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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세진 Aug 18. 2024

토론의 매력

중세 대학의 토론 문화, 토론의 장점

    “그러면 김지연 학생은 가족이 흉악범들한테 해코지당해도 사형을 폐지하자고 말할 수 있습니까?”

토론 도중에 영미가 차분하고 강단 있는 어조로 말했다. 6학년 학생들을 가르칠 때였다. ‘사형’이란 형벌이 폐지되어야 하는지를 토론했다.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과 폐지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쪽으로 나뉘어 수업 중 찬반 토론을 펼쳤다. 지연이도 이에 질세라 맞받아쳤다.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죽이는 것보다 평생 감옥에서 갇혀 사는 게 더 괴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평생 감옥에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감옥에서 성실하게 지내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살인자도 풀려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나오면 또 피해자 가족에게 보복할 수 있는데, 그건 또 다른 범죄를 낳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도 사람에게는 최소한으로 보장해 주어야 할 인권이 있습니다. 생명을 해치는 건 그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인권을 빼앗는 거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피해자의 인권과 피해자 유가족의 인권은 어떻게 할 건가요? 범죄자가 먼저 피해자의 생명권을 빼앗았습니다. 그건 어떤 방식으로 보상하죠?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으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각오는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영미의 주장에는 논리가 명확했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 일부는 영미의 빈틈없고 똑 부러지는 언변에 감탄했다. 영미와 반대쪽 아이들은 말문이 막혔다. E-스포츠(E-Sports) 대회에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때 GG(Good Game)란 말을 남기듯(이 표현은 항복 선언을 의미한다.), 영미의 반대편 아이들은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토론 중 대부분 아이들은 영미 앞에서 꼼짝 못 한다. 영미가 토론을 잘하는 이유는 자료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는 데 있다. 게다가 해박한 지식이 더해져 시너지 효과를 낸다. 하지만 토론이 어느 한쪽으로 압도적으로 기운다면, 영미 위주로 토론이 흘러가게 되고, 교사가 너무 이른 시간 토론에 개입한다는 단점이 발생한다. 이는 영미 개인의 발전에도 좋지 않다. 자신과 비슷한 토론 능력을 갖춘 학생이 있다면 많은 자극을 받고 새롭게 논리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텐데. 나는 이럴 때 입을 열어 은근슬쩍 토론에 참여한다. 물론, 일부러 영미의 대척점에서 주장하여, 영미의 논리적 갈등 상황을 낳게 한다.

    “좋아. 토론은 이것으로 끝난 것 같은데, 선생님이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우선 모두 영미의 말에 수긍하는 분위기인데? 사형이 정말 이 사회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들 갖게 된 것 같네. 좋은 토론이었어. 그런데 생각할 점이 더 있는 것 같아. 혹시 법 중에서 최고의 법이 뭔지 아니?”

    “헌법이요.”

    “맞아. 영미가 사회 시간에 잘 배웠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켜야 하는 모든 법률은 헌법의 정신에 기초해서 만들어졌어. 국회의원들이 제정하는 법률도 상위의 법인 헌법의 정신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대한민국헌법 제10조를 볼까? 선생님이 준비한 자료를 읽어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되어 있지. 즉, 국가는 인권 보장의 의무를 지고 있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거야. 사형 집행은 법무부 장관의 승인 아래 국가 기관인 교도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알고 있어. 국가가 사람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행동을 하는 건 헌법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범죄자는 다른 사람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행동을 했잖아요? 그러면 똑같이 생명을 내놔야 공평한 것 아닐까요?”

    “그렇지, 불합리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개인이 벌인 일이라서 국가가 제도적 틀 안에서 사람의 생명을 합법적으로 빼앗는 것과는 입장이 다른 거지. 그리고 형벌의 본질은 범죄자를 건전한 사회인으로 교화하는 데 있어. 즉, 범죄자가 새사람으로 바뀌도록 하는 게 핵심인데, 범죄자를 죽여버리면 형벌의 본질을 무시하고 새사람이 될 기회를 국가가 포기한 게 아닐까?”

    “형벌의 기능 중 하나가 범죄를 억제하는 기능이잖아요. 선생님처럼 생각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 사람을 죽여도 내가 목숨을 잃지 않겠구나. 우리나라 법이 물러 터졌네? 라고 생각하면서 범죄자들이 안심하고 범죄를 더 저지를 거예요. 범죄자는 더 늘어나겠죠. 우리 반 아이들만 보더라도 위험한 장난을 치다 선생님께 발각되면, 혼나잖아요. 선생님께 혼나지 않으려고 장난을 참는 아이들도 많다 생각해요. 그리고 잘못한 사람을 벌하여 피해자의 마음속을 후련하게 풀어주는 게 선생님이 사회 시간에 줄곧 말씀하신 정의로운 일이 아닌가요?”

    영미는 선생님의 의견에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세차게 논리를 전개하여 반박했다. 아이들은 나와 영미가 말을 주고받는 걸 지켜보면서 누가 이길지 흥미롭다는 듯이 웃음을 띠며 집중했다.

    “좋아. 영미는 범죄가 줄어든다고 했는데, 사형 제도가 있는 나라에서 범죄가 줄어들었다는 통계, 또는 사형 제도가 없는 나라에서 범죄가 늘어났다는 통계 자료가 있으면 보여줄 수 있니? 물론, 사형 제도를 실시하다가 폐지한 나라, 사형 제도가 없다가 만들어지거나 다시 도입한 나라를 이야기하는 거야. 사형과 범죄율과의 상관관계는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게 없다고 알고 있어.”

    “선생님. 밝혀진 게 없다고 하셨으니, 사형 제도가 없다면 더욱 위험하겠네요. 범죄를 억제하는 장치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없앴다가 진짜 범죄를 억제하는 역할을 해왔다면 범죄율이 증가하는 셈이잖아요. 그리고 저도 인터넷을 검색해봤는데 사형 제도를 부활시키자 범죄율이 감소한 사례도 미국에서 있었어요.”

    “오, 그런 자료까지 찾아보다니 훌륭한데? 사형과 범죄율 간의 상관관계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여러 사회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범죄율에 영향을 주니 좀 더 많은 연구 결과들을 기다려보자. 그런데 영미야, 판사의 오판으로 죄 없는 사람에게 사형 집행이 이루어진 경우는 어떻게 할 수 있겠니?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누가 봐도 확실하게 사건을 밝혀내면 되는 것 아닌가요?”

이쯤 되면 정말 교사로서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학생이 토론의 개념을 논리적인 말싸움으로 인식하여 상대방에게 예의 없이 무례하게 군다면 분명 교사가 지도할 문제이지만, 평소 영미는 토론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토론에서 지켜야 할 태도를 흐트러짐 없이 지켰다.

    6학년 담임의 장점은 학생들과 서로 사회적인 문제들을 깊이 있게 토론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6학년은 초등학교에서 가장 높은 학년으로, 일반적으로 인지가 다른 학년에 비해 가장 발달한 시기다. 물론 전두엽이 미성숙한 시기이기 때문에 토론하는 과정에서 학생들끼리 감정 조절이 안 되어 말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교사가 개입하여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지도할 기회를 만들 수 있으니 사소한 데서 오는 다툼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는 토론이 학생들에게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토론을 하기 전에 자신의 주장과 그에 따른 근거를 글로 쓰면서 생각을 정련하는 작업이 필수적으로 선행된다. 여기저기 흩어진 생각들을 질서정연하게 정돈하다 보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또 다른 논리를 만들어 자신의 주장을 보완하게 된다.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뿐 아니라 토론하는 도중에도 상대방의 논리를 잘 듣고, 메모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키우게 된다.

    또한 경청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토론의 모든 과정에는 ‘듣기 능력’을 필요로 한다. 듣기에는 네 가지 단계가 있다. 보며 듣기 – 쓰며 듣기 – 대답하며 듣기 – 생각하며 듣기의 단계이다.(1) 토론에서는 보고, 쓰고, 대답하고, 생각할 때마저 듣는 능력이 요구된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경청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토론의 장점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토론 수업 도중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비록 서로 다를지라도, 상대방의 의견도 나의 의견과 똑같은 가치를 지닌 하나의 의견으로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의견이 다른 것이지, 누구의 주장이 ‘틀렸기에’ 의견이 다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거친 비와 풍랑에 배가 뒤집혔다. 몇몇 사람들은 뗏목을 만들어 생존하고 있었다. 구조될 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식량이 떨어졌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면 며칠 동안은 버티겠지만, 한계가 있다. 언제 구조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마냥 구조대만 기다릴 수 없다. 그때 어떤 사람이 손을 들고 말했다. 

    “바다 한가운데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중 누군가를 먹어서라도 목숨을 이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

    “아니, 어떻게 사람을 먹을 수 있어요? 나는 식인종이 아니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는 못 해요. 당신이 먹히는 입장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소?”

    이때 다른 사람이 말했다.

    “아, 저는 고향에서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어요. 어떻게든 살아 돌아가고 싶어요. 살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하는 수밖에요. 저는 여기서 죽는 것보다 뭐라도 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당신이라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소?”

    “우리 모두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합의해서 정한 기준이 있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 있겠소. 그리고 저는 모아둔 재산이 있어서 그 재산 때문이라도 살아남아야겠소. 그리고 한 사람의 희생으로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면 그것 또한 값진 일이 아니오?”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살아 있는 사람을 어떻게 먹겠소. 그냥 우리 중에서 먼저 굶은 죽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을 먹읍시다. 죽은 사람이니 고통도 없을 거고, 어차피 썩어버릴 시체인데 좋은 일에 사용되는 게 낫지 않겠소?”

    “그만하시오? 그건 생명을 모독하는 일이오. 절대 그럴 수 없소.”


    낭만주의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이란 그림에 얽힌 이야기에서 ‘잔인성’과 ‘야만성’, ‘복잡성’을 제거하고 내가 간단히 각색한 이야기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는 식인 행위가 일어났다. 만약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과 인권에 가치를 둔다면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사람을 먹지 않을 것이다. 보편적인 자연법을 존중하는 사람일수록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절대 먹지 않을 것이다. 반면, 인간의 목숨을 보편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수량화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본다면, 한 사람 또는 일부 사람의 희생으로 나머지 사람을 살리는 선택을 할 것이다. 인간을 도구적 관점으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됨으로써, 인명(人命)은 누군가의 식량으로 전환될 수 있다. 즉, 어떤 가치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선택과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이야기라서, 이 문제를 초등학생들에게 그대로 제시하진 않는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담긴 사례나, 콜버그가 제시한 ‘하인츠 딜레마’를 활용하여 서로 추구하는 가치를 확인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겠다.

제대로 된 토론이라 하면, 중세 시대 대학의 모습을 빼놓을 수 없다. 중세 대학에는 인문학부 위에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라는 상위 학부가 있었다. 왠지 인문학부,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라고 하면 뭔가를 달달 외워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역사 연도를 외우거나, 유명한 시인의 작품을 외우거나, 성경 말씀을 외우거나, 법을 줄줄이 외우거나, 인체의 구조와 치료법을 외워야 할 것만 같다. 그렇지만 중세 시대 대학(원)생들은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교수들도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하지 않았다. 바로 ‘디스푸타시오’, 즉, 토론이라는 뛰어난 교육방식을 통해 지식을 학습했다. 토론은 ‘정규 토론(Disputatio ordinaria)’과 ‘자유 토론(Disputatio quodlibetalis)’으로 나뉘었다. 정규 토론은 보통 이틀에 걸쳐 이루어졌다. 한 주제로 이틀간 깊이 있고 철저하게 다루었다는 뜻이다.

    토론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교수가 특정 대학원생을 지목하여 질문을 던진다. 학생은 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하느님은 존재하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이 ‘존재한다.’라면 일주일 동안 밤을 새우며 찬성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토론 당일은 어떤가. 토론장에는 교수뿐만 아니라 동료 대학원생, 타 학부의 교수, 심지어 주교가 참석할 때도 있었다. 대학원생의 발표가 끝나면 질문이 이어지는데 절대로 봐주지 않는다. 대학원생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날카로운 질문은 던진다. 교수의 질문이 끝나면 동료 대학원생의 질문으로 이어지는데, 질문의 수준이 절대로 낮지 않다. 토론장에서 발표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교수에게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고, 질문을 통해서 실력을 드러낼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간혹 난상토론이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토론을 온종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힘들겠는가. 교수도 편한 게 아니다. 토론 첫째 날이 끝나면 밤을 새우며 토론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과 반대되는 질문을 반론하기 위해 철저하게 그것이 왜 틀렸는지 참고문헌을 살피며 조목조목 반박할 점을 공부한다.(2)

    나는 토론의 매력을 지성과 인성을 함께 기를 수 있다는 데서 느낀다. 논리적 사고와 주장하는 기술은 지적인 측면에 해당한다. 주장하기 위하여 자료를 찾아 분석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지적인 측면에 해당한다.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지식 또한 늘어난다. 그렇지만 토론이 논리의 완벽함만 추구한다면 어떨까. 궤변을 늘어놓아 상대방의 입을 다물게 하는 데 의의를 둔다면, 토론은 수준 높은 말싸움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인성은 갖추지 못했으면서, 그것에 걸맞지 않는 방대한 지식과 함께 뛰어난 말솜씨를 갖춘 궤변론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분명 주장은 이상하지만, 논리의 완벽함이 갖춰서 상대가 꼼짝 못 하며 씩씩거리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얄미운지 상대의 입을 테이프로 봉합하고 싶은 마음도 들 것이다. 토론이 인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주장하는 태도를 기르고, 상대의 의견도 합리적 근거가 있다면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데서 알 수 있다. 나는 중세 시대 대학교수의 토론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권위를 내세워서 강압적으로 도덕적 가치를 강요하지 않고, 학생들의 철부지 같은 의견도 존중하는 자세로 학생들을 지식의 심연으로 이끈다면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존경받는 이 시대의 참스승이 늘어나지 않을까.     

    “영미야. 판사의 오판으로 사형이 집행된 사례가 실제로 있고, 수사하는 검사나 판결하는 판사도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아. 어떠한 재판 제도 속에서도 죄가 없는 사람을 사형장으로 보낼 가능성이 있어. 이미 사형이 집행되었다면, 형장의 불행한 넋으로 남겨진 그 사람을 어떻게 위로하겠니? 그리고 본인 또는 본인의 가족이 이런 부당한 처사를 당했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미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 대견하다. 영미가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압도적인 토론을 이끌었다면, 나 역시 영미의 반대 입장에서 ‘악마 옹호형’(3) 교사처럼 토론을 진행했을 것이다. 토론 레시피에는 필수적인 재료가 있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과정에서 우리 반 아이들의 사고력이 진심으로 발달하길 바라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1) 『초등 따뜻한 교실 토론』(이영근, 에듀니티)의 25쪽을 참고하였습니다.

(2) 중세 시대 토론과 관련된 내용은 박승찬 교수의 『알수록 재미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의 중세 ‘교회와 함께 성장한 중세 대학’ 부분을 정리하였습니다. 박승찬 교수님의 글은 군더더기 없이 재미있고 깔끔하게 작성된 글이라 정리하는 데 거의 버릴 문장이 없었습니다. 더욱 좋은 문체로 중세의 토론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교수님의 저서를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3) 사회과 논쟁문제수업에서 교사가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는 정도에 따라 D. Hawood는 교사의 역할을 6가지(신념형, 객관형, 악마 옹호형, 관점 옹호형, 공정한 의장형, 선언적 관심형)로 분류했습니다. 악마 옹호형은 교사 자신의 의견과 관계없이 좌충우돌하며 학생의 의견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토론을 진행하는 교사의 유형이라고 합니다. 『사회과 교육의 이론과 실제』(박상준 저, 교육과학사) 372쪽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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