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근수근 Aug 05. 2024

목포근대역사관을 가다-2

근대문화역사공간에서 목포 개항장을 떠올리다

■ 전쟁 준비의 흔적, 유달산 방공호

목포근대역사관 1관 뒤편에는 방공호가 있다. 방공호는 공중에서 가해지는 폭격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사적 목적의 방어 시설이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 때 대규모 방공호를 만들어 취사 시설과 공기 정화 시설까지 마련하고 장기전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한반도의 경우,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대형 방공호가 만들어 졌으며, 목포에는 유달산과 고하도에 방공호가 만들어 졌다. 유달산 자락의 이 방공호는 일제 말기인 1944년에서 1945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된다. 유달산 방공호의 전체 길이는 72m이며, 중앙 출입구가 있고 좌우에 별도의 출입구가 있는 등 밖으로 통하는 문은 3개이다. 높이는 2m내외이며 폭이 넓은 곳은 3.3m에 이른다. 이 방공호는 당시 유달산에 주둔하던 일본군 150사단 사령부가 유사시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목포 앞 고하도에는 인간어뢰정을 은닉하기 위해 파놓은 인공터널 20여개가 있다. 방공호 조성에는 한국인들이 강제 동원되었다. 군인으로 징병한 사람들을 이러한 군사시설 현장 노동자로 투입하여 노동력을 착취하였다. 이러한 모습을 방공호 내부에 모형으로 재연해놓았다.

목포근대역사관 1관 전시 내부
목포근대역사관 2관 전시 내부
유달산 방공호 내부 모형

■ 목포근대역사관의 현재와 미래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1897년 목포가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하면서 외국인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설치한 각국 거류지 지역이다. 조선시대 군사시설인 목포진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주변 해안가를 간척하여 근대시가지를 형성하였다. 지금도 당시의 바둑판식 도로 구조와 근대 건축물이 원형대로 잘 남아 있는 공간이다. 개항 당시 목포 각국 거류지의 전체 면적은 약 22만평으로 이중 핵심에 해당하는 지역을 등록문화재 제718호로 등록하였다.

이 공간은 과거 일본인들이 다니던 소학교 일대에서 목포역 방향으로 이어진 대표 도로를 중심에 놓고 유달산·목포진·선창을 연결하는 구조이다. 이 일대에는 각종 관공서를 비롯해 일본인들이 다녔던 학교와 교회, 일본식 민가, 백화점을 비롯한 상업 시설이 밀집해 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식민지 수탈의 아픔을 기억하는 공간이자 부두노동운동·소작쟁의·의병·항일 운동 등 민족의 저항 역사가 함께 숨 쉬는 곳이다. 또한 해방이후 항구 도시 목포사람들의 삶의 중심 터전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문화공간을 살려 문화재청의 대표적 문화재 활성화 사업인 야행을 2018년부터 진행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원도심 재생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영사관과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은 이러한 목포의 시대 변화에 따라 모습과 역할을 바꿔왔으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어 이 공간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전 03화 목포근대역사관을 가다-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