 싶다는 소년에게 먼저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묻지 마 살인’, ‘학교폭력’, 각종 ‘갑질’, ‘성범죄’, ‘마약’, ‘폭행’ 등 검색 포털에서 조금만 찾아봐도 인성 교육이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 교육도 ‘홍익인간’을 교육의 이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 이념)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人類公營)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의 목적으로 제시된 것만 보더라도 우리가 학교에서 자기 자신의 편익만 추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기르는 교육을 교육과정과 생활 지도 속에 녹여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한때 학교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아침에 등교하는 중학생들로 버스 안이 가득 메워졌다. 아침마다 그 학생들로부터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를 향하여 하는 욕설은 아니었지만, 듣고 싶지 않은 욕설을 아침마다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양파 실험(2)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말은 그 자체로 힘이 있다. 학생들이 교통카드를 찍고 버스에 올라서서는, 버스 전체를 전세 낸 것 마냥 큰 소리로 떠든다. 어른들은 묵묵히 자리에 앉아갈 뿐이다. 요즘은 중‧고등학생들에게 훈계하려면 해코지를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신문기사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례를 살펴보자. 대구에서 담배를 피우는 중학생들에게 “피우지 말라.”고 훈계한 40대 여성에게 돌아온 것은 ‘날아 차기’였다. 폭행에 가담하지 않은 한 학생은 “촬영해 줄 테니 멋지게 발차기하라.”라고 말했다. 욕설로 가득한 버스를 견딜 수 없어,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훈계하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아내의 걱정이 떠올라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위의 사례만 보더라도 인성교육은 초‧중‧고 전 학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비인부전(非人不傳)하고 비기자부전(非器者不傳)’이란 말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700여 년 전 중국 동진 시대의 서성(書聖) 왕희지가 제자들에게 한 말이다. 인격이 결여된 사람, 그릇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기술이나 지식 등을 아무것도 전할 수 없고, 전해서도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무언가를 배우기 전에는 먼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됨됨이는 갖추라는 뜻이다.

드라마 SKY캐슬을 보면 등장인물들이 입시에 목을 맨다. 가진 자일수록 자신의 부와 명예를 키우기 위해 더욱 그러한 현상을 볼 수 있다. 피라미드의 정점을 갈망하고 점점 더 위로 올라가려 한다. 친구가 곤경에 처했을 때 도와주려 하자, 그 친구는 네 경쟁자라며 돕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부모가 말을 한다. 높은 곳만 바라보다가는 어느새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자신도 모르게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드라마의 내용은 다소 과장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상을 반영하여 대중들의 공감을 끌어냈기 때문에 높을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본다.

여기서 두 분을 존경할 포인트가 보인다. 노인 폭행 사건, 욕설이 가득한 버스, 드라마 SKY캐슬을 언급하면서 착하게 살라고만 외친다면, 그 외침은 공허할 수도 있다. 교사가 예의가 없는 학생을 향해 엄격하게 예절만 강조하고, 잘못한 행위에 대해 처벌하려고만 한다면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할 수 없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덕 교육을 할 수 있는 지도권이 확실하게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학생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어야만 학생의 문제 행동이 근본적으로 변할 것이다. 나는 이태석 신부님과 페스탈로치가 힘들고 극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았다는 점이 존경스럽다. 이태석 신부님은 내전으로 황폐해진 톤즈 마을의 빈민층 아이들도 사랑을 통해 올바르고 건전한 인성을 확립하고, 무언가를 배워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페스탈로치 역시 자신의 교육적 가치관을 이론으로만 간직한 것이 아니라, 직접 학교를 열어서 실천적 증명을 하려고 노력했다. 신부님과 마찬가지로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교육하여 도덕적인 인간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걸 페스탈로치는 몸소 보여주었다. 비록 학교 운영에 여러 번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말이다.

페스탈로치와 이태석 신부님 모두 사회적으로 빈곤한 계층을 돌보셨다. 전쟁으로 길을 잃은 빈민, 고아들을 위하여 헌신하셨고, 또 한 분은 무시무시한 한센병 환자들과 내전으로 황폐한 지역 사람들을 돌보셨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이기주의와 지나친 실용만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우리는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등한시하게 된다. 두 분 다 기독교인으로서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신 분이다. 보편적인 인간 군상을 살펴보면, 다들 돈 벌어서 먹고살기 바쁘다. 나 역시 그렇다. 남을 쳐다볼 겨를 없이 매일 분주하게 직장과 집을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는 사회다. 페스탈로치는 취리히 대학까지 나온 식자층이었고, 이태석 신부님은 마음먹고 돈에 관심만 가진다면,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의사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에 따라 부를 거머쥘 기회를 포기하는 행동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분들이 세대가 바뀌어도 조명되는 것이 아닐까. 페스탈로치의 실천적 행동과 교육 이론(가정교육 강조, 일반도야의 원리, 자기 계발의 원리, 도덕교육 중시의 원리, 직관의 원리 등)은 후대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가정이 인간 형성을 위한 요람이요 학교가 자아실현을 돕고 학생을 억압하지 않아야 하는 곳이란 걸 일깨웠다. 이태석 신부님도 페스탈로치와 마찬가지로 선한 영향력을 꽃 피웠다. ‘부활’이란 영화를 보면, 사랑의 실천으로 제자들의 마음속에 심어 놓았던 씨앗이 열매 맺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제자들이 신부님을 떠올리며 흘리는 눈물은 보는 사람의 심금을 잔물결 퍼지듯이 울린다. 



(1)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두피디아’와 ‘나무위키-이태석’, ‘위키백과-이태석’, 블로그(https://blog.naver.com/cswhite/222035055630), 그리고 울지마 톤즈 영화의 내용을 참고하여 정리하였습니다.

(2) 한쪽 양파에는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하고, 나머지 한쪽 양파에는 험한 말을 사용하여 같은 환경에서 기르는 실험을 말합니다. 실험 결과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한 쪽의 양파가 더 잘 자랐습니다.

(3) 페스탈로치 관련 내용은 『교육의 역사와 철학』(박의수, 강승규, 정영수, 강선보, 동문사, 2022)의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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