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즈 데이비스 <All of You> 들어보기
‘Round about Midnight’ 앨범 들어보기
원어민을 흉내 내어 발음해 보면 ‘I Love You’와 ‘All of You’는 무척 비슷하게 들린다. 마치,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곧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거라고 말하는 것 같다. 발음도 비슷한 저 두 말은 대중음악 가사나 철모르는 연인들의 속삭임 속에서 단짝처럼 붙어 다닌다.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해.”
닭살 돋게 만드는 진부한 말이지만, 사랑에 홀딱 빠져 수치심이 무뎌 있는 이들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고백일 터이다.
저 말은 한동안 크게 유행했던 정현종 시인의 유명한 시 '방문객'의 구절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과거와 미래가 함께 오는 것이므로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시.
이 싯구는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고백의 마음을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 ‘어마어마하다’는 3차원적 부피, 그리고 ‘온다’는 움직임, 즉 물리적 시공간 안에서 역동하는 실체를 통해 구체화함으로써 진부함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추상적인 말이 하나의 실체로서 우리 앞에 툭 던져졌던 것이다. 덕분에 현재 사랑에 빠져 있지 않아서 수치심을 아는 사람들까지도 닭살 돋지 않고 사랑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음미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랑의 위대함을 표현한 정현종 시인의 이 싯구는 다른 각도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모호한 개념에다 뼈와 살과 가죽을 부여함으로써 사랑은 하나의 크리처Creature가 된다. ‘어마어마’한 것이기에 그만큼 ‘어마어마’하게 무섭고 두려운, 크리처 장르 속의 크리처마냥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결코 연인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없기에, 모든 것으로 다가오는 그 사랑은 어마어마한 만큼 어마어마하게 무섭고 두려운 것일 수밖에 없다.
나는 여기서 정정해야만 하겠다. 정현종 시인의 싯구는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실체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말은 사랑에 취해 건네는 부도 수표이거나, 사랑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은 이가 악의 없이 던지는, 지켜질 수 없는 철없는 약속이다. 만일 사랑이란 것이 정녕 위대하다면, 그건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없음에도 너를 사랑하기 때문인 것이다. 정현종 시인의 싯구는 사랑이라는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크리처를 나에게 오게끔 받아들이는 어마어마한 용기와 관용에 대한 시라고 해야 더 옳을 것이다.
이쯤에서 소설가 테드 창Ted Chang의 단편 소설 ‘당신의 인생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드니 빌 뇌브Denis Villeneuve 감독의 SF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가 언급되지 않을 수 없다. ‘컨택트’는 마치 원작 소설보다도 정현종 시인의 시를 영상화 한 것 같다. 절묘하게도 영화의 원래 제목 또한 ‘도착Arrival’이다. 시 속 주어처럼 한 사람이 온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가 우리에게 '온 것’이다. 특이한 기하학적 모양을 한 초거대 우주선과 우리 관점에서는 무서운 외양을 한 크리처,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서운 것이 온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것은 주인공에게 어마어마한 것을 던져주고 간다. 이혼과 불치병에 걸린 딸아이의 죽음이라는 미래를. 너의 모든 것은 이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두려운 것들을 포함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로 들어차 있는 미래를 앞서 예지했음에도 거부하지 않는다. 끌어안는다. 이혼하게 될 남자와 사랑을 하고 병마를 몸에 품고 일찍 떠나갈 아이를 낳는다.
소개하는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가 연주한 <All of You>의 원곡은 많은 재즈 곡들이 그렇듯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왔다. ‘실크 스타킹Silk Stockings’이란 1955년도 뮤지컬인데, 1957에는 전설의 뮤지컬 전문 배우 프레드 아스테어Fred Astaire 주연으로 영화로도 제작됐다.
가사는 앞서 늘어놓은 사랑에 대한 진지한 얘기들을 담고 있지는 않다.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는데, 상대의 매력적인 장점들만 쭉 열거한 다음에 너의 영혼과 마음까지 조종하고 싶다는 흑심까지 발설한다. 소심하게도, 가사 마지막에는 내가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하니까 너도 나의 조그만 부분만이라도 사랑해 줄 수 없겠냐고 애원하기까지 한다.
진지한 가사는 아니지만, 실은 우리 대부분의 사랑은 정현종의 싯구나 영화 ‘컨택트’보다는 <All of You>의 원곡 가사처럼 소소하고 표피적이며 조금은 비겁하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 대부분이 역사 속 위인들처럼 위대한 삶을 살 수도 없고 살 필요도 없듯이, 우리가 꼭 위대한 사랑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반드시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한 시절, 아니 한 순간만이라도 누군가와 체온을 나누고 인생의 한 부분, 한 부스러기만이라도 나누었다면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All of You>는 그가 프레스티지Prestige 레코드사에서 콜럼비아Columbia 레코드로 이적한 뒤 발표한 첫 앨범 ‘Round about Midnight’에 수록돼 있다. 1957년 세상에 나온 이 앨범에는 이 시리즈 5장 중간에 잠깐 언급하며 소개했던 마일즈 데이비스의 <Dear Old Stokholm>이 수록돼 있기도 하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All of You>는 찬탄을 자아낼 만큼 위대하거나 아름다운 연주는 아니지만, 그의 모든 연주들을 통틀어 가장 예쁘고 깜찍한 곡이라 할 만하다. 인트로 없이 곧장 시작되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테마 연주는 활짝활짝 공중으로 피어오르는 어여쁜 소녀의 발걸음을 닮았다. 마일즈의 연주가 사뿐히 귀를 즈려밟고 지나가면,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테너 색서폰 연주가 마치 뒹구는 나뭇잎을 본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함박 웃음처럼 와락 터져나온다. 베이시스트 폴 챔버스Paul Chambers의 워킹 베이스와 드러머 필리 조 존스Philly Joe Jones의 스윙감 넘치는 브러쉬 연주가 젊은 날 약동하는 생의 리듬을 표현하는 가운데, 그 위에 올라탄 레드 갤런드Red Garland의 피아노는 철 모르는 어린 무녀처럼 즐겁게 춤을 춘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All of You>는 사랑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 모르는 시절의 사랑, 그래서 겁 없이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거짓 아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시절, 그 사랑의 향기를 곡 전체에 걸쳐 뿜어내는 것만 같다.
부록18)
<All of You>의 원곡이 나오는 뮤지컬 영화 ‘Silk Stockings’에서 남녀 주인공 프레드 아스테어와 시드 섀리스Cyd Charrise가 <All of You>에 맞춰 신나고 멋지게 춤추는 장면을 감상해 보자.